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레바논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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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적 관계
2.1. 상고대
2.2. 고대
2.3. 고대 말
2.4. 중세
2.5. 근세
2.6. 19세기
2.7. 20세기
2.8. 21세기
3. 문화 교류
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이집트레바논의 관계에 대한 문서이다. 양국은 대체로 교류, 협력이 활발한 편이다. 그리고 양국은 아랍문화권, 이슬람문화권에 속해 있고 아랍 연맹, 이슬람 협력기구, 프랑코포니에 가입되어 있다.


2. 역사적 관계[편집]



2.1. 상고대[편집]


양국은 고대부터 문명이 매우 발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집트는 나일강을 중심으로 고대 이집트 문명이 생겨났고 레바논은 페니키아 문명이 생겨났다. 고대 이집트와 페니키아는 교류와 교역이 활발했고 영향을 많이 받았다. 대표적으로 페니키아 문자의 경우 상형 문자였던 고대 이집트 문자의 참조하여 만들어진 표음 문자이다. 이집트는 백향목 같은 목재를 레바논에서 수입하곤 했는데, 목재 수출 규모가 얼마나 거대했는데, 이미 청동기 시대 당시 레바논의 목재 대량 수출로 레바논 삼림 지대가 황폐화되었을 정도였다. 성경의 어원이 된 도시인 비블로스 역시 이집트와 교류로 변영하던 도시였다.

2.2. 고대[편집]


양 지역은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알렉산드로스 제국과 여기에서 갈라져 나온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영토였다는 역사를 공유한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지배를 거치며 고대 그리스어가 이집트와 레바논을 포함한 동지중해의 링구아 프랑카가 되었다. 페니키아인들은 이집트 이외에도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나 우티카 같은 식민도시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고대 카르타고포에니 전쟁에서 로마 공화정에게 패배한 것을 계기로, 시돈티레를 중심으로 한 페니키아 도시들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경제적으로 더 의존하게 되었다.

포에니 전쟁 패배 이후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져있던 페니키아인들과 고대 카르타고 주민들 중 적지 않은 수는 과거 자신들이 믿던 카르타고 전통 다신교를 버리고, 일부가 알렉산드리아 유대인 상인들의 영향을 받아 유대교로 개종하였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치하에서 고대 로마 지배에 이르는 기간동안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인구가 폭발적으로 성장한 이유에는 이들 페니키아인들이 알렉산드리아에 정착하고 유대교에 개종한 데 있다고 볼 수 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로마 제국에 병합된 것을 계기로 양 지역은 모두 로마 제국의 속주가 되었다. 한 편 로마 제국의 유다이아 속주와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사회에서는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이 할례 같은 율법을 지켜야 하는가 관련한 토론이나 논란 문제가 심각하였고, 개종자의 처우나 위치 관련하여서도 각 종파마다 이견이 상이하였다. 로마 제국의 기독교 공인 이전 로마 제국 내에서 가장 기독교인 인구가 많았던 지역이 바로 이런 유대교 개종자들이 많았던 시리아와 레바논 그리고 이집트 일대였던 것은 특이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2.3. 고대 말[편집]


서기 4세기 초 로마 제국은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가 국교로 공인되고, 4세기 말에는 테오도시우스 1세에 의해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었다. 로마 제국의 동서분할 과정에서 이집트 속주와 시리아-포에니키아 속주는 모두 동로마 제국 영토에 속하게 되었다. 그러나 동로마 제국 시대 들어서 레바논과 이집트의 문화적 이질화는 오히려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이집트는 동로마 제국의 보편교회 교리에 대한 반발/그리스어권 사용자와 콥트어 사용자 간의 진영 논리와 지역 감정 등의 이유로 단성론(합성론) 계열의 콥트 정교회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시리아와 이집트 일대에서 단성론이 유행하자 여기에 반발한 일부 보편교회 신자들이 레바논 산악지대에 자리를 잡고 단성론자들과 거리를 두게 되는데 이들은 오늘날 레바논의 주요 기독교 종파인 마론파멜키트 그리스 가톨릭 교회의 기원이 된다.


2.4. 중세[편집]


하지만 7세기에 아라비아 반도에서 이슬람교가 발흥 이후, 아랍 무슬림들은 동로마 제국의 영토였던 동지중해 일대와 이집트를 정복했다. 이집트는 정통 칼리파 시대와 우마이야 왕조의 지배 하에서 콥트교 신자들이 많았지만, 파티마 왕조 시대를 거치며 무슬림의 비중이 높아졌다.

레바논 일대는 이슬람 제국의 지배를 받았지만, 기독교 비율이 높은 편이었다. 이러한 연유에서 동로마 제국니케포루스 포카스요안니스 1세를 중심으로 한 중흥기 당시 동로마 제국 군대가 함단 왕조파티마 왕조를 격파하고 레바논 북부 일대를 재차 정복하기도 했다.

오늘날 레바논의 주요 종교 중 하나인 드루즈교는 이집트를 중심으로 했던 파티마 왕조의 6대 칼리파 알 하킴의 추종자들의 후손이다.

십자군 전쟁 시대 들어서면 레바논 해안 지대에는 십자군 국가들이 들어서서 이집트를 중심으로 한 이슬람 왕조들과 대치하는 상황이 지속되었다. 제2차 십자군 전쟁 당시 살라흐 앗 딘은 십자군 전쟁의 혼란상 와중에 기존 이집트를 지배하던 파티마 왕조를 무너트리고, 아이유브 왕조를 개창하였다. 이집트의 아이유브 왕조는 이후 맘루크 왕조로 교체되었고, 시리아와 레바논 일대의 십자군 국가들은 맘루크 왕조의 공격으로 모두 멸망함으로써 십자군 운동은 종결을 맞이하였다.[1] 레바논 산악 지대에 숨어있던 알라위파드루즈, 및 기독교 소수종파 신도들은 십자군들을 환영하였고, 십자군의 보조부대로서 활약하였던 바 있다. 맘루크 왕조가 십자군 국가들을 멸망시키는 와중에 일부 레바논 마론파들이 이웃한 키프로스로 망명하는데, 이들은 '키프로스 마론파 아랍어'라는 독특한 아랍어 방언을 사용하는 유별난 공동체로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2.5. 근세[편집]


양 지역은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오스만 제국의 지배하에서 총독들에 의한 간접통치가 이뤄졌다. 레바논 일대는 시리아와 함께 오스만 제국의 지배하에 놓였지만, 밀레트 제도하에서 기독교신자들이 제한적인 종교의 자유를 보장받았다.


2.6. 19세기[편집]


오스만 제국의 세력이 약해지면서 이집트는 메흐메드 알리의 주도하에 근대화 정책이 실시됐다. 그리고 이집트는 프랑스의 지배를 잠시 받았다. 레바논 지역은 19세기부터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다. 당시 프랑스는 레바논과 시리아를 식민지배하면서 마론파신자가 다수였던 레바논 지역을 따로 분리시키면서 시리아-레바논이 생겨났다. 이집트는 19세기말부터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다.


2.7. 20세기[편집]


이집트는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에 영국의 보호령에서 이집트 왕국으로 독립했다. 하지만 수에즈 운하에 대해 영국이 지배권을 가지고 있었고 이집트 왕국은 영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시리아-레바논 지역은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고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이집트 왕국과 레바논은 영국의 프랑스의 지배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1940년대 중반 이후, 이스라엘이 건국되자 양국은 이스라엘에 대해 선전포고를 했고 중동전쟁을 치렀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승리하면서 이스라엘은 시나이 반도를 점령했다. 그리고 레바논에 대해 전쟁을 치렀다. 이후에 시나이 반도는 이집트의 영토가 되었다.

80년대에 이스라엘이 레바논 내전에 개입하자 이집트는 이스라엘을 비판했다.


2.8. 21세기[편집]


양국은 이슬람 협력기구, 아랍 연맹, 프랑코포니의 회원국들이다. 그리고 여러차례 교류와 협력이 활발한 편이다. 양국은 이슬람문화권, 아랍문화권에 속해 있고 세속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이집트와 레바논은 이슬람 근본주의를 배제하는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레바논은 정치적으로 마론파, 순니파, 시아파가 각각 대통령과 의석, 장관 자리를 가지고 있지만, 대체적으로 세속주의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이집트 군부는 이슬람 근본주의를 배제하고 있는 등 세속주의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양국은 이스라엘에 대해서 견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수많은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주변국들로 이주했고 이집트와 레바논내에선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2010년대초에 무바라크 정권이 무너진 뒤, 무르시 정권이 들어서자 양국간에 갈등이 발생한 적이 있었으나, 무르시 정권이 쿠데타로 무너지고 엘시시 정권이 들어서자 양국은 관계개선이 이뤄졌다.


3. 문화 교류[편집]


양국은 문화적으로 교류가 활발하다. 레바논은 기독교신자와 무슬림의 비중이 각각 절반씩을 차지하고 이집트는 무슬림이 90%, 콥트교가 10%를 차지한다. 양국은 종교교류가 존재하고 이집트의 콥트교와 레바논의 기독교간에 종교교류가 이뤄지고 있다. 레바논에서 이집트 문화가 인기가 많고 이집트 영화, 드라마가 인기를 끌기도 한다.


4.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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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엄밀히 말하자면 중동에서의 십자군 운동의 종결이지 십자군 자체의 종말은 아니다. 동유럽과 북유럽에서는 여타 이런저런 십자군 운동이 지속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