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재(축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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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포항 스틸러스 웹 사이트



포항 스틸러스
Pohang Steel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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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이광재
李珖載 | Lee Kwang-Jae
출생
1980년 1월 1일 (44세)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신체
183cm | 체중 73kg
직업
축구선수 (스트라이커 / 은퇴)
코치
소속
선수
광주 상무 (2003~2004 /군 복무)
전남 드래곤즈 (2004~2006)
포항 스틸러스 (2007~2009)
전북 현대 모터스 (2009~2010)
옌볜 FC (2011)
TTM 치앙마이 FC (2011~2012)
대구 FC (2012)
고양 자이크로 FC (2013~2015)
지도자
현풍고등학교 (2016~2018 /코치)
현풍고등학교 (2019~2020 /감독)
포항 스틸러스 (2021~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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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잠실초등학교 (졸업)
배재중학교 (졸업)
배재고등학교 (졸업)
대구대학교 (졸업)

1. 개요
2. 선수 시절
3. 지도자 생활
4. 플레이 스타일
5. 에피소드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축구인.

현직은 포항 스틸러스 코치로, 2007년 포항 스틸러스에서의 현역 시절 K리그 플레이오프에서 교체 투입되어 연이어 결승골을 기록하며 플레이오프의 사나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던 선수이다.


2. 선수 시절[편집]



2.1. 프로데뷔 이전[편집]


배재중학교, 배재고등학교, 대구대학교를 거쳤다. 대구대 시절에는 대학선발로 발탁되어 덴소컵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대구대학교를 졸업 후, 프로팀 입단을 두드렸지만 체력이 부족한 선수라는 꼬리표 때문에 그를 받아주는 팀이 없었다.


2.2. 광주 상무[편집]


결국 이광재는 2002년 대구대학교를 졸업 후, 곧바로 군입대를 하였다. 마침 광주 상무가 K리그로 재편성 됨에 따라 조금 더 일찍 프로무대에 진출할 수 있었던 게 행운이었다. 상무 시절부터 조련을 받으면서 체력이 붙고 특유의 골감각이 빛을 발하면서, 2003년 K리그에서 5골을 성공시킨 이광재는 상무 제대 후 프로팀들의 표적이 되었다.


2.3. 전남 드래곤즈[편집]


2004년 전역과 함께 자유계약으로 전남 드래곤즈에 입단했다. 계약금 2억 5천만원에 계약기간은 5년짜리 대형계약이었다. 전남 입단 초기에는 부족한 체력 때문인지 많은 경기에 출장할 수 없었다. 하지만 2군 및 컵대회에서 날카로운 모습을 보여줌에따라, 조커 자원으로 활용되며 전남에서 출장기록을 쌓아갔다. 하지만 팀 사정상 스트라이커, 윙 포워드를 가리지않고 출장하며 그의 장기인 골결정력을 발휘할 찬스를 얻지 못했다.


2.4. 포항 스틸러스[편집]


2007년 시즌을 앞두고 백업 공격수가 모자랐던 포항 스틸러스로 이적하게된다.

포항에서도 거의 매경기마다 교체선수로 투입되어 공격에 활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주로 맡았는데, 2007년 K리그 플레이오프 무대에서 전설을 쓰게 된다. 6강 플레이오프 경남 FC와의 경기에서 이광재는 후반 22분 교체해들어오자마자 팀의 선취골을 기록하며 승부를 승부차기까지 끌고가는데 일조했고, 승부차기 끝에 포항은 경남을 물리치기에 이른다.

그리고 준플레이오프 울산 현대 전에서도 이광재는 후반 22분 교체출장하여 정확히 10분뒤 팀의 결승골을 터뜨리며 울산까지 격침시키고 포항을 준결승전으로 이끌었다. 1차전때까지만 해도 시쿤둥했던 언론은 깜짝 놀라며 특급 조커 이광재를 조명하기 시작했고, 이광재의 활약아래 포항은 거침없는 상승세로 상대팀을 압도하기에 이른다.

수원 삼성까지 물리치고 맞이한 성남 일화와의 K리그 결승 1차전에서 이광재는 팀의 3번째 골을 성공시키며 3:1 대승을 이끌었고, 이미 승부추가 기운 2차전에서는 골대를 2번이나 맞추면서 기회를 살리지 못했지만 팀은 슈뱅크의 결승골로 1:0 승리하며 성남을 2게임을 모두 이기고 포항은 K리그 우승을 확정짓게된다. 플레이오프에서만 3골을 몰아친 이광재는 2007 K리그 플레이오프가 낳은 최고의 스타로 군림하며 프로 데뷔 후 최고의 전성기를 한껏 누렸다.

2007년 최고의 한해를 보냈지만 이후 포항은 외국인 공격수 중심으로 팀 전술이 변화함에 따라 이광재의 출장기회가 점점 줄어들기에 이르렀고 결국 2009년 여름 전북 현대 모터스로 이적하였다.


2.5. 전북 현대 모터스[편집]


전북에서도 1년 6개월 가량 활동하였으나, 임펙트 있는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2011년 옌볜 FC, 2012년 TTM치앙마이에서 활약하게 되었다.


2.6. 대구 FC[편집]


2012년 여름 K리그 여름 이적시장에 대구 FC에 입단해 국내로 전격 복귀하였다. 6월경부터 대구 FC의 훈련에 참가해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고. 그러나 대구에서는 8경기 중 7경기를 교체투입되어 슈팅 한번 못 쏘는 활약으로 빈축을 샀다.


2.7. 고양 자이크로[편집]


K리그 승강제 도입후 K리그 클래식선수가 K리그 챌린지로 이적한 첫번째 사례로도 이름을 올린 이광재는 이후 13시즌 고양 Hi FC에서 12경기를 출장했고, 13시즌 종료 후 대한축구협회가 주최한 AFC B급 지도자 자격 강습회에 참가하며 지도자 생활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3. 지도자 생활[편집]


2016년부터 대구 FC U-18팀인 현풍고등학교의 코치로 합류였고, 이 후 2019년부터 현풍고등학교 감독이 되어 2년간 지도하였다.

2021년 본인의 전성기를 보낸 포항 스틸러스에 코치로 합류하게 되었다.


4. 플레이 스타일[편집]


슈퍼서브로 이름을 날린 선수다. 골감각은 탁월했지만, 체력이 부족하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5. 에피소드[편집]


  • 이수철광주 상무 감독이 아끼는 선수 중 한명이었다. 상무에서 기량이 급성장해 프로로 간 케이스였다.

  • 축구인 2세로 前 제일은행 축구단의 명수비수였던 이연호씨의 아들이다.

  • 골 세레모니는 점프하면서 하늘을 향해 어퍼컷을 날린 후 곧바로 무뤂을 꿇고 기도를 하는 세레모니였다.


6. 관련 문서[편집]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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