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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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3. 면허증
4. 시험
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 barber

일정한 자격을 가지고 남의 머리카락을 자르거나 다듬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 미용사와 차별화되는 점으로는 합법적으로 면도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발소에 따라서 가볍게 두피 마사지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때는 고령자들이 상당수인 직종이었다. 70대 연령의 이발사가 오히려 젊은 축에 속하는 정도였다. 특히 원주시 중앙미로시장 2층에 위치했었던 신원이발관도 2018년 2월 27일부로 폐업을 했는데 그 이유가 신원이발관의 이발사가 만 90세 고령이었기 때문에 페업과 동시에 이발사에서 은퇴를 했다. # 단, 최근에는 유럽풍 바버샵이 유행하면서 젊은 이발사들이 많이 늘어났다.


2. 역사[편집]


함무라비 법전에는 226~227조에 이발사에 대해 기록되어 있다. 당시 이발사는 노예에게 노예의 표시를 만들거나 자르는 일을 했다.

중세 서양중동에서 이발사는 대개 외과 의사를 부업으로 하거나 목욕탕 운영을 부업으로 했다[1]. 이 당시 이발사 겸 외과의사들은 수많은 일을 도맡아 했는데, 고객의 이발과 면도는 물론이고 환자의 진찰[2], 사혈, 관장[3], 수족의 절단[4]이나 발치 등의 의료행위도 이들의 몫이었다. 가장 수요가 많았던 사혈의 경우, 팔을 특수한 칼로 째서 피를 받는 방법과 거머리를 사용해 피를 빨아내는 방법이 주로 쓰였기 때문에 피를 받아낼 동안 환자가 잡고 있는 놋쇠 봉과 피를 받아내는 그릇, 사혈이 끝나고 상처를 봉합사는 붕대는 이발사 겸 외과의사(barber-surgeon)의 상징이었다. 놋쇠 봉의 위쪽 끝에는 거머리를 잠시 얹어놓기 위한 큼지막한 공이 하나 붙어 있었다.

중세 시대에는 간판이 없었기 때문에 각 가게마다 자신이 판매하는 물건이나 직업을 상징하는 도구를 문 앞에 걸어놓음으로서 이곳이 어떤 가게인가를 홍보했는데, 이발사 겸 외과의사들 또한 피를 받아놓은 그릇을 문 앞에 내놓아 홍보했었다. 그러나 이것이 문제가 되자[5] 대신 상술한 사혈용 봉에 붕대를 감아 가게 앞에 걸어놓게 되었다. 이후 의학의 발달로 이발사와 외과의사가 분리되어 완전히 다른 직업이 된 후에도 이 풍습은 이발소 회전등으로 이어졌다. 실제로 영국 등 유럽 국가들의 이발소 회전등은 붉은색과 흰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회전등의 위는 동그란 구가 달려있고 아랫쪽은 평평한데, 붉은색과 흰색은 당연히 피묻은 붕대[6]를 형상화한 것이며 구형 꼭대기와 평평한 아랫부분은 각각 거머리를 얹어놓는 공과 피를 받는 그릇을 형상화한 것이다.

한편 미국에서도 이를 본딴 회전등을 이발소에 설치했는데, 미국의 이발사들은 붉은색과 흰색에 파란색을 추가해 성조기와 같은 색조합을 만들어 썼고, 이것이 그대로 한국에도 들어오며 빨강-파랑-하양의 회전등이 이발소의 상징이 되었다. 이발소 회전등의 빨강-파랑-하양이 각각 동맥-정맥-신경이라는 설도 있지만, 이는 근거가 부족하다.[7]

대한민국에서는 1895년 갑오개혁 당시 김홍집 내각에 의해 단발령이 내려진 뒤, 안종호라는 사람이 대한제국 왕실 최초의 이발사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1980년대까지는 이발사들이 이용원을 차리면서 계속 명맥을 이어갔지만 자신의 미학대로[8] 자르는 무대뽀 영업과 퇴폐이발소의 급증으로 인해 한동안 초고령화 직업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2010년대 즈음부터 복고풍의 리젠트, 포마드 컷이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복고풍 컷 전문점, 소위 '바버샵'이 급증하면서 이발사도 점점 늘어나는 상황.


3. 면허증[편집]


이발사로 일하려면 이용사 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자격증 원본, 신분증, 사진 2장, 인감증명서를 각 시, 군, 구청에서 발급 신청해야 한다.


4. 시험[편집]


일반인은 1년에 4회 정기 시험이 있고 필기 면제자 검정이 1회 있다.

필기 종목은 이용이론, 공중보건학, 소독학, 피부학, 공중위생법규 5과목 중 60문제가 출제된다.

실기는 이용작업을 시험보는데 시험 시간은 2시간 10분이다.

2016년부터 과정평가형 자격 교육으로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


5.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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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래는 내과, 외과를 막론하고 의사 역할을 하던 것은 성직자들이었지만, 1163년 성직자가 외과를 맡는 것이 금지되며 대신 이발사가 맡게 되었다.[2] 환자의 오줌을 받아 색과 냄새, 맛(!)을 통해 병을 진단하는 방식이 가장 흔했다.[3] 요즘의 관장을 생각하면 안 된다. 항문에 길쭉한 금속 관을 꽂아넣은 후 약을 부어넣고 밀대로 밀어넣는(...) 대단히 원시적인 방법이 사용되었다. 그 당시에는 현대의 관장약마냥 기똥찬 물건이 없었으니 이게 직빵이기는 했다.[4] 심한 골절이나 외상을 입은 경우 당시에는 절단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물론 지혈이나 소독 등의 개념 또한 없었기에 '치료'를 받고 죽은 사람도 매우 많았다.[5] 피가 썩어 고약한 냄새가 풍길 뿐만 아니라 들짐승들이 피냄새를 맡고 몰려들 수 있다.[6] 당시에는 교차감염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고 직물은 비쌌기 때문에 사용한 붕대는 빨아가며 계속 사용했다.[7] 한편 프랑스 국기로 쓰이는 삼색기는 프랑스 혁명 당시 파리 시민들(적색, 청색)에 의해 포위된 부르봉 왕조(흰색)를 상징하는 것이다.[8] 말이 좋아 미학이지 그냥 자기 기준으로 멋있게 보이는 컷만 고집했다. 근데 그게 남의 눈, 특히 손님의 마음에는 들지 않아서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