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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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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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0대 환경부장관
이재용
李在庸 | Lee Jae-yong


파일:이재용 정치인.jpg

출생
1954년 7월 1일 (69세)
경상북도 상주시
재임기간
제19·20대 대구광역시 남구청장
1995년 7월 1일 ~ 2002년 4월 13일[1]
제10대 환경부장관
2005년 6월 28일 ~ 2006년 3월 21일
제4대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2006년 8월 23일 ~ 2008년 3월 25일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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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강보향
자녀
슬하 1남 1녀
학력
옥산초등학교 (졸업)
대구중학교 (졸업)
경북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치의학 / 학사)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행정학 / 석사)
소속 정당

약력
극단 처용 대표
이재용치과의원 원장
산업보건연구회 원장
대구시민 환경감시단장
장애인 권익 문제연구소 이사장
제19대 대구광역시 남구청장
제20대 대구광역시 남구청장
대구광역시 지체장애인협회 상임 고문
대구광역시 시각장애인 연합회 상임 고문
대구광역시 생명의 전화 이사장
전국연극인협회 회장
대구역도연맹 부회장
제10대 환경부장관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더불어민주당 대구 중구·남구 지역위원장

1. 개요
2. 생애
3. 정치 활동
4. 기타
5. 소속 정당
6. 선거 이력
7.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대한민국정치인.

2. 생애[편집]


1954년 7월 1일 경상북도 상주시에서 태어났다. 이후 대구광역시로 이주하여 대구옥산초등학교, 대구중학교, 경북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했다. 이후 대구광역시 남구에 터를 잡고 치과의사로 개업해 일하면서 환경운동 등에 참여하였다. 연극에도 관심이 많아서, 1981년부터 1989년까지 극단 처용의 대표를 역임하였다.

3. 정치 활동[편집]


1991년 낙동강 페놀 유출사건 당시 시민 대표로 두산그룹노태우 정부의 책임을 강하게 제기했으나 높으신 분들의 성의 없는 대책에 좌절하였고, 정계에 입문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 시민 후보로 민선 대구광역시 남구청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당시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 폭발 사고가 발생한지 3개월도 지나지 않았고, 김영삼 정부의 부산 편애론이 대구를 지배해 대구에서 민주자유당의 지지율이 좋지 못했고[2], 페놀 사태에서 대구 시민들의 권익을 대변해 열정적으로 활동해 온 공적을 인정받아 보수후보를 누르고 당선될 수 있었던 것.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현역 프리미엄을 등에 업고 무소속으로 남구청장 선거에 출마하여 재선 구청장이 됐다.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무소속으로 대구광역시장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조해녕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다만 득표는 비한나라당 후보라는 것을 감안하면 꽤 선전한 축으로, 38%의 득표를 올렸다. 또한 구청장을 지낸 남구에선 이겼는데, 이게 비보수 후보가 대구시장 선거에서 자치구 단위로나마 승리한 유일한 사례이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며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하였다. 2003년 열린우리당에 합류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대구광역시 중구·남구 선거구에 출마하였다. 초반 여론조사에서 우세를 보였으나, 열린우리당 정동영 전 의장의 노인 폄하 논란 발언으로 인해 결국 한나라당 곽성문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5년 6월 28일부터 2006년 3월 21일까지 환경부장관을 역임했다. 그러다가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대구광역시장 선거에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할 사람이 아무도 없자 장관직에 더 머물러 달라노무현 전 대통령의 만류를 정중히 거절하고, 장관직을 사퇴하며 대구광역시장 선거에 출마했다. 하지만 당연히 2006년은 전국적으로 한나라당 열풍이 불었던 시기였고, 특히 대구에서는 민주당계 정당이 힘을 쓰기엔 매우 어려워서인지 아예 한나라당의 당 색인 파란색과 심지어 로고도 거의 숨길 정도로 선전 벽보를 홍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효과는 커녕 오히려 역효과만 불러오며 21.08%만 받은 채 낙선하였다.[3]

2006년 8월 23일부터 2008년 3월 25일까지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사장을 역임하였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다시금 중구·남구에 출마했으나, 한나라당 배영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새누리당 김희국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7대 총선부터 계속 대구에 도전해 대구광역시장 선거에선 20%를 넘는 활약을 펼쳤지만, 끝내 당선은 못 되었다.

이후 정계에서 물러나 본업인 치과 의사로 복귀했으며, 노무현재단 활동을 함과 동시에 민주통합당, 새정치민주연합, 더불어민주당과 행동을 같이하고 있다. 2016년에는 자신의 지역구를 계승해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김동열 후보를 지원했다. 그러나 김동열도 지역 주의의 벽을 넘지 못하고 낙선했다.

그러다가 다시 정계로 복귀, 2017년 더불어민주당 대구광역시당 위원장으로 당선되어 활동 중이다.

민선 남구청장 재임 시절에 대명3동 양지로[4] 일대의 주점과 퇴폐업소들을 대대적으로 정비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과정에서 조직폭력배한테 협박까지 당했었다. 당시 MBC 뉴스데스크 관련 보도[5] 이 정비 사업이 실시되고 나서 몇 십 년 후의 일이지만, 양지로의 옛 심인중고교 입구(세븐일레븐이 있는 그 곳)에는 파출소도 설치됐다. 또한 매일 환경 미화원들과 출퇴근을 함께하였고, 전임 구청장이 타던 관용차인 1993년식 콩코드를 퇴임할 때까지 교체하지 않고 타는 검소한 면모도 보였다.

그래서 자유한국당 세력의 본진인 대구에서 그나마 민주당계 정당의 정치인 중에서는 김부겸 다음으로 입지와 인지도가 있는 편이라 김부겸이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대구광역시장 후보로 나오지 않을 경우 그를 대신할 만한 유력한 후보로도 거론되었다. 전성기 때는 박근혜와 더불어 유이하게 대구시민들이 먼저 악수를 청하는 정치인이었을 정도.[6] 민주당계 정치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무려 2번이나 대구광역시장 후보로 나섰고, 비록 당선은 되지 못했지만 유의미한 득표율을 여러 차례 낼 정도로 대구에서는 상당한 경쟁력과 기반을 갖춘 민주당 측 인물이기에 김부겸의 대타로 유력시되었지만 결국 기한까지 예비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고 이재용 대신에 임대윤이 출마하였지만 현직 대구시장인 권영진에 밀려 낙선하였다. 대구시장보다 차기 총선을 노리는 듯. 실제로 이재용은 현재 더불어민주당 대구 중,남구 지역위원장이다. 21대 총선 대구 중구·남구에 예비 후보로 등록했고, 정식으로 출마했다.

그러나 곽상도에게 밀려 또 낙선했다. 그래도 대구광역시더불어민주당 후보 중에서는 높은 득표율을 얻었다.[7] 지역구가 대구 내에서도 원도심이라 보수세가 막강한 점을 고려하면 이재용의 개인기를 알 수 있는 부분.

앞으로 이재용의 나이가 70에 가까워지는 만큼 더불어민주당은 이 지역구에서 경쟁력이 있을 만한 새 인물을 발굴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곽상도가 아들의 50억 비리로 인하여 의원직을 사퇴하면서 2022년 3월 재보궐선거 출마 후보군으로 거론되었지만 출마 의사를 사실상 접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재용 전 장관 대신 재보궐선거에는 송영길 전 대표가 영입한 백수범 변호사가 전략 공천을 받아 출마하게 되었다.

4. 기타[편집]


  • 상주시 출신, 경북고등학교 - 서울대학교 졸업, 보수정당의 텃밭인 대구광역시에서 민주당계 정당 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했다는 점에서 김부겸 전 국무총리와 비슷한 점이 많다. 차이점이라면 김부겸과는 달리 이재용은 아직까지 국회의원에 당선된 적이 없다는 것.
  • 일본의 정치인 히라오카 히데오과 비슷한 점이 많다. 둘 다 1954년생이며, 둘 다 자국 내 최고의 대학을 졸업한 점[8], 본업이 전문직이라는 점[9], 보수 정당의 텃밭에서 민주당계 정당 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한 점[10], 장관을 역임한 점[11] 등이 비슷하다. 차이점이라면 역시 히라오카는 국회의원에 여러 번 당선되었지만, 이재용은 국회의원에 아직까지도 당선된 적이 없다는 점이다.

5. 소속 정당[편집]



6.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5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대구 남구청장

[[무소속|
무소속
]]

60,173 (59.68%)
당선 (1위)
초선
1998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41,579 (58.15%)
재선[12]
2002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대구광역시장
287,396 (38.81%)
낙선 (2위)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대구 중·남

[[열린우리당|
파일:열린우리당 로고타입.svg
]]

41,621 (33.55%)

2006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대구광역시장
191,131 (21.08%)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대구 중·남

[[무소속|
무소속
]]

20,151 (21.69%)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27,448 (26.71%)

2020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파일:더불어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39,732 (31.01%)



7.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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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2.4.13. 사퇴 (대구광역시장 선거 출마).[2] 당시 민주자유당 대구광역시장 후보였던 조해녕4위로 낙선했다. 보수정당 후보가 대구광역시에서 이 정도로 참패한 적은 전무후무한 일이다.[3] 16년 뒤, 2022년 8회 지방선거에서는 정반대로 역대 최연소 대구시장 후보로 출마한 서재헌은 이재용과 달리 애초부터 대구는 더불어민주당의 사지임을 감안하여 특히 상대는 5선 의원과, 재선 경남지사, 제19대 대통령 선거 후보였던 홍준표 거물급 상대깨질 각오로 출마했는지 더불어민주당의 당 색인 파란색으로 그대로 선전 벽보에 홍보하였다는 점과는 전혀 다르다.[4] 일명 "19번 도로"라고 불리는 곳으로, 남구 대명3동(당시에는 대명7동까지 포함) 삼각지네거리와 성당시장네거리 사이에 있는 길이다.[5] 하지만 실제로는 조직폭력배가 구청장을 건드리면 조직 자체가 박살나고도 남는다. 당장 동네 파출소의 순경한테도 막 나가지 못하는 마당에 구청장 정도의 인물을 해코지한다? 다행히 이재용 구청장이 정치권과 인연이 깊지 않은 순수 무소속이었으니 별 탈 없었던 거지, 만약 그때 유력정당인 신한국당, 통합민주당, 새정치국민회의, 자유민주연합 소속이었다면 그 조직은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6] 실제로도 중앙일보 여론조사에서 김부겸 대신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넣고 조사한 결과, 김부겸만큼 압도적인 차이는 아니지만 자유한국당 대구시장 후보가 이재만으로 정해졌을 경우 이재만을 근소한 차이로 제치고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김부겸 전 장관 또한 대구시장 불출마 선언을 할 때 자신을 대신할 만한 후보로 이재용을 먼저 언급하기도 했었다.[7] 지역구 현역이었던 김부겸(수성구 갑), 홍의락(북구 을) 다음 가는 득표율을 올렸다.[8] 이재용은 서울대학교, 히라오카는 도쿄대학 졸업.[9] 이재용은 치과의사, 히라오카는 변호사.[10] 대구광역시야마구치현. 대구는 지금도 한국 보수 정당(2022년 기준 국민의힘)의 텃밭으로 꼽히며, 야마구치현은 ‘자민번’이라고 불릴 정도로 자민당의 텃밭 지역 중 한 곳으로 꼽힌다.[11] 이재용은 환경부장관, 히라오카는 법무대신(한국의 법무부장관과 같은 직책).[12] 2002.4.13. 사퇴 (대구광역시장 선거 출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