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석(태극기 휘날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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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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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33년 3월 16일(서울특별시 마포구) (72세)[1]
가족
모친, 형 이진태, 형수 김영신[2], 아들, 며느리[3] 손녀 이유진
소속
1사단 12연대 모 중대 > 8연대[4] 4대대 2중대 2소대
최종 계급
육군 하사[5] 전역 (의병)[6]
배우
원빈(청년), 장민호(노년)
일본어 성우
테츠노 마사토요(청년)/이나가키 타카시(노년)[7]

1. 개요
2. 작중 행적
2.1. 초반부
2.2. 중반부
2.3. 후반부
3. 명대사
4. 여담



1. 개요[편집]


태극기 휘날리며 영화의 등장인물. 친형 이진태와 더불어 태극기 휘날리며 영화의 핵심 인물이자 주인공.


2. 작중 행적[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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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 당시 피의 능선 두밀령 전투가 벌어졌던 곳에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발굴 도중 유해와 함께 '이진석'이 새겨진 만년필이 발견되었고, 이에 데이터 베이스를 조회한 결과 1사단 8연대[8] 소속으로 생존 표시가 되어 있었고 기록된 표기 주소로 전화를 한다.

직후 이진석의 손녀 유진이 전화를 받고는 마당에서 정원수를 다듬던 노년의 이진석을 불렀다. 그 후 전화기를 든 이진석에게 감식단 측은 본인으로 추정되는 유골을 발견했다며 당사자가 맞는지 질문하였고, 이에 이진석은 본인이 맞기는 한데 무슨 소리냐고 의아해하다 혹시 이진태가 아니냐고 되물었지만 "아닙니다"란 답변이 들려오자 못내 마음에 걸렸는지 유해 발굴 현장에 직접 갈 준비를 하다[9] 서랍 속에 잘 보관해 뒀던 구두 한 켤레[10]를 꺼내며 과거 회상을 전개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2.1. 초반부[편집]


때는 1950년 6월 서울. 이진석은 친형 이진태구두닦이 일로 서울 종로 거리에서 걸으면서 "구두 닦!"이라는 외침을 뒤에서 따라서 외치며 장난을 친다. 이로 인해 형 이진태에게 숨어있는 걸 들키게 되어 종로 거리를 뛰어다닌다. 그러다 형 이진태와 이진석은 구둣가게 앞 유리창 너머로 진열되어 있는 이태리제 구두를 구경하고 형 이진태는 동생 이진석에게 품종과 외곽을 알려주자 이진석은 "형이 만들면 저것보다 훨씬 잘 만들 거야."라고 극찬 한다. 그 후 전차를 타고 어머니가 운영 중인 국수 가게로 돌아온다. 그날 밤, 이진태와 이진석 가족들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제사를 지내고, 저녁 식사 후 냇가에서 어머니, 이진태의 약혼녀 김영신, 김영신의 남매들과 물놀이를 하며 평화롭고 즐거운 순간을 보낸다.

하지만 돌연 6.25 전쟁이 발발해 두 형제와 어머니, 김영신과 그녀의 남매들은 외삼촌 댁을 향해 피란길에 올라 대구까지 다다르게 된다. 김영신의 남동생 영민이 몸이 아파 이진태가 약을 구하러 간 사이 피란민들 사이에 군인들이 나타나 잠시 조사할 게 있다며 '만 18세에서 30세'까지의 남성들은 앞으로 나오라며 불러낸다. 어머니와 김영신은 무척 불안해하며 이진석을 걱정하며 나가지 말라고 만류하고 이진석은 둘을 애써 안심시키다 군인이 강제로 이진석을 끌고 나오게 한다.[11] 잠시 후 약을 구해 돌아온 이진태는 이진석이 군인들에게 붙들려 간 사실을 알게 되고, 이진석을 데려오려 군용 열차에 오르게 된다. 제지하는 군인들을 뚫고 이진석을 찾아낸 이진태는 이진석을 데리고 나가려 하지만, 헌병들에게 제지당하자 결국 주먹질까지 벌이지만 결국 군인들에게 제압당해 두 형제는 나란히 치열한 격전이 벌어지는 낙동강 방어선 최전선에 투입된다.

2.2. 중반부[편집]


본래 이진석은 심장병을 앓고 있어서 전장에서 제대로 싸울 수 있는 몸이 아니었다. 첫 폭격을 경험할 때도 공포에 사로잡혀 아무 것도 못 하다 폭격에 휘말려서 발작을 일으켜 죽을 뻔했고, 심성도 유약한 편이라 첫 기습 작전에서 백병전 중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15살 북한 인민군 소년병을 총검으로 찌르지 못하다 빈 틈을 허용해 죽을 뻔 했다.

그러나 연이은 전투 속에 점점 강해지게 되고,[12] 아무리 자신을 위해서라지만 무공 훈장을 받기 위해 혈안이 된 이진태의 모습에 점차 반발하게 된다. 작중에서 이진태와 이진석이 대립하는 장면을 자세히 보면 시간이 갈수록 이진석의 말투가 점점 거칠어짐을 알 수 있는데, 서울 수복 시까지만 해도 훈장을 받기 위해 무모한 행동을 하는 형 이진태를 걱정하며 안타까워하는 부드러운 어조지만, 평양 전투에서 북한 인민군 대좌를 생포하겠다고 형이 멋대로 달려나가자 전우였던 고영만이 이를 말리려 따라가다 전사한 이후론 '형이 거기서 무모하게 나서지만 않았어도 영만이 형은 안 죽었어, 영만이 형 아들은 우리처럼 아버지 없이 자랄거고, 죽는 날까지 우릴 원망하며 살겠지.' 라며 직설적으로 말했다. 그리고 북한 인민군이 버리고 도망간 기지에서 생포한 이진태의 옛 구두닦이 조수 용석과 의용군 포로들을 모조리 죽이려는 이진태와 전우들을 막아서면서 처음으로 거친 욕설을 하고,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퇴하던 중 저항하는 의용군 포로들을 사살하는 과정에서 용석까지 총으로 쏴 죽인 이진태에게 용석이를 살려내라며 달려든다. 이후 반공 청년단에 끌려간 김영신을 구하기 위해 반공 청년 단원들과 대치하고 있을 때 '북한 인민군한테 아랫도리 돌린 년이 누군데!' 라는 반공 청년 단원의 비아냥에 크게 동요한 이진태가 머뭇대는 사이 김영신이 사살되고, 이진석과 이진태는 같이 창고로 끌려가 갇히게 된다. 이때 이진석은 형 이진태를 노려보며 '영신이 누나는 가 죽였어... 미친 새끼!' 라며 대놓고 욕을 했다.


2.3. 후반부[편집]


결국 형제는 반공 청년단의 방첩 활동을 방해했다는 혐의로 창고에 갇히게 되고, 국군 영웅이라 곧 석방된 이진태와 달리 이진석은 포로들과 같이 창고에 계속 갇혀 있었다. 이진태는 이진석을 창고에서 빼내기 위해 대대장에게 창고 문을 열라고 요청하지만, 대대장은 이를 보란듯이 무시하고 창고를 소각해 버리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에 이진태는 동생 이진석을 구하기 위해 다급히 달려가지만 결국 창고 문을 여는데 실패하고 만다. 다행히 이진석은 동료 양 주사가 퇴각으로 인한 혼란스러운 상황을 틈타 창고 문을 열어주었고 총상을 입기는 했지만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탈출과정에서 이진태가 선물로 준 만년필이 창고 바닥에 떨어졌고, 이후 불타버린 창고를 헤집던 이진태는 동생 이름이 적힌 만년필을 발견 후 동생이 죽었음을 확신하고 분노에 휩싸여 있다 때마침 중공군이 연행하던 대대장을 발견하고 벽돌로 마구 때려죽인다. 그 후 북한 인민군 소좌로 전향해 북한군 6사단의 백병전 전문부대인 붉은 깃발부대의 선봉장이 되어버렸다.

한편 후방 병원에서 치료 후 제대를 앞두던 이진석에게 양 주사는 네 형이 어머니에게 보내려다 반송됐다는 편지를 전해주며 이진태를 언급하지만, 이진석은 굳은 표정으로 관심없다고 대답하고, 사단 정보부 장교의 호출을 받아 상담실로 들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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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이진석은 중공군과 북한 인민군의 삐라를 보고 이진태가 북한 인민군 붉은 깃발부대의 선봉장이 되어 한국군에게 치명적인 골칫거리가 되었음을 알게된다. 직후 장교들이 그의 전향 동기 및 공모 여부에 대해 묻자 저는 이런 인간 모른다며 그 사람은 내 형이 아니라고 냉담하게 반응했고, 이진석과 마찬가지로 정보부에서 이진태와 관련해 조사를 받고 온 임 하사가 당황하며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자 버럭 역정까지 내며 더 이상 그 새끼 얘기 꺼내지 말라며 형에 대한 정나미를 완전히 떨구었음을 드러내지만[13] 문득 양 주사가 전해준 형의 편지를 읽다 자신을 언급한 내용을 보고 비로소 이진태의 진심을 알게된다.

이후 임 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14] 이진태가 목격된 최대 격전지 중 하나인 피의 능선 두밀령 전선에 있던 부대 중 하나[15]에 배속되어 진태를 설득하는 심리전 계획에 투입되려 하였으나, 미군의 요청으로 작전이 24시간 앞당겨 짐에 따라 시간상의 문제로 전선까지 나가 투입되는 계획은 취소되고 후방에서 정해진 투항 권고 대사만 낭독하는 것에 그치게 된다. 이에 이진석은 사실상 탈영까지 감행해 단신으로 적진으로 갔다가 북한 인민군에게 일부러 생포되어서 인민군 벙커까지 끌려온다. 왜 왔냐고 윽박지르는 북한 인민군 소대장에게 형 이진태를 만나러 왔다며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이에 북한 인민군 측은 사실 확인을 위해 상부에 무전을 하지만, 깃발 부대장의 동생은 얼마 전 사망해서 없다는 답변이 오자 이진석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한 북한 인민군 소대장은 이진석의 머리에 권총을 겨누며 뭘 염탐하러 왔는지 대라고 윽박지른다. 이때 이진석을 대대 보안대로 끌고 오라는 상부의 무전이 날아오고, 이에 참호를 따라 다른 곳으로 이송되던 찰나, F4U 콜세어와 포병들의 공준사로 사방이 난장판이 되었다. 게다가 직후 국군이 참호로 뛰어들어 백병전을 벌이자 눈이 돌아간 북한 인민군들은 이진석에게도 공격을 해오나, 맨주먹으로 털어버리고 전사자의 M1소총을 주워들고 형 이진태를 찾는다.[16] 그러던 중 고지 위에서 붉은 깃발부대가 내려와 가세했고, 난전 속에서 마침내 이진태를 찾게 된다. 그러나 김영신과 동생을 잃은 분노에 이진태는 이진석을 알아보지 못한 채 마구 공격해 죽이려 들고, 결국 살기 위해 이진석이 맞대응 하지만 이진태에 비해 약한 이진석은 변변한 공격도 못한 채 일방적으로 이진태에게 밀릴 뿐이었다.[17] 결국 그대로 완전히 제압당해 가까스로 찾은 형에게 죽을 뻔하지만 뒤에서 달려든 국군이 이진태를 찔러 중상을 입히면서 겨우 살아난다. 그러나 형은 여전히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 채 증오로 눈이 돌아가 있었고,[18] 그런 형을 어찌어찌 부축하며 남쪽으로 걸어가는데, 북한 인민군의 공세에 다리에 총상을 입고 만다.[19]

제발 좀 일어나!

엄마한테 가야될 거 아니야? 영신이 누나 산소에도 가야될 거 아니냐구우...구두방 사장돼서 엄마 호강 시켜 준다 해놓고[20]

이렇게 죽을꺼냐구우... 바보같이 나 때문에[21] 학교도 못가고, 매일 구두통 들고 다니면서... 나 대학 가는건 봐야될 거 아냐? 어?


그대로 우리 같이 살아서 가야하지 않냐며 마구 울부짖은 끝에 겨우 정신을 차린 이진태가 자신을 알아보자 품에 안겨 울지만 전황은 이미 불리해진 상태. 이진태는 동생 이진석만이라도 살리고자 나중에 언제든 투항해 갈 수 있으니 어서 빨리 가라며 동생을 떠나보냈다. 이후 이진태는 상당수의 인민군들이 내려와 국군들을 향해 사격하는 걸 보고는 동생이 무사히 갈 수 있게 널브러진 M1917 브라우닝 기관총[22]을 집어 북한 인민군에게 돌려 그들의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일 대 수백이라는 격차 속에서 머잖아 전사하고 말았고 이 와중에 이진석은 무사히 빠져나왔다.

그로부터 50여 년의 세월이 흘러 다시 현대의 발굴 현장. 70세가 된 이진석은 형 이진태의 유골 앞에 서서 돌아와서 구두 완성한다고 했는데 왜 이러고 있느냐고, 뭐라고 말 좀 해보라고 말하다 그 때 형을 두고 가는게 아니었다며 형을 부르며 형의 유골 위에 엎드려 오열한다.

소설판에서는 만년필을 보는 순간부터 정신이 아찔해지는 걸 시작으로 이진태의 유골을 보고 당시 퇴각할 때 북한 인민군의 반격이 왜 약해졌는지를 깨닫고 더욱 처절하게 오열하는데,[23] 만나면 미안하다고 말하려 했는데 왜 자신에게는 기회조차 주지 않냐며, 미안하다는 이 한 마디를 못해 눈을 못 감고 있었는데 이제는 어떻게 하냐며 흐느낀다. 이어 징집 초기 때처럼 꿈을 얘기하며 "이제 내가 눈을 뜨고 꿈에서 깨면, 그럼 형이 돌아올 수 있는 거야?... 그렇지 형? 내가 꿈에서 깨면 되지?" 라고 중얼거린다. 이렇듯 70세가 된 이진석은 다시 18살 소년으로 돌아간 것처럼 처절하게 우는데, 과거 형의 진심을 모르고 끝내 나쁘게 대하며 연을 끊었던 것이 두고 두고 깊은 죄책감으로 자리잡았던 것으로 보인다.

소설판에서 형이 남긴 구두를 보며 난 약속을 지켰으니 이제는 형이 약속을 지킬 차례라며 돌아오기를 고대하는 모습이나 그 후로 수십년간 형을 기다리며 찾아 헤맸다는 언급을 보면 정말 비참함의 극치이다. 결국 어머니와 가족들을 하나 둘 떠나보내며 기다린 수십 년의 기다림 속에서 품은 재회의 희망은 애초부터 있지도 않았다는 가장 잔혹한 형태로 무너졌고, 그 기다림 속에서 줄곧 품어왔던 죄의식도 애초부터 속죄는 불가능 했다는 현실만이 드러났을 뿐이다. 만약 이진태가 희박한 확률로 살아남았더라도 투항하여 한국군으로 돌아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즉 살아남더라도 북한에 남아 김일성에 의해 숙청되었거나 그렇지 않았다 해도 이산가족이 되었을 것이다. 즉 형제가 다시 만날 것이라는 희망은 어떤 형태로도 이루어질 수 없었기에 더욱 비참하다.

결국 수십 년의 세월에 걸쳐 그 응보를 가장 처절하고 잔혹한 형태로 되돌려받고야 말았다고 볼 수 있지만, 한국 전쟁에 휘말리면서 그 모든 것이 시작 되었다는 점에서 볼 때 광란의 역사가 낳은 피해자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다시 과거 시점에서 제대 후 서울의 가족에 돌아온 이진석을 김영신의 동생들인 영국, 영자, 영민이 발견하고 이진석을 부르며 해맑게 달려온다. 이진석은 미소를 지으며 김영신의 동생들을 안아주고, 이윽고 이진석을 발견한 어머니는 재회의 눈물을 흘리며 이진석과 포옹한다. 이후 영자가 이진석에게 언니 영국과 학교를 다시 다니게 됐다며 말하며, 이어 형은 학교 안 가냐고 묻는 영민에게 '형도 이제 학교 가야지.' 라고 답하는 이진석의 대화를 마지막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3. 명대사[편집]


''그 훈장... 대체 누굴 위한거야… 분대장님 이 중사님 인터뷰에 파티에, 헹가래에 박수 쳐주는데 얼마나 좋겠어. 이대로 간다면 소대장 중대장, 대대장 못 되라는 법 없겠지! 한가지만 알아둬. 영만이 형 아들이 민석이야. 아버지 없이 클 거야, 우리처럼. 죽는 날까지 우리 원망하고 살겠지! 그때 내 말만 들었어도! 영만이 형 안 죽었어. 영만이 형 왜 죽었는지 알아? 형 구하고 죽어갈 때 형은 뭐하고 있었는지 아냐고! 도대체 왜 그래? 그깟 훈장이 뭐라고!''

- 평양 전투 종료 후 무리한 단독 행동으로 고영만을 죽음에 이르게 한 형 이진태에게 격분하며.


"돌아와서... 구두 완성한다고 했잖아요...

이러고 있으면 어떡해요?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돌아온다고 약속했잖아요. 왜 이러고 있어요!

뭐라고... 말 좀 해요... 50년 동안이나 기다렸는데... 이 동생한테 뭐라고 말 좀 해요...

그 때... 형 혼자 두고 오는 게 아니었는데......형! 형!!!"

- 피의 능선 전투에서 형 이진태와 헤어진 지 50년 만에 죽은 형 이진태의 유골을 보고 오열하며.[24]



4. 여담[편집]


  • 이진석 역 배우 원빈은 이후 2005년 102보충대에 입대하였는데, 공교롭게도 이진석의 기록과 동일하게 제7보병사단 8연대, 그것도 GOP 네발계단 소초로 전출되어 그곳을 오르내리다 이진석과 마찬가지로 다리(무릎)에 문제가 생겨 의병 전역했다.
[1] 영화개봉년도인 2004년 기준. 여담이나 당시 징집 대상 연령을 보면 이는 민증상 출생연도일 가능성이 있다. 특히나 이 당시엔 호적을 몇 년씩 늦게 올리는 게 흔하긴 했다.[2] 김영신이진태와 약혼한 관계로, 1950년 가을에 이진태와 결혼할 예정이었지만 한국 전쟁이 발발하고, 이진태가 국군에 강제 징집되어 전장으로 떠나게 되면서 본래 예정 되었던 시기에 결혼 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후 반공 청년단에 의해 김영신은 죽임을 당한다. 다만 작중에서 김영신의 남매들은 이진태 · 이진석 가족과 같이 지내고 피난도 같이 가는 등 이진태 · 이진석 가족과 김영신 남매들은 거의 가족과 같이, 이진태김영신은 거의 사실혼 관계로 묘사 되므로 김영신은 이진석에게는 사실상 형수가 된다.[3] 아들과 며느리는 가족사진에서만 등장한다.[4] 다만 8연대는 1사단 창설때 예속된 이래 한국전 내내 한번도 1사단에 예속이나 배속된 적이 없다.(그 반대는 있지만) 이에 대해 몇 가지 추측을 해보자면, 의병제대 전 형을 찾기 위해 형이 목격된 두밀령 전장에 가고자 소속을 바꾸었고, 이게 그대로 남겨져 기록이 꼬여버렸거나(그래서 70세의 이진석에게 전화 통화를 할 때 8연대 부분은 빼고 불렀다.) 혹은 영화 제작진의 단순한 고증 실수일 가능성도 있고, 아니면 육군의 편제를 그대로 언급해 군사 보안에 저촉되는 것을 피하기 위한 꼼수일 수도 있다.[5] 초반부에서 유해발굴감식단원이 신원 확인차 이진석에게 전화할 때 '이진석 하사님'으로 부른다. 다만, 이후 영화 진행 과정에서는 참가한 마지막 전투인 두밀령 전투까지도 내내 일병 계급이다. 두밀령 전투 이후 전역 직전에 하사로 진급한 듯. 참고로 현재 부사관 계급인 하사와 달리 한국전 당시의 하사는 계급이다. 당시의 하사는 현재의 상병 또는 병장에 상응한다. 당시와 현재의 사병 계급 비교표는 다음과 같다.
이등병
일등병
상병, 병장 = 하사
임기제 하사 = 이등중사
직업 하사 = 일등중사
중사 = 이등상사
상사 = 일등상사
원사 = 특무상사
[6] 작중 반공 청년 단원들과 싸워서 창고에 갇혔다가 양 주사의 도움으로 탈출 하는 과정에서 총상을 입는데, 이로 인해 제대 판정을 받았다고 양 주사가 언급한다.[7] 이진석의 친형 이진태와 동년생 이다.[8] 상술했듯 8연대는 한국 전쟁 당시 1사단 소속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기록이 꼬였고 그가 1사단 쪽에 더 오래 있었던 걸 감안했는지 이후 전화할 때 8연대 부분은 빼고 불렀다.[9] 소설판에서 언급으로 그 동안 형 이진태를 찾기 위해 못 한 일이 없다고 하며 얼마 전에도 연변으로 직접 찾아갔다고 한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아무 소식도 없어 이제는 만나는 건 기대하지도 않으니 단지 생사여부만 알았으면 좋겠다고 반쯤 체념한 상태였다.[10] 태극기 휘날리며 영화 초반부부터 최후의 순간까지도 언급되는 형 이진태가 이진석이 대학 입학 할 때 주려고 만든 그 구두이다.[11] 근데 위의 영화 속에서 공개된 주민 번호에 따르면 이때 이진석은 1933년생이므로 만 17세였다. 이는 아마 당시 시대상 호적을 몇 년씩 늦게 올리는 추세라 1~2년 정도 늦게 올린 거 같다. 실제는 1931~1932년생으로 추정 된다.[12] 기습 작전 이후 국군이 반격에 나서고 이북으로 진격하면서 전투 중에 발작을 일으키는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이진석이 더 이상 전투를 두려워하지 않음을 드러내는 연출. 딱 한 번 발작을 일으킨 적이 있는데, 바로 전황이 바뀌고 북한 인민군이 철수하기 전 마을 민간인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고 시체 더미에 설치한 부비트랩에 의해 전우들이 사상당하는 사건이 벌어진 이후 분기탱천한 한국군들이 다음 전투에서 전의를 잃고 도주하거나 항복한 북한 인민군 패잔병들을 무자비하게 죽이는 모습을 지켜봤을 때다. (이진석은 한번만 살려달라며 싹싹 비는 북한 인민군을 마주쳤을 때 일부러 벽을 쏘며 그를 죽이지 않았다.) 달리 말하면, 이진석은 이 때 보여준 전우들의 분노어린 광기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전투보다도 더욱 큰 공포를 느꼈다는 것. 비록 군 입대 이전에 몸이 약하고 심성이 유약했을 지라도, 백병전근접전을 포함한 다수의 전투를 경험하며 실전 경험이 쌓이고 전투력이 향상. 중반부에서 반공 청년 단원들에게 끌려가는 형 이진태 약혼녀 김영신을 구하려다 같이 붙잡혀와 심문을 위해 이송되던 중, 몰래 만년필을 꺼내 자신을 끌고가던 반공 청년 단원을 뒤돌아 기습으로 목을 찔러 단숨에 제압하고, 이후 반공 청년 단원들과 벌이는 격투씬에서는 연달아 여러 명을 쓰러뜨리는 등 전선 투입 초기와는 180도 달라진 싸움 실력을 보여준다.[13] 씁쓸한 건 그가 그때까지 모르던 이진태의 본심을 감안하면 도리어 그렇게 형 이진태를 나쁘게 본 이진석이야말로 그가 떠올리는 이진태의 이미지에 가까운 인간이 된거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낙동강 전선 당시엔 형제보다 그토록 빨간 모든 걸 증오하던 임 하사조차 동생보다 더 형을 이해하고 옹호할 정도로 형제간의 감정의 골은 거의 절연 수준으로 깊어졌다. 임하사는 공산당에 의해 가족이 몰살당하고 월남한 인물이다. 약혼녀가 눈 앞에서 죽는걸 봤다는 얘기를 들었다면 동병상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임하사 또한 전우로써 진석형제를 가까이서 지켜본 인물이다. 진태의 지극한 가족사랑을 모를리 없다.[14] 이진석을 만류하던 임 하사의 말에 따르면 당시 시점에서 이진석은 다음 주에 의병 제대를 앞둔 상황이었다.[15] 정황상 위 기록을 따지자면 8연대.[16] 사실 이전까지는 이진석은 적에게 연민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리운 형 때문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던 것.[17] 당연한 것이 이진석은 전쟁 전까지 공부만 하던 학생이었지만 이진태가장으로써 돈을 벌러 다녔고 나이 차도 있으며 또한 전쟁터에서 온갖 위험한 작전을 수행해 감으로써 무공 훈장을 받았다. 게다가 이진태는 동생이라는 걸 몰라 보았지만 이진석은 형이라는 걸 알아보고 진심으로 공격할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18] 소설판에서 "국방군 개새끼들... 영신이를... 내 동생을!" 이진태의 말에 이진석은 그 동안 외면하고 경멸하다 못 해 부정하기까지 했던 이진태의 분노를 비로소 이해하고 참담한 심정이 된다.[19] 이때의 상처는 끝내 회복 못했는지,(어쩌면 힘줄에 맞은 것일지도 모른다.) 70세의 이진석은 다리를 절고 있었다.[20] 정말 듣기 어려운 발음이 되었다. 자세한 사유는 호강을 늘려서 호오오강으로 발음하였다.[21] 혹은 나 땜에 입모양을 고려하면 나 땜에로 발언했다고 봐야한다.[22] 맥심 기관총과 헷갈리기 쉬우나 M1917 브라우닝 기관총이다. 자세한 내용은 M1917 브라우닝의 4.3 항목과 링크의 4.3 항목 참고.[23] 그 모습에 유해발굴단원들도 눈물을 흘리고 눈시울을 붉히며 안쓰럽게 쳐다봤으며 이들 중 고개를 돌리던 이들도 있었다.[24] 실제로 진석은 그 전투 이후로 형의 소식을 오매불망 기다린 것으로 묘사된다. 작중 초반에 작년에도 진태를 찾으러 전사자 분향소에 다녀온 이후부터 다리가 악화되지 않았냐며 가족들이 걱정할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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