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둘아지즈 이븐 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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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 초대 국왕
압둘아지즈 이븐 사우드
عبد العزيز آل سعود | Abdulaziz Ibn Saud


이름
압둘아지즈 빈 압둘 라만 알 사우드
(Abdulaziz bin Abdul Rahman Al Saud)
출생
1875년 1월 15일
네지드 토후국 리야드
(現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주 리야드)
사망
1953년 11월 9일 (향년 78세)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주 타이프 슈브라 궁전
묘소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주 리야드 알 우드 공동묘지
재위기간
초대 히자즈 국왕
1926년 1월 8일 ~ 1931년 9월 23일
초대 네지드 국왕
1927년 1월 29일 ~ 1931년 9월 23일
초대 히자즈 네지드 국왕
1931년 9월 23일 ~ 1932년 8월 14일
초대 국왕
1932년 8월 14일 ~ 1953년 11월 9일
종교
이슬람교 (수니파)
1. 개요
2. 생애
3. 여담



1. 개요[편집]


와하브파이맘(재위: 1902년 ~ 1953년)이자, 히자즈 국왕[1], 나지드 국왕[2], 히자드 네지드 국왕[3], 사우디아라비아의 초대 국왕[4]이다.

서방 세계에는 이븐 사우드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와하브파 이맘으로서는 압둘아지즈 2세로 불리고,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으로서는 압둘아지즈 1세로 불린다.


2. 생애[편집]


리야드에서 태어났다. 1891년 라시드 가(家)에 의해서 리야드가 정복당하자 그는 아버지와 함께 쿠웨이트로 망명하였다. 1902년 리야드를 탈환하여 네지드 지방을 차지했고 1921년 라시드 가를 멸망시켜 네지드의 술탄이 되었다.

1925년 메카의 영주 하심가(家)의 후세인으로부터 메카를 포함한 히자즈 지방을 탈취하여 1926년 히자즈네지드의 왕이 되었음을 선포하였다. 1927년 제다 조약에 의해서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승인받았다. 이후 히자즈와 네지드 이중 왕국을 통치하다가 1932년 그는 히자즈와 네지드를 통합한뒤 나라의 이름을 자신의 가문 이름에서 딴 사우디아라비아로 개명하고 전제군주 정치를 단행하였다. 1933년에는 미국의 석유 회사에게 전 국토의 석유 개발을 허가하였다. 1945년 미국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과 회담을 가졌고 이때부터 미국의 동맹자로 간주되었다.

시오니즘에는 강경하게 반대하였다. 아랍 연맹에서는 하심 가의 세력 확장을 막기 위해 이집트와 동맹을 맺었다. 1953년 타이프에서 사망하였다.


3. 여담[편집]


  • 미국의 석유 재벌 진 폴 게티가 이븐 사우드와 협력해서 사우디 석유 개발로 많은 돈을 벌었다.

  • 현재까지 초대 군주인 자신을 제외하고 모든 사우디 군주는 이 사람의 아들들이다.[5]

  • 하사 빈트 아메드 알 수다이리#가 13살 때 38살이었던 사우디 아라비아의 초대 군주인 이븐 사우드와 결혼하여 여덟 번째 부인이 되었으나 이혼하고 이븐 사우드의 이복형제와 재혼한다. 이븐 사우드의 이복동생과의 사이에 아들도 한 명 낳았던 수다이리였으나 국왕이 자신의 이복동생과 이혼시키고 다시 자신의 열 번째 부인으로 맞아들인다.[6][7][8] 총 자녀수는 49명.


  • 신장이 195cm였는데 이 영향으로 사우디 왕족들은 키가 큰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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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재위: 1926년 1월 8일 ~ 1931년[2] 재위: 1927년 ~ 1931년[3] 재위: 1931년 ~ 1932년[4] 재위: 1932년 ~ 1953년[5] 22개 부족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혼인을 한 것이니 만큼, 장자상속을 유지하면 한 부족이 외척으로 권력을 장악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래서 이븐 사우드 국왕은 자신의 아들들이 모두 사망해야 손자대에서 왕위에 오를 수 있다는 유언을 남겼다. 그러나 이 유언은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가 아들 무함마드를 왕세자로 세움으로써 깨졌다.[6] 왕과 2번 결혼한 미모의 왕비와 아들 7형제 #[7] 이븐 사우드는 초기 사우디의 여러 부족들을 통합시키기 위해 각 부족의 딸들과 결혼하는 혼인연합을 구성했다. 그래서 22개의 부족과 결혼하여 부인이 모두 22명이나 되는 것. 이는 고려의 왕건이 호족통합을 위해 많은 부인을 둔 것과 같은 경우다.[8] 수다이리의 경우 정치적 갈등으로 처음 이혼을 한 것이고, 이후 권력장악이 끝난 뒤에 다시 결혼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이븐 사우드가 가장 총애한 부인이 수다이리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