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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Оди́н день Ива́на Дени́совича
One Day in the Life of Ivan Denisovich
[1]
파일:One_Day_in_the_Life_of_Ivan_Denisovich_cover.jpg
위키피디아 러시아어 / 영어

1. 개요
2. 줄거리
3. 작품의 특징
4. 기타


1. 개요[편집]


В пять часов утра, как всегда, пробило подъём — молотком об рельс у штабного барака.

-

아침 다섯 시, 여느 때처럼, 기상을 알리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본부 막사의 레일을 망치로 두드리는 소리다. (소설의 첫 문장)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Один день Ивана Денисовича) 혹은 "Щ-854. 어느 죄수의 하루"(Щ-854. Один день одного зэка)[2]소련 굴라크를 배경으로 한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단편소설이다.

솔제니친은 독소전쟁에 장교로 종군하던 중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스탈린 및 소련 체제를 풍자하고 비난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1945년부터 1953년까지 약 8년 가량 굴라크에서 복역하였으며, 석방 후 1957년부터 작품을 저술하기 시작해 1962년 소련 문학 잡지였던 <노비 미르>지에 투고했다.

솔제니친이 처음 투고했을 당시, 잡지 편집장이었던 알렉산드르 트바르돕스키는 작품에서 그리는 생생한 수용소 생활 묘사에 감명받아,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에 직접 작품 출간을 허용해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당시 중앙위원회 간부들은 대부분 이 작품에 반대했지만, 당시 스탈린 격하 운동을 주도하던 니키타 흐루쇼프가 작품을 마음에 들어하면서 출간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스탈린 이후의 소련이 이러한 자체 비판적인 작품까지 공개 발표할 수 있을 정도로 달라졌음을 대내외에 보여주겠다는 취지였던 것이다.


2. 줄거리[편집]


1951년 1월 1일[3] 주인공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가 기상 신호를 듣고 잠에서 깨어 강제 노동 후 취침에 들어가기까지 꼬박 하루 동안 그와 주변 인물들에게 일어난 일들을 통해 당시 소련 굴라그의 생활상을 묘사하고 있다. 이걸 보면 스탈린 치하의 소련이 얼마나 막장이었는지 알 수 있다.

수용자들은 빈대 투성이인 낡은 침구를 쓰고, 죄수복도 낡아 빠진 옷감으로 만들어져 추위를 막기에 역부족이다. 끼니라고는 취사반원들이 자기 몫으로 실컷 빼돌려 겨우 몇 숟가락 밖에 안되는 (гречневая каша)[4], 썩은 생선야채로 멀겋게 끓인 수프(баланда),[5] 제대로 굽지 않은 딱딱한 흑빵(хлеб)[6]과 썩어서 곰팡내가 진동해 아무도 마시지 않는 최하급 가 전부다. 그나마 5일 중 하루는 절식일로 지정해 이것조차 최저한의 보장된 양만을 배급하기 때문에, 그 때마다 죄수들은 주린 배를 움켜쥐며 버텨야 한다.

교도관들은 죄수를 거의 인간 취급하지 않고, 좀 걸리적거리거나 뭔가 수상쩍어 보이면 채찍을 휘두르는 악질 교도관도 나온다.

이들은 각 작업반 별로 한 명씩 일종의 프락치 역할을 하는 죄수를 골라 수상한 동료들을 밀고하게 만든다. 죄수들이 몸이 아파 의무실에서 가면 의무관은 진찰은 커녕 그저 애매한 소리만 늘어놓고, 까딱하면 의무실에 갔다는 것만 가지고도 작업 태만으로 부르[7]에 수용되기 일쑤다.

노동 환경도 가혹하기 이를 데 없는데, 소설만 해도 주인공이 소속된 작업반은 본래 바람막이, 난로조차 없는 '사회주의 생활 단지'라는 주택 단지를 건설하는 공사에 투입될 예정이었으나, 반장과 부반장이 교도관들을 뇌물로 구슬러서 그나마 바람도 막을 수 있고 잠시동안 몸을 녹일 난로도 있는, 크게 간섭받을 일 없는 곳에서 벽돌 쌓기 작업을 하는 것이 '행운'으로 여겨질 정도의 노동 환경을 보여준다.[8] 이를 위해 어떤 다른 작업반이 사회주의 생활 단지로 간다는 묘사가 있듯, 그런 가혹한 노동환경은 수용소내 누구에게나 주어질 수 있었다.

1월의 굴라그가 얼마나 추운지에 대한 묘사도 곳곳에서 나온다. 점심시간이 되어 그나마 기온이 올랐을 때 주인공인 슈호프가 "따뜻해졌군. 영하 18도쯤 될 걸. 벽돌 쌓기에 좋은 날씨야."라고 중얼거릴 정도니 이곳이 얼마나 추운 곳인지 알 수 있다. 그래도 이곳 역시 사람이 사는 곳이라 지나치게 온도가 내려가면 죄수들의 강제 노동 역시 중단되는데, 그 기준은 영하 41도. 그 때문에 죄수들은 기회가 생길 때마다 식당이나 건물 안 등의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으로 들어가 난로의 불을 쬐려고 하고, 작업장에서 나무조각을, 심지어는 멀쩡한 자재도 바람막이와 땔감용으로 사용하는 등 보온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작중에서 묘사된 수준의 혹한일 경우 보온은 그야말로 생존에 직결된 문제일 테니 당연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수용소의 열악한 환경과 함께 왜 죄수들이 굴라그에 들어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서술도 있어서, 당시 소련 정권이 인민들을 얼마나 개차반 취급했는지 알 수 있다.

  • 슈호프는 그저 독소전쟁레닌그라드 전선에서 독일군에게 겨우 이틀 동안 포로가 되었다가 부대원 한명과 함께 탈출해 복귀했는데, 상관이 적에게 회유된 스파이라고 몰아붙이는 바람에 졸지에 국가 반역죄를 저지른 죄수가 되었다. 처음에는 우스치-이지마[9]라는 대규모 굴라그에 수용되었다가 영양실조로 죽을 뻔하고, 거기서 시베리아의 오지에 있는 이 이야기의 주 무대인 좀 더 작은 굴라그로 이감되어 수형 생활을 하고 있다. 슈호프는 집안도 넉넉한 형편이 아니고 별다른 인맥도 없어 식량소포를 받지 못하는 빈곤한 처지의 수감자이지만 손재주와 눈치가 좋아 작업장 내에서 기술을 가진 수감자들이 배치되는 벽돌 공사에 투입되고, 버려진 알루미늄 전선을 녹여 자신이 쓸 숟가락을 만들고, 버려진 쇠톱 조각으로 작은 줄칼 등을 만들고, 다른 수감자들의 잔심부름을 하며 수완을 발휘해 식량과 담배 등의 물품을 얻으며 근근히 생활한다. 가혹한 수용소 생활을 오래 했음에도 맡은 일을 성실히 하고 주변에 폐를 끼치지지도 않아 다른 수감자들과의 관계도 좋은 편.

  • 슈호프 외에도 같은 작업반의 동료 죄수들인 라트비아 출신인 킬리가스와 나치 독일의 악명 높은 강제수용소였던 부헨발트[10]에서 고문을 당하고 한 쪽 귀의 청력을 잃는 등의 고초를 겪다가 겨우 탈출한 세니카 클렙신 등도 마찬가지로 적군의 포로가 됐다가 탈출해 원대에 복귀했는데 상관이 인정 안 하고 스파이로 낙인찍어 굴라그로 끌려온 인물들이다. 슈호프보다 암울한 것이 슈호프의 경우엔 2년만 더 버티면 형기를 마치고 굴라그를 떠날 수 있지만 슈호프를 제외한 소개한 이들은 주어진 형기가 끝나가더라도 계속 같은 죄목으로 추가 형기가 더해지기 때문에, 석방이라는 단어도 믿지 못하는 신세다.

  • 주인공이 속해 있는 작업반인 제104반의 반장인 안드레이 프로코피에비치 추린은 단지 아버지가 부농이었다는 사실 만으로 성실하게 근무하던 군대에서 쫓겨나 죄수가 되었고 그를 추방시킨 군 장교들 또한 대숙청 때 모조히 숙청되었다고 한다. 슈호프와 달리 형기가 계속 늘어나 거의 종신형을 살고 있으며 수용소 내 최고참 중 하나로 '교정 수용소의 아들'이라는 웃지 못할 별명까지 가지고 있다. 반장이기 때문에 다른 수감자들과는 거리를 두며 밥을 2인분이나 받고 따로 먹어 작중 슈호프와의 접점을 별로 없는 편이다.
뇌물로 간수들과 협상해 자신의 반을 상대적으로 편한 작업 현장으로 배치시키고 밥 1인분을 파블로에게 주는 것으로 보아 반장으로서의 능력과 인간성이 우수한 편으로 나온다. 슈호프와 우스치 이지마 출신이었고, 슈호프를 반으로 데려온 것도 추린.

  • 작업반 동료인 부이놉스키는 독소전쟁에서 발트해북극해에서 활약한 소련 해군 중령이었다가 북해영국 해군에 파견 근무를 나갔는데, 이 때 알게 된 영국 해군 제독이 전후 자신에게 보내온 기념품 때문에 수용소로 끌려왔다고 서술되고 있다. 군생활 당시의 습관이 그대로 남아 있어 무의식적으로 다른 수감들에게 명령조로 말하기도 하고 일도 요령을 피우지 않고 충실하게 한다고 한다. 작중 악질 교도관에게 개겼다가[11] 말미에 독방 신세를 지게 된다.[12]

  • 작업반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고프치크는 14살때 숲에 있던 어떤 모르는 사람에게 우유를 가져다 줬는데, 하필이면 그 사람이 우크라이나의 반공 빨치산이라 부역죄로 잡혀들어왔다.

  • 원래 관료 출신(그것도 전용 관용차까지 있을 정도의 고위 관료였다고...)인 페추코프는 굴라그에서 남들이 피우다 버린 꽁초와 먹고 남은 죽의 찌꺼기라도 얻기 위해 이리저리 싸돌아다니다가 갈굼[13]을 먹거나 얻어맞고 오는 등 상당히 추잡한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14]

  • 알료시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알료샤는 독실한 침례교도로,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성경(판본에 따라서는 성경의 내용을 옮겨적은 작은 수첩)을 밀반입해 막사에 짱박아두고 틈날 때마다 읽고 있다. 슈호프를 전도할 의도가 있는지 슈호프 옆에서는 일부로 소리를 내며 읽는다고 한다.

  • 서부 우크라이나 출신의 부반장 파블로는 추린만큼의 카리스마는 없지만, 추린이 없을 때 대신 교도관들과 협상해 작업량을 늘리고 추린의 식사 셔틀도 대신 해주는 등[15] 나름대로 굴라그에서 강한 생활력과 수완을 보여준다. 부반장임에도 다른 수감자들에게 항상 존댓말을 사용하고 깍듯이 대한다고 하는데 슈호프의 서술로는 우크라이나인들의 습성이 그대로 남아있다고 한다.[16][17]

  • 물론 여기서도 이런저런 빽으로 비교적 편한 수감 생활을 누리는 인물도 있다. 영화 감독인 체자리 마르코비치는 자신의 첫 영화가 개봉도 하기 전에 높으신 분들에게 알 수 없는 이유로 찍혀서 들어왔는데,[18] 연줄이 있어서 매달 받고 있는 식량 소포를 교도관들과 작업반장에게 뇌물로 주면서 따뜻한 사무실에서 서기로 일하는 땡보로 그려진다. 체자리 마르코비치는 당시 부유했던 지식인들의 허영을 보여주다시피 하는데, 자신은 감옥에 있으나 마치 다른 자들을 무의식적으로 무시하는 모습을 보이며, 자신과 급이 맞다고 생각되는 사람[19]과만 어울리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면서 실생활에 유용한 주머니칼, 혹은 재빠른 소포 수령과 소포 보관은 슈호프의 도움을 받아야 해결하는 무능한 모습을 보인다. 그래도 체자리 마르코비치는 자신의 특기와 보직을 이용하여 자기가 속한 작업반의 작업량을 늘려서 식사 배급을 늘리는 등, 엘리트적인 면모 외에는 반에 도움을 주는 선한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슈호프에 대해 호감을 보이는 부분도 있는 것을 보면 본질적으로는 선량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체자리가 담배를 피우면 주변에 다른 수감자들이 몰려들어 "체자리, 마지막 한 모금은 남겨주게"라고 말하는데,[20] 체자리는 마지막 한 모금을 슈호프에게 준다.[21]

  • 체자리보다도 하는 일이 없고 그냥 교도관실에서 밀고를 가장한 잡담이나 나누고 돌아오는 작업반 내 프락치인 판첼레예프는 그야말로 모두에게 경원시되는 천하의 개쌍놈처럼 취급받고 그와 관련된 이야기도 거의 안 나온다.

  • 교도관들의 이야기도 가끔 나오는데 한 악질 교도관은 수감자들을 인간취급 하지 않아 항상 고압적인 태도에 가죽채찍을 들고 다니며 거슬리거나 말을 안 듣는 수감자들을 후려치고 다녀 수감자들 사이에서 공포의 대상이라고 하며[22] 열악한 굴라크의 환경은 교도관들에게 예외가 아니라서 교도관들의 근무 여건도 좋지 못해 식량배급 문제로 다투는 모습도 보이며 수감자들의 식량소포나 수용소 내 물자를 빼돌려 횡령하는 일이 다반수라고 한다, 수용소의 경비대는 수감자들의 통제는 자신들의 권한 밖이기 때문에 평소에는 수감자들에게 간섭하지 않지만 탈옥수가 발생하면 잡을 때까지 무장한 상태로 잠도 못 자고 제대로 쉬지도 못 한채 악에 받쳐 탈옥수를 추척해 원칙대로면 생포해야 함에도 무조건 사살한다고 한다.

극중에서 묘사된 하루는 주인공 슈호프가 수용소에서 보낸 10년, 즉 3,653일[23] 가운데 막바지에 해당하는 8년째가 되던 어느 날로 묘사되었다.

3. 작품의 특징[편집]


독자들은 죄수들이 대부분 인간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이반의 시선은 오히려 조금 비관적일지언정 이상하게 담담하고 심지어 몇몇 대목에서는 유쾌하게 보인다.[24] 이는 일종의 아이러니를 노린 접근인데, 슈호프의 입장에서는 본인의 수완과 행운을 통해 수용소에서도 최고의 하루를 보냈다는 것을 서술하면서 그것이 오히려 독자들에게 더욱 안타까운 느낌을 주는, 아주 세련되면서도 슬픈 묘사이다.

솔제니친이 훌륭한 작가이기도 했지만, 솔제니친이 수용소 생활을 생생하게 잘 표현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솔제니친 본인이 굴라그에서 오래 살아봤기 때문이다.[25] 만약 이보다 더 노골적으로 정권을 비판하고 수용소의 실태를 직접 묘사했다면 스탈린 사후의 해빙기에도 출판되지 못했을 거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물론 솔제니친은 이 작품 외에도 '수용소 군도'나 '암 병동' 등의 작품으로 계속 소련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건드렸고, 결국 정부에 찍혀 망명 생활을 하게 되었다.

소련 작가의 작품이었지만 작가 자신이 반체제 인사였던 데다가, 반공을 국시로 삼았던 60~70년대의 한국에서는 일종의 정치적 선전 효과를 노리고 보급하기도 했다. 비슷한 경우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26]


4. 기타[편집]


  • 작중에서 체자리와 부이노프스키가 소련 영화 전함 포템킨에 대해서 토론을 하기도 한다.
  • 한국에 대한 이야기가 지나가듯 언급된다. 슈호프가 다른 작업반에 있는 라트비아인에게서 담배를 살 때 같은 반 죄수들이 한국에서 발발한 전쟁을 주제로 떠들고 있었다.
  • 1970년에 영국과 노르웨이의 합작으로 영화화되었다. 대사들을 비롯해 본작의 재현을 충실히 따르고 있지만 연기가 영 별로고 분위기는 책보다 훨씬 더 어둡고 적막하다. 영화에서 나오는 음식 비주얼은 정말 끔찍하다.
  • 대한민국의 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된 적이 있다. 7차 교육과정 당시 디딤돌에서 발간한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 이 소설의 일부가 수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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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위쪽 - 러시아어 / 아래쪽 - 영어 [2] 이 제목은 작가가 직접 붙인 원 제목이다. 여기서 "Щ-854"는 주인공인 슈호프의 죄수 번호이며, "зэк"(з/к)는 죄수를 가리키는 은어로 러시아어 형용사 "заключённый"(갇힌)에서 유래되었다.[3] 본문 중에 "오늘부터 새해가, 곧 1951년이 시작된다."라는 구절이 있다.[4] 원래 카샤는 보리, 메밀 등의 곡물로 끓이는 죽인데, 저질 재료의 공급 + 취사반의 횡령으로 인해 무슨 지푸라기 같은 것을 썰어넣은 누런 반죽 비슷한 게 나온다고 한다.귀리죽이 나올때가 있는데 이때 모두가 한 그릇이라도 더 먹고싶어 환장한다.[5] "발란다"는 멀건 야채수프 혹은 오트밀을 가리키는 러시아어이다. 작중 설명에 따르면 수프의 재료는 사정에 따라 달라진다. 원래는 저장해둔 채소(양배추, 당근 등)로 죽을 쒀 배급하다가, 6월이 되면 채소가 모두 바닥나서 곡물을 사용하고(이때가 그나마 가장 잘 먹는 달이라고), 7월엔 곡물마저 바닥나 쐐기풀로 수프를 만들어 배급한다.[6] 러시아의 빵은 흘렙(хлеб)과 불카(булка)로 나뉜다. 흘렙은 가난한 러시아의 농민들이 전통적으로 먹어오던 호밀 흑빵이고, 불카는 서구식 고급 밀 흰빵이다.('불카'라는 말 자체가 프랑스어 boule에서 유래하였다) 수용소의 빵은 당연히 흘렙이다. 수필 수용소 군도를 보면 솔제니친이 루뱐카에 갇혀 있던 시절 배급받던 빵에 대해 묘사하는 장면이 있는데, 1인당 1일 450g에 호밀보다 감자가 더 많이 섞이고 제대로 굽지도 않은 저질 빵으로 나온다. 작중 수용소의 빵도 이보다 나쁘면 더 나쁘지 좋을 일은 없을 것이다.[7] BUR. Барак Усиленного Режима (강화수감실) 사실상 굴라그의 영창에 해당했다.[8] 사회주의 생활단지는 허허벌판에서 하는 공사이다. 간단하게 공사로 말하자면 토목공사라는 것. 보통 토목공사는 건물의 기초를 만드는 공사이기 때문에 진짜 가시설조차 없는 허허벌판이라는 말. 즉, 이곳에 배치되면 허허벌판에서 자신들의 탈주를 막을 철조망부터 설치하고 집짓기에 들어가기 때문에 지어지는 주택들이 어느정도 형태를 갖추어 바람막이 및 난로 설치가 가능해질 때까지 대략 한달 정도는 영하 20~30도의 허허벌판에서 바람까지 맞으며 일해야 하는 환경이다.[9] Усть-Ижма. 한국어 번역에서는 "우스치"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우스티"에 가깝다. 현 코미 공화국 이젬스키 구에 위치한 지역 이름으로 "이지마(Ижма) 강의 하구(устье)"에 위치해 있어 붙은 이름이다. 코미어 지명은 이지와웜(Изьвавом). 실제로 이 지역에 굴라크는 없었으나, 근처에 우흐토-이지마 강제노동수용소(Ухтижемлаг)라는 굴라크는 실존했다. 이름에서 보이듯 같은 이지마 강을 따라 위치해 있다. 1938년부터 1955년까지 존속했으며 석유, 천연가스, 아스팔트, 라듐의 채굴, 생산 및 가공에 특화된 굴라크였다. 일부러 이름을 비튼 것인지 작가의 착오인 것인지는 불명.[10] 바이마르에 위치한 강제수용소[11] 원래 죄수들은 강제 노역을 나갈 때 사복을 입어서는 안 되나 안의 내복을 들킨 부이놉스키가 교도관에게 항의하다가 "너는 소비에트 사람이 아니다."와"너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다."라는 심한 말을 날렸다.[12] 독방에서 죽거나 죽기 직전까지 갈 운명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다만 이 인물이 모델로 삼은 실존 인물은 솔제니친이 실제로 수용소 생활을 하며 만난 해군 장교였고 스탈린 사후 복권되어 석방되었다.[13] 버린 꽁초를 피우는 모습을 본 부이놉스키는 입에서 매독이 옮겠다며 갖다 버리라고 이야기했다.[14] 이 인물의 모티프는 수용소 군도 1부에 솔제니친의 루뱐카 동료 죄수로 등장하는 L. V. Z라는 인물로 추정된다. 솔제니친에 의하면 해당 인물은 엔지니어로 호의호식하며 무식하고 추잡하게 살았으며, 입을 함부로 놀리고 불륜을 저지르는 등 아슬아슬하게 살던 중 별장 건축 자재를 제공해 달라던 어느 지방 검사의 청탁을 무시한 게 결정타가 되어 루뱐카에 갇히게 되었다고 한다. 아내한테서 푸짐한 사식을 제공받고 다른 죄수들에 비해 굴라크로 끌려가더라도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지낼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 누구보다도 슬프고 비참해 보였다는 솔제니친의 서술은 덤. 이름은 머릿글자로만 나와 있으나, 중간중간 해당 인물을 료냐(Лёня - 레오니트Леонид의 애칭)로 지칭하는 문장이 있어 이름이 레오니트라는 것까지는 알 수 있다.[15] 작중 화자인 슈호프의 독백에 따르면, 굴라그 식당에서 음식을 밖으로 반출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걸리면 식사 압수는 물론이고 명령 불복종으로 독방에 수감되는 등 가중처벌 당하는데, 이 셔틀을 해준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 부담을 지고 있는 중요 인물이라는 것을 암시한다.[16] 파블로를 설명하면서 "서부 우크라이나인은 익힌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그들은 수용소에서도 상대에게 부칭을 쓰고, 존대말을 쓴다"(Украинцев западных никак не переучат, они и в лагере по отчеству да выкают)라는 문장이 작중에 나온다. 러시아에서 상대를 부를 때 이름과 부칭을 같이 부르는 것은 상대를 존중하거나 공식적인 자리에서 상대를 호칭할 때 사용하는 방식이며, "존대말을 쓴다"라고 번역된 "выкать"라는 동사는 T-V구분이 있는 러시아어에서 상대를 너(ты)가 아닌 당신(вы)으로 부르는 것을 의미한다. (T-V 구분은 한국의 경어법과는 좀 다르다) 파블로는 부반장 신분으로 이반 데니소비치보다 상위 계급에 있지만, 그럼에도 이반 데니소비치에게 격식을 차려 말하고 있다. 실제로 작중 반장인 추린은 이반 데니소비치를 "너"(ты)라고 부른다.[17] 작중 파블로의 첫 대사는 "이반 데니소비치, 갇히지 않았네요? 살아 있네요?"인데, 원문에 "Нэ посадылы, Иван Денисыч? Живы?"라고 나온다. 러시아어 모음 е와 и가 구개음화되지 않는 것은 우크라이나어의 특징인데 이러한 언어적 특징을 반영하여 파블로의 발음을 "들리는 그대로" 러시아어식으로 받아적은 것이다. (우크라이나어에서 /je/와 /ji/ 발음은 각각 є와 ї로 적는다) 러시아어 초급자라면 이 문장을 보고 뭔가 이상하다 생각했을 것이고, 러시아어에 능숙한 사람이라면 э와 ы가 자동으로 е와 и로 읽혔을 것이다.[18] 당시 소련 예술계 인사들은 당국의 마음에 들지 않는 표현이나 묘사만으로도 심하면 공공연하게 비판받고 수용소에 수감될 수도 있었다. 대놓고 스탈린을 비판하는 시를 썼다가 굴라크에 끌려간 오시프 만델시탐 같은 사례까지 끌고 오지 않더라도 소련 클래식 음악계의 거장이었던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는 1934년 자신이 연출한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이 스탈린의 마음에 안들었다는 이유와 더불어 당시 숙청된 인사와 친했다는 이유로 숙청 직전까지 갔다가, 교향곡 제5번으로 재기에 성공하면서 간신히 숙청을 피했던 적이 있었다.[19] 이를테면 해군 함장처럼 높은 계급에 있던 사람이나 모스크바 출신 지식인[20] 이거 때문에 체자리는 원래 궐련을 피다가 곰방대로 바꿨을 정도로 담배만 꺼내면 그런 소리를 듣는다고 보면 좋다.[21] 물론 이것은 아주 입에서 담배를 꺼낼 기세로 구걸하는 페추코프가 보기 싫어서 그랬던 것도 있지만...[22] 슈호프의 말로는 악명이 높은 걸 본인도 알았는지 작중에는 가죽채찍을 들고 다니지도 않고 그전보단 나아졌다고 한다.[23] 보통 10년이면 365 × 10이니까 3,650일인데, 거기서 3일이 더 늘었다. 이에 대해서는 "윤년이 끼어 있어서"(즉, 2월 29일이 있었던 해가 세 차례 있어서)라고 설명하는데, 그것이 본작의 마지막 문장이다.[24] 이반이 전에 있었던 수용소와 현재 있는 수용소의 생활을 비교하면서 "여기가 차라리 낫다. 여긴 밤 늦게까지 죄수를 부려먹지 않고 작업 할당량을 다했던 못했던 수용소로 돌려보내고 식량도 최저 100그램은 보장해주니 이만 하면 버틸 수 있다. 수용소 이름-현재의 수용소는 주로 국가 반역죄를 선고받은 죄수들이 많은 특수범 수용소다-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라는 식이다. 그 말에 페추코프는 잠자다가 칼침을 맞아 죽는 일이 있는데 뭐가 낫냐며 빈정대자, 파블로는 칼침 맞은 건 사람이 아니라 밀정 놈의 새끼라면서 으르렁댄다.[25] 독소전 당시 장교로 근무하고 있던 솔제니친은 친구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당시 소련 체제를 간간히 까곤 했는데 이게 콧수염 양반한테 걸려버렸다.[26] 우화를 통해 소련 스탈린 체제를 비판했지만, 저자 오웰은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로 자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