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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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서(吳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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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틀:




의 군권 1인자
주유  →  노숙  →  여몽  →  육손  →  주연  →  제갈각  →  손준  →  손침  →  주적  →  정봉  →  육항


파일:external/a.hiphotos.baidu.com/43a7d933c895d143d516a25973f082025aaf0763.jpg
陸抗
226~274



1. 개요[편집]


삼국시대 손오의 정치가 겸 장군이며 는 유절(幼節)로 양주 오군 오현 사람.

육손의 차남. 태어날 당시 아버지 육손의 나이가 이미 마흔 넷으로 거의 제갈량의 아들 제갈첨에 비견될 정도의 늦둥이였다. 어머니는 손책의 딸 손씨. 손책에게는 외손자가 된다. 실제로 정사 삼국지에서도 육항은 손책의 외손자라고 못박아뒀다. 다만 육항의 외조모가 대교일지 아닐지를 두고 가끔 설왕설래하는데 가능성은 낮다. 왜냐하면 손책은 대교를 납치하여 아내가 아닌 첩으로 삼았고, 납치혼 1년 후 요절하였다.

아내는 손화의 정실부인 장비(張妃)의 여동생. 즉 장소의 두 손녀가 각기 손화와 육항에게 시집 간 것. 장비 자매의 어머니는 제갈근의 딸이므로, 육항은 제갈근의 손녀사위가 된다.


2. 생애[편집]


육연(陸延)은 요절했기 때문에 육손이 죽고 난 뒤 그 뒤를 이어 건무교위가 되었다. 당시 손화손패가 태자 자리를 다투던 와중 육손이 손화를 편들다 손권의 의심을 사 분사한 직후라 신변이 매우 불안한 상황이었는데, 상주 자리에서조차 육손에게 붙은 혐의 20여가지를 힐문받을 정도였다.

하지만 육항은 그 힐문에 동요 없이 침착한 태도로 조목조목 반박해 손권의 의심을 가라앉혔으며, 태자문제가 매듭지어진 뒤 임지에서 요양을 위해 건업에 돌아오자 손권은 그를 붙들고 울면서 '지난날 짐은 중상모략을 믿고 그대 부친의 신의를 저버리고 말았다. 경에게 의심을 품은 일도 실로 부끄럽게 생각하는 바, 그간 책망했던 서찰들을 모두 불태워 없던 일로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1]

246년에 육항은 입절중랑장으로 승진하여 제갈각을 대신해서 시상에 주둔한다. 제갈각은 시상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제갈각이 떠난 이후 "매우 심하게 파괴되어" 있었다고 한다. 임지에 도착한 육항은 모든 성벽을 다시 보수하고 집과 담장을 수리하며 오두막집에 살면서도 과일 나무와 뽕나무조차 훼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훗날 제갈각이 시상을 다시 방문했을 때 모든 것이 달라보여서 매우 부끄럽게 여겼다고 한다.

257년에는 제갈탄의 반란과 연계하여 수춘에서 전공을 올렸고, 259년에는 형주에 주둔하여 군사와 관련된 일을 관장한다. 그 후로 분위장군, 정북장군, 진군장군, 진군대장군 등 고위 장군직을 역임하며 주적과 함께 형주 일대를 방위했다.[2] 263년, 동오의 동맹국인 촉한이 멸망하자 동오는 264년에 촉한과 동맹관계였던 것을 구실삼아 보협을 시켜 원군을 보낸다는 명목으로 영안을 공격했지만 나헌에게 패퇴당했다. 이에 동오는 성만, 유평 등과 함께 육항을 원군으로 3만 군사를 이끌고 보협을 지원하게 하였지만, 나헌의 방어를 6개월 간 뚫지 못하였고, 이 후 사마소가 곧 형주에 주둔하던 호열을 원군으로 삼아 보냈기 때문에 영안을 포기하고 물러났다.

이로서 형주는 기준에 방어하던 북쪽과 동시에 익주 방향인 서쪽을 동시에 방어해야 하는 위험한 상황이 되었고 육항은 진남대장군(鎭南大將軍)에 임명되어 이를 막게 되었다. 270년에 시적(주적)이 죽자 시적의 군진 영역까지 맡아, 형주 방위선을 모두 총괄하게 되었다.

272년에 서릉(적벽대전 당시의 이릉)독 보천이 반역해 서진에 투항했다. 당시 서릉이 넘어가면 진나라는 익주에서 삼협을 거쳐 서릉을 통해 형주 북부의 양번까지 연결되는 거대한 포위망을 구축하여 오나라에 대한 전방위적인 공세를 펼칠 수 있게 되는 위급한 상황이었다. 육항은 오언, 좌혁, 채공과 함께 급히 군사를 이끌고 서릉으로 향했다.[3] 일찍이 육항은 서릉의 지리를 익혀두었기 때문에 쉽게 함락하기 어려운 것을 간파하고, 본격적인 공성전을 벌이는 대신 그 포위망에서 또다시 바깥쪽을 향한 방어선을 구축해 성 주변에 이중으로 성벽을 쌓게 해서 안으로는 반군, 밖으로는 진의 원군에 대비하게 했다.

얼마나 서둘러 재촉하였던지 병사와 백성들이 대단히 고된 작업이라 고통스러워했고 또한 휘하 장수들도 반발하여 진나라의 구원병이 오기전에 보천을 속전속결로 격파할 수 있을 것이니 백성들과 군사들을 굳이 괴롭히는 이런 포위망은 필요없다고 하자 육항은 서릉은 지세가 견고하고 식량 또한 충분하며 방비는 육항 본인이 갖춘 것이라 바로 공격해도 함락시킬 수 없어 그 전에 북쪽의 구원병이 틀림없이 도달할 것이니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뇌담이 간곡히 청하자 단 한번 공격을 허락했는데, 맹공을 퍼부어도 낙성되지 않자 이후로 휘하 장수들은 아무 불평없이 육항의 명에 따르게 되었다.

곧이어 육항의 예측대로 진의 거기장군 도독 양호가 구원병으로 도착했으나 육항의 방어태세가 워낙 튼튼했던 탓에 감히 공격할 엄두조차 내지 못해 공략하지 못했다. 그래서 여러 가지 계책을 써서 육항을 속이려 들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때마다 육항이 적절하게 대응했기에 결국 양호는 패퇴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양호가 강릉을 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제장들이 강릉 수비를 위해 철수를 제안했지만 이때도 '강릉은 식량이 넉넉하고 방비가 굳건해 쉽게 떨어지지 않으며, 설령 점령해도 적이 오래 유지하지 못한다. 반면 서릉은 빼앗기면 이남의 이민족들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지니 강릉을 버려서라도 서릉을 차지해야 한다.'면서 움직이지 않았다. 양호는 물길을 이용해 군량을 나르려 했으나, 육항은 일찍이 이를 예상하고 둑을 무너뜨려 물길을 막아놓았기 때문에 진(晉)군은 군량 수송에 큰 차질을 빚게 되었다.

양호에 이어 형주자사 양조까지 구원에 나서자 투항하는 장수까지 생길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전혀 동요함 없이 이중 포위망을 유지해, 결국 진군은 구원을 단념하고 물러났다. 물러나는 진군을 들이쳐 전과를 거둔 다음 서릉을 집중적으로 공격해 마침내 낙성에 성공했다. 주모자인 보천과 그 일족을 비롯한 반란의 주역들은 참했으나 그 이하 장졸들은 모두 사면해 주었고, 군공을 세웠음에도 이를 자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육항을 따르고 존경하는 이들은 전보다 더욱 늘게 되었다.

273년에 대사마 겸 형주목을 맡아 오의 군권을 한데 통솔하게 되었지만 274년에 향년 48세로 병사했다. 죽기 전에 표를 올려 국경 방비와 모병에 대한 의견을 내놓아 서릉과 건평의 방비를 착실히 하며 국정을 평안하게 할 것을 상주했다.

손성의《진양추》, 습착치의《한진춘추》등에는 양호와 나눈 우의가 서술되어 있어, 서로 적의 입장이면서도 술과 약을 주고받을 정도의 교분을 유지했다고 나온다. 진수는 육항을 평해 '그 몸을 잘 다스려 육손의 유풍을 계승했다. 행동에서 약간 뒤떨어지는 면은 있었으나 훌륭하게 가업을 다했다'라고 적었다. 양호와의 우의관계에 대해선 양호 항목 참고.[4]

삼국지연의에서는 120회 때 손호가 육항을 의심해 좌천시켜 병권을 빼앗아 손기에게 주고, 그 때문에 실의 속에서 병사했다고 언급되나[5] 정사에는 손호가 힐문했다는 기록만 있을 뿐이다. 대신 여러 상주문을 지어 올렸으나 '손호는 듣지 않았다.'라는 구절만 그 다음에 계속 이어진다.

사실 손호 입장에서는 육항을 좌천할만한 입장이 아니었다. 오는 호족들의 입김이 강한 지역이고, 그중에서도 으뜸인 육씨 가문[6] 소속이며 군권까지 가진 육항을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다. 손호는 육항이 본격적으로 군권을 총괄하기 이전인 260년대 후반에도 그를 경계했었다는 언급이 있다. 손호가 육개를 마음같아서는 죽여버리고 싶은데, 육항 때문에 그리하지 못했다는 기록이 있다.

아들로 육안, 육경, 육현, 육기, 육운, 육탐이 있는데 육운과 육경은 진 침공시 종군해 전사했고, 육기와 육운은 장화에게 발탁되어 서진 정권에 출사했는데, 둘 다 뛰어난 문재를 지녀 망나니로 이름났던 주처[7]가 개심했을 때 나이가 더 어렸던 이들에게 가르침을 받았다는 일화가 남아 있다. 이 둘도 훗날 팔왕의 난에 휘말려 일가가 멸족당했기 때문에 육손 일문은 후손이 끊어졌다고 한다. 다만 사람들을 이를 두고 앞서 육항이 보천을 죽일 때 어린 아이까지 죽였는데 이 때 "육항의 후세들은 필히 그 재앙을 만날 것이다"라고 한 것이 결국에 육운이 죽게 되고 육씨의 세가족이 후세가 없어지며 사실이 되었다고 말한다.[8]


3. 평가[편집]


연의 기준으로는 양호와 대치한 것만 나오고, 정작 최대의 전공인 서릉 전투 때의 활약 등이 나오지 않아, 아버지 잘 둔 덕분에 손오 최후의 명장 칭호를 거저먹은 느낌이 강하게 난다는 의견도 있다. 더구나 나헌이 촉나라의 마지막 명장으로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나헌과의 전투에서 패배하고 물러난 육항의 능력에 의문을 제시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9]

하지만 그 이후에 서릉 전투 때 보여준 그의 공성 능력은 뛰어난 수준이다. 더구나 오나라가 망국의 길을 걷는 와중에 보기 드물게 압도적 대국인 진나라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방어를 해낸 장군임은 감안하면 오나라 말기의 최후의 명장이라는 칭호와 같은 전장에서 딱 50년 전에 유비의 대공세를 막아낸 아버지의 이름이 부끄럽지 않다. 진서 하충전을 보면 하충이 '육항이 존재하면 오나라가 존재하고 육항이 죽으면 오나라는 멸망한다'고 했으며 진나라 양호도 육항이 죽은 뒤에야 오나라를 칠 기회라고 했다. 실제로는 서진의 내부의 문제 때문에 그 사후에도 6년은 더 갔지만.

특히 서릉 전투는 육손이 오나라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유비를 격파하고 동오를 지켜낸 바로 그 장소에서, 휘하장수들이 반대했으나 그들을 억누르며 자신의 전략을 관철하여 승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적군의 기책을 적절한 대책으로 막아냈다는 것조차 같다. 제갈각이 망쳐놓은 시상을 복구하는 등 내정에도 재능을 보였으며 아버지처럼 외지에서 국경을 지키며 황제에게 국정에 대한 충언을 아끼지 않았다. 다만 하필이면 당시 황제가 폭군 손호여서 받아들이지 않아 문제였기에 그가 죽고 6년 후 오나라의 멸망을 피할 수는 없었다. 사실 독발수기능의 난 때문에 6년이나 더 걸린거라고 봐도 무방하다.


4. 여담[편집]


정유재란 당시 조선의 임금이었던 선조백의종군 하고 있던 이순신에게 파직시킨 것을 사과하고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하면서 내린 교서인 사명훈유교서(使命訓諭敎書,기복수직교서)[10]에서 육항이 인용되었다.

(중략)

오나라 때의 장수 육항이 국경의 강 언덕을 두 번째 맡아 군사 임무를 완수했으며

또 저 왕손(명나라 관리)이 죄수의 몸으로 능히 적을 소탕하는 공을 세운 것 같이

그대는 충의의 마음을 더욱 굳건히 하여 나라를 구하기 바라는 나의 소원을 이뤄주기를 바라며

이에 조칙을 내리노니 그렇게 알지어다.

손권이 육손 사후에 육항을 의심한것을 후회했다는 것처럼 선조도 이순신을 의심한 것을 후회한다는 뜻으로 내린 교지이다. 육항이 1300년 뒤 조선에서도 무관이라면 이름을 알 정도의 명장으로 알려졌던 모양이다.

형주의 방어를 중시했고 이후 남송 명장 맹공이 그의 말을 인용해 양번 지역의 방어를 중시한다.


5. 미디어 믹스[편집]



5.1.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편집]


육항(삼국지 시리즈) 문서 참조.


5.2. 영걸전 시리즈[편집]


파일:조조전 온라인 육항.png

삼국지 조조전 온라인에서는 후기 오나라 배경 연의가 없어 연의 비중은 없다. 조조전 온라인 초창기 때 엠피공격의 사기성을 보여줬던 장수. 오랫동안 버려져있다가 리밸런싱되었지만 여전히 거의 보이지 않는다. 희한하게 말더듬 캐릭터를 등애한테서 뺏아갔다.


5.3. 진삼국무쌍 시리즈[편집]


여기서는 클론 무장이다. 그러나 후기 오나라에 내놓을 인물이 워낙 없어서인지 그럭저럭 자주 나온다. 후반기 무장 치고 이름값 덕인지 진삼국무쌍 3에서 호위병 디폴트 네임중 하나로 이름을 알린뒤 조용히 사라졌다가 후반기 시나리오가 편입된 6편부터 본격적으로 클론무장으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7편 진나라 스토리의 IF 루트에서는 건업 전투에서[11] 전체적인 작전을 지시하고, 스테이지 보스인 손휴에게로 가는 길을 막는 문지기 역할을 하는 데다가 강화까지 하고 나오는 등 클론 무장 답지 않게 나름대로의 비중이 있다. 오나라 최후의 명장이란 타이틀 덕분에 나름 버프를 받은 느낌이다.

플레이어와 만날 때의 대사가 인상적이다.

육항: 난 오의 명운을 짊어졌다. 여기서 쓰러질 수는 없단 말이다.

사마소: 넌 크게 착각하고 있어. 나라는 혼자 짊어질만한게 아냐.

가충: 수고가 많군, 하지만...짊어지는 사람이 한명뿐인 시점에서 이미 끝났어.


육항의 무쌍무장화를 바라는 팬들도 있고, 본인도 활약이 없지는 않는데 문제는 아버지. 육항이 나오면 육손은 졸지에 애아빠가 되므로 시리즈에 정식 참가할 가능성은 거의 0에 수렴한다는 안쓰러운 점이 있다. 외모도 외모지만 현재 육손의 컨셉이 주유, 노숙, 여몽을 이어 다음 세대를 이끌 젊은 기대주란 컨셉이라서 자식을 내놓기가 힘들다.

예외 케이스로 유비나 유선의 경우도 있지만 유비는 원래 중년 캐릭터로 시작했고 한껏 젊어진 지금도 성우의 연기나 캐릭터성에선 중후한 면을 엿볼수 있다. 애초에 외모가 10대로 보일 정도는 아니고. 그리고 이나마도 8편에선 수염도 돌아와서 문제는 없다. 근데 육손은 성우부터 컨셉, 디자인까지 일관되게 차세대 유망주다. 육항이 나오려면 육손의 컨셉이 수정되던가 전국무쌍 시리즈타케나카 한베에, 코바야카와 타카카게처럼 쇼타 캐릭터로 나오는 방법밖에 없다. 다만 8편 DLC에서 하후희가 대/소교랑도 딱히 나이 차이가 안 나보이는 외모를 가졌으면서 두 장성한 자녀를 둔 어머니로 나온지라 육손의 디자인을 유지한 채로 육항을 성인으로 둘 가능성은 있다.

사실 더 큰 문제는 오나라/진나라 스토리모드가 확장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 6편에서 진이 추가된 위나 8편에서야 후반기까지 확장된 촉과 달리 오는 아직도 합비신성 전투(234년)에 끝이 나는데, 육항은 겨우 226년 출생에[12] 첫 활약은 진 스토리 모드에서도 후반인 257년 제갈탄의 난. 이를 해결하려면 결국 이궁의 변을 코에이식으로 풀어내 오나라 스토리모드를 연장시켜야 하는데, 그러면 가족주의를 지향하는 오나라의 컨셉에 정면으로 배치되니 쉽지 않다. 이것으로 아버지 육손이 죽는다는 문제도 있고. 이러다보니 현재는 출전이 불가능한 실정이고, 고증 무시하고 오 스토리 모드에 어거지로 끼워넣어도 공기가 될 것이 뻔한 상황이다.[13]

진삼국무쌍 BLAST 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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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
하후돈, 곽가, 장료, 견희, 순욱(SR), 조비, 조조, 왕이, 문빙(낭아봉)(SR), 조인, 가후, 장합, 만총(요필)(SR), 악진
R
순욱(장검), 조홍(쌍월), 만총(타구곤), 문빙(언월도), 변씨(피리), 문흠(극), 화타(구조), 하후희(위복장)(피리), 조절(권), 장창포(피리), 조모(쌍인검), 조식(비연검), 최씨(양인창)
N
조휴(화염궁), 조진(폭탄), 왕랑(쌍인검), 조아(순패검), 주령(장검), 관구검(쌍월), 조상(폭탄), 하안(타구곤), 왕경(비연검), 마준(신세검)

SR
육손, 주연, 손상향, 감녕, 손책, 태사자, 손권(도), 정봉, 보연사(노), 대교, 소교(철선), 여몽, 능통, 주환(SR)(극)
R
서성(극), 서씨(피리), 손익(극), 오국태(쌍두추), 정보(쌍모), 주환(용창), 장흠(쇄분동), 고옹(비연검), 능조(극), 유씨(권), 주이(용창), 손노반(쌍두추), 제갈근(비연검), 육항(비연검), 손노육(적), 보천(비연검)
N
우번(도), 여대(도), 하제(선곤), 원희(권), 주치(극), 제갈각(비연검)

SR
조운, 관우, 장포, 관은병, 장성채, 마대, 유선, 관색(양절곤), 유비, 장비, 하후희(SR)(쌍선), 강유, 마초, 제갈량
R
주창(귀신수갑), 하후희(촉복장)(피리), 엄안(박도), 왕평(양인창), 제갈씨(순패검), 왕도(양인창), 미당(쌍모), 호제(용창), 왕열(쌍두추), 비의(비연검), 마량(비연검), 마속(비연검), 이씨(쌍두추), 요화(R)(열격도)
N
간옹(구조), 부사인(신세검), 요화(열격도), 미방(쌍검), 습씨(십자극), 장익(순패검), 황호(비연검)

SR
사마소, 왕원희, 종회, 문앙, 사마의, 사마사, 가충, 하후패, 제갈탄, 등애(나선창)
R
호열(극), 장반(비연검), 초이(극), 문호(용창), 신헌영(순패검), 가남풍(구조), 양호(구조), 두예(비연검)
N
신창(비연검)
여포
SR
여포, 여령기, 초선, 장료, 장패(언월도)(SR)
R
고순(박도)
N
장패(언월도)
원소
SR
원소
R
안량(연인자), 문추(아벽)
N
없음

SR
수경선생(SR), 호로(ホロウ)(총), 옥새, 잔다르크, 번옥봉(SR)(인노), 소마(금쇄봉), 동탁, 맹획, 동백(단철편)(SR), 아르나스
R
수경선생(R), 화웅(극), 우길(폭탄), 기령(쌍모), 화만(귀신수갑), 하태후(구조), 번옥봉(권), 풍씨(권), 마등(극), 한수(쌍월)
N
동백(십자극), 곽사(극), 황조(아벽), 이각(박도), 수경선생(쌍검), 유표(구조),
엄백호(쇄분동), 왕윤(비연검), 원술(신세검), 장수(비연검), 추씨(피리), 장로(도)




파일:external/vignette1.wikia.nocookie.net/Lu_Kang_%28DWB%29.png

그러다가 모바일 게임인 진삼국무쌍 BLAST에서 추가 무장으로 참전. 대부분의 유저들이 예상한대로 쇼타다. 복장은 아버지인 육손을 의식한 듯 육손 6편을 적절히 어레인지 한 듯한 복장을 들고 나왔다. 아버지 무기인 비연검을 EX무기로 가져왔다만 정작 비연검 자체는 클론무장들의 무기로 돌려막기로 써진 비운의 무기라 영 폼이 안난다.


5.4. 삼국전투기[편집]


히카루의 바둑(고스트 바둑왕)의 신도우 히카루로 나온다. 서릉 전투 (2)편의 타이틀 컷을 차지하기도 했으며, 소개컷에서는 오나라 최후의 명장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전투외편 3-2에서 아버지 육손이궁의 변으로 인해 사망한 후 다음 컷에서 처음 등장한다. 요절한 육손의 장남 육현을 대신에 육손의 작위를 이었다고 묘사된다.

수춘2 전투 편에서는 손침이 회견을 요청하여 회견장에 가려는 주이에게 상황이 묘하다며 회견을 피하라고 권유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참고로 주이는 회견장에 갔다가 결국 죽임을 당했다.

영안 전투 편에서는 보협이 영안 공략에 실패한 이후 보협 대신 영안 공략에 나선다. 처음에는 나헌을 회유해 보려 했지만 먹히지 않자 바로 공성에 들어갔다. 6개월의 공성 끝에 나헌을 거의 무너트릴 뻔하지만 위에서 지원이 오면서 결국 영안을 포기하고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고 묘사된다.

영안 전투 이후 등장이 거의 없다가 서릉 전투에서 양호와 맞붙는 것으로 재등장한다. 서릉의 보천이 진에 투항하자 오나라 전체가 패닉에 빠졌지만 강릉에 있던 육항만은 빠르고 침착하게 서릉으로 향했다. 서릉에 도착한 육항은 도착하자마자 서릉성 주위를 빙 두른 이중 포위벽 구축을 시작했다.

서릉 전투에서 삼국지에서는 드물게 본격적인 공성전으로 대승하기 때문에 작가는 그를 삼국지 후반기 최고의 명장으로 꼽는다고 크게 칭찬한다.[14] 카이사르알레시아 공방전과 유사한 작전을 폈다고 묘사했다. 작 중에서는 영안 전투 편에서의 대실패에 더불어 과거 10년간 서릉을 다스린 적이 있어 그곳 사정에 훤했기에 제대로 된 공성을 시도했다고 묘사됐다.

제대로 된 공성은 끈기 하나로 버티는 싸움이었기에 당연히 상대적으로 끈기가 부족한 이들의 반발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좌혁은 보천은 별거 아니라며 공격을 주장했고, 한계치에 다다른 의도태수 뇌담은 육항에게 대놓고 반발했다. 육항은 뇌담의 반발이 강해지자 어디 한 번 해 보라는 듯 공격을 허가했고, 뇌담은 당연하다는 듯이 박살났다. 그리고 이후 육항의 작전에 불만을 갖는 자는 없어졌다.

강릉에서 양호가 둑을 파괴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소문을 듣자 양호가 둑이 무너지지 않기를 원하기에 일부러 그런 소문을 냈다는 걸 간파하고 역으로 자기 쪽에서 둑을 먼저 무너트려버렸다. 이후 양호군이 강릉에 육박했다는 소식이 돌았고, 오언이 서릉은 자기들이 어떻게든 해 볼테니 육항에게 강릉으로 돌아가라고 제안했지만 육항은 강릉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며, 동시에 서릉은 쉽게 무너뜨릴 수 있기에 자신은 돌아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양조의 진군이 서릉에 당도하였고 안에선 보천, 밖에서는 양조의 파상공격이 이어지지만 육항은 이를 어떻게든 막아냈다고 묘사됐다.

이 와중에 불만을 가진 주교와 유찬이 양조에게 투항하며 배신하지만, 육항은 그들이 배신한 순간 빠른 판단으로 유찬이 아군의 약점을 공략해 올 것이라 확신하여 바로 병력을 교체하여 기다리고 있었고, 양조군에게 재기불능의 상처를 입히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후 별다른 수가 없어 퇴각하는 양조군을 추격해 궤멸시키며 완벽한 승리를 거뒀다.[15] 양조군이 궤멸됐다는 소식을 들은 양호마저 강릉에서 물러나면서 서릉 전투에서 승리를 거뒀고, 서릉성을 함락시킨 뒤 반역자 보천의 3족을 멸하기도 했다.

이후 양호와의 관계를 현실적으로 그려냈다. 싸움이 아닌 마음으로써 상대방을 공략하는 모습에서 이 둘의 묘한 경쟁관계와 긴장감을 풀어내었다.[16] 그러다 시름시름 앓는 모습을 보이더니 결국 병사하면서 균형이 깨졌고, 양호는 이를 오를 공격할 찬스로 여긴다.

[1] 일반적인 인식으로는 이 일화에서 손권이 잘못은 뉘우칠지언정 증거물들을 없애려했다며 옹졸한 면을 보였다고 여긴다. 하지만 이것들은 손권보다는 육항에게 두고두고 약점이 될 수 있으니, 손권이 육항을 배려해준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이후 손호가 신하들을 마구잡이로 죽여대던 시절에도 육항은 숙청되거나 좌천되는 일이 없었는데, 만약 저 편지들이 그대로 있었다면 손호가 어떻게든 핑계삼아 제거해 버렸을지도 모른다.[2] 관등으로는 주적의 아래에 있었다.[3] 보천은 서릉은 아버지 보즐, 형 보협에 이어 3대째 이어받은 땅으로 집안의 영지 같은 곳으로 여긴 모양이다. 그런 상황에서 별 이유도 없이 손호 같은 폭군이 딴 곳으로 옮기라고 했으니 의심이 들었을 것이다. 손호 입장에선 유력호족 보씨 가문을 견제하거나 촉한의 멸망으로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해진 이릉을 수비하는데 보천이 못 미더웠을 수도 있다.[4] 하지만 저 우의관계를 진지하게 믿으면 안 된다. 서로를 높이 평가했던 정도만 받아들이면 될 듯하다. 이들은 당시 심리전을 벌이고 있었던 거나 마찬가지 였다.[5] 삼국지 10에서는 이벤트로도 있지만 최후반에나 등장하므로 보기 어렵다.[6] 특히 육항의 아버지 육손이 오에서 가지는 영향이 어느 정도였는지 감안하면 더욱더 말이다.[7] 석정 전투에서 육손과 함께 조휴를 물리친 주방의 아들로 조문석개라는 고사성어의 주인공이다.[8] 다만 다른 시대 사람들이 이 비판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내용을 찾을 수 있고, 실제로도 자세히 보면 이러한 비판이 부당한 면이 없잖아 있다. 이 때 오의 황제는 손호였고, 반란 혐의가 보이는 자는 물론 의심되는 자도 거리낌없이 삼족을 멸했다. 즉, 비판하려는 대상은 손호가 우선적으로 되어야 한다. 오히려 반역에 직접 관련된 보천 일가를 제외한 장수들은 사면한 것을 보면, 이것은 육항이 희생을 최소화시키려 노력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육항의 후손들이 이후 서진 시대에 완전히 멸족된 것 역시 서진 팔왕의 난 시대의 개판을 생각하면 끼워맞춘 부분이지 않나 하는 시각도 충분히 있을수 있고. 다만 육항 사후 팔왕의 난까지 그리 길지 않은 차이임을 생각하면 자식 한 두명이 아닌 육항의 후손이 완전히 멸절할 것이 시사하는 바는 있다. 하지만 팔왕의 난을 시작으로 한 오호십육국 시대에 멸족당하는 집안이 한둘이 아니라는 것을 감안하면 그다지...[9] 다만 나헌이 그렇게 인정받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격퇴한 상대가 바로 이 육항이였기 때문이다.[10] 선조가 이순신에게 '과인이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하고 자책하는 걸로 알려진 그 교서. 왕이 신하에게 이 정도로 대놓고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었다. 문화재보호법 상 보물 (국보와 보물의 번호가 폐기되기 전에는 1564-3호)로 지정되었다.[11] 사마사가 살아남고, 이후 사마사가 촉을 멸망시키고 동시에 사마소가 오를 역사보다 더 빨리 멸망시키는 내용이다. 즉 건업 전투는 오나라의 최종 전투인셈. 하지만 오가 멸망해도 정봉, 연사가 잔당으로 남아 촉의 잔당인 강유 등과 연합하여 사마사에게 계속 대항한다.[12] 참고로 아버지 육손이 이릉에서 대활약을 했을 때가 222년이다. 육항이 육손의 늦둥이 아들이기 때문이다.[13] 문앙 역시 나이가 어린 편이고(238년생으로 전 캐릭 최연소) 이나마도 위-오-위-진으로 세력을 자주 옮겨다닌 탓에 분량이 정말 없다. 사실상 '조운의 재래, 삼국지 후반부 최강의 무장'이란 이름값에 기대어 얼굴도장이나 겨우 찍는 수준. 게다가 문앙은 이민족 토벌에 주로 종사했지, 삼국 통일에는 크게 기여한 점이 없는 탓에 지금 이상으로 분량을 더 주고 싶어도 힘들다.[14] 부연 설명으로는, 삼국지 내에서 공성에 성공한 예는 대부분 기세를 몰아서 함락하는, 한마디로 공성 이전에 이미 기세싸움에서 완전히 우위를 잡고 있는 시점에서 성공시키지만, 서릉 전투는 반대로 기세 싸움에서 우위를 잡지 못한 상태에서 공성을 성공한 경우이기 때문이다.[15] 육항군은 크게 북을 울리면서 양조군을 추격했다. 좌혁은 북을 먼저 쳐 줘서 상대를 경계시킬 필요가 있냐고 물었고, 이에 육항은 보천의 반응을 보기 위함이라고 답해 줬다. 자신들이 움직이는 모양새를 보고 보천이 뒤를 노리려 한다면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진군을 쫓을 이유는 없다고 판단한 것. 물론 보천이 굳어 있다면 당연히 본격적인 추격전을 개시할 계획이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16] 손호는 이를 이해하지 못했기에 육항을 질책했지만 육항은 계책을 써 봤자 상대에게는 작은 상처만 낼 수 있고, 그 반면 오나라의 이미지에는 매우 큰 상처를 입을 수 있으니 작은 이익에 연연하지 말고 대국을 봐야 된다고 진언했다. 물론 손호는 당연히 이해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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