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키지루시 유업 식중독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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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1955년의 사건
3. 2000년의 사건
4. 후일담



1. 개요[편집]


유키지루시는 일본 최대의 유업회사였다. 2번의 큰 식중독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1955년에 발생한 식중독 사건을 유키지루시 야쿠모 공장 탈지분유 식중독 사건(雪印八雲工場脱脂粉乳食中毒事件)이라 칭하고, 2000년에 발생한 사건을 유키지루시 집단 식중독 사건(雪印集団食中毒事件)이라 칭한다. 2000년의 사건으로 유키지루시 유업은 해체된다.


2. 1955년의 사건[편집]


1955년 3월, 유키지루시 우유를 마시고 도쿄 소재 초등학생 900여명이 배탈, 설사 등의 식중독 증상을 보였다. 당시 사측은 제품을 전부 회수하고 시설 점검을 했으며 피해자들에게 사죄를 표명하였다. 1950년에 창립되어 얼마지나지 않은 회사에 있어서 대위기였으나, 비교적 빠른 대처로 위기를 넘기게 되었다.

이후 품질 관리에 심혈을 기울이게 되면서 업계 최고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3. 2000년의 사건[편집]


2000년 6월, 유키지루시 오사카 공장에서 제조한 저지방유를 마시고 식중독 증상을 보인 사람이 14000여명이 발생하였다. 제품 제조일인 6월 23일 이후 제품을 전량 회수하고 폐기했다. 분석결과 포도상구균의 독소가 발견되었고, 이는 가열로 인해 균은 죽으나 독소가 남기 때문에 식중독 사태가 발생한 것.

이때도 어느 정도 제품 판매를 중단하고 회수하는 조치는 나쁘지 않았으나, 기자회견 자리에서 유키지루시의 사장 아사카와 테츠로가 우리도 노력 하고 있다며 "저도 지금 한가하게 놀고 있는 건 아닙니다(そんなこと言ったってねぇ、わたしは寝ていないんだよ!!)"라는 발언을 하면서 일본 여론이 등을 돌리게 되었다. 사실 이뿐 아니라 황인종은 우유에 탈나는 유전자가 어느 정도 있다(黄色人種には牛乳を飲んで具合が悪くなる人間が一定数いる。)따위의 말을 하기도 하였다.

기자회견 시점에서도 피해자는 계속 증가하는 추세였고 식중독 환자가 1만을 넘긴 7월 4일 아사카와 사장이 사임을 표하였고 회사가 은폐하려던 정황들이 드러나면서 유키지루시 유업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4. 후일담[편집]


2001년에는 유키지루시 계열사인 유키지루시 식품에서 쇠고기 원산지를 속여 팔다 걸려서 큰 파문[1]을 일으키기도 했고, 회사가 분할되기도 하는 등 여러 일이 있은 뒤 유키지루시 메그밀크(雪印メグミルク)라는 이름으로 이름만 남았다.

2002년에는 일본 롯데에서 죽기 일보 직전인 유키지루시 빙과사업 부문을 흡수해서 롯데스노우를 만들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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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호주산 쇠고기를 일본산이라고 속여 팔았다는 거래처인 니시노미야 냉장의 대표 미즈타니 요이치의 내부고발로 이 파문은 세상에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