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아제르바이잔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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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적 관계
2.1. 고대
2.2. 고대 말
2.3. 중세
2.4. 근세
2.5. 19세기
2.6. 20세기
2.7. 21세기
3. 문화 교류
4. 교통 교류
5. 여담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이란아제르바이잔의 관계. 이란과 아제르바이잔은 역사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었고 언어, 문화, 종교에서 매우 가깝다. 그러나 현대 들어서 갈등을 맺고 있다.


2. 역사적 관계[편집]



2.1. 고대[편집]


고대 아케메네스 페르시아가 코카서스 알바니아 일대를 장악한 것을 계기로 아제르바이잔 일대에는 조로아스터교가 전파되었다. 조로아스터교는 중세까지 아제르바이잔의 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석유와 가스가 많은 아제르바이잔 특성상 이 지역은 조로아스터교의 성화 숭배의 중심지로 떠오르기도 했다.

아제르바이잔이라는 국명 역시 페르시아의 아제르바이잔 지배와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제국의 사트라프였던 아트로파테스(Aτρoπάτης)의 이름이 아제르바이잔의 기원이 되었다는 가설이 유력하다.


2.2. 고대 말[편집]


서기 3세기에 사산조 페르시아는 아제르바이잔 일대를 장악하고, 이 지역에 페르시아인들을 식민시켰다. 자세한 내용은 타트인 문서 참조. 코카서스 알바니아는 로마 제국과의 분쟁지역인 아르메니아에 가까운데다 북방 튀르크유목민들이 카스피해 일대에서 남하해오는 길목에 위치하여 굉장히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다. 로마 제국의 역사가 암미아누스 마르켈리누스에 따르면 서기 359년 아미다 공방전에 나선 샤푸르 2세의 왼쪽에는 히온족 부족장 중 하나인 그룸바테스가 있었고, 오른쪽에는 알바니아의 왕이 서 있었으며, 에프탈족 기병과 마찬가지로 알바니아 기병들도 페르시아 기병 전력의 핵심을 구성하였다고 한다. 사산 왕조에서는 데르벤트 일대에 요새를 구축하여 국경 지대를 방어하고 정예군을 육성했는데 일례로 서기 636년 까디시야 전투 당시 아랍 무슬림 군대에 맞섰던 페르시아 총사령관 로스탐 파로흐자드(رستم فرخزاد / Rostam Farrokhzad, ? ~ 636) 역시 아제르바이잔 출신이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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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중세[편집]


7세기에 아랍인 무슬림들이 사산 왕조를 멸망시키고 페르시아를 정복하였다. 오늘날 이란에 해당하는 지역이 이슬람 제국의 통제 하에 들어간 것과 반대로 아제르바이잔에 해당하는 지역은 한동안 하자르 칸국과 이슬람 제국 사이의 일진일퇴가 계속되었고, 이 과정에서 산악 지대 곳곳에 현지 토호들이 독자적인 지배권을 행사하는 소규모 국가들이 난립하였다. 이슬람 제국의 통제력이 온전히 미치지 않는 상황에서 이란 북부와 아제르바이잔 일대에서는 조로아스터교 부흥 운동을 펼치던 호람딘이 수백여 년 가까이 아제르바이잔과 이란 북부 일대에서 활동하였다.[1]

셀주크 제국이 페르시아를 지배하자 중앙아시아에 거주하던 오우즈 튀르크족들이 아제르바이잔 지역에 정착하고 아제르바이잔 지역의 주민들은 튀르크화되면서 지금의 아제르바이잔인이 되었다. 몽골 제국의 침략 과정에서 유목민보다는 정주민들의 피해가 더 막심했는데, 이는 한 편으로 몽골인들의 침략 이후 페르시아계 인구의 비중이 감소하고 튀르크계 인구의 비중이 증가함을 의미했다. 몽골 제국의 침략 이후 인구 구성이 튀르크인 위주로 변한 이래 이른바 타트인[2]이라 불린 아제르바이잔의 페르시아계 농민들은 아제르바이잔인들에게 점차 흡수되면서 오늘날에는 소수민족으로 전락하였다.

13세기 몽골 제국이 서아시아 대부분 지역을 정복하였으나, 몽케 칸 사후 여러 칸국들로 분열되고, 서아시아 일대에는 일 칸국이라는 몽골 제국의 방계 국가가 자리잡게 되었다. 몽골인들은 기후가 지나치게 무덥지 않고 목마장이 풍부한 남아제르바이잔 일대를 중심으로 주둔하면서 아제르바이잔 일대는 한동안 이란 전체의 중심지 역할을 하기도 했다.


2.4. 근세[편집]


아제르바이잔 일대에서 발흥한 사파비야 수피 교단의 무장 조작 키질바시이스마일 1세의 지휘 하에 아제르바이잔과 다게스탄 일대를 장악하고, 이란 일대로 남하하여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아제르바이잔을 근거지로 이란과 아제르바이잔 일대를 아우른 사파비 제국이 들어섰다.

사파비 제국은 아제르바이잔의 지하 조직에서 기원한 단체답게 과격한 방식을 선호하였다. 시아파 근본주의 성향으로 순니파를 극도로 적대하였는데, 문제는 사파비 제국이 새로이 정복한 이란 주민 대다수는 이슬람 순니파를 믿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키질바시들은 시아파로 개종하기를 거부하는 주민들을 마구잡이로 학살하면서 이란의 순니파 인구 상당수가 동쪽이나 서쪽으로 난민이 되어 망명을 떠났다.

사파비 제국의 샤한샤들은 키질바시들에게 반인반신으로 추앙받는 존재들이었지만, 제국을 안정적으로 통치하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했고, 시아파 중에서 비슷하되 좀 더 온건한 종파로 갈아타는 결정을 내렸다. 이스마일 1세는 이라크 일대에서 아랍인 시아파 자파르파(12이맘파의 주요 법학파) 율법학자들을 초빙하고, 12이맘파를 실질적인 국교로 삼는다. 아제르바이잔의 키질바시들이 이란인 순니파 주민들을 학살하는 일이 줄어들고, 12이맘파 성직자들이 사파비 제국 신민들을 순니파에서 시아파로 개종시키면서 오늘날 이란에 해당하는 지역 주민들은 대다수가 시아파로 개종하게 되었다. 이후에도 키질바시들은 권력 다툼을 지속하는데, 아바스 1세는 이들의 영향력을 제한하기 위해 오늘날 이란 한가운데인 이스파한으로 천도하는 결정을 내리고, 아르메니아인이나 조지아인 출신 관료들을 중용하기 시작했다. 아제르바이잔에서 기원했던 사파비 제국은 아바스 1세 치하 들어서 이란을 중심으로 한 제국으로 변화되었다.

사파비 제국이 몰락하자 러시아 제국은 캅카스 동부 방향에서 남하를 시도하였다. 카자르 왕조의 초대 샤한샤였던 아가 모하마드 칸은 러시아군을 격파하고 아제르바이잔 일대의 영토를 확고히 다지는가 했는데

2.5. 19세기[편집]


아가 모하마드 칸 사망 이후 이란의 샤한샤들은 군사적으로 무능했고, 19세기 초 러시아 제국가 두 차례 전쟁에서 모두 패배하였다. 투르크멘차이 조약을 계기로 카자르 왕조의 근거지였던 아제르바이잔 일대는 지배를 받게 되었다. 러시아 제국은 새로 정복한 지역의 시아파 무슬림들이 이란과 연대하여 반란을 일으키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 아랍어와 페르시아어 사용을 제한하고 대신 아제르바이잔어 사용을 장려하였다. 그 결과 이란과 아제르바이잔는 상당히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특히 19세기 우랄-알타이어족 가설이 등장한 것을 계기로 러시아 제국 내 튀르크계 민족 사이에 범튀르크주의가 유행하면서 아제르바이잔 일대에서는 세속주의/민족주의가 종교 근본주의보다 힘을 얻게 되었던 것이 결정적이었다.

19세기 후반 바쿠에서 유전이 개발되자 남아제르바이잔 주민 상당수가 몰래 국경을 넘어 러시아 제국이 지배하는 바쿠로 몰려들어 정착했는데, 이는 당시 카자르 왕조의 부정부패와 기근이 워낙 심각한 수준이었기 때문이었다.


2.6. 20세기[편집]


러시아 제국이 혁명으로 몰락한 뒤 소련이 출범하고 아제르바이잔 지역은 소련의 구성 공화국 중 하나인 아제르바이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되었다. 남아제르바이잔에도 소련의 영향을 받아 볼셰비키들이 자치 정부를 구성하기도 했으나, 카자르 왕조가 무너지고 들어선 팔레비 왕조가 이들을 제압하였다.

팔레비 왕조는 70년대 말 호메이니의 이슬람 혁명으로 전복되고, 이란에는 이슬람 근본주의 정권이 들어섰다. 아제르바이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은 1991년에 소련이 해체되고 독립국이 된 뒤에 이란과 수교했다.

아제르바이잔이 독립한 직후 이란은 시아파가 다수인 아제르바이잔과 우호 관계를 맺으려고 했으나, 아제르바이잔은 이란보다는 튀르키예를 파트너로 생각했고 특히 민족주의 성향의 애뷜패즈 엘치배이 정권은 친튀르키예-반이란 성향으로 남아제르바이잔과의 통일을 지지하면서 이란과의 관계가 악화되었고, 결국 이란은 아제르바이잔보다는 아르메니아와 친선 관계를 맺게 되었다. 이것이 1차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때 아제르바이잔이 패배한 원인 가운데 하나였다.


2.7. 21세기[편집]


양국은 이슬람 협력기구의 회원국이다.

소수민족이 많은(인구의 50% 가까이 된다.) 이란으로서는 혹시 모를 분리주의 때문에 아제르바이잔을 경계한다. 아제르바이잔인, 즉 아제리인은 이란에서도 전 인구 25%에 달하는 1500만명이 넘는 되는 만큼, 아르메니아와 더불어 이란에서도 무시못한다.[3] 그렇게 나쁜 것도 아니지만 아주 좋은 관계도 아니다. 아제르바이잔 본국을 그리 고향같이 여기지 않은 이들도 많다. 게다가 아제르바이잔에게 원수같은 아르메니아와 사이좋게 지내는 이란인데다가 더불어 아제르바이잔은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투르크계로 이란과 껄끄러운 터키와 매우 사이가 좋기에 이란으로서도 사이좋기 굴긴 껄끄럽지만 그렇다고 원수지간으로 지내지 않는다. 궁정언어로 아제르바이잔어가 상당기간 쓰인적이 있던 시절도 있고 무엇보다도 알리 하메네이가 바로 아제르바이잔계다.

양국은 자동차산업 분야를 포함한 여러 분야에 걸쳐서 협력을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2010년대에 들어서 아제르바이잔이 이스라엘에 공군기지를 빌려주고 무인기 배치까지 허용하면서 사이가 틀어지기도 했다. 아제르바이잔은 이란과는 바로 코앞인데다, 아제르바이잔에 배치된 이스라엘 무인기는 테헤란까지 날아갈 수 있기에 이란에서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4] 하지만 아제르바이잔은 이란이야말로 아르메니아군 연료를 책임지는 주제에 누굴 따지냐고 대응했다.


3. 문화 교류[편집]


아제르바이잔에 거주하는 아제르바이잔인들보다 이란의 남아제르바이잔에 거주하는 아제르바이잔인들이 더 많다. 아제르바이잔어는 아제르바이잔 본토에서 로마자로 쓰이고 있지만, 이란쪽에선 페르시아 문자를 사용하고 있다. 소련 시절 당시 아제르바이잔 SSR은 키릴 문자를 사용하였으나, 독립 이후 터키를 모방하여 로마자를 사용하고 있다.

양국은 언어, 종교, 문화에서 많은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다. 이란과 아제르바이잔은 국민 다수가 이슬람교 시아파를 믿고 마드하브 상으로는 12이맘파에 속해 있다. 다만, 정치적으로 차이가 있는데, 아제르바이잔이 러시아 제국과 소련의 영향으로 세속국가이자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반면, 이란은 이슬람 신정 국가이기 때문이다.


4. 교통 교류[편집]


두 나라들을 잇는 항공 노선들이 존재한다.


5. 여담[편집]


2000년 중반에 이란의 시사 만화가 마나 네예스타니(Mana Neyestani)가 자신의 만화에서 그냥 바퀴벌레아제리어로 한마디("뭐라고?(Namana?)"하고 대답)하는 묘사를 그리자 아제리인을 바퀴벌레로 봤다며 이란 거주 아제리인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아제르바이잔에서도 분노하며 이란 대사관 앞에 시위가 벌어지는 일이 벌어졌다. 시위 과정에서 최소 4명이 사망했고, 해당 만화가는 이 일로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석방후 말레이시아로 망명을 갔다. 이후에 마나 네예스타니는 이란 정부를 비난하고 풍자하는 시사만화가로 활동하고 있다. 해당 만화는 한국에서 2010년대 중순에 정발된 "괜찮아, 잘될 거야." 라는 마나 네예스타니 만화모음집에도 들어가 있다.


6.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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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호람딘의 일파는 시아파 수피 교단으로 개종하는데, 이란과 아제르바이잔 역사에 분수령이 되는 사파비야 교단이 바로 그들이다.[2] 타트는 원래 중앙아시아의 튀르크인들이 정주 농민들을 지칭하는 멸칭이었다.[3] 별다른 차별도 존재하지 않고 문화, 경제적인 교류도 활발하기는 하지만 이런저런 재제를 받는 이란의 통치하에 있을 바에 차라리 아제르바이잔과 통일하자는 남아제르바이잔인들의 분리주의 의견이 간간히 나오고있다.(물론 통일하자는것이 공식적인 입장은 아니다. 쿠르드인이라는 변수가 위낙 커서 이란과 싸워봤자 득이 될게 없기 때문이다.)[4] 거기다 아제르바이잔 공군도 이스라엘제 무인기를 구입하면서 아르메니아까지 반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