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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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딧

유딧

언어별 명칭
히브리어
יהודית (유딧)
그리스어
Ιουδιθ (유딧)
라틴어
Liber Iudith
영어
Book of Judith
중국어
友弟德傳
일본어
ユディト記(ユディトき)
에스페란토
Libro de Judit
기본 정보
저자
미상
기록 연대
기원전 3세기~기원후 1세기
분량
16장
주요 인물
유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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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책
토비트 (가톨릭)
에스델
1. 개요
2. 내용
3. 후대의 영향
4. 참고 문헌


1. 개요[편집]


언어별 명칭
라틴어
Iudith
영어
Judith
히브리어
יהודית
아랍어
جوديث

아시리아의 장수 홀로페르네스(Holofernes, הולופרנס)의 목을 벤 동명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구약성경 제2경전이다. 가톨릭에서 유딧기는 성경의 18번째 권이며, 토빗기에스테르기 사이에 위치한다.

유딧기는 장르적으로는 단편소설[1]에 속한다. 저자는 이 이야기를 흔히 말하는 의미의 역사책으로는 내세우지 않으며, 오히려 '유배에서 돌아온 이스라엘과 아시리아 임금 네부카드네자르의 전쟁'이라는 배경 설정에서 저자 시대의 유다인 식자층은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가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고 동포들을 유배시켰다"는 유다인들의 역사 상식에 비추어) 픽션성을 감지할 수 있었다. '유딧'이라는 이름부터가 '유다 여자'라는 뜻이다. 현대로 치자면 잘 만들어진 퓨전사극에 비유할 수 있는데, 물론 이러한 장르가 유딧기의 작품성을 떨어뜨리는 것은 아니다.

주인공 유딧은 여러 화가들의 그림 속 주인공이 되었기에 대중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특히 잔인하고 생생한 표정묘사가 살아있는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유딧과, 황홀한 표정으로 적장의 목을 들고 있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유딧이 유명하다. [2]

2. 내용[편집]


유딧은 유대의 산악도시 베툴리아에 살았던 아름답고 정숙한 과부였는데, 홀로페르네스가 지휘하는 '아시리아 임금 네부카드네자르'의 군대가 베툴리아를 침략하자 아름다운 치장을 하고 아시리아 군에 거짓으로 투항하여 연회를 즐긴다. 그리고 홀로페르네스와 단 둘이 남게 된 유디트는 만취한 홀로페르네스가 잠들자 그의 칼로 목을 베어(!) 하녀와 함께 수급을 거두어 달아난다.[3]

그런데 여기서 홀로페르네스가 만취한 상태로 유딧과 단 둘이 남았고 자다가 침대에서 참수당했다는 상황이 미인에게 유혹당해 즐기고 퍼자다가 살해당한 것 아닌가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고, 이 때문에 아래에서 보둣 팜므 파탈(요부) 이미지가 덧씌워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지나치게 성적 판타지가 씌워진 해석이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유딧기는 흔히 말하는 역사책보다는 단편소설에 가까운 책이고, 저자 스스로도 '유배에서 돌아온 이스라엘과 아시리아 임금 네부카드네자르의 전쟁'이라는 대놓고 비상식적인 설정 도입을 통해서 픽션임을 내세운다. 그리고 소설을 해석할 때는 "이런 상황에선 이런 일이 있었을 수도 있다"라는 2차 창작을 내세워서는 안된다. 오히려 저자가 동시대 독자들에게 내세우고자 하는 1차적인 문필적 의미를 우선하여야 한다. 그리고 신심 고취라는 유딧기의 주제를 생각한다면, "저자가 동시대 독자들에게 요부 유딧 이미지를 유도하고 있다"는 것은 결코 제대로 된 독해가 아니다. 무엇보다 이 소설의 저자가 명시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유딧은 자루에서 머리를 꺼내어 그들에게 보여 주면서 다시 말하였다. “보십시오. 아시리아 군대의 대장군 홀로페르네스의 머리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닫집인데, 홀로페르네스가 잔뜩 취하여 그 아래에 누워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여자의 손으로 그를 치셨습니다. 제가 저의 길을 걸어갈 때에 저를 지켜 주신, 살아 계신 주님을 걸고 말합니다. 저의 얼굴이 그를 유혹하여 멸망시켰습니다. 그러나 그가 저에게 죄를 저질러 저를 부정하게 만들거나 수치스럽게 만든 것은 결코 아닙니다.

유딧 13,16(가톨릭 새번역)

심지어 저자의 문필적 의미에서 본다면, 유딧은 요부이기는 커녕 대장부다운 기개가 넘쳐흐르는 '사내다운 영웅'이다. 그리고 오히려 홀로페르네스야말로 사내다운 모습 없이 계집처럼 군다.

주인공인 유딧과 홀로페르네스에 관한 묘사에서 성 역할의 용해溶解는 주목할 만하다. 이야기는 성경 전승들에 의해, 그리고 남성들이 꼴지어온 문학과 사회에 의해 규정된 틀들을 변형시키는데, 그러나 결국 그 경계를 벗어나지는 않는다. 책 전반부에서 명령을 완수하는, 세상 곳곳에서 살해하고 약탈하고 황폐화시키는 대군의 우두머리로서 으레 승리를 거두어 온 대장군으로 묘사되는 홀로페르네스가, 유딧이 등장하면서부터는 한낱 유약한 사인私人으로 묘사되거니와, 천막 안에서 여인들에게나 어울리는 사치스러운 모기장 아래 누워 쉬며(B.Schumitz, Männlichkeit 참조)[4]

내시의 보살핌을 받고, 욕정을 품은 아름다운 여인에게 좋은 인상을 주어 꾀어 보려 하며, 심지어는 여자처럼 말하고(11,23; 룻기 1,16의 인용), 결국에는 제 자신이 희생물이 되어 버린다.

반면 유딧은 비록 과부지만 부유하며(구약성경에서 유일하다!) 자주적이다. 원로들을 제 집에 오게 하여 책망하는 설교를 하고, 전략적 의도를 지니고 몸치장을 하며(10,4), 모든 결정적 계획을 결단하고 책임지며, 행진에서는 여자들뿐 아니라 남자들도 이끌고(15,13), 성전에 봉헌물을 바치고 노획물을 나누며, 몸종에게 자유를 선사하고 근친들에게 유산을 나누어 준다.

-헬무트 엥겔Helmut Engel, "유딧기", 에리히 쳉어Erich Zenger u.a., 《구약성경 개론》 Einleitung in das Alte Testament (분도출판사 2012), 520-521쪽


3. 후대의 영향[편집]


에티오피아사에서 10세기에 악숨 왕국을 멸망시킨 시미엔 왕국 출신의 유대교도 여왕 구디트의 이름이 유딧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유딧의 이야기는 여러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어 작품을 탄생시켰다. 대부분이 살해당한 남성의 목을 들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다. 자극적이고 생생한 그림으로 유명한 남성 화가 카라바조(Caravaggio)의 그림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른 유디트>에서는 지나치게 현실적인 묘사로 물의를 빚을 정도였던 그의 다른 작품들과 달리 예외적으로 가녀린 소녀가 멀리서 역겹다는 표정으로 팔을 길게 뻗어 인상을 쓰며 수동적 구도로 힘없이 목을 베고 있는 구도를 취해 현실성이 떨어지는 편이지만, 카라바조의 영향을 짙게 받은 동시대의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의 작품은 하녀와 함께 홀로페르네스를 짓누르고 단호한 표정으로 목을 베고 있으며 남성이 눈을 까뒤집고 피를 튀기며 죽어가는 매우 생생하고 현실적인 살해 현장을 묘사하였다. 여기서 유딧은 미인이기 전에 남성을 능히 살해할 수 있는 억센 팔뚝을 지닌 여성으로, 매우 현실적인 구도에서 남성을 여성 둘이서 함께 찍어누르고 팔을 안쪽으로 눌러 힘있게 목을 베고 있다. 유딧의 조력자도 카라바조의 그림에서는 늙은 노파로 유딧을 재촉하는 등의 역할에 그치지만, 젠틸레스키의 경우는 동년배 내지는 약간 연상의 여인으로 홀로페르네스를 함께 짓누르는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5]

여성 화가인 젠틸레스키는 성폭행 피해 경험이 있었다. 가해 남성은 '아고스티노 타시'라는 당시 아버지 오라치오(이 사람도 화가다)와 친했던 화가로, 젠틸레스키에게 원근법을 가르치다가 젠틸레스키를 성폭행했다. 젠틸레스키는 타시를 고발했다가 오히려 거짓말을 한다며 손가락을 조이는 고문을 받는 적반하장의 상황에 처했던 경험이 있다. 타시는 젠틸레스키를 강간 후 결혼하겠다고 해서, 두 사람은 사건 뒤 3년 간 결혼을 전제로 한 애인 관계였다. 이건 당시 시대상 흔했던 강간 후 해결 방법이었다. 그러나 타시는 이미 다른 곳에서 결혼한 아내가 있는 중혼 상태였고, 게다가 전과자인데다 14세였던 처제와 근친상간죄로 고발된 상태였다. 타시는 해당 사건에서 유죄를 선고받아 반년정도의 징역을 산 이후, 두 번이나 체포되었는데 그 중 한 번은 매춘부 폭행 후 금품절도였다. 쓰레기의 클라스는 영원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그림이 발표되자 사람들은 그림 속 유딧의 얼굴과 젠틸레스키의 얼굴이 너무나도 흡사한 것에 놀랐다고 한다.[6]


여담으로 이 사실은 차이나는 클라스 - 질문 있습니다 40화(2017년 12월 13일 방영)에 소개되었다. 이때 주제는 페미니즘이었는데, 적장을 죽이고 민족을 구한 영웅 유딧이 남자가 그린 그림에서는 가녀린 미소녀로 나오고, 여자가 그린 그림에서는 억센 팔뚝을 가진 강인한 인물로 묘사된다는 것.[7]

반면, 클림트가 묘사한 유딧은 위 두 작품과는 다르다. 클림트가 그린 <유딧과 홀로페르네스의 머리>에서 유딧은 황홀한 표정을 짓고 흉부가 거의 다 드러나는 옷을 입고 있다. 무엇보다 위 두 작품은 홀로페르네스의 머리가 잘려나가는 장면을 묘사했지만, 여기서는 이미 잘린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들고 있다. 게다가 머리는 화려한 금박에 비해 우중충해서 거의 존재감이 없다. 즉,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자르고 나서 도취된 치명적인 여자 유딧에 집중되어있다.[8]

파일:BAL_36586.jpg


베네치아의 작곡가 안토니오 비발디는 이 내용을 바탕으로 2부 오라토리오 '유딧의 승리(Juditha Triumphans)'를 작곡했다. 전곡 듣기 유딧의 아리아인 Veni, veni me sequere fida(오라, 오라, 나를 믿고 따라오라)가 유명하다. 이 작품을 쓴 이유가 당시 베네치아 공화국오스만 제국의 전쟁에서의 승리 염원이라는 설이 있다.


4. 참고 문헌[편집]


해설 (굿뉴스)
유딧서 (가톨릭대사전)
유딧서 (전례사전)
유딧서 (히브리어 위키백과)

[1] 혹시 '단편소설'이라는 말이 사용되어서 놀라는 가톨릭 신자가 있을 수도 있는데, '단편소설'이라는 말은 경전성을 부정하는 말이 아니다. 성경 속에서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냐 마냐의 논쟁이 아니라, 텍스트 자체가 내세우는 장르에서) 단편소설에 속하는 다른 책들로는 룻기, 토빗기, 에스테르기, 요나서가 있다.[2] 2011년 도전 달력모델에서 유재석이 분했던 그 그림이다.[3] 아무리 홀로페르네스가 방심했다는 점을 감안한다 해도 엄청난 활약이다. 민간인 두 명이 적진 한가운데 잠입하여 야전 지휘관을 죽이고 증거까지 챙겨서 무사히 탈출한 것이다! 유딧의 활약으로 용기를 얻은 유대의 군대가, 어이없이 대장을 잃은 아시리아 군대를 물리친 것은 당연한 전개.[4] 발췌자 주: Barbara Schmitz, Männlichkeit im Mückennetz. Gendering und Crossgendering der Holofernesfigur in der Juditerzählung, Forschungsforum Bamberg 11, 2003, 21-26.[5] 그러나 이런 비판이 도를 넘을 때도 있다. 예를 들어서 젠틸레스키의 그림에서 여자 얼굴이 더 거칠고 팔뚝이 굵어서 현실성이 높다는 얘기가 있는데 엄연히 미인계를 썼던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현실성은 젠틸레스키의 그림이 더 낮다. 물론 예술적인 표현이라면 달라질 수 있겠지만 어쨌건 현실성 측면에선 그렇다는 것이다. 굳이 현실성을 따지면 당연히 미인계를 썼던 카라바조가 나을 수밖에 없다. 또한 억센 팔뚝은 사실 예술의 문제이지, 남성을 능히 살해 운운하는 것과는 큰 상관이 없다. 판타지나 중세 컨텐츠에 대한 흔한 오해로 지적되는 것이 검은 힘, 활은 민첩으로 소개되어 검사는 건장한 남자, 궁수는 예쁜 여자로 나오는 경우가 있지만 사실 검은 민첩함, 활은 힘이라 검술은 남자를 능히 살해할 수 있는 억센 팔뚝이니 이런 게 큰 상관이 없다.[6] 젠틸레스키는 이 주제로 여러 그림을 남겼다. 실제로 목을 따는 장면은 물론이거니와 딴 목을 포장하는 장면, 그리고 그 포장한 목을 하녀의 바구니에 담아 빠져나가는 장면의 그림이 있다. 이런 경험과 작품의 내용 때문에 페미니즘이 대두한 현대에 젠틸레스키의 아트가 주목받고 고평가되는 경향이 있다.[7] 그렇다고 해서 젠틸레스키의 작품이 우월하고 카라바조 등의 작품이 열등하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젠틸레스키의 작품이 선대에 그려진 카라바조의 그림에서 구도나 빛의 사용 등에 영향을 크게 받은 작품이라는 평이 많다. 다만 젠틸레스키가 여성이고, 성폭행 피해자이다보니 그러한 그녀의 삶이 그림이 더 사실적으로 묘사되는 데 영향을 미쳤을 확률은 매우 높다.[8] 처음 보는 사람들은 홀로페르네스의 머리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잘려서 나오기 때문인데, 인식했다 하더라도 배경지식이 없다면 자른 목이라고 인식하기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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