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수(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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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聖秀
1928년 3월 1일 ~ 2005년 2월 17일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전 교육자, 정치인이다. 본관은 경주(慶州)[1], 호는 동은(東隱).


2. 상세[편집]


1928년 경상북도 영일군의 빈농가에서 태어났다. 대송국민학교와 대구사범학교,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흥해국민학교, 포항남부국민학교, 포항중학교 등 학교에서 역사 과목 교사로 근무하다가 서울 한영고등학교 교장까지 역임하였다. 대한교육연합회 수석부회장, 대한교원연금공제조합 이사장 등을 지냈다.

1963년 민주공화당 창당에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이후 민주공화당 경상북도지부 부위원장을 지냈다. 1968년 포항종합제철 설립 과정에서 당시 부지 내에 있던 분묘가 3,510기에 이르렀는데, 이때 지역구 국회의원으로서 경주 이씨 문중의 반대를 무릅쓰고 부지 내에 있던 부친의 묘소를 자진해서 대송면 대각리로 옮겼다. 1970년에는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의 전신인 포항공업고등학교 설립에 주도적인 참여를 했다.

그러다가 범 김종필계라는 이유로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공천에서 탈락하였고, 1973년 이병철의 요청으로 제일기획을 설립하고 초대 대표이사 사장을 지냈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국국민당 후보로 경상북도 포항시-영일군-울릉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이진우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제11대 국회에서 포스코 설립자 박태준이 위원장을 맡고 있던 재무분과위원회에 한국국민당 간사에 취임하여, 포항종합제철의 관세율 인하 및 포항종합제철 출자회사인 삼화화성의 공장부지 매립 민원 등을 처리하여 포항종합제철에 큰 도움을 주었다.

1983년 8월 한국국민당 정책위원회 의장에 임명되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국국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정의당 박경석 후보와 민주한국당 서종렬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같은 해 삼성중공업 상임고문에 임명되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주공화당 후보로 경상북도 포항시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정의당 이진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5년 2월 17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3.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종류
선거구
소속정당
득표수(득표율)
선여부
비고
1967
제7대 국회의원 선거
전국구

[[민주공화당|
파일:민주공화당_글씨만.png
]]

5,494,922 (50.61%)
당선 (23번)
초선
1981
제11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4[2]

[[한국국민당(1981년)|
파일:한국국민당(1981년) 글자.svg
]]

35,929 (19.20%)
당선 (2위)
재선[3]
1985
제12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1[4]
39,738 (17.74%)
낙선 (3위)

1988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포항

[[신민주공화당|
파일:신민주공화당 글자.svg
]]

46,245 (33.82%)
낙선 (2위)



4. 관련 문서[편집]



5.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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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주 이씨 중앙종친회 수석부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2] 포항시, 영일군, 울릉군[3] 민주정의당 이진우 후보와 동반 당선[4] 포항시, 영일군, 울릉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