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상(1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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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志常 (1193 ~ 1256)

1. 개요
2. 생애
3. 대중매체



1. 개요[편집]


전진칠자 중 한 사람인 구처기의 제자이자 전진교 7대 조사로 자는 호연(浩然), 도호는 진상자(眞常子).


2. 생애[편집]


산동성 병주 관성현 출신으로 1220년에 스승인 구처기를 따라서 산동에서 오아시스 길의 북도를 따라 서쪽으로 가서 중앙아시아의 여러 곳을 4년 간 돌아다니다가 귀향하고 스승인 구처기가 여행 과정에 대해 구술한 것을 듣고 장춘진인서유기라는 여행기를 편찬했다.

1251년에 몽케 칸이 자신을 도교의 우두머리, 선교승 해운을 불교의 총수로 임명하자 카라코룸에서 정치적인 영향을 획득하기 위해 <노자팔십일화도>라는 책으로 노자가 서역에 갔는데 부처는 노자의 제자라는 의견을 펼치는 등 불교와 대립하였다.

또한 1255년에는 사찰을 점거하고 불상을 파괴하거나 유교의 공묘 등을 파괴하였으며, <태상혼원상덕황제명위황호성불경>을 편찬하면서 <노자팔십일화도>를 재간행하였다.

그가 사망한 이후 전진교는 쇠퇴기에 접어들게 된다.


3. 대중매체[편집]


사조영웅전 및 신조협려에서 등장한다.

사조영웅전에서는 큰 비중이 없고, 전진교 3세대 제자들을 언급할 때 이름이 나오는 편. 구처기가 칭기즈 칸을 만나러 갔을 때 동행하기도 했다.

신조협려에서는 전진교 3세대 제자들 중에서는 윤지평, 조지경, 견지병 다음의 서열로 나오며, 조지경이 몽골에 항복하려 했을 때 다른 제자들과 함께 앞장서어 반대한다. 곽양 구출 작전에 참여한 다섯 갈래의 군대 중에서 한 갈래의 지휘관을 맡을 예정이었으나[1], 부상으로 작전에 투입되지 않을 예정이었던 주백통이 투혼을 발휘해 나서면서 '너 나랑 지휘관 자리를 놓고 경쟁할래?'라고 하자 아니라면서 지휘관 자리를 사양하게 된다. 주백통이 전진교에서 이지상보다 2세대 윗어른이었는지라... 신수판에서는 그런 거 없이 처음부터 주백통이 지휘관 자리를 가져가서 비중이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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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진교 가장 윗어른인 주백통은 부상, 2세대인 전진칠자들은 모두 사망하거나 투병중, 3세대 중에서 서열이 앞선 윤지평, 조지경, 견지병 세 사람도 모두 은퇴하거나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