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디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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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디 리의 주요 수상 및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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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디 리
李云迪 | Li Yun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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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82년 10월 7일 (41세)
[[중국|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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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충칭시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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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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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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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175cm
직업
피아니스트
레이블
도이치 그라모폰
수상
제14회(2000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1위

1. 개요
2. 음반
3. 수상
4. 논란
4.1. 실력 퇴보 논란
4.1.1. 2015년 내한 공연때의 불성실한 태도
4.1.2. 2016년 이후
4.2. 2021년 성매매 구류 사건
5. 기타



1. 개요[편집]


중국클래식 피아니스트.

18세의 나이로 2000년도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역대 최연소의 나이로 우승하며 일약 클래식음악계 스타로 떠올랐다. 랑랑과 더불어 단연 중국 클래식음악의 쌍두마차이자 유망주였다. 2022년 기준 마흔살을 바라보고 있는 중년인 만큼 기성세대에 속한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쇼팽부터 리스트, 프로코피예프 등 내는 음반마다 특유의 우아하고 날렵한 음색과 섬세한 다이내믹으로 호평을 받았다.

그의 부모님은 충칭의 철강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출신으로 비음악가 집안이었지만 윤디 리가 어릴때부터 악기에 관심을 보이자 음악적으로 지원을 해주었다. 그가 3살이었을 때 쇼핑몰에서 아코디언 연주자를 넋을 놓고 구경하는 것을 본 부모님은 그에게 아코디언을 사줬고, 불과 5살때 그는 충칭 어린이 아코디언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이후 7세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Yundi는 중국어의 한어병음으로 "윈디"로 읽는다.실제 발음은 "윈띠"에 가깝다. 중국 국적의 중국인이므로 성을 앞에 두어 리윈디가 맞다. 하지만 국내에는 '윤디 리'로 널리 알려진 까닭에 이 문서도 관행에 따랐다.


쇼팽 국제 콩쿨 결선 당시의 연주 영상, 윤디의 최전성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기량을 보여준다.


2. 음반[편집]


《14th International Frederick Chopin Piano Competition Yundi Li》(maxell)-2000
《Chopin》(Deutsche Grammophon) -2001
《Liszt》(Deutsche Grammophon) - 2002
《앙코르》(Deutsche Grammophon) -2003
《Portrait》(Deutsche Grammophon) - 2004
《Chopin SCHERZI & IMPROMPTUS》(Deutsche Grammophon) -2004
《VIENNA RECITAL》(Deutsche Grammophon) - 2005
《CHOPIN & LISZT LIVE IN CONCERT》(Deutsche Grammophon) - 2005
《CHOPIN & LISZT Piano Concerto No.1 Philharmonia Orchestra Andrew Davis》(Deutsche Grammophon) -2006
《Berliner Philharmoniker》(Deutsche Grammophon) -2007
《Chopin Best》(Deutsche Grammophon) -2010
《Chopin Nocturnes》(EMI Classics) -2010
《Live In BEIJING at NCPA》(EMI Classics) -2010
《빨간 피아노》(EMI Classics) -2010
《Chopin & Liszt Recital》(Deutsche Grammophon) -2012
《BEETHOVEN Pathetique & Moonlight & Appassionata》(Deutsche Grammophon) -2012
《The Art Of YUNDI》(Deutsche Grammophon) -2013
《Emperor Fantasy》(Deutsche Grammophon) -2014
《Chopin Preludes》(Deutsche Grammophon) -2015[1]
《Chopin Ballades》(Universal Music Ltd) -2016
《Piano Concertos NOS.1&2 CHOPIN Warsaw Philharmonic Orchestra》(Warner Music) -2016[2]


3. 수상[편집]


  • 베이징 어린이 피아노 콩쿠르(1994)
  • 스트라빈스키 국제 유스 콩쿠르 1위(1995)
  • 미주리 남부 국제 피아노 콩쿠르(청소년 부문) 3위(1998)
  • 국제 프란츠 리스트 피아노 콩쿠르 3위(1999)
  • 지나 바샤우어 영 아티스트 국제 피아노 콩쿠르 1위(1999)
  • 제2회 중국 국제 피아노 콩쿠르 3위(1999)
  • 제14회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1위, 폴로네이즈상(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 우승이고, 중국 최초이며, 현재까지 역대 최연소 우승이다)(2000)
  • 에코 클래식상(올해의 독주 음반/리스트 연주회로 수상)(2003)
  • 그라모폰지 편집장의 선택 이 달의 음반 - 쇼팽, 리스트 피아노 협주곡(2007년 3월)
  • 그라모폰지 편집장의 선택 이 달의 음반 - 프로코피예프, 라벨 피아노 협주곡(2008년 5월)
  • 글로리아 아르티스 은메달(2010)
  • 글로리아 아르티스 금메달(2019)


4. 논란[편집]



4.1. 실력 퇴보 논란[편집]



4.1.1. 2015년 내한 공연때의 불성실한 태도[편집]


정진하지 않는 자에게는 퇴보가 따라온다.(장일범 음악 평론가)




사건은 2015년 10월 30일 윤디의 호주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쇼팽 피아노 콘체르토 1번 공연에서 일어났다. 당시 윤디 리는 시작부터 불안한 모습을 보이며 1악장 제시부부터 실수를 하였고, 그 후에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미스터치를 보여주었다. 또한 템포도 갑자기 빨리 연주하는 등 정상적이지 못한 연주를 이어갔다.

그는 결국 피아노 독주부분에서 악보 2장을 건너뛰더니 결국 연주를 중단하게 된다. 윤디 리는 2000년도 쇼팽 콩쿨 결선에서 연주한 곡이 바로 이 곡이었다. 상식적으로 수백 수천번 외우고 연주했을 곡을 일부는 아예 까먹는 등, 이정도까지 실수했다는 것은 연습 부족이 도가 지나칠 정도임을 알 수 있는데, 이렇다보니 항간에는 정신병이 도졌다느니 하는 흉흉한 소리까지 나돌 정도였다.

연주 중단에 멘붕이 온 오케스트라는 멍하니 10초간 정적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더 가관인 것은 이렇게 전적으로 피아니스트에게 잘못이 있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적반하장으로 윤디 리는 오케스트라에게 어이없어하며 What?이라는 제스처를 보였다. 물론 당시 오케스트라는 악보대로 연주했을 뿐 그 어떤 실수도 하지 않았다. 또한 후에 재개된 연주에서도 윤디 리는 불쾌한 표정을 드러내며 지휘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려는 태도를 보였다.

연주를 보기 위해 돈을 지불한 관중들은 당연히 크게 분노하였고, 환불 요청을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윤디 리는 이 사건이 크게 논란이 되기 전까지 그 어떤 사과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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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걸 페이스북에 올렸다. 자중은 커녕 핼러윈파티를 즐기겠다며 신난 모습에 이미 충분히 분노해있었던 많은 관객들은 이를 기점으로 폭발했고 수많은 항의들이 빗발쳤다. 결국 윤디 리는 관객들에게 사과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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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의 연주력 퇴보 논란은 어느 정도 꾸준히 이어져 왔었다. 커뮤니티 중에서도 디시인사이드의 클래식 갤러리, 피아노 갤러리 등을 중심으로 윤디의 연주 실력 퇴보에 대한 논란이 꾸준히 제기됐었고 대표적으로 이 사건 이전의 위 연주 영상에선 부정확한 리듬과 프로답지 않은 다이나믹, 연습 부족으로 인한 실수가 수없이 보인다.


4.1.2. 2016년 이후[편집]


카네기 홀에서의 쇼팽 발라드와 프렐류드 연주회로 재기했지만 그동안 윤디의 쇼팽 연주에서 찾아볼 수 있는 최상의 장점이었던 섬세한 페달링에서 우러나오는 하모니, 빠른 템포에서도 자유자재로 구사하던 루바토와 다이내믹의 역동성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고 최대한 안정적인 스타일로 변모하여 실수가 나지 않을 쉬운 리듬과 다이내믹을 잡아 매우 신중을 기해서 연주하는 것이 눈에 띈다. 그마저도 일부는 터치가 딱딱하고 리듬이 불안정한 경우가 간혹 보이다보니 일각에선 종종 평범한 음악대학생과 비교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라는 지적이 나올 정도로 전성기에 비해 기량이 크게 낮아졌다는 평이 많다.

반면 영상 링크의 유튜브 댓글들은 대부분 호평과 찬양 일색으로 도배되어 있는데, 원래 클래식 음악계도 아이돌 팬덤에서 종종 보이는 것처럼 상기된 영상이나 호로비츠의 일본 연주회같이 어지간하게 망쳐버린 연주회가 아닌 이상, 취향차를 변명삼아 유명 연주자들에 대한 무분별한 성역화가 자주 일어나는 편이다.


2016년의 카네기홀의 연주

동갑내기인 랑랑과 윤디 리는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중국의 자랑이자 국가대표급의 기대주들이었는데, 2010년대 이후 랑랑은 호불호가 크게 갈리기는 해도 연주 실력 자체는 누구나 인정하는 반면, 윤디는 지금 실력만 보면 어떻게 쇼팽콩쿠르에서 우승했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기량 자체가 퇴보해 버려서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심지어, 최근 중국의 'call me by fire'라는 아이돌 경연 프로그램에 참가자로 참여하여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충격적인 근황이 전해졌다. 더 이상 피아니스트로 활동할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문시되는 상황.


4.2. 2021년 성매매 구류 사건[편집]


2021년에 성매매를 한 혐의로 현장에서 성매매 여성과 함께 중국 공안에 붙잡혀 구류 처분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하필 이 소식은 코로나19로 1년이 연기되어 6년 만에 개최된 제18회 쇼팽 콩쿠르 마지막 날 우승자가 발표된 10월 21일에 밝혀졌다. 평소 리윈디를 좋지 않게 보던 베이징의 고급주택가 이웃이 그의 집에 업소녀가 방문하는 것을 보고 신고했고, 바로 경찰이 출동하여 체포했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윤디리는 피아니스트로서의 활동에 치명적인 오점을 남기게 되었다. 게다가 가뜩이나 시진핑 정부가 문화예술계를 비롯한 사회 전반에 퍼진 부도덕적 행태를 바로 잡겠다며 엄포를 놓은 시기에 성매매를 하다 걸린 것이 문제다. 성매매 자체는 그다지 큰 벌은 받지 않고 약식재판으로 며칠 구류처분에 벌금 정도이다. 하지만 사회적 물의를 빚은 연예인은 영구퇴출시키겠다는 최근의 중국 정부의 방침 때문에 운이 나쁘면 영영 다시 무대에 서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윤디 리 사건을 시진핑 정권이 최근 벌이고 있는 문화계 홍색 정풍의 희생자로 여기는 분석도 있다. 성매매라는 것이 많은 나라에서 합법이거나, 불법이라 하더라도 경범죄 취급받는다. 그런 현실에서 그의 체포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모든 매체들이 일제히 이를 보도했고,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평론을 싣는 런밍왕핑(人民網評)이 비난에 가세하였으며, 중국음악가협회가 즉각적으로 윤디리를 제명하면서 사실상 영구 퇴출시켰다. 이러한 가혹한 조치가 공산당 기관지를 포함하여 즉각적이고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볼 때 모종의 이유로 정권에 찍힌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리윈디는 중국당국이 괘씸죄를 살만한 인권운동이나 민주화운동과는 전혀 무관하고, 더구나 딱히 정치적인 인물도 아닌데다가, 그런 발언도 한 적이 없다. 중국에서는 실력의 퇴보와 함께 사생활에 말이 많았던 만큼, 이런 음모론적 억측은 일부 혐중 인사들의 뇌피셜에 가깝다. 중국 공산당의 선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던 인기 배우 이역봉도 성매매가 발각된 후 가차없이 바로 체포·구속되었고, 이후 연예계에서 매장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뉴스 후기에 의하면, 리윈디는 계속 자기 집에 대낮에 콜걸을 불러서 성매매를 하거나 혹은 유명세로 유혹한 여성을 자택에 데려와 원나잇 스탠드를 즐겼고, 이를 보다 못한 이웃이 결국 신고해서 법망에 걸렸다고 한다.

한편 중국 네티즌들이 인육검색으로 뷰티 인플루언서 첸페이치를 성매매녀로 지목했으나, 첸페이치 측은 성매매 업체가 본인 사진을 무단으로 도용했을 뿐이라며 부인했다.

5. 기타[편집]


  • 중국의 또다른 스타 피아니스트인 랑랑과 동갑이다.(1982년 출생)

  •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 최연소 심사위원으로 참가하여 조성진에게 10점 만점에 9점을 주었다. 그래서 한 때 우리나라 팬들의 호감도가 올랐으나, 내한 공연 사태로 지금은 많이 떨어진 상태.

  • 중국웹에서는 사생활에 대해 온갖 루머가 도는데, 어린 나이에 유명세를 얻어 방탕한 생활을 한 것은 사실로 보인다. 실력의 퇴보가 다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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