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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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도현'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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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노래
#!end||<width=30%> 조PD
<친구여(Feat. 인순이)>
(2005년) || ||<width=30%><bgcolor=#ffffa1,#5d5e00> 윤도현
<사랑했나봐>
(2006년)
|| ||<width=30%> 이한철
<슈퍼스타>
(2007년) ||}}} ||}}} ||


윤도현
尹度玹 | Yoon Do-Hyun


파일:윤도현.jpg

출생
1972년 2월 3일[빠른생일\][1] (52세)
경기도 파주군 파평면
(現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2]
국적

본관
파평 윤씨 (坡平 尹氏)
신체
176cm[3], 72kg, 270mm, O형
학력
문산초등학교 (졸업)
문산북중학교 (졸업)
문산고등학교 (졸업)
인천전문대학 (토목과 / 중퇴)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 03 / 제적[4])
직업
싱어송라이터, 뮤지컬 배우, 유튜버, 라디오 디스크자키
가족
부모님, 남동생
배우자 이미옥[5], 딸 윤이정[6]
데뷔
1994년 12월 정규 1집 〈가을 우체국 앞에서
소속사
디컴퍼니
소속 그룹
YB
포지션
리더, 보컬, 기타, 베이스, 키보드
종교
개신교(예장통합)[7]
병역
육군 제9보병사단 상병 소집해제[8]
취미
스케이트 보드, 산악 자전거
외부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다음 카페 아이콘.png | 파일:디시인사이드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9]
1. 개요
2. 주요 활동
2.1. 음악 활동
2.2. 뮤지컬 활동
3. 가창력
5. 히트곡(솔로곡)
6. 여담



1. 개요[편집]


대한민국가수. 록 밴드 YB의 보컬이자 리더이기도 하다.


2. 주요 활동[편집]



2.1. 음악 활동[편집]


파일:윤도현 째릿.jpg
1집에 담긴 사진

고등학교 시절 우연히 본 도어즈의 공연 실황 영상으로 음악에 빠지게 된다. '단두대' 라는 스쿨밴드를 결성. 드러머로 처음 밴드 음악을 시작했다. 헤비메탈을 한 적도 있다고 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 1992년에 파주의 포크 음악[10] 동아리 '종이연' 에서 활동을 시작했다.[11] 1994년 1집 앨범 <가을 우체국 앞에서>로 솔로 데뷔하지만 당시 유행하던 댄스 음악과는 성향이 달라서 대중적인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12] 데뷔 무대를 가요톱10에서 가졌는데, 당시 댄스그룹 팬들이 노래에 집중하지 않고 떠들자 "거, 박수 좀 쳐주세요!" 라고 껄렁한 태도로 소리를 친 일화가 유명하다. 훗날, 윤도현은 SBS 예능 프로그램 강심장에서 직접 그 때의 뒷이야기를 해줬는데, 정말로 화가 나서 한 말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데뷔 시절의 영상을 자세히 보면,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표정으로 얼굴이 굳어지는 장면이 나온다.

다만 이 시절에 윤도현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격려해 주던 선배 뮤지션들이 상당히 많았는데 대표적인 케이스가 김광석. 김광석이 윤도현을 자신의 콘서트에 데리고 다니면서 전도 유망한 후배라고 소개했던 일은 유명한 이야기며, 신해철 또한 영화 정글 스토리 OST 작업 당시 앨범 부클릿에 윤도현을 "앞으로 크게 될 윤도현"이라고 적어놓은 바 있었다. <가을 우체국 앞에서> <이등병의 편지>의 작곡가이자 윤도현과 고향(파주)이 같은 선배 뮤지션 김현성도 이 시절 많은 도움을 줬다[13].

다른 가수의 무대에 섰을 당시에 그 모습을 김광석이 보고 데리고 다녔다고. 아는 형님에 나와서 밝힌 내용으로는 김광석에게 가장 감동했던 사건이 콘서트 게스트로 설 때 대기실에서 KFC 치킨을 줬던 것이라고 한다. 정확하게는 대기실에 있었는데 주고 간 게 아니라 대기실에 들어가면 항상 있던 치킨이 누구건지 몰라서 못 먹다가 겨우 말을 꺼내서 먹어도 되냐고 했더니 흔쾌히 허락했고 그다음부턴 아예 따로 한 박스 더 사서 '도현이 거'라고 써놓았다고 한다. 이에 윤도현은 김광석이 죽은 이후 매해 그의 추모 콘서트에 참여하는 것으로 보답을 하고 있다.

영화 정글 스토리에 윤도현은 주연으로 발탁되는데, '타잔' 으로 활동하던 시절의 경력이 캐스팅되는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 참고로 이 영화의 스토리라인이 윤도현의 어릴 적 모습과 비슷하다고 하니(개봉 당시 자평) 관심 있다면 한 번 보는 것도 좋다. 참고로 이 음반에 실린 <가을 우체국 앞에서>와 <사랑 Two>는 2001년 라이브 앨범을 통해 뒤늦게 알려졌고 노래방에도 뒤늦게 등록되었다. 하지만 알다시피 지금은 윤도현 밴드의 대표곡들 중 하나다.

1996년 2집부터 윤도현은 1집 녹음에 세션으로 참여했던 김진원, 유병열, 박태희와 함께 윤도현 밴드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후 '너를 보내고' 등 특유의 시원한 목소리가 어우러진 록발라드가 뜨면서 대중적 인기를 끌게 된다. 윤도현의 1집 시절엔 많은 사람들이 그를 '포크록의 기대주' 정도로 평가하고 있었는데, 밴드를 결성하면서 하드록으로 방향을 바꾼 것. 물론 이후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긴 하지만, YB의 4집 시절까지는 유병열이 밴드의 활동 방향을 잡고 있었다고 한다. 또 솔로 활동 등에선 포크록 음악도 불렀다. 오세암의 OST로 삽입된 이소은과의 듀엣곡 '마음을 다해 부르면'이나 2005년 솔로 활동 당시 불렀던 '사랑했나봐'가 대표적이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당시 김경호박완규[14] 등에 비해 무명 락커였으나[15] 그 당시에도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수준이었고[16] 전문가들 역시 기대주로 보고 있던 찰나 1999년 너를 보내고의 히트로 대중적 가수가 되면서 이후 2000년대까지 꾸준히 히트곡을 낸다. 2002년 월드컵 당시엔 윤도현 밴드 버젼의 오 필승 코리아가 뜨면서 거의 국민밴드가 된다.

파일:attachment/yoondhyn.jpg
윤도현의 밴드활동 사진(2000년대 이후)


2.2. 뮤지컬 활동[편집]


뮤지컬 활동도 데뷔 때부터 활발했다. 록 발성을 주로 쓰기 때문에 일반적인 뮤지컬보다는 주로 록 뮤지컬을 표방하는 작품에 나오는 경우가 많지만, 본래 포크/발라드 쪽으로 보내질 뻔 했던 감성과 목소리가 남아 있는 덕에 감성극에 등장하는 경우도 곧잘 있는 편이다.

환경문제를 다룬 김민기의 작품 <개똥이>에서 1995년 아주 초창기에 운 좋게 주연 '개똥이' 로 발탁된 것이 뮤지컬 데뷔.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해준 작품이다. 이때부터 7여 년의 연애 끝에 2002년 결혼 이후 1997년, 뮤지컬 음악 중 난이도가 TOP3안에 들어간다는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에서 '유다' 역을 맡았고, 1998년 <하드락카페>에서 '강주' 역으로 열연[17], 전국 투어를 돌 정도로 잘 된 작품이지만 장기 공연에 힘들어진 윤도현은 이후 10년이 넘도록 뮤지컬을 쉬게 된다. 그러나 2008년 모든 방송에서 하차하고 공연이 반 이상 줄어들자, 2009년 <헤드윅>에서 헤드윅 역으로 뮤지컬 세계로 다시 뛰어든다. 노래만큼은 연기 빼고 역대 헤드윅 중 최고였다는 평.

파일:external/www.ybrocks.com/bbs_19676_1.jpg

이후 고 이영훈 작곡가의 노래로 만들어진 <광화문 연가>에 2011년 초연과 2012년 재연에 참가했다. 광화문연가 초연 기획 당시 병상에 있던 고 이영훈 작곡가가 윤도현에게 직접 출연을 부탁하여 성사되었다. 2012년판에는 YB가 블루아지트 밴드로 함께 참여했는데, 허준의 감정연기와내 아를 낳아도!!! 스캇의 한국어 대사가 있어서너 좌증나 YB 팬들의 소소한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파일:external/ticketimage.interpark.com/130425_1.jpg

2013년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에는 16년 만에 다시 유다 역으로 출연했다. 16년 전보다 깔끔해진 외모는 덤. 역대 최고령 유다인데 3옥타브를 넘어서는 초고역 노래를 쉽게 소화하는 위엄을 보였다. 2015년에는 뮤지컬 <원스>의 '남자' 역으로 오디션 보고 참여했으나 흥행에서 참패했고, 2016년 들어서는 다시 <헤드윅>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YB가 앵그리인치 밴드로 참여하여 함께 공연했고, 중간에 전작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넘버를 깨알같이 끼워 넣기도.

파일:윤도현광연.jpg
2021년 7월부터 뮤지컬 광화문 연가에 중년 명우 역으로 출연한다. 앞선 2011년에 공연 된 버전이 아닌 2017년 초연 버전의 광화문 연가다.


2.3. 유튜브 활동[편집]





2.4. 방송 활동[편집]





3. 가창력[편집]


포크 씬에서 처음 음악 생활을 시작한만큼 탄탄한 중저음과 함께 한국 락씬의 레전드 중 한명으로 뛰어난 고음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뛰어난 성대 능력에 더해 윤도현만의 개성 있는 음색이 더해져 대중성까지 확보한 매우 드문 락커다. 한국에서 윤도현보다 더 대중적인 락커라고 해봤자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윤도현의 보컬은 다음과 같이 요약 가능하다. 남성적인 음색의 테너 + 국내 보컬 중 최상급 수준의 피지컬 + 다양하고 입체적인 소리 + 담백한 표현과 기교. 실제로 윤도현은 공명강을 최대로 활용하고 쉬프팅 사운드[18]와 거친 스크래치, 성대를 꽉 붙인 단단한 소리를 자유자재로 오가며 흔히 테너 성종이라고 불리는 가수들 중에서 가장 남성적이고 두터운 음색을 자랑한다. 물론 바리톤 싱어들 중에서 윤도현보다 굵고 남성적인 음색을 가진 가수들은 많으나 적어도 테너 중에서는[19] 가장 단단하면서 강력한 음색을 내는 보컬.[20] 더불어 뒤에서 수십 줄에 걸쳐서 설명하겠지만 보컬로서의 피지컬에서 윤도현은 확실히 강한 편에 해당한다.[21]

또한 윤도현만의 표현에서 특징이라면, ‘소리’ 자체는 매우 다양하게 사용하지만 음끌기 꺾기 애드립 등 테크닉적인 기교는 그다지 사용하지 않는[22][23] 담백한 보컬 운영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이는 본인의 성격과도 관련이 있어 보이는 부분이다.

발성적인 측면을 보자면 국내에서 손꼽힐 정도로 발성이 굉장히 좋은 가수들 중 한 명이다. 흔히 전문가들이 성대 접촉이 잘되는 가수로 김범수, 이적, 하현우와 함께 꼽는 보컬 중 하나인데[24], 그 덕에 소리가 굉장히 단단하고 선명하며 음색이 굉장히 진하게 드러날 뿐 아니라 오랜 시간 가창을 해도 성대가 상하지 않는다고 한다.[25] 덧붙여 이렇게 정석적으로 올바른 발성을 사용하는 보컬들이 듣는 '개성의 부족'이란 비판에도 윤도현은 해당되지 않는다. 본인의 주 장르인 락에 걸맞는 파워풀한 벨팅 창법 외에도 성구 전환 이후 소리를 까뒤집지 않으며 힘 있게 내는 창법[26], 정석적인 두성 창법이나 중성 류의 깔끔한 고음, 거기에 폭발적인 샤우팅까지 다양한 발성과 창법을 높은 완성도로, 짧은 시간 내에 오갈 수 있는 극소수의 보컬리스트 중 한 명.[27]

고음에서 후두가 올라가지만[28] 성대 근육 자체가 워낙 발달한 터라 성대의 접촉이나 소리의 밀도 자체에 변함이 크게 없는 괴물 보컬리스트다. 성대를 얇은 상태로 만들어서 굉장히 강력한 힘으로 접촉시킨 뒤 내는 소리는 윤도현만의 음색이 담겨 맑은 피치감과 단단한 질감을 모두 갖고 있다. 많은 이들이 비음으로 착각하지만 이는 워낙 피치가 얇고 높다 보니 생기는 착각일 뿐, 실제로는 비음과 달리 발성적으로 가는 무리가 0에 가까운 아주 질 좋은 소리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윤도현의 발성을 보고 감탄하는 것이 이러한 부분. 3옥타브 미(E5) 정도의 음역은 음색이 진하게 느껴질 정도로 단단하게 발성하는 게 가능한 무시무시한 보컬. 실제로 윤도현은 뛰어난 발성과 타고난 성대의 힘으로 극저음부터 초고음까지 모두 소화할 수 있다. 그만큼 발성이 대단한 것. 이로 인해 초고음 역시 탁월하게 소화하지만 두꺼운 톤을 가진 보컬들에 적절한 중고음도 남들보다 훨씬 공명감있게 부른다.[29]

이렇듯 성대의 접촉력 및 강도가 한국 내에서 적수를 찾기 힘든 수준이기 때문에 라이브에서 삑사리 등의 실수가 거의 없다시피하다. 당장 아무리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라도 유튜브에 OOO 실수를 검색하면 그 가수의 실수들을 모아놓은 영상들이 있는데, 윤도현은 그런 영상 자체가 없다. 또한 음감[30] 및 박자 감각 역시 무척이나 뛰어나 빠른 록을 주 장르로 하는 가수임에도 박자, 음정 실수가 없다. 정말 기복이 적다. 이타카로 가는 길을 촬영하는 도중에는 워낙 스케쥴이 빡빡하고 시차 적응 등의 문제도 있고 했기 때문에 제아무리 실력파 가수라도 컨디션 조절이 굉장히 힘든 상황[31]이었는데, 이런 상황에서도 크게 컨디션 난조를 보였던 적이 없다.

성대 근육도 남들보다 발달해 성대결절도 쉽게 걸리지 않는 성대라고 한다.[32] 그래서 자신만의 목소리가 뚜렷하며 어떤 장르들도 전부 자신만의 스타일로 표현한다. 음역대 역시 어마무시하게 넓고 깊은 저음부터 3옥타브 도(C5)~ 미(E5)에 육박하는 고음들도 목소리 변화 없이 완벽하게 소화해낸다.[33] 데뷔 직후엔 3옥타브 솔(G5)에 육박하는 스틸하트의 명곡 She's Gone을 원키로 앉아서 완창하는 기염을 토했고, 전성기 시절에는 하루살이에서 보여줬듯이 3옥타브 솔(G5) 이상의 포르타멘토 샤우팅에 비브라토를 넣어 부른다. 나이를 들어서도 신의 목소리라는 프로그램에서 윤민수와 함께 부른 호랑나비라는 곡에서 3옥타브 파♯(F♯5)을 지르기도 하였다.

2018년 9월 국카스텐과의 합동 공연인 '몽타주' 콘서트에서도 죽지 않은 굉장한 가창력을 선보인 바 있다. 47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국카스텐의 곡 중에서도 최상위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곡인 거울을 2키 낮추고 완창하면서 곡 막바지에 3옥타브 도(C5) → 3옥타브 레(D5) → 3옥타브 미(E5)로 이어지는 미친 샤우팅을 보여주었다.[34] 참고로 바로 전 주 '아는 형님'에 출연했을 때에는 '거울' #1절을 원키로 완창한 바 있다. 이쯤 되면 괴물이 아닌가 의심될 지경이다.

2021년 8월 26일에 엔플라잉 유회승과 함께 뮤지컬 홍보를하러 제시의 쇼!터뷰에 출연했을 때 제시가 유회승의 긴장을 풀기 위해 유회승의 6단 고음이 유명하니 지금 한번 해볼 수 있냐고 물었고 이에 유회승이 보여드리겠다며 라이브로 6단 고음을 선보였다. 그걸 들은 제시가 윤도현을 보고 오빠 이거 돼요?라고 물었고 이에 윤도현은 못한다고 답했으나 이 말을 듣고 제시가 실망하자, 유회승이 이렇게 하면 된다며 음을 알려주자 짧게 나마 6단 고음을 선보였다.[35]

파워풀한 성대 접촉을 토대로 벨팅 창법을 자주 사용하며 속이 꽉 찬 단단한 소리[36][37]를 자랑하지만, 벨팅의 단점으로 자주 언급되는 성대 피로도 같은 문제들도 특유의 무지막지한 성대 근육 덕에 그다지 보이지 않고,[38] 음정이나 박자, 세밀한 감정 표현같은 기교적/컨트롤적 면[39]에서도 뛰어난 역량을 보이는 완전체 보컬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의 벨팅 창법에서의 뛰어난 역량을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그 유명한 그것만이 내세상 커버인데, 후렴구에서 부담스러울 정도의 고음이 자주 등장하는 노래인데도 특유의 벨팅 처리에 스크래치에 비브라토까지 넣어 여유롭게 완창한다.

물론 벨팅은 샤우팅이나 스크래치처럼 어디까지나 창법의 일환일 뿐 윤도현 발성의 기저는 기본적으로 “접촉이 잘 된 강한 두성” + “뛰어난 피치와 안정된 후두 위치를 바탕으로 한 소리 질감”이다. 여기에 록 장르의 곡을 부를 때는 보다 강렬하고 강한 접촉에 스크래치까지 넣어 벨팅 창법을 자주 쓰는 것. 그 와중에도 높게 찌르는 두성 피치와 귀가 얼얼할 것 같이 쨍하게 들리는 성대 접촉은 유지하니 그야말로 괴물이 아닐까 의심될 지경. 게다가 많은 가수들이 성대 접촉을 강하게 하기 위해 목을 좁히는 실수를 많이 범하는데(가성대와 주변 공간까지 좁혀가며 성대를 강하게 조이는 것을 말한다) 윤도현은 성대 자체의 힘이 워낙 강해서 목을 조이지 않고도 성대를 강하게 붙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강한 성대 접촉에 워낙 능한 가수인데도 풀어서 내는 소리에도 뛰어난 능력을 보인다. 물론 발성적으로는 조금 더 위험한 소리일 수 있으나 곡의 표현을 위해 자신의 성대가 감당 가능한 수준에서는 그냥 사용하는 듯. 대표적으로 박하사탕 최후반부 “나 돌아갈래”에서 “갈래” 부분이 각각 2옥타브 시(B4)2옥타브 라(A4)인데 이때는 소리를 살짝 풀어 기식음도 주면서 느낌 있게 부른다. 물론 윤도현이 저 정도 음역에서 성대 접촉을 못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당장 박하사탕 3절 후렴구 시작할 때 나오는 애드리브는 2옥타브 시(B4)를 길게 끔에도 역시 표현을 위해 강하고 단단하게 접촉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리하자면, 폭발적인 성량과 강력한 성대 능력을 기반으로 한 넓은 음역대, 파사지오 구간을 지나도 음질의 차이가 거의 없는 존재감 있는 목소리를 가졌으며, 특유의 강력한 성대 접촉과 이를 유지하면서도 넓은 공명강 덕에 넓으면서도 강력한 고음을 낼 수 있다. 사람들이 윤도현을 저평가하는 이유 중 하나가 YB의 곡들이 중음 정도의 음역대[40]를 가졌기 때문에 음역대가 낮다...는 것인데, 이는 근거 없는 매도에 해당한다. 윤도현의 하드웨어는 역대 대한민국 보컬 하드웨어 순위를 매겨도 상위권에 랭크될 수준으로 매우 강력하다. 바리톤 성종이라고도 하나, 이는 공간을 잘 활용하는 그의 보컬 특성상 음에 비해 소리가 두껍게 들리는[41] 윤도현 발성의 특성일 뿐, 음역대로 보나 발성 능력으로 보나 당연히 테너다. 물론 나얼이나 김범수같이 얇다 못해 간드러지는 수준의 성대를 가진 테너는 아니지만, 타고난 톤 자체가 남들보다 높은 테너임은 당연한 사실. 특유의 스크래치와 공명감을 이용한 폭발적인 샤우팅도 곧잘 소화해내기 때문에 전성기 시절의 실질적 음역대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넓다. 특유의 단단한 샤우팅[42]으로 3옥타브 파(F5)까지 소화 가능하며[43] 그 질감은 상상 그 이상. 그 이상의 샤우팅은 아무래도 성대 접촉이 조금 약해지는 감이 있지만 그래도 다른 가수들의 샤우팅에 비하면 엄청 단단하다.

2010년대 들어선 전성기 시절보다 음역대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 전성기를 맞고 있는 여타 락 보컬에 비해 전혀 밀리지 않는 하드웨어를 가지고 있다.[44] UV 피처링 당시엔 샤우팅으로 3옥타브 솔(G5)을 올리기도 했고, 두성으로 순간적으로 뽑을 수 있는 최대 음역은 3옥타브 레♯(D♯5)[45]에서 3옥타브 미(E5)[46] 사이로 보인다. 2018년 현재로서도 3옥타브 대의 진성 고음이 가능한 듯하다. 불과 6개월 전인 록 페스티벌에서도 국내 락발라드 곡 중 최상위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잊을게'를 원키로 완창한 뒤 3옥타브 레♯(D♯5)~ 3옥타브 도(C5)로 이어지는 진성 애드리브를 선보인 적이 있다. 심지어 3옥타브 레♯(D♯5)에서 중음역대와 같은 수준의 무시무시한 성대 접촉을 보여주었다.[47] 게다가 2018년 평양 공연에서도 곧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 리즈 시절 못지않은 성대 접촉과 고음 질감을 선보인 바 있다. 물론 관리하기 나름이긴 하지만 꾸준함계의 괴물이다.

이 진성 위주의 폭발적인 고음과 파워 덕에 붙은 별칭이 일명 핵폭탄 고음. 간혹 그의 락 창법이 잘 드러나는 영상에 대한 평가를 보면 '마치 고음에서 핵폭탄 터지는 것 같다.'라는 식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성량과는 별개로, 고음에서 전혀 얇아지지 않는 소리와 그 밀도가 여타 가수들에게선 쉽게 느낄 수 없는 질감을 준다. 한편,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중반 시기에 많이 불렀던 하드록 곡들은 상당한 고음과 피지컬을 요구한다. 물론 이후에 나온 곡이나 락발라드 역시 2옥타브 후반대의 중고음역을[48] 자유자재로 구사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만은 않다.[49]

보면 음정을 잘 맞추는 보컬이다. 주 장르가 락이라서 넓은 음역대를 필요로 하고, 밴드 음악을 하는 만큼 밴드 사운드의 소리를 뚫을만한 풍부한 성량이 필요키 마련인데, 그런 조건들 속에서도 음정이 어긋나는 일이 거의 없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소리지만, 프로 가수들도 고음역에서 많은 성량을 필요로 하는 곡들일수록 음정을 맞추기가 힘들다. 또한 특유의 호흡법은 라이브 도중 숨소리가 거의 들리는 일이 없을 정도로 유려한데, 이 장점들에 윤도현의 굉장한 무대매너와 YB의 명곡들이 더해져 그야말로 미친 라이브를 뽑아내는데 일조한다.

단점이라면 가성 구사를 힘들어한다는 것이다.[50] 애초에 진성으로 성대가 많이 단련되어 있고, 그래서 가성을 구사하는데 자신이 없어 한다.[51] 보컬 전쟁: 신의 목소리에서 성시경의 거리에서가 선택되자 "가성을 못 내요..." 라며 의기소침하는 모습을 보였다.[52] 깔끔한 가성은 아니지만, 윤도현 만의 허스키한 가성을 잘 구사한 무대 영상

덧붙이자면 그가 벤치마킹했던 보컬은 딥 퍼플의 이안 길런과 주다스 프리스트의 롭 헬포드라고 한다.[53]


4. 음반 목록[편집]




윤도현의 솔로 1집은 어른의 사정으로 인해서 YB의 정규 1집을 겸한다. 실질적으로는 솔로 2집이 진짜 솔로 1집이라고 할 수 있다.


5. 히트곡(솔로곡)[편집]


  • 가을 우체국 앞에서(1994)
  • 사랑 Two (1994)
  • 오 필승 코리아(2002)
  • 사랑했나봐(2005)
  • 길(2005)
  • 빗소리(2014)


6. 여담[편집]


  • 유희열과 친구 사이다. 윤도현이 빠른 1972년 생이라서 유희열(그냥 1971년생)과 친구로 지낸다. 원래는 윤도현이 유희열한테 선배 또는 형처럼 얘기했고, 존댓말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사람이 둘이 친구 아니냐라고 얘기했고 어찌하다 보니 그때부터 친구 사이로 지내고 있다고 한다. 참고로 유희열과 윤도현은 둘 다 1994년에 데뷔했다.[54]

  • 강산에와도 절친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무명 시절 만났던 친구 김C와 함께 강산에를 많이 따랐다고 한다. 참고로 소속사도 다음기획(현 디컴퍼니)이라고 같은 회사였는데[55] 2018년 기준 강산에는 다른 소속사로 이적했다. 확실한 것은 윤도현에게 영감을 준 선배 가수가 강산에라는 것. 목소리가 비슷하단 사람도 있는데, 들어보면 강산에가 좀 더 중후한 톤이라 차이는 있다.

  • 공연 시 기타는 물론이고 키보드나 하모니카 등의 악기를 연주하기도 한다. 비트박스도 수준급이며 전천후 만능 록커다.

  • 1994년 데뷔 동기와 동시에 친구 사이인 다른 연예인으로는 김경호가 있다. 실제로 윤도현의 티비 프로 내지 라디오 방송에 얼굴을 자주 비추는 편이었다.[56] 또한 과거엔 윤도현 콘서트 게스트로 등장한 적도 있었다. 링크 여담으로 김경호도 1971년생이지만 윤도현이 빠른 1972년생인 관계로 친구로 그냥 지낸다고 한다.[57][58] 또 당시에 어느 정도 둘이 라이벌 기믹이 있었다고 한다.

  •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옷태가 잘 받는다.

  • 1박 2일 백두산 편에서 김C가 말하기를, 원래 경기도 파주에서 살다가 독립하여 살았던 곳이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장항동이다.


  • 2000년 경에 4집으로 YB를 해체하고 개 분양업에 잠시 몸을 담았던 적이 있었다.[59] 그런데 3개월 정도 전념하던 중 4집 수록곡 '너를 보내고'가 인기를 끌자 소속사 사장이 다시 음악을 하자고 해서 접었다고 한다. 그리고 키우던 개들은 팔기가 그래서 전부 친구들에게 분양해 줬다고 한다.

  • 2002년 월드컵 당시 '오 필승 코리아'가 대박을 치면서 국민 밴드 비슷하게 되어버려 비주류 장르인 록커임에도 불구하고 CF 광고 모델로도 많이 활동하게 된다. 4개월간 10억 CF. 하지만 록 하면 따라오는 '저항', '비주류'같은 선입견이 있다보니 광고 많이 찍었다고 YB의 안티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생기기도 했다.[60] 다만 CF를 받을 때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받는 듯하다. 코카콜라에서 8억원짜리 CF가 들어온 적이 있었는데(실소득은 약 10억원 이상) 거절했다고.[61]

  • 윤도현이 축구에 대한 진지한 애정이 없으면서 월드컵을 이윤 추구로 이용한다고 비판하는 축구팬들도 있다.# 사실 윤도현 본인도 '오 필승 코리아'가 너무 떠버려서 자신이나 밴드에 너무 축구 이미지가 씌워지는 것에 대해서 부담스럽다는 투의 토로를 한 적도 있다. 아무튼 이미지를 벗긴 힘든지,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응원가도 맡았다.

  • 2002년 평양 공연 때 간 가수이기도 한데, 이때 본인을 놀새떼(오렌지족, 날라리 같은 뉘앙스의 북한 은어)라고 표현해 웃음을 주기도 했다. 그리고 2018년 평양 공연에도 참여해 16년 전 평양 방문을 회상하기도 했다. 참고로 탈북자 명성희씨의 말에 의하면, 2002년 공연 당시 윤도현의 인기가 엄청났다고 한다. 본인도 tv를 보고 윤도현에게 빠져 윤도현 밴드가 묵고 있다고 알려진 평양 호텔에 무작정 갔는데, 자기 외에도 소녀팬들이 수십명 몰려있었다고. 허나 이미 윤도현 밴드는 나간 뒤라 만나진 못했다고 한다. 이때 부른 '너를 보내고'도 한동안 북한에서 인기를 끌었다고. 그래서인지 조용필과 함께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 만찬장에도 배석한 가수가 되었다. 만찬장에서 부른 곡은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와 '나는 나비'.

  • 2012년 9월에 출시된 UV의 신곡 '그 여자랑 살래요' 에 피처링으로 참여했고 뮤직비디오에서도 유세윤의 삼촌으로 열연(?)을 펼치기도 했다. 가발을 쓰고 진공청소기를 기타삼아 펼치는 퍼포먼스가 인상적.

  • 공연이나 콘서트 때 원래는 욕을 많이 하는 편이었는데,[62] 한 여성 팬이 어느 날 편지를 보내 좋아하는 가수라고 소개하며 자식 델고 공연장 갔는데 욕을 너무 많이 해서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는 내용을 전해와 이후 욕을 안한다고 한다.[63] 본인 말에 의하면 하필 그 공연이 특히 욕이 심했던 공연이었다고 한다.[64]

  • 2005년 '사랑했나봐'는 짱구는 못말려 한국 에피소드에서 등장했다. 마츠자키 우메(나미리 선생)가 해외로 떠나는 도쿠로와의 갈등을 해소하고 공항으로 그를 쫓아갈 때 흘러나왔다. 일단 이 노래를 아는 사람들은 분위기에 잘 맞게 넣었다는 평. 그 외에도 신세기 사이버 포뮬러 SBS 버전 오프닝 역시 윤도현이 불렀다. 여러모로 애니메이션과 관련이 깊은 가수다.

  • 2002년 6월 15일 뮤지컬 배우 출신 이미옥 씨과 결혼식을 올렸고, 3년 뒤인 2005년 딸 윤이정 양을 낳았다. 부모의 성을 모두 썼고 정이라는 이름은 초코파이 CF에서 보고 따왔다고 밝혔다. 2010년 Olive TV에서 '윤도현의 파파걸 인 런던' 리얼리티를 방영, 윤도현과 윤이정 양이 함께 영국여행을 떠나는 에피소드가 공개된 적이 있다. 야무지게 행동하며 분량을 챙겨가는 윤이정 양의 귀여운 모습이 포인트. 마지막날에는 동료 기타리스트의 집을 찾았는데, '사랑을 지켜야 해' 라는 제목의 노래를 같이 만들었다. 2011년 YB의 싱글 앨범 <꿈을 뺏고 있는 범인을 찾아라> 의 앨범 커버 역시 딸이 그렸고, 2012년 9월 SBS 정글의 법칙 마다가스타르 편에서는 직접 나레이션을 같이 했다. 2022년 현재는 어느덧 고등학교 2학년생이며, 제주도에서 국제학교를 다니고 있다. 윤도현이 딸의 학업 때문에 제주도로 이사해서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 후배 가수들도 요청하면 꾸준히 곡을 주는 중이다. 정진운의 솔로 앨범에 수록된 '지금이 아니면' 은 YB의 박태희가 작사, 윤도현이 작곡했으며 연주도 YB가 직접 했다고. 또한 윤하에게 준 'One fine day', 김재중에게 준 'Now is good', 가희에게 준 '색색의 세계' 등이 있다. 대중적으로 뜨진 못했어도 각 노래들은 각 가수의 팬덤에서 사랑받고 있다는 후문이다.

  • 영화 음악작업 또한 꾸준히 하고 있다. <한반도> OST인 YB의 '1178' 을 비롯해 2013년 3월 <전설의 주먹>의 주제곡으로 YB의 '후회 없어' 를 영화에 맞게 개사하였고 그 해 10월 개봉한 영화 <소원>의 주제곡 '소원' 을 작사, 작곡, 노래해 노 개런티로 제공하였다. 2015년 12월 개봉한 히말라야의 주제곡으로 산울림의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를 리메이크하여 배우 황정민과 함께 녹음하였다.

  • 2014년 10월 27일 가수 신해철이 사망했을 때 눈물을 보이기도 하였고, 발인식에서는 직접 위패를 들고 고인을 배웅했다.[65] 과거 정글 스토리 OST 앨범 부클릿에 '앞으로 크게 될 윤도현'이라고 치켜세워준 선배이기도 하였으니 윤도현 입장에서는 김광석을 떠나보낼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을 많이 도와준 선배를 하늘나라로 보낸 셈이다.


  • 주변 사람들에게 확실히 의리가 있다고 한다. MC몽이 병역기피 사건으로 자숙 중일 때 한 트위터 유저가 MC몽을 사칭해 자신이 복귀 앨범을 준비 중인데 피처링을 해달라고 윤도현의 트위터에 멘션을 남겼는데, 윤도현은 곧바로 해주겠다고 답을 달았다고. 물론 사칭이기 때문에 진짜 실행되지는 못했지만, 평소 아는 사람에 대한 의리가 확실히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 이와 연관되는 것일 수도 있는데, 일반적으로 밴드가 뜨면 보컬이 뛰쳐나가 솔로 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은 가요계에서 오랫동안 밴드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심지어 '나는 가수다'에서는 처음 단독으로 섭외되었음에도 끝까지 YB와 함께 하여 결국 방송 중반 이후부터는 YB로 명칭이 표기되기도 했다.[66] 실제로 라이브 무대에서 관객들이 윤도현을 연호하면 YB라고 친절하게 고쳐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방송에서도 항상 'YB의 노래하는 윤도현입니다' 라고 말한다.

  • 2020년 1월에 개인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채널 설명은 격조없고 오토튠도 없는 집라이브. 실제로 영상만 보면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유튜버 같은 느낌이다. 설명대로 딱히 보정도 없고 심지어 부를 때 앞에 마이크마저 없다. 그럼에도 발성이 좋은 가수답게 충분히 들을 만하다.[67]

  • 2020년 3월 10일 코로나-19의 확산 방지와 피해 복구를 위해 자신과 아내, 딸 이름으로 1억 원을 기부했다. 전달된 후원금은 장기화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정의 긴급생계비와 생필품과 마스크, 손소독제 등이 들어 있는 키트를 지원하는 데 사용된다고 한다.

  • 2020년 7월 25일 윤도현은 인스타그램 계정에 어제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며 새롭게 키우게 된 강아지를 소개했다. 정말 앙증맞고 귀엽다. 이름은 봉봉이라고 한다.[68]

  • 군대는 방위를 나왔다. 이유는 악관절 증후군 때문이라고 하는데, 당시 워낙 그 나이대 청년들이 많았어서 작은 사유로도 방위로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본인이 밝혔다. 참고로 자신이 방위인 걸 알았을 때 펑펑 울었다고 한다. 본인 말로는 해병대에 가고 싶었다고 한다. 참고로, 복무부대가 무려 백마부대였고, 보직은 PX 관리병이였다고. #


  • 정치 관련해서 본인이 이용당하거나 프레임이 씌워지는 것이 이제 지긋지긋하다고 밝힌 바 있다.

  • JTBC 싱어게인을 클립으로 즐겨 보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끝내 싱어게인2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 2023년 8월 10일 인스타그램을 통해 투병 사실을 고백했다. 정확히는 위 말트 림프종이며, 2021년 건강검진 후 진단을 받아 3년간의 치료 끝에 완치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룹 YB 활동에 피해가 갈까봐 암 투병 사실을 숨겼으며 라디오·공연 스케줄을 병행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