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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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후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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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제18회
(1982년)


제19회
(1983년)


제20회
(1984년)

송재호
(새댁, 탈출)
이정길
(야상곡)

이영후
(거부실록)


임동진
(개국)

제23회
(1987년)


제24회
(1988년)


제25회
(1989년)

유인촌
(불새)

이영후
(산하)


김영철
(두 석양)


파일:한국방송대상 심볼.svg 한국방송대상
탤런트상
유인촌
한혜숙
(1987년)

이영후
반효정
(1988년)

이정길
김혜자
(1989년)



이영후
李榮厚 | Lee Young H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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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이영후(李榮厚, Lee Young Hoo)
출생
1940년 7월 18일 (83세)
서울특별시
데뷔
1969년 MBC 특채탤런트
종교
개신교
학력
연세대학교 (철학 / 학사)

1. 개요
2. 활동
3. 출연작
4. 여담



1. 개요[편집]


대한민국배우.


2. 활동[편집]


백범 김구 전문 배우로 유명하다.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였다. 연세대 철학과 동기였던 한국 최고의 연극 연출가 오태석의 권유로 연기를 시작했다. 오태석에 의하면 학창 시절 "나는 왜 사는가" 어쩌구 하며 자살한다고 오도방정을 떨기에 그럼 이거나 한번 해보라고 연극을 시켰는데 데뷔작에서 주연상을 거머쥐는 발군의 실력을 토해냈다고 한다.[1]

연극 무대에서 활동하다가 1969년에 MBC TV가 개국하자 입사하여 탤런트로 활약하였다. 초기에는 각종 악역단역을 전전하였으나, 1981년에 제1공화국에서 백범 역할을 실감나게 함으로써 유명해졌다.[2] 오히려 당시 주인공이었던 이승만 역할의 최불암을 압도적으로 누르고 그 해 MBC 연기대상 등 각종 상을 흽쓸었다.

이후로도 사극 및 정치극 등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다. 보통 가부장적이면서도 속마음은 따뜻한 아버지 역을 주로 맡지만, 사극에서는 다소 어리버리간신 역으로서 거의 막판은 사망이나 관광을 당한다.

10편의 작품에서 백범 김구로 출연했으며, 그 덕에 여러 백범 기념 사업에 관여했고 김구를 고액권 수표에 들어갈 인물로 선정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3] 본인 역시 김구 선생에 대한 자료를 많이 수집했고, 김구의 국가관과 생애에 대해서 강단에 설 정도로 거의 준 전문가 수준이라고 한다. 김구를 잘못 해석한 장면이 나오면 지적도 서슴지 않았다고. 더군다나 처조부(아내의 할아버지)가 임시 정부 시절 법무 장관 겸 국무 위원을 지낸 박찬익 선생이고 아내의 숙모 역시 박찬익 선생과 함께 김구 선생을 모셨던 인연이 있어 더욱 각별하게 김구 선생 생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한다. 그야말로 운명적인 배역. 김구의 차남 김신은 몇 번이나 고맙다며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오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선친의 뜻을 받들어 평생 생신상 한 번 받지 않은 분께 밥 한 끼 대접받는 것도 죄스러운 일"이라 정중하게 사양했다고 한다.[4]

2016년 7월에 딸이 있는 미국 일리노이시카고로 이민을 떠났다. 예전부터 은퇴하면 가겠다고 여러번 이야기 했다. 현재 미국에 거주하며 교회 활동과 간증, 미주 중앙일보 칼럼 등을 기고하면서 지낸다.

딱 한가지 흑역사가 있다면 바로 희대의 망작 오! 인천에 단역으로 출연한 점인데, 이건 인성 관련은 아니고 단지 필모그래피 문제다. 영화가 워낙 시궁창 영화인 데다가 비중도 매우 낮은 배역이지만 그래도 그 분돈으로 이루어진 소나기의 수혜를 입긴 했다. 이 영화 출연료 하나만으로 집을 새로 샀다고 한다. 금전적으로 보면 득을 본 셈이고, 단역으로 얼굴만 살짝 비췄기에 딱히 그의 영화 인생에서 크게 언급되지도 않는다.


3. 출연작[편집]


사망 전대 출연작은 사망전대를 문서를 참조.



4. 여담[편집]


  • 교회 장로로 알려졌으며 간증을 하고 다닌 영상이나 기사로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 2013년 종북 좌파 척결과 성토를 주제로 한 행사에 참여해서 연설을 한 적이 있다. 블로그인데 미국으로 이주해서 꾸준히 글을 쓰고 있으며 상당한 우파 성향의 글을 쓴다. 아무래도 6.25 전쟁을 직접적으로 겪었기 때문인지, 동 나이대의 원로배우 분들과 마찬가지로 강한 보수성향을 지니고있다.

[1] 김구 역할로 유명세를 얻은 뒤, 오태석이 쓰고 연출한 연극 천년의 수인에도 출연했다. 안두희의 저격 사건을 다룬 이 연극에서도 배역이 김구.[2] MBC 사옥을 걷고 있다가 방송국의 '높으신 분'과 마주쳤는데, 첫마디가 '백범이로구만' 이었다는 얘기가 있다.[3] 이전에는 영화 배우 박암이 전문이었는데, 이영후 본인도 그 영향을 많이 받았다.[4] 비슷한 예로 정도전 전문 배우로 유명했던 김흥기가 있다. 정도전 역할만 세 번 했는데 정도전의 생애와 사상에 대해서 거의 준전문가급으로 습득했다고 한다. 용의 눈물에서 태종 역을 맡았던 유동근의 회상에 의하면, '김흥기 선배는 맡은 역할에 대해 역사적 고증을 해 오신 분'이었으며 후배들이 맡은 역할에 대해 역사 공부를 하도록 했다고 하며 사극 작가들과 배우들이 본받을 점이다.[5] 윤봉길 의사의 아내 배용순의 회고를 바탕으로 그의 인생을 다룬 1986년 MBC 광복절 특집극.[6] 비행 시간 25,000시간을 자랑하는 베테랑 왕고참 기장이다.[7] 정주영(천태산)을 크게 돕는 노인으로 천태산에게는 거의 양아버지에 가까운 인물. 실제 인물인 오윤근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으로 보인다.[8] 무당 김을동을 관광 보낸다. 이 영화는 '예수천당'이라는 네이밍 센스를 자랑하는 개신교계 영화로, 구한 말에 목사가 되었다가 이후 신사 참배를 거부해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한 실존 인물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9] 쓸기담 광고의 경우 서승현 씨와 더불어 부부 컨셉으로 중국, 스페인 등지에서 스케일 큰 광고를 여럿 찍었다. 심지어 투우사 체험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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