이케노보만게츠죠 화재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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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이케노보만게츠죠
3. 사고 경위
4. 피해가 커진 이유
5. 사고 이후
6. 유사 사고
7.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池之坊満月城火災

1968년 11월 2일 일본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


2. 이케노보만게츠죠[편집]


효고현 고베시의 유명 온천관광지인 아리마 온천에 위치한 대형 숙박시설이다. 노포 축에 속하는 역사가 오래 된 숙박시설이기도 하며 약 800명 이상 수용 가능한 대규모 시설이었으며 웬만한 리조트와도 맞먹는 수준이었다. 주요 시설인 료칸 주변에 부속 건물 여러 채를 소유하고 있었으며 증축과 개축이 여러 차례 거듭되면서 점차 규모가 크게 불어났다.


3. 사고 경위[편집]


1968년 11월 2일 오전 2시 30분경 이케노보만게츠죠 2층에 위치한 연회장 '인왕전(仁王殿)'의 준비실에서 화재가 시작되었다. 불길은 준비실 복도를 따라 위쪽으로 계속 번져가기 시작했지만 화재를 발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던 중 3층 객실에 있던 남성 투숙객이 밖에서 나는 이상한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 밖을 보다가 화재 현장을 발견했는데 불꽃이 보인 연회장 쪽으로 갔다가 이미 연회장 입구에서 불꽃과 함께 엄청난 양의 연기가 뿜어나오는 것을 목격하고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다.

한편 그 시각 2층에서 잠을 자던 남성 직원도 잠결에 이상한 냄새를 맡고 잠에서 깼다가 방문 아래 틈새로 흰 연기가 새어들어오는 것을 목격해 즉시 방에서 나왔다가 연회장 쪽에서 붉은 빛을 보고서야 화재 발생을 확인했지만 불이 났다고 큰 소리로 외치고 다니면서 사람들을 깨우느라 미처 신고를 하지 못했고 사람들을 다 깨우고 나서야 소방서에 화재 신고를 했다. 직후 자고 있던 다른 직원들을 깨워 화재 진압을 시작했으나 그 시점에서 불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커져서 직원들이 양동이로 물을 퍼날라서 끼얹는 정도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상태였다.

불길은 오전 5시 45분경에 진화되었다. 목조 2층 건물인 별관과 본관 등 건물 6동에 불이 번져 총 6550㎡에 달하는 면적이 전소되었고 직원 1명을 포함해 30명이 사망하고 44명이 중상을 입는 대참사가 나고 말았다. 희생자들의 상당수는 도야마현 쿠로베시의 한 회사 직원들이었으며 희생자들 중에는 도야마현과 미에현에서 신혼여행을 온 부부 두 쌍도 있었다.


4. 피해가 커진 이유[편집]


우선 이케노보만게츠죠는 그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증축과 개축을 반복했던 탓에 규모도 커졌지만 내부 구조가 마치 미로처럼 복잡하게 되어 있어 긴급상황 발생시 피난하기 굉장히 어려운 상태였으며 화재경보기가 거의 설치되어 있지 않아서[1] 직원들조차도 화재 발견이 늦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소화전소화기 등 초기 화재 진압에 필요한 소방설비나 피난설비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으며 평상시 피난훈련이나 소방훈련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 이런 화재 및 사고 대책 미흡으로 인해 이전에도 소방서에서 몇 차례 주의조치가 내려졌으나 전혀 개선되지 않았고[2] 심지어 화재 발생 당시에는 또 새로운 부속 건물을 짓던 상황이었다.

여기에 더해 건물의 내장재가 모두 가연성 재질이었던 점도 피해를 키운 큰 요인이었다. 이 가연성 재질의 내장재가 타면서 고온으로 인한 플래시 오버 현상[3]과 유독가스가 대량으로 발생하였고 정전까지 겹치는 등 악조건들이 한데 모여 피난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으며 전술되었듯 피난 경로와 시설 자체가 미비했던 데다 직원들도 적절하게 대피 유도를 하지 못한 탓에 희생자들의 시신은 한 곳에 모여있지 않고 제각기 다른 장소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한편 일각에서는 이른바 '굴뚝 효과'를 피해가 커진 원인으로 추정하는 해석도 있었다. 최초 발화와 동시에 계단을 타고 위층으로 올라간 연기가 굴뚝 효과로 인해 아주 짧은 시간에 퍼지면서 층 전체에 연기와 유독 가스가 가득찬 것이 아니냐는 해석으로, 화재를 감지한 투숙객들이 객실에서 나왔을 때는 정전이 된 상태인 데다 연기까지 자욱했기 때문에 시야가 상당히 나빴을 것으로 보였다. 그래도 이때까지만 해도 시야는 최악이었지만 아직 일산화탄소 농도는 낮은 편이었기 때문에 투숙객들은 어떻게든 탈출을 시도했으나 좀처럼 탈출구를 찾지 못하던 사이에 일산화탄소 농도가 점차 증가하면서 결국 사망에 이른 것으로 추측되었다.

최초 발견자와 직원이 초기에 빠르게 신고하지 않았던 것도 피해를 키운 요인으로 지목되었다. 특히 직원들이 각각 다른 위치에 분산되어 있음에도 체계적인 내부 소통 체계가 마련되어 있지 않았던 탓에 전 직원이 화재 발생 사실을 인지했을 때는 이미 시간이 상당히 경과한 후였다.

게다가 전해진 바에 따르면 당시 고급 호텔들에는 투숙객들에게 화재 대비용 안전설비나 피난 요령 등을 설명하는 것을 '멋없는 짓'이라고 치부하면서 공공연하게 경시하는 풍조가 있었다고도 한다.


5. 사고 이후[편집]


이케노보만게츠죠의 경영자는 관리 책임을 물어 재판에 회부되었다가 집행유예가 딸린 유죄 판결을 받았다.

화재 이후 이케노보만게츠죠는 당시 건설 중이었기 때문에 화를 면했던 11층 건물 '키타노마루(北の丸)'와 그나마 피해가 적은 편이었던 '니시노마루(西の丸[4])', 화재 이후 신축한 '니노마루(二の丸)'의 3개동으로 1970년대 초반에 영업을 재개했다. 이 세 건물 모두 신축 및 보수 과정에서 화재 예방 및 피난설비가 보강되었다. 1995년 고베 대지진 당시 피해를 입어 또 다시 영업이 중단되었다가 얼마 후 규모를 축소해서 재오픈했으나 2007년경부터 무기한 휴업에 들어가면서 숙박시설로서는 사실상 폐업했지만 법인은 여전히 존속하고 있으며 화재가 발생했던 건물 터에는 유료 주차장이 들어서 있다.

사고 이후 인근에 있는 사찰 온센지 경내에 위령탑이 건립되었다.


6. 유사 사고[편집]



7.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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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건물 일부에 설치되기는 했으나 그마저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2] 당시 이케노보만게츠죠의 화재 예방 대책이 얼마나 개판이었냐면 일단 화재관리 책임자가 선임되고 소방 계획도 있기는 했으나 형식에 그쳤고 자체 점검은 아예 하지도 않았으며 심지어 자체 소방대는 여성 몇 명으로만 구성되어 있는가 하면 야간에는 그 넓은 시설을 1명이 2회 점검하는 등 빈말로라도 대책이 갖춰져 있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한다. 그나마 이 화재관리 책임자도 화재 예방 대책에는 무신경하기 짝이 없었다고 한다.[3] 한 투숙객은 화재 발생 후에도 아직 옷 갈아입을 정도 여유는 있겠거니 하고 채비를 하던 도중 플래시 오버가 터지는 바람에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4] 화재 이후 '산노마루(三の丸)'로 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