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재(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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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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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69년 8월 20일 (54세)
전라남도 광양시
현직

학력
순천고등학교 (졸업)
소속 정당

파일:더불어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경력
광양시청 공무원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
공무원통합노동조합 위원장
제20대 대선 이재명 후보 노동특보단 부단장
링크



1. 개요[편집]


광양시청 공무원 출신 정치인이다.
광양토박이로 광양을 떠나지 않고 공무원, 노조위원장 등 다양한 활동을 역임했다.

2. 생애[편집]


1969년도 구 광양읍 용강리 검단마을에서 6남매의 다섯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표면적으로 내성적으로 보였으나 반장과 전교 어린이회장까지 할 정도로 외향적인 기질이 많았다. 과학경진대회와 학예발표회 및 학교 행사에는 빠짐없이 참여하던 어린시절의 나름 인사로 자라났다.
바둑을 배우고 싶었으나 아버지의 권유로 장기를 배우게 되었고 동네 어르신들과 견주어도 패하지 않을만큼 장기에 소질이 있었다.
중학교에 입학하니 소위 말하는 범생이가 되어 공부만 하고 당시 지역의 명문고였던 순천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10대 중후반에 찾아온 사춘기 시절에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었다. '삶'이라는 큰 덩어리를 놓고 온갖 잡다한 생각을 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생각의 끝에서 하게 된 결심은 대학진학을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당시에는 '대학은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가는 곳이지, 누구나 다 의무적으로 대학을 갈 필요가 없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학진학에 대한 고민 대신 만화를 통해 인물, 역사, 문화 등 다양한 경험들을 얻었다. 당시 대학 진학을 하지 않은 것에 후회하지 않는다고 한다.[1]


3. 활동[편집]


"나는 무엇을 할 것인지?", "무엇을 해야 훗날 후회 없는 길이 될 것인지?"라는 생각을 몇달을 하릴없이 무위도식하며 청춘을 보내고 있으나 형님께서 공무원의 길을 권하셨다. 공무원은 생각도 해 본적도 없지만 당시에는 임시방편으로 찾은 비상구 같은 방향이었다. 두달도 남지 않은 시간에 1988년 6월 지방직 9급 시험 준비를 하였고 예상보다 어렵지 않은 시험으로 합격할 수 있었다. 일단 밥벌이는 할 수 있다라는 안도로 직업의식이나 야망없이 일단 시작하게 된 직장이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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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무원 7년차에는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만한 재활의학과 야간대학을 다녔었다. 그러나 직장과 학교를 병행하는 것은 두마리 토끼를 놓치는 일이라 생각되어 2학년이 되는 해에 과감하게 자퇴를 하였다. 이에 대한 후회와 미련은 없다. [2] 당시에는 그랬으나 훗날 23년간 공무원 노조에 뛰어들어 노동조합의 일원이나 리더로 활동을 하는 것을 보니 공무원 시험은 운명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