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혁(법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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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혁
李相赫 | Lee Sanghyeok


출생
1935년 3월 10일 (89세)
경성부 북촌
(現 서울특별시 종로구)
본관
경주 이씨
학력
중앙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 / 학사)
한양대학교 대학원 (법학 / 박사)
직업
법조인 (변호사)
현직
변호사이상혁법률사무소 변호사
사충서원 이사장
약력
제10회 고등고시 사법과, 행정과 합격 (1958)
내무부 지방국 행정과 사무관 (1958~1961)
전주지방법원 판사
춘천지방법원 원주지원 판사
제주지방법원 판사
한국사형폐지운동협의회 회장
고려합동법률사무소 변호사
서울구치소교화협의회 회장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장학재단 이사장
고려중앙학원 감사, 법률고문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창회 회장
수상
국민훈장동백장 (1987)
자랑스런 중앙인상 (2003)
자랑스러운 서울법대인상 (2006)

1. 개요
2. 상세




1. 개요[편집]


대한민국법조인, 변호사 이다. 본관은 경주 이씨다.


2. 상세[편집]


1935년 3월 10일 일제강점기 조선 경성부 북촌에서 태어났다. 중앙고등학교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한 뒤, 1958년 12월 고등고시 사법과 행정과 양과에 합격했다. 내무부 지방국 사무관을 지내고 군법무관을 거쳐 1963년부터 1967년까지 춘천지방법원 원주지원과 제주지방법원 판사를 역임하였으며, 1967년 법복을 벗고 변호사를 개업했다.

변호사로 있으면서 국선사건을 많이 수임했다. 당시에는 국선전담변호사 제도가 없어서 국선변호인을 선정해야 하는 경우 법원에서 해당지역의 변호사를 아무나 랜덤으로 차출해서 형사피고인의 국선변호인 노릇을 하게 했는데, 이러다 보니 평소에는 유능한 변호사로 이름 날리는 사람들도 국선사건은 대충 맡는[1]경우가 흔했다. 그런데 이상혁 변호사는 서울대를 졸업한 판사 출신의 법조인이었음에도 국선사건에 성실히 임해 많은 법조인들이 귀감으로 삼았다.

1975년 연쇄살인마 김대두의 국선변론을 맡았다. 1989년 김수환 추기경, 김형태 변호사 등과 함께 사형폐지운동연합을 창립해 사형제도 폐지 운동을 주도했다. 1993년 이수일 연쇄살인 사건에서 피고인 이수일의 변론을 맡아 2심에서 승소했으나,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되며 최종적으로는 패소했다.

자신의 차량을 추월하였다는 이유로 신혼부부를 엽총으로 처형한 삼척 신혼부부 살인 사건 주범인 사형수 정형구의 대리인으로서 사형제 위헌심판에 보조 참가한 것으로 확인된다.

1995년부터 사충서원 이사장으로 봉사하고 있으며, 사충서원의 사충신이 사형을 받은 것이 사형제 폐지운동을 하게 된 계기중 하나라고 한다.

2020년에는 한글홀기를 기초로 한 편람을 출판하였고, 2022년 10월에는 사충신 순절300주년을 기념하여 특별제향을 주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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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심지어 악질적인 변호사들은 자신을 수임료 내고 선임하면 제대로 변론해줄테니 사선으로 선임하라고 피고인의 가족들을 협박해 사건을 수임하는 경우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