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선/사건사고 및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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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무위키+상위문서.png   상위 문서: 은하선

1. 남성 강간 문화 발언 논란
2. 자위 발언 논란
3. 반동성애기독시민연대 회원 상대 퀴어문화축제 후원 유도 사기 사건
4. 까칠남녀 하차 논란
7. 기타 발언



1. 남성 강간 문화 발언 논란[편집]


【방송 캡처 보기】

파일:까칠남녀.jpg


까칠남녀에서 "남자들은 강간을 가르치는 문화가 있는 것 같다", "남자들끼리 있을 때 '어제 술 취한 여자를 집에 보냈다'고 하면 '너 바보 아니냐?'라고 한다"라고 한국 남성들 사이에 성범죄적 문화, 즉 강간문화가 있다는 발언을 하여 커뮤니티상에서는 논란이 일었고, 많은 이들이 비판했다. 관련기사

위 논란이 강간문화라는 성폭력을 대하는 사회적 태도를 말하는 개념이 널리 알려진 계기가 되기도 했다.

‘강간문화’는 끝나야 한다, 우리는 인간이지 않는가


2. 자위 발언 논란[편집]


【방송 캡처 보기】

까칠남녀 <나 혼자한다 자위편> 영상보기 에 출연해서 자위행위에 대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언급한 것이 논란이 되었다. 이 방송에서 여러 패널들이 자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서민은 자신의 자위 방법에 대해 말했고, 은하선은 당당하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언급했다. "(자위는) 내 전문이다. 매일 하는 정도”, "고기를 끊었는데, 확실히 끊기 전보다 성욕이 줄었다”며 “하루 3~4번 했는데 지금은 줄어서 1번”이라고 말했다. 황진철 비뇨기과 전문의는 "대부분의 인간은 자위를 한다. 문제가 되는 건 자위가 아니라 이에 대한 집착이다"라고 말했고, 박미선은 "이 프로그램은 나한테 큰 도움이 된다. 성교육은 '안돼', '조심해야 돼'라는 것만 가르쳤는데 나이 불문하고 올바르게 배울 거 같다"라고 말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는 이 방송을 두고 여러 이야기가 오갔으며 방송소위 하남신 위원은 "이 방송이 EBS에서 나간 방송이 맞는지 경악을 금치 못했다"며 "자위를 소재 삼아서 성적유희로 취급하고 비교육적으로 방송이 진행됐다"고 비난했다. 장낙인 위원은 "저는 이 프로그램을 보고 사회가 변했다고 생각했다. 심야시간대에 자위와 성행위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 있게 됐다. 강하게 처벌하기 보다는 의견제시 정도가 적당하다"고 발언했다. 방송소위 5명의 위원들은 전원합의로 징계조치인 권고를 결정했고 까칠남녀는 방통위로부터 권고조치를 받게 되었다.

방통위에서는 심의 규정 등의 위반 정도가 경미하여 제재 조치를 명할 정도에 이르지 않은 경우에 해당 사업자 또는 해당 방송 프로그램의 책임자나 관계자에 대하여 권고 또는 의견 제시를 할 수 있다.


3. 반동성애기독시민연대 회원 상대 퀴어문화축제 후원 유도 사기 사건[편집]




이 문서는 나무위키의 이 토론에서 (일부 내용에 대해) #100으로 서술(으)로 합의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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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연말, 까칠남녀에서 크리스마스 특집으로 '모르는 형님 - 성소수자 특집 1부'를 방영하자, 호모포비아 개독 계열에서 피디의 개인 핸드폰 번호로 항의가 들어왔다. 까칠남녀 피디는 항의 문자가 들어오는 것에 대해 "개인 신상이 털렸다"며 은하선에게 카톡을 보내 억울함을 호소했다고 한다.

【PD와의 카톡 내용 보기】

파일:은하선호모포비아3.jpg


이때 고정출연진인 은하선은 자신의 SNS와 반동성애기독인연대 대표인 주요셉 목사가 페이스북에 올린 까칠남녀 성소수자 방송 규탄 성명서 글 아래에 "까칠남녀 PD의 번호'라며 전화번호를 남겼는데[1], 이 전화번호는 PD의 전화번호가 아닌 퀴어문화축제 문자후원 번호였으며, 문자를 보내면 자동으로 3,000원이 퀴어문화축제에 후원 되었다. 은하선은 까칠남녀 피디에게 더 이상 퀴어 혐오적인 문자를 보내지 말라는 의도였다고 주장했다.

【해당 트윗 보기】

파일:은하선호모포비아1.jpg




파일:160963c19f035b7e.jpg


이 사실이 알려지자 논란이 되었는데, 은하선은 '저 번호로 사람들이 항의문자를 보낼 거라는 생각 자체를 못했다', 그 번호는 네이버에만 검색해봐도 퀴어문화축제 후원번호라고 뜬다'고 말했다. 네이버, 구글 등에 해당 번호 검색 시 아래 이미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파일:퀴어문화축제후원번호1.jpg



파일:퀴어문화축제후원번호2.jpg


은하선은 해당 논란이 시작된 지 이틀 째인 2017년 12월 27일 페이스북을 통해 '해당 번호가 잘못된 번호이며, 까칠남녀 제작진들의 업무를 방해하지 말라는 뜻으로 한 행동이었으며, 일종의 장난으로 쓴 글에 진심으로 대응하는 분이 있을 줄 몰랐다, 원하지 않는 후원을 한 사람들을 위해 환불받을 수 있는 절차가 있는지 알아보겠다'는 을 올렸다.
그 후 은하선은 본인의 SNS 계정에 퀴어문화축제 사무국을 통해 문자후원시스템 업체 나눔플러스에 환불이 되는지 알아보았으나, 소액결제가 아닌 정보이용료로 부과 되기 때문에 업체 기술상 환불이나 취소는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다는 글을 게시했다. 또 후원금이 바로 퀴어문화축제에 입금되는 것이 아니라 2017년 4월 이후 입금 되기 때문에 2017년 4월 이후에 퀴어문화축제에 문의할 경우 절차에 따라 환불을 해주겠다는 답변을 퀴어문화축제 측으로부터 전해들었다는 내용의 글도 여러차례 올렸다. 하지만 2021년 기준 단 한 사람도 퀴어문화축제 측이나 문자후원시스템 업체 나눔플러스에 환불을 요청하거나 문의한 사람이 없었다. @ 은하선은 이에 대해 사과성 발언을 하지 않았다.

【해당 페이스북 포스팅 보기】

2018년 1월 5일, 반동성애기독인연대 대표 주요셉 목사 (주요셉 목사는 자신도 문자 2건을 보내 총 6천원을 피해 봤다며 고소인 대표로 나섰다)를 포함한 105명은 은하선을 서울중앙지검사기죄로 고소했다. 105명이 고소했으나 증거가 없어서 다수는 고소 취하 했다. #아카이브

주요셉 목사는 법정에서 '은하선이 동명이인 인줄 알았다. 페이스북에 댓글을 단 은하선이 같은 은하선인 줄 몰랐다' 며 은하선이 쓴 글 중 일부를 자신이 직접 기독교인들이 모여있는 여러 개의 단톡방에 공유했다고 말했다.
주요셉 목사의 단톡방 공유로 은하선이 글을 올리지 않은 기독교 카페와 카카오톡 등에서 보고 문자를 보내 원하지 않게 퀴어문화축제에 후원하게 된 사람들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소인 중 약 20명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카카오톡, 다음 카페 등을 보고 문자를 보냈다고 진술했다. 2017년 12월 25일 유명 기독교 카페 중 하나에 이런 글이 올라왔던 기록이 남아있다.

【유명 기독교 카페에 올라왔던 글들 보기】

파일:아가페카페1.jpg



파일:아가페카페2.jpg



은하선과 그 후원금을 받은 '퀴어문화축제 KQCF'라는 단체의 전 조직위원장인 강명진은 까칠남녀 성소수자 편에 함께 출연한 적이 있다. #@

법정에서 무죄를 주장했으나 2019년 12월 6일에 대법원 기각으로 벌금 100만원을 확정받았다.은하선, ‘퀴어축제 후원 유도’ 사기죄 벌금 100만원 확정
벌금 확정 이후 은하선은 SNS를 통해 법정에서 읽은 최후진술서와 심경을 공유했다.



2020년 3월 16일, 은하선은 본인이 출연하는 유튜브 채널 큐플래닛에서 유죄판결이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2021년 2월 18일, 은하선은 본인의 SNS를 통해 반동성애기독시민연대 대표 주요셉 목사에게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당했다는 글을 올리며 성소수자를 향한 괴롭힘을 멈춰달라는 입장을 전했다.출처
손해배상 청구 소장에서 주요셉을 비롯한 84명은 “피해자들이 입은 정신적 고통은 자신들이 반동성애자들임에도 피고의 사기에 의해 자신들의 신념과 양심에 반해 결과적으로 퀴어문화제에 대한 금전적 후원을 통해 동성애를 동조·옹호·조장하는 친동성애적 행위를 저지르고 만 것”이라며 “자괴감을 넘어 양심의 충격으로서 존재가치마저 흔들리고 마는 상황인 바, 이러한 정신적 충격은 동성애에 대한 문제가 사회 이슈로 대두되는 한 계속 증진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파일:은하선2021_1.jpg

퀴어문화축제 측에서는 '반동성애기독교시민연대는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와 괴롭힘을 중단하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관련기사 출처

이에 대한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발단을 정리한 루리웹 게시판 글 아카이브 사기의 형법상 정의는 각주 참고. [2]

4. 까칠남녀 하차 논란[편집]



파일:까칠남녀반대시위1.jpg



파일:까칠남녀반대시위2.jpg



파일:까칠남녀반대시위3.jpg


까칠남녀 성소수자 특집 방송 이후 EBS 앞에서는 방송을 규탄하는 호모포비아 들의 시위가 잇달았다. EBS 로비를 점거하고 시위를 하다가 경찰에 연행된 사람들도 있었다. 시위 피켓 중에는'교육 방송에 양성애자가 왠말이냐' 는 문구와 함께 은하선의 사진이 프린트 된 것도 있었다.

조선일보에는 까칠남녀 중단을 요청하는 전면광고가 실렸다. 성인용품 판매상 이라는 단어를 제목 맨 앞에 달아 은하선을 문제 삼았다.


파일:까칠남녀반대광고.jpg


은하선은 2회분의 방송 녹화를 남겨 놓았던 시점인 녹화 이틀 전, 돌연 프로그램에서 하차되었다. 이에 이현재(교수), 손희정, 손아람 등 일부 패널들이 프로그램 보이콧을 하면서 까칠남녀는 조기 종영하였다.
#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에서 까칠남녀에서의 은하선의 하차는 서울위례별초등학교페미니스트 교사인 최현희 교사에 대한 혐오 세력들의 공격과 본질적으로 같다는 논평을 내놓았다. 한국교육방송공사(EBS) ‘까칠남녀’ 은하선 작가에 대한 일방적 하차 통보 사태는 서울의 한 페미니스트 교사에 대한 혐오 세력의 공격과 본질이 같다 아카이브

2018년 1월 15일 언론개혁시민연대에서는 EBS는 <까칠남녀> 은하선 작가 하차 통보를 즉각 철회하라! 는 논평을 냈다.

2018년 1월 22일에 EBS 앞에서 40여 개 성소수자·여성·언론·교육 단체들이 작가 은하선씨의 EBS '까칠남녀' 복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출처 기자회견 발언 전문 및 논평 모음

2018년 1월 16일에 노동자연대는 호모포비아에 의한 은하선 하차를 규탄했다. [성명] 동성애 혐오 우익에 굴복한 결정 -EBS는 ‘까칠남녀’ 은하선 씨 하차 통보 철회하라

이에 EBS 측은 은하선 하차는 혐오세력들의 공격이나 성소수자 탄압과 무관하며 EBS 출연자로서 적절치 못한 행동을 한 게 그 이유라고 17일 공식 해명 했다. 퀴어 문화축제 후원번호를 까칠남녀 담당 PD의 번호라고 자신의 SNS에 게시한 것과 2018년 1월 은하선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십자가 모양 딜도 사진을 올린 것에 대해 민원이 들어왔고, 법률 검토 결과 후원번호 게시 건은 사기죄에 해당될 수 있어 오히려 출연정지까지 검토했으나 제작진을 통해 구두경고 조치한 것이라고 입장 표명했다.


5. 서강대학교, 연세대학교 강연 논란[편집]


서강대학교에서 각각 강연을 주최한다는 소식이 퍼지자, 해당 학교의 학생들은 남성 혐오 발언을 일삼고 사기 저지른 사람을 무슨 생각으로 강연자로 초청했냐며 거세게 비판하는 여론을 형성했다.[3]

은하선은 그 비판글들을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그대로 게시하는 등[4] 서강대에서 일어난 이 사태를 즐기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이에 따라 서강대 측 안티페미성향 학생들은 더욱 거세게 반발하였고, 총학에 은하선 강연 취소를 수차례 요구했음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자 총학생회장 및 부총학생회장 탄핵 운동과 총장에게 건의 운동을 벌였다. 결국 서강대 총학생회에선 강연 전날 급하게 은하선의 강연을 취소하겠다고 전했다.
은하선의 강연이 취소되면서, 여성학자 정희진은 연대 차원에서 예정되어있던 자신의 강의를 스스로 취소하였다. # 서강대 은하선 강의 초청 취소 사건 파일 보이콧

서강대 소속 여성주의학회 들깸에서 이번 일에 대한 간담회를 열었으며 총학생회 소속 인권국장이 참여했다. #


5월 24일 연세대학교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은하선의 강연을 앞두고 5월 23일자 기준으로 서명운동이 시작되었다.

서명 주최측은 [5] 온라인 서명은 596명이라고 주장했고, 오프라인 서명[6]은 580명이라고 주장했다.

해당 서명은 온라인 + 오프라인 을 합쳐 빠르게 1천명을 넘었다. 이 사태 이후 총여 제도의 폐지로 이어지게 하려는 움직임 또한 보였다.


파일:은하선연세대전단지.jpg


기독교 연합회 소속 일부 학생들은 연세대학교 안팎에서 불법과 부도덕의 남성혐오 신성모독자 은하선의 5/24 글로벌라운지 강연을 반대합니다! 라는 제목의 전단지도 배포 하였다.

24일, 연세대학교 강연이 진행되었다. 강연 6시간 전에 강연 장소가 긴급 변경되었다.## 강연장 밖에서는 강연 반대 시위가 있었다. 강연은 속기사와 함께 진행되었고 강연록이 남아있다. 은하선 연세대 강연록 여성주의는 취소될 수 없다.

해당 강연과 강연을 둘러싸고 일어난 사건들을 계기로 연세대학교 내에서는 총여학생회의 독단적인 태도와 지위에 대해 수많은 문제제기가 이루어졌다. 결국 총여학생회의 재개편 논의까지 이루어지게 됐는데, 자세한 내용은 2018 연세대학교 총여학생회 인권축제 사태 참고.

결국 은하선 강연사태가 연세대 총여학생회 폐지로 연결 되었다.출처 그러나 연세대학교 총여학생회를 둘러싼 여러가지 논의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출처.

6. 미투 운동 논란[편집]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건 요약
사건 일자
1998년 ~ 2007년
사건 유형
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위반(강간 등)
사건 지점
대한민국
피고인
오보에 강사 M씨
피해자
은하선
은하선은 2018년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미투 운동에 동참했다.한겨레신문기사 은하선 페이스북

2018년 3월 23일 JTBC 정치부 회의에 2018분 미투 이어말하기 행사에서 미투 발언을 하는 은하선이 출연하였다. # 그 후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피해자 코스프레 아니냐는 논란이 생겼다. 어릴 때부터 주도적으로 성관계를 즐겼다는 <이기적 섹스>의 내용과 어렸을 때 성폭행을 당했다는 발언은 상반된다는 식의 글이 인터넷 상에 퍼졌다. 출처 출처2

은하선은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편견이 불러온 논란이며 '피해자 코스프레'라는 단어로 성폭력 2차피해를 만들지 말라는 입장을 밝혔다.
은하선의 페이스북에서 해당 사건에 대한 상세기록 및 2009년에 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위반 (청소년강간등)의 피해자로 재판 진행했던 기록을 볼 수 있다.

【합의 후 법원 판결문 등 관련 서류 보기】

파일:은하선미투1.jpg




파일:은하선미투2.jpg




파일:은하선미투3.jpg


가해자와 은하선 부모의 대화 녹취록을 보면 성폭력 사건은 확실히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뽀뽀도 하고 엉덩이도 때리고... 아빠처럼" 했다면서 성폭행이라니 억울하다고 말하고 있다.

【가해자 M씨와 은하선 부모의 대화 녹취록 보기 】

파일:은하선미투6.jpg



파일:은하선미투7.jpg


오보에 강사이자 성폭력 가해자인 M의 학생들이 M을 두둔하기 위한 진정서 연서명을 하여 법정에 제출하기도 했다. 진정서 내용에는 은하선을 도덕적으로 공격하기 위한 허위 사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피해자인 은하선이 성상납과 원조교제를 했다는 등의 허위소문으로 인한 성폭력 2차피해도 상당했다. 진정서에 서명한 학생들 중 다수는 현재 오보에 교강사 및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2021년 1월, M의 학생이었던 오보에 연주자 한이제가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 와의 인터뷰 를 통해 감사한 사람으로 M을 언급했다. 미성년자 성폭력 가해자에게 공개적인 감사 인사를 한 것은 문제가 있다는 논란이 일었다. 성폭력 2차 피해를 일으킨 것과 마찬가지라는 의견도 있었다.출처 은하선은 페이스북을 통해 문제제기하며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한이제의 입장을 물었고, 이후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로부터 재발방지 다짐과 함께 사과를 받았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출처

2009년 가해자 M은 은하선에게 합의를 부탁하며 사과문을 작성했다. 2009년에는 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위반(청소년강간등)이 친고죄 였기 때문에 합의 후 고소취하 하여 사건 종결 되었다.


파일:은하선미투5.jpg


그러나 2018년 가해자 M은 은하선을 명예훼손으로 민형사 고소했다. 2020년 6월 은하선의 승소로 소송은 마무리 되었다. 재판부에서는 "성범죄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대외적으로 알리거나 이를 이야기하는 행위는 헌법상 기본권에 기초한 것으로서 최대한 보장받아야 한다"며 "가해자의 명예가 피해자의 말할 권리보다 더 보호받아야 할 법익이라 보긴 어렵다"고 판시하여 피해자인 은하선의 손을 들어주었다. 출처 이 사건은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2020년도 성폭력 수사·재판 과정에서의 인권보장을 위한 시민감시단 디딤돌 10건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출처



7. 기타 발언[편집]


2018년 1월 8일, EBS 까칠남녀 게시판에 은하선 본인 계정의 페이스북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형상을 한 딜도 사진@을 올리면서 "사랑의 주님"이라고 했다는 항의성 제보 글이 올라왔다.# 그리스도교에서 예수를 비하하는 건 큰 모욕이다.

은하선은 자신은 딜도를 좋아하기 때문에 여러가지 딜도 사진을 구글에서 검색하던 중 우연히 찾게 된 십자가 딜도 사진을 SNS에 올렸을 뿐, 모욕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는 주장을 펼쳤다.

또 자신은 "페북에 올렸던 사진속 십자가 딜도를 실제로 본 적이 없다. 만든 적도 제작을 의뢰한 적도 사용한 적도 구매한 적도 없다. 구글에서 검색해 퍼왔을 뿐"이라며 "십자가 딜도를 판매하는 쇼핑몰 주소를 첨부하니 신성모독으로 충격받은 기독교인 여러분들은 저곳을 공격해달라."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출처

[1] #2540-6550[2] 형법 제347조 (사기) ①사람을 기망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자는 10년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개정 1995.12.29> ②전항의 방법으로 제삼자로 하여금 재물의 교부를 받게 하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게 한 때에도 전항의 형과 같다.에 해당한다. 대법원 2012.5.24, 선고, 2011도15639, 판결 범인이 기망행위에 의해 스스로 재물을 취득하지 않고 제3자로 하여금 재물의 교부를 받게 한 경우에 사기죄가 성립하려면, 그 제3자가 범인과 (피해자) 사이에 정을 모르는 도구 또는 범인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대리인의 관계에 있거나,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불법영득의사와의 관련상 범인에게 그 제3자로 하여금 재물을 취하게 할 의사가 있어야 한다. 대법원 2009.1.30, 선고, 2008도9985, 판결 위와 같은 의사는 반드시 적극적 의욕이나 확정적 인식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미필적 인식이 있으면 충분하며, 그 의사가 있는지 여부는 범인과 그 제3자 및 피해자 사이의 관계, 기망행위 혹은 편취행위의 동기, 경위와 수단·방법, 그 행위의 내용과 태양 및 당시의 거래관행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사회통념에 비추어 합리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3] 서강대학교의 경우 가톨릭 수도회예수회에서 운영하는 미션스쿨인데, 은하선이 과거에 자신의 SNS에 십자가 딜도 사진을 업로드 했던 일이 특히 문제되었다.[4] 서강대학교 대나무숲의 글을 올리면서 자료 킵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5] 학내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 기준 제목 온라인 서명 참여 부탁드립니다(1,000명 서명 목표)19:33분에 올라온 대댓글 596명입니다! 참조[6] 마찬가지로 에브리타임 15:50에 올라온 지금 600명정도 서명했습니다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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