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로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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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로켓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미상 발사체
Unidentified projectiles of Scandinavian

파일:4628.jpg


▲ 1946년 6월, 스웨덴에서 에릭 로이터스워드(Erik Reuterswärd)가 촬영한 '유령 로켓'의 사진

발생 일시
1946년 ~ 1950년대
발생 장소


스칸디나비아 반도 등 유럽 일대}}} (스웨덴과 핀란드 등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중심으로 넓게는 그리스 및 북부 이탈리아, 마케도니아, 포르투갈, 벨기에 상공)
유형
전쟁의 트라우마로 인한 집단 히스테리 혹은 소련이나 제3국에 의한 로켓 시험 발사 (추정)
관할
스웨덴 공군 및 스웨덴 정부 [1]
영향
발사체 착탄 지점에서 크레이터 관측
소련에 대한 불안감 증폭 및 진상조사단 파견 등 행정소요 발생


1. 개요
2. 상세
3.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제2차 세계 대전이 종전 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46년부터 1950년대에 걸쳐 스웨덴 및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중심으로 목격된 괴비행체.


2. 상세[편집]


1946년 2월 핀란드에서 최초로 목격 보고가 올라왔다. 46년 5월과 12월 사이에는 2천건이 넘는 목격 보고가 있었고, 특히 8월 9일과 11일 사이에 정점을 이루었다. 레이더에 직접적으로 포착된 사례만 해도 수백건이 넘어가는 유령로켓은 백주 대낮에도 하늘을 날아가는게 목격됐을 정도다. 지상에 직접 착탄해 크레이터를 만들거나 파편이 회수된 사례도 여럿 존재한다고 알려졌으나 회수된 파편들은 모두 운석의 잔해로 확인됐다.세계각지에서 목격된 로켓 형상의 괴비행체에 대해 각국은 독일의 로켓 과학자들과 시설들을 인수한 어떠한 국가가 비밀리에 V1/V2 로켓의 개량형이나 후계 기체를 실험하고 있다고 여겼다. 그중 스웨덴 당국은 이러한 발사체가 독일의 V1 로켓V2 로켓 기체와 시설, 그리고 관련된 기술을 인수한 소련의 미사일 테스트라 추측했고 대다수의 로켓들이 호수에 떨어졌기에 잔해를 회수하려 로켓이 떨어진 호수를 조사했으나 호수 바닥에서 충돌에 의해 생긴 크레이터와 수생 식물들이 찣긴 흔적만 발견할 수 있었고 로켓의 파편을 회수하는데 실패했다. 이 때문에 물체가 수면에 충돌하기 이전 자폭하는 식으로 스스로 분해됐다고 보았다.[2] 스웨덴 공군은 '집단 히스테리가 아닌 실제 로켓을 목격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목격된 유령 로켓들의 특징을 꼽아보자면 공통적으로 시가형상의 로켓이며 빠른 속도로 날아갔으나 느리게 날아가는 로켓들도 종종 포착됐다. 날개가 없는 기체도 있으나 날개가 달려있는 기체들도 관측됐다. 꼬리 부분에서는 주황색 또는 푸른색의 불꽃을 분사하며 대략 고도 300m에서 1km 사이에서 항공기와 비슷한 속도로 기동한다. 비행음은 거의 들리지 않고 또 로켓의 배기 흔적도 없으며 V 시리즈 로켓이 기동하는 듯이 움직인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간이 만들어낸 로켓으로 볼 여지는 충분하기 때문에 당초 공공의 적인 소련의 로켓 테스트로 추측됐었다.

이 미상의 발사체는 단연 스칸디나비아 반도 뿐만 아니라 그리스, 마케도니아, 포르투갈, 이탈리아 북부 등지에서도 관측됐다. 발사체의 정체를 두고 소련군의 로켓 시험이라는 등 다양한 의견이 제기되었으며, 종전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집단 히스테리일 가능성도 제기됐다. 전후의 혼란한 상황에서 스웨덴 정부는 영국과 미국 정부에게 유령 로켓의 실체를 밝혀주기를 요청했다. 물론 소련은 부인했지만 스웨덴 정부는 유령 로켓들의 근원지가 소련이라는 걸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스웨덴의 요청을 받아들인 영국과 미국은 각각 전문가를 파견했으며 딘 애치슨 국무부 차관도 유령 로켓에 관한 보고서에 큰 관심을 가졌다는 뉴욕 타임즈 기사도 남아있으며 미국은 46년 8월 20일에 이르러 그 유명한 둘리틀 특공대의 지휘관이었던 제임스 둘리틀(James Harold Doolittle)과 후일 RCA 회장에 취임한 '데이비드 사노프' 준장을 개인자격으로 스웨덴에 파견했다. 두 인물이 항공 방면에서 워낙에 유명한 인물인지라 스웨덴 국방부는 조언을 구하기 위해 이들에게 관련된 정보를 공개했다. 유령 로켓에 대한 정보를 열람한 데이비드 사노프는 46년 9월 30일 뉴욕 타임즈에 '이것들은 환상이 아닌 실제 로켓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즉 이들 유령 로켓이 자연 현상이나 집단 히스테리에 의한 가공의 산물이 아닌 실제 로켓이라는 것이다.

다만 영국이 스웨덴에 파견한 영국 공군 참모본부의 전문가 리차드 존스 교수는 이들 유령 로켓은 주간에도 관측되는 대기권에 막 진입한 매우 밝은 유성이며 전후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스웨덴인들이 집단 히스테리를 일으킨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그러나 유령 로켓은 유성과는 완전히 상반된 특징들, 예를들어 유성과는 완전히 다르게 기동하며 유성우 활동 주기에는 관측되지 않았다는 점들 때문에 발표 결과에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상공에서 유령 로켓이 목격된 그리스도 조사에 착수했었다. 1946년 9월 5일의 당시 그리스 총리였던 콘스탄티노스 탈다리스 (Konstantinos Tsaldaris)도 유령 로켓이 마케도니아와 테살로니키 [3] 상공에서도 유령 로켓이 목격됐다고 발표했다. 그리스의 물리학자 폴 산토리니 교수 #도 조사팀을 이끌며 유령로켓에 대한 심층적인 조사에 착수했으나 그리스 정부에 의해 조사가 중지됐다. 이는 동시기 유령 로켓을 조사하던 다른 국가들도 동시에 취한 조치였다. 세월이 흐른 1967년, 산토리니 교수는 그리스 천문학 학회 # 강연회에서 유령 로켓이 실제 로켓이 아니라는 점 [4]을 확인했으나 그러한 존재를 두려워 한 국가들에 의해 조사가 중지됐다고 발언했다. 현존 기술로는 방어할 수 없는 존재의 실존여부를 인정하는 걸 두려워 했다는 것이다.

3.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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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국 정부, 그리스 정부, 미국 정부, 영국 왕립 공군도 진상조사에 관여 [2] 이런 류의 방식은 현재도 자주 쓰인다. 적국 등에 기술이 유출될 수도 있기 때문.[3] 데살로니가 전서의 데살로니가다[4] 즉 인류가 만든 로켓이 아니라는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