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이 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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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이 미키
今井(いまい 美樹(みき | Miki Imai


파일:miki imai.jpg

본명
布袋(ほてい 美樹(みき (호테이 미키, Miki Hotei)
출생
1963년 4월 14일 (61세)
미야자키 현 코유군 타카나베 정
국적
[[일본|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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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신체
168cm
배우자
호테이 토모야스(1962년생, 1999년 결혼 ~ 현재)[1]
학력
미야자키현립 타카나베 고등학교 (졸업)
직업
배우(1983년 ~ 2011년)
가수(1986년~)
소속사
유니버설 뮤직 재팬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
2. 상세
3. 여담



1. 개요[편집]


일본가수, 배우.


2. 상세[편집]


고등학교 졸업 후 스튜어디스가 되기 위해 상경했다가 데뷔한 케이스로, 1983년 잡지로 처음 데뷔하게 된다. 같은 미야자키현 출신의 유명인 중 같은 시대에 활동한 뮤지션은 아사카 유이 정도가 있겠다.

한국에는 1991년 발표한 발라드곡 'PIECE OF MY WISH'를 한국의 여가수 Hey가 2003년 리메이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1년 발표한 싱글이자 그녀의 이름을 널리 알린 출세작 Piece of My Wish. 본인이 주연한 드라마 내일이 있으니까(あしたがあるから)의 주제곡.


지금은 남편이 된 호테이 토모야스가 제공한 곡인 1996년 싱글 PRIDE. 일본 록의 자존심이라 불리던 기타리스트 호테이 토모야스가 작사 작곡에 연주, 프로듀스까지 모두 맡았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주목을 받았으며 오리콘 역대 싱글판매랭킹에도 들어간 대 히트곡이다.


이마이 미키가 주연으로 출연한 드라마 브랜드(ブランド)의 주제가였던 Goodbye Yesterday. 아름다운 가사와 멜로디로 유명한 명곡이다.


3. 여담[편집]


  • 1999년 가수 호테이 토모야스와 결혼했다. 그녀의 최대 히트곡인 PRIDE는 바로 호테이가 작사, 작곡한 곡. 호테이 토모야스는 이외에도 미키에게 많은 곡을 써줬는데, 이렇게 곡을 주다가 그만 미키와 정분이 나버리고야 말았다. 문제는 당시 호테이의 부인이던 야마시타 쿠미코[2] 와 이마이 미키는 서로 친구 사이였다. 즉, 좀 안 좋은 불륜이어서 한동안 그녀의 가수활동에 지장이 있었다.

  • 데뷔 20년 만인 2006년에 NHK 홍백가합전에 첫 출장을 하였다. 이때 그녀가 부른 곡은 남편이 작사작곡 해주었으며 그녀 최대의 히트곡인 PRIDE. 그녀의 남편인 호테이 토모야스도 기타 연주자로 참가해서 공연하였다.

  • 2010년 5월 가수 데뷔 25주년을 기념하고 다음 달인 2010년 6월 코부쿠로의 코부치 켄타로 등과 함께 고향인 미야자키현의 구제역 피해자 구호 송 『 태양의 멜로디 』을 냈다.
  • 친정집이 오디오기기 전문점을 경영했다고 한다. 중학교 때는 마츠토야 유미의 열렬한 팬이었다고 본인이 말했다.

  • 호테이 토모야스와의 불륜으로 이어진 결혼까지의 과정이 굉장한 논란이 되었는데, 일단 이마이 미키의 원래 불륜상대는 세션 드러머였던 유부남 시이노 쿄이치(椎野恭一)였다. 그것도 친구 남편. 이사람이 야마시타 쿠미코의 앨범 세션에도 참여한 호테이의 백밴드 인원이었던지라 자연스럽게 호테이 토모야스의 아내인 야마시타 쿠미코하고도 안면을 트게 되었고 이마이는 원래 야마시타 쿠미코의 팬이었기에 매우 친한 친구가 되었다.

당시 호테이는 야마시타 쿠미코와 1985년 결혼 후 원만한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있던 중이었는데 야마시타와 같이 호테이의 Guitarhythm Active Tour에 동행한 이마이가 호테이에게 반해 작업제의를 했고 1993년의 히트 싱글 Bluebird 가 탄생한다. 그러다가 서로 정분이 났는데, 이유없이 집 밖으로만 도는 호테이 토모야스에 대해 이상한 낌새를 느낀 야마시타 쿠미코가 설마하니 친구와 그렇게 된줄도 모르고 이마이 미키에게 상담을 하기도 하다가 결국 호테이와 이마이의 관계가 들키게 된다.
기왕에 상황이 뽀록난 김에 필사적이었던 이마이 쪽이 강수를 두며 나갔는데, 한밤중에 야마시타에게 전화를 해서 '그이 있나요?' 하고 물어보고 야마시타가 없다고 대응하자 '그렇군요. 지금 우리집에서 샤워하고 있으니까.' 로 받아치거나 한밤중에 전화를 여러 번 걸어서 '호테이와 헤어져줘요' 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나갔고, 야마시타 쿠미코네 집 우편함에 이마이 미키가 이혼장을 넣어두기도 했다고.[3] 결국 친구에게 모질게 대할 수도 없었고, 이마이의 공세를 이기지 못한 야마시타가 호테이와 이혼하고 미혼모 신분으로 쌍둥이 자매를 출산하는 걸로 결론이 났다. 정리하자면 친구 남편과 불륜하다가 그 유부남을 정리하고 그의 직장동료이자 또 다른 자기 친구의 남편을 빼앗아서 결혼한 것. 이런 이유로 당대 최고의 여가수와 기타리스트를 뽑자면 이름이 오가는 호테이와 이마이지만 둘 다 사생활적으로 절대 좋은 소리는 안 나온다. 특히 이마이는 당시 일본 아줌마들의 공공의 적으로 취급받아 결혼 후 한동안 드라마에 나오지 않던 시절도 있었을 정도. 워낙 논란이 되었던 이야기인지라 20년도 더 지난 얘기지만 아직도 현세대에 회자된다.

  • 우타다 히카루처럼 2012년 런던으로 이주하였다.[4]

  • 오오츠카 아이가 남편의 불륜 때문에 이혼했을 때, 남편의 불륜녀인 에나츠 시오리가 오오츠카를 심하게 괴롭혔다는 게 밝혀지며 에나츠는 제 2의 이마이 미키라는 소리를 들었을 정도로 막장불륜녀의 대명사처럼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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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편인 호테이 토모야스는 재혼이다.[2] 오이타현 벳푸시 출신의 일본의 유명 여가수.[3] 해당 내용은 2003년 야마시타 쿠미코의 자서전과 야마시타 쿠미코가 출연한 아카시야 산마의 버라이어티 방송에서 밝혀졌다.[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