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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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亨南
1911년 3월 16일 ~ 2002년 10월 9일

1. 개요
2. 생애
3. 선거 이력
4.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전 법조인, 정치인,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본관은 파평(坡平)[1], 창씨명은 히라노 쿄난(平野亨南).


2. 생애[편집]


1911년 3월 16일 전라남도 순천군 황전면에서 태어났다.

전남공립사범학교를 졸업하고 1930년부터 1933년까지 전라남도 황전보통학교 훈도, 1935년 경기도 왕징보통학교 촉탁교원, 1937년 군남보통학교 훈도, 1938년 경성청계심상소학교(현 서울청계초등학교) 훈도, 1939년 갈천심상소학교(현 용인신갈초등학교) 훈도를 지내는 등 교사생활을 하였다.#

이후 1940년 일본에 유학, 니혼대학 법학과를 다니다가 같은 해 일본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하여 중퇴하였다. 1941년 강원도 내무부 지방과 속(屬)으로 관료생활을 시작하여 경상북도 칠곡군수, 상주군수 등을 지내다가 광복을 맞았다. 일제 말 고위 관료 행적으로 친일인명사전 관료 분야에 등재되었다.

8.15 광복 이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외무부 법무과장, 법제처 법제관 등으로 근무하였고, 광주조선중보 주필을 지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전라남도 순천시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국민당 김양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국민당 김양수 후보에 설욕하여 당선되었다. 1955년 민주당 창당에 참여하고 중앙위원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민주당에서 구파에 속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9년 민주당 전라남도당 부위원장에 임명되었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연말 민주당 구파 소속 정치인들과 민주당을 탈당하고 신민당을 창당하였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민정당에 입당하였다가 탈당하고 정계 은퇴 선언을 하였다. 이후 변호사로 활동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민당 김상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2년 10월 9일 미국 롱아일랜드에서 별세했다.

3.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종류
선거구
소속정당
득표수(득표율)
당선여부
비고
1950
제2대 국회의원 선거
전남 4(순천시)

[[무소속|
무소속
]]

1,878표 (8.9%)
낙선 (3위)

1954
제3대 국회의원 선거
7,266표 (33.19%)
당선 (1위)
초선
1958
제4대 국회의원 선거
전남 6


11,031표 (45.18%)
재선
1960
제5대 국회의원 선거
11,430표 (42.71%)
3선
1971
제8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12

[[국민당(1971년)|
파일:국민당(1971년) 흰색 로고타입.svg
]]

575표 (0.56%)
낙선 (3위)


4.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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