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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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씨명
이이즈미 니신(伊泉二申)

의신(義信)
본관
해남 윤씨[1]
출생
1896년 5월 11일
나주부 해남군 황이면 신창리
(現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석교리 신창마을[2] 645번지[3])
사망
1964년 11월 14일[4]
묘소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충평리 갈우마을
상훈
대통령표창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대한민국독립유공자. 2011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1896년 5월 11일 나주부 해남군 황이면 신창리(現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석교리 신창마을 645번지)에서 아버지 윤창일(尹昌日, 1860. 8. 22 ~ 1928. 12. 22)[5]과 어머니 경주 정씨(1849. 11. 25 ~ 1930. 12. 9) 사이의 4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이후 목포부 죽교리(現 목포시 죽교동) 143번지로 이주하여 그곳에 있던 왕산한약국(旺山韓藥局)에서 점원으로 근무했다.

당시 일제는 중일전쟁을 일으킨 이후 일본군이 계속해서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선전하고 있었는데, 윤이신은 일제가 태평양 전쟁에서 패전을 거듭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 이러한 내용을 1944년 2월 동료들에게 전하면서 조선 독립과 일제의 패망을 언급했다. 그 뒤 이러한 사실이 발각되어 같은 달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45년 1월 19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불경 및 보안법 위반, 조선임시보안령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10개월형(미결 구류일수 30일 통산)[6]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은거하다가 1964년 11월 14일 별세했다.

2011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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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호군공파(護軍公派) 26세 하(夏) 항렬. 족보명은 윤인하(尹仁夏).[2] 해남 윤씨 호군공파(護軍公派) 집성촌이다. 이 마을은 해남 윤씨 호군공 윤종(尹種, ? ~ ?. 1. 26)의 10대손인 윤동영(尹東永, 1724. 9. 6 ~ 1785. 2. 20)이 전라도 강진현(現 전라남도 강진군)에서 처음으로 이주해 와서 개척한 것이라고 한다.[3] 1915년 작성된 지적원도에 따르면 이 지번의 필지는 윤이신의 아버지 윤창일(尹昌日, 족보명 윤주삼(尹柱三), 1860. 8. 22 ~ 1928. 12. 22)의 소유였다. 이후 1934년 6월 28일 장조카 윤장범(尹長凡, 족보명 윤재권(尹在權), 창씨명 이이즈미 나가츠네(伊泉長凡), 1922. 2. 6 ~ 1987. 8. 17)에게로 소유권이 이전되었다.[4] 해남윤씨대동보 권2 916쪽에는 1969년 10월 10일에 별세한 것으로 등재되어 있다.[5] 족보명은 윤주삼(尹柱三).[6] 형사사건부에는 징역 1년형으로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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