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수(쇼트트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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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수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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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수
李政洙 | Lee Jungsu


파일:동계올림픽이정수3.png

출생
1989년 11월 30일 (34세)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선곡초등학교 (졸업)
석관중학교 (졸업)
광문고등학교 (졸업)
단국대학교 (체육교육학 / 학사)
종목
파일: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픽토그램.svg쇼트트랙
주종목: 1500m[1]
스피드 스케이팅[2]
주종목: 1500m, 5000m
소속
서울시청
신체
173cm, 60kg
국가대표
2008-09~2009-10, 2011-12,
2014-15~2016-17[3](총 6시즌)[4]
아시안 게임 남자 쇼트트랙 국가대표팀 주장 (2016-17)
종교
불교(법명: 진덕)
가족
부모님, 누나 이지아, 큰아버지 이재원
배우자 양선아(1995년생, 2020년 5월 23일 결혼 ~ 현재)
아들 이현서(2020년 12월 31일생)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
3. 평가
4. 수상 기록
4.1. 월드컵 성적
5. 사건 사고
5.1. 승부조작 사건 연루
6. 기타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남자 쇼트트랙 선수다.


2. 선수 경력[편집]


파일:external/images.supersport.com/Jung-SuLee100214SpeedBG.jpg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이정수(쇼트트랙)/선수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평가[편집]


강한 힘[5]과 수준급의 지구력을 내세우며 가볍게 쭉쭉 밀며 타는 안정성을 기반으로 한 스케이팅이 특징이다. 코너링도 수준급이라 코너를 돌면서 순간적으로 속도를 올려내는 테크닉도 탁월하다. 하지만 한때 대한민국의 에이스이자 선배들인 빅토르 안, 이호석처럼 추월 능력을 포함한 스케이팅 기술이 좋은 선수는 결코 아니고, 스피드도 장거리 종목에서 내는 스피드로는 충분한 편이지만 스퍼트를 빠르게 해야 하는 종목일수록 순발력의 약점 탓[6]에 에이스라는 이미지와는 달리 계주에서 의외로 활약하지 못하고, 특히 500m는 괜찮은 스타트 능력[7]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약한 편. 허나 레이스의 흐름과 다른 선수들의 움직임을 읽는 시야가 탁월해서 체력 이외의 확실한 주무기가 없이도 다른 실력자들 사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특히 밴쿠버 올림픽 1500m, 1000m에서 이정수의 센스를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1500m 결승에서 성시백오노가 1위 자리를 두고 각축전을 벌일 때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선두로 치고 나왔으며 1000m에선 이호석이 뚫은 아웃코스를 이용해 손쉽게 다른 세선수들을 추월하고 마지막 반 바퀴를 남기고 이호석이 인코스를 미처 견제하지 않은 틈을 타 추월한 후 1위로 결승선에 도달하기도 했다.[8]

최대 장점은 지구력으로[9] 체력적으로 강한 한국선수들 사이에서도 우월한 체력을 자랑했었다.[10] 실제로 2009-2010 4차 월드컵에선 1500m 준결승, 결승 경기에서 중반부터 선두로 치고 나가 오노샤를 아믈랭을 상대로도 추월을 허용하지 않고 1위로 레이스를 마칠 정도이다. 이정수 본인도 앞쪽에서 레이스를 운영하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한편으로는 그래서 후반에 치고 나가는 선수들(예:빅토르 안)을 예로 들며 재능이 부럽다고도 밝혔다.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2관왕을 했으나, 이후 특별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실력만 보면 안현수 - 이호석으로 이어지는 슈퍼 에이스 계보를 잇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세계에서 가장 수준 높은 스케이팅 스킬을 구사한다는 안현수와 이호석과는 달리, 평균 수준의 아웃코스 패스와 별볼일 없는 인코스 패스 능력의 이정수는 가장 결정적으로 기술적인 면에서 이 둘의 후계자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더군다나 팬들 사이에서도 실력으로는 같은 나이의 곽윤기성시백을 더 높게 쳐준다.

올림픽에서 운이 따랐다는 평가도 많았다. 경기 전에는 이호석과 성시백이 기대주로 이목이 쏠렸지만 결국 둘은 불운했던 선수에 꼽히고 이정수는 올림픽 금메달은 하늘이 내려준다의 표본 같은 선수이다. 특히 1000m에서는 직간접적으로 이호석의 도움를 많이 받았는데, 1000m 준결승에서는 앞에 있는 J.R. 셀스키프랑수아 아믈랭을 상대로 몇 차례나 아웃코스로 추월을 시도하고도 성공하지 못했는데, 이호석이 단 한번의 인코스 추월로 1위에 오르면서 두 선수의 경합이 유발되지 않았다면 결승에도 못 올라갈 뻔했다. 결승전에서도 이호석이 아웃코스로 추월 경로를 뚫어주며 준결승보다 훨씬 편안하게 추월할 수 있었고 마지막 한바퀴에서 이호석이 1500m 팀킬의 후유증으로 그렇게 쉽게 인코스를 열어주지 않았다면 역전이 어려웠을 것이라는 말도 있다. 하지만 이러쿵 저러쿵 해도 올림픽 2관왕의 위업은 절대로 낮게 볼 수 없는 것이고, 올림픽 직전 시즌의 월드컵에서도 맹활약해 월드컵 시리즈 랭킹 1위에 올랐던 점을 감안한다면 이정수에 대한 지나친 저평가는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남자 대표팀이 최악의 기량을 보이면서 이정수의 대한 재평가가 많이 이루어 지기도 했다. 대표팀에 복귀한 2014-15 시즌 이후로도 슬럼프가 지속되었지만 2016-17 시즌에 노장의 나이임에도 월드컵 시리즈에서 전성기를 연상케 하는 활약을 선보이기도 하며 클래스를 재입증했다.


4. 수상 기록[편집]


대회



올림픽
2
1
0
세계선수권
1
0
1
세계 팀선수권
2
0
0
아시안 게임
0
1
1
주니어 세계선수권
5
5
0
합계
10
7
2

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월드컵 시리즈 수상성적
월드컵 랭킹
3
1
3
7
월드컵 메달
16
9
11
36
합계
19
10
14
43
공인 국제대회 + 월드컵 합계
총 합계
29
17
16
62

파일:오륜기(여백X).svg 올림픽
금메달
2010 밴쿠버
1000m
금메달
2010 밴쿠버
1500m
은메달
2010 밴쿠버
5000m 계주
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 세계선수권
금메달
2010 소피아
5000m 계주
동메달
2012 상하이
5000m 계주
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 세계 팀선수권
금메달
2009 헤이렌베인
단체전
금메달
2010 보르미오
단체전
파일:아시안 게임 로고.svg 아시안 게임
은메달
2017 삿포로
5000m 계주
동메달
2017 삿포로
1500m
3위[11]
2017 삿포로
1000m
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 주니어 세계선수권
금메달
2006 미에르쿠레아치우크
종합
1위
2006 미에르쿠레아치우크
1500m S.F.
금메달
2007 믈라다 볼레슬라프
1500m
1위
2007 믈라다 볼레슬라프
1500m S.F.
금메달
2007 믈라다 볼레슬라프
2000m 계주
금메달
2008 볼차노
500m
금메달
2008 볼차노
2000m 계주
은메달
2006 미에르쿠레아치우크
1000m
은메달
2006 미에르쿠레아치우크
1500m
은메달
2007 믈라다 볼레슬라프
종합
은메달
2008 볼차노
종합
은메달
2008 볼차노
1500m
2위
2008 볼차노
1500m S.F.

4.1. 월드컵 성적[편집]


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 월드컵 우승 기록
종합 우승
2009-10 시즌
1000 m 1위
2009-10 시즌
1500 m 1위
2009-10 시즌

파일:국제빙상경기연맹 로고.svg 월드컵 수상 기록
월드컵 랭킹
우승
2위
3위
포디움
종합
1
0
0
1
1000 m 랭킹
1
0
3
4
1500 m 랭킹
1
1
0
2
합계
3
1
3
7

월드컵 메달



포디움
개인전 합계
10
5
6
21
계주
6
4
5
15
메달합계
16
9
11
36

랭킹 + 메달 합계
19
10
14
43

5. 사건 사고[편집]



5.1. 승부조작 사건 연루[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이정수(쇼트트랙)/선수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010년 곽윤기와 함께 승부조작 담합을 저질러서 자격정지 6개월과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받은 상금들을 받지 못하는 징계를 받았다.

연이은 실격과 탈락으로 국가대표 승선이 불확실한 이정수와 코치 전재목의 부탁으로 어느정도 확정된 곽윤기는 올림픽 개인전 출전을 보장받고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이정수를 도왔다. 하지만 이정수의 1000m 출전 강행으로 곽윤기는 선호 종목이 아니었던 500m를 타게되었고, 대신 이정수가 가지고 있던 세계선수권 개인전 출전권을 받았다.

이정수는 짬짜미는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곽윤기를 비롯해 주변 동료들[12]의 증언과 영상 분석으로 짬짜미가 있었다고 결론이 났다. 다만 세계선수권 사건은 이정수의 주장에 따르면 쇼트트랙팀 코치인 전재목의 강압 때문이라고 고백하였다. 대한체육회·문화관광부·대한빙상경기연맹이 함께 구성한 공동조사위원회는 2010년 4월 쇼트트랙 부문 최고 책임자인 유태욱 부회장을 비롯한 대한빙상경기연맹 집행부의 자진 사퇴 등을 건의했으며, 결국 빙상연맹 집행부 임원들은 사건의 책임을 지고 사퇴하였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은 이정수의 주장을 받아들였으며, 2010년 5월 전재목에 대해서는 영구제명이라는 처벌을 내렸다. 벤쿠버 올림픽의 총감독이었던 김기훈은 3년 자격정지, 송재근, 최광복은 1년의 자격정지 징계를 내렸다. 이정수와 곽윤기에게는 서로 엇갈리는 주장 등으로 선수 자격 3년 정지를 내렸다.

하지만, 그해 5월 말 국제올림픽위원회(IOC)로부터 날아온 전자우편 한 통으로 징계는 6개월로 내려가게 된다. IOC는 대한체육회에 짬짜미 내용과 밴쿠버 겨울올림픽의 연관성, 대한체육회의 입장 등을 물어왔다. 대한체육회와 대한빙상경기연맹은 발칵 뒤집혔다. 잘못하면 밴쿠버 올림픽에서 이정수·곽윤기가 올린 성적(금메달 2개, 은메달 2개)을 박탈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2018년 겨울올림픽 유치에도 영향을 받는 게 아닌가 하는 점이었다(당시는 평창 겨울올림픽을 유치하기 전이었다). 해결 방법은 이정수·곽윤기 선수가 이의신청을 하고, 두 선수의 징계를 대폭 경감해주는 것밖에 없었다. 두 선수는 대한체육회에 이의신청을 냈고, 대한체육회 법제상벌위원회는 기다렸다는 듯이 2010년 7월20일 두 선수의 자격정지를 3년에서 6개월로 경감했다.[13]

6. 기타[편집]


  • 고글을 끼면 인상이 평상시 어리버리한 인상과는 많이 달라진다. 밴쿠버 올림픽 쇼트트랙 멤버 중 고글을 끼면 가장 멋이간지나는 멤버로 쇼트트랙 팬들에게 거론된 적이 있다.

  • 엄청난 소두다. 단독샷을 찍으면 장신으로 오해받을 정도다.

  • 평발이라고 한다. 하지만 쇼트트랙에서는 오히려 평발이 얼음을 미는데 훨씬 더 적합하기 때문에 단점이 아니라 오히려 장점이 된다.




  • 2020년 5월 23일 2년 간 열애 끝에 모델 양선아와 결혼식을 올렸다. 신혼여행은 코로나로 인해 취소하였다.

[1] 2009-10 시즌까지는 1000m 강자 중 한명이었으나 이후 1000m 종목 트렌드가 거의 500m를 두번 타듯 빠르게 바뀌면서 1000m에서는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다. 전성기 시절에도 엄청나게 강한 모습을 보여주던 1500m와는 다르게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2] 2013-14, 2017-18, 2021-22 시즌 쇼트트랙 선발전을 실패한 후 올림픽 참가를 위해 스피드 스케이팅에 총 3번 도전하였지만, 결과는 3번 모두 탈락했다.[3] 2015-16 시즌에는 3차 선발전에서 탈락했지만 김한울이 징계로 인해 3, 4차 월드컵에 불참하게 되어 차순위인 이정수가 빈자리를 매꿨다.[4] 2022-23 시즌에는 선발전 7위를 기록해 예비 멤버로 대표팀 훈련에만 참가하며 앞순위 선수들이 경기에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사실상 경기에 출전할 수 없다.[5] 쇼트트랙 선수 치고는 허벅지가 얇은 편이라 힘이 약할 것이라고 오해받는데 오히려 밴쿠버 올림픽 전에 국가대표 선수들을 테스트한 결과 다리 근육 1kg당 낼 수 있는 힘이 국대 선수들 중 최고를 기록했다.[6] 최근 대표팀의 에이스로 떠오른 노진규가 이와 비슷하다.[7] 날렵한 이미지의 곽윤기나 순발력을 지닌 이호석보다도 스타팅이 더 좋았다. 1위는 단연 500미터 스페셜리스트 성시백이다. 스타트 기술이 좋은편임에도 초반가속이 너무 떨어진다.[8] 사실 이호석이 그 전 1500m 경기에서 성시백을 넘어뜨린 플레이로 국내 여론의 엄청난 비난에 시달린 직후인지라 몸싸움에 적극적일 수 없었다는 주장도 있다.[9] 밴쿠버 동계올림픽 때만 해도 국대 멤버들 중에 체력이 가장 좋은 편이었다. 문제는 이것 때문에 체력으로만 밀고 나가는 스타일이라고 오해받다가 진정한 체력괴물 노진규의 등장으로 어쩌다 보니 그의 기술적인 면이 재조명을 받기도 했다.[10] 2009-10 시즌 때 폐활량 측정에서도 5140㏄로 이호석(4050㏄)과 성시백(4280㏄)을 훨씬 앞섰다.[11] 한 국가가 3개 메달을 모두 가져갈 수 없는 대회 규정 때문에 이정수는 동메달을 수여받지 못했다. 다만 공식적으로는 3위를 기록했기 때문에 동메달과 같은 혜택을 받게 된다.[12] 그 중 성시백도 있었다.[13] 그러나 2010-11 시즌 선발전에 참가할 수 없었기에 사실상 1시즌 자격정지를 받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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