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고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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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고족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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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인구와 분포
3. 역사
4. 언어
5. 종교
6. 문화
6.1. 복식
6.2. 음식
6.3. 주거
6.4. 생활
7. 기타
8.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파일:裕固族家族_1944年攝於中國甘肅省蘭州市.jpg
1944년 간쑤성 란저우시에서 촬영된 유고족 가족.
유고족/유구르족은 중국 간쑤성소수민족 중 하나로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사는 위구르인들과 근친 관계에 있는 민족이다.

타림 분지의 토하라인이나 중앙아시아 등지에 살던 이란계 민족 소그드인, 샤카족과 혼혈되지 않아 이들과 피를 섞어 유라시안의 외모를 띄는 위구르인과 다르게 여타 북아시아인과 매우 가깝다.

유고족은 스스로를 Yoɣïr/Yogor라고 부르는데 학계에서는 이 명칭이 역사상 송나라 때에 나타나는 황두회흘(黃頭回紇) 및 원나라 때의 살리외올(撒里畏兀)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인정한다.

'황두회흘'은 송대 초기에 타림 분지 동남부에 나타난 회흘의 한 갈래이다. 원 왕조 초기에 황두회흘이 정주하던 지역에 또다시 살리외올(撒里畏兀)이라는 종족 명칭이 나타난다.

현재까지의 연구 성과는 송대의 황두회흘이 바로 원대의 실리외올과 같다고 공인한다. 이 황두회흘의 연원에 대하여 학계에서는 두 가지 관점이 존재한다.

하나의 관점은 황두회흘이 감주회흘(甘州回紇) 또는 감주회골(甘州回鶻)에서 유래하였다는 것이고 또 다른 관점은 서주회흘(西州回紇)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관점 모두 오늘날의 유고족과 고대 위구르족과의 관련성이 깊다는 것을 기반으로 한다.


2. 인구와 분포[편집]


인구는 2010년 기준 14,378명이며, 주로 간쑤성의 숙남유고족자치현/쑤난위구족자치현(肃南裕固族自治县)에 거주한다.


3. 역사[편집]


파일:Selengerivermap.png

그들의 조상은 몽골 오르혼 강 유역에서 유래되었으며, 위구르 제국이 멸망한 이후 간쑤성 일대로 이주해 세운 하서회골(河西回鶻)의 후예이다. 위구르와 마찬가지로 튀르크계 종족으로, 돌궐의 적대 부족인 철륵의 후예이다. 위구르 부족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할 때 이들은 티베트의 영향으로 불교도가 되었다.

오늘 날의 하서회랑 중부의 장예를 수도로 삼아 감숙 왕국(870~1036년)을 재건하여, 빛을 발했는데, 송나라 때의 사서에 의하면, 감숙 왕국의 인구는 30만 명에 이르며, 주민은 마니교불교를 믿고, 나라 안에 사원이 가득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1028년부터 1036년까지 계속 된 격렬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탕구트에 강제 편입되었다.[1]

원나라는 '살리외올'을 정복한 이후, 그 지역에 관부(官府)를 설치하여 통치하였다.[2] 서기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에 살리외올은 만리장성의 서쪽 끝 관문인 가욕관 이서 지역에서 동으로 이동하여 가욕관 이동 지역인 숙주(肅州), 감주(甘州)의 기련산(祈連山) 지역에 정착하였고, 유고족 사회 내부의 구조에도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이후 1696년 청나라강희제가 살리외올(동부 유고족)이 살던 서북지역을 정복하면서 청조에 편입되었다. 청 왕조는 이들이 원래 갖고 있던 부락조직을 기초로 7족(七族)으로 나누었다.

중화민국 시기에는 기련산 북록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티베트인으로 인식하여 장민(藏民)으로 통칭하였으며, 속칭은 번(番)이었다. 토번(티베트)의 번이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1953년부터 진행된 제 1단계 민족조사 및 식별사업을 거쳐 새롭게 인정된 38개 소수민족에 포함되었으며, 같은 년도에 개최된 '기련산 북록 각 족 각계인사 좌담회'에서 유고족의 민족명칭 관련, 전통적으로 스스로 불렀던 명칭이었던 Yoɣïr/Yogor와 발음이 비슷하면서 동시에 중국어상 뜻이 '부유하고 공고하다'라는 의미의 '裕固族'(유고족 혹은 위구족)으로 민족 명칭을 정하였다.


4. 언어[편집]


시베리아 튀르크어족서유구르어몽골어족에 속하는 동유구르어를 사용한다. 특히 서부 유구르어의 경우 고대 위구르어의 특징이 많이 남아 있으며, 한자를 차용해 표기한다.[3]


5. 종교[편집]


현재는 주로 티베트 불교를 믿지만, 과거에는 하늘의 신인 “한텡그르”(汗点格爾, '큰 하늘'이라는 뜻)를 경배하였다. “한텡그르”를 경배하는 의식은 '야혁철'(也赫哲) 또는 한어로는 '사공자'(師公子)라고 부르는 전문적이고 종교적인 신관이 담당하였으며 21세기에도 이러한 과거 신앙의 흔적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다.

오늘날 유고족의 가정에는 고대 위구르 샤머니즘의 영향으로 각 가정에 제단을 두고 고유의 제사를 지낸다.

적지 않은 이들이 여전히 조상 숭배를 하고 있는데 조상신은 매우 강력하게 여겨지고 있으며 후손들의 삶을 돕기도 하고 위험하게도 하는 능력을 사용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조상신은 경외, 두려움 그리고 존경의 대상으로 그려지고 있다. 조상숭배자들은 축복을 받고자 하는 목적으로 조상신에게 음식과 술, 향 등을 바친다.


6. 문화[편집]


복식이나 전통 음악 등은 몽골과 흡사하다.


6.1. 복식[편집]


파일:54366165b2f81fd_w1198_h799.jpg

전통복장은 색상이 화려한 편인데, 이들의 옷은 몽골인들의 전통의상과 유사하다. 일반적으로 옷섶이 높고 좌측으로 접는 큰 소매의 옷을 입는데 홍색과 남색의 허리띠를 차고 털로 짜서 만든 백색의 중절모 또는 의례용 모자를 쓰며 목이 높은 가죽신이나 신발 코가 두 개 있고 신발 등이 둥근 모양의 신을 신는다.

흔히 “니우츠수이마오”(牛吃水帽)라고 하는 모자를 쓰는데 테두리를 검게 한 흰색 중절모로 앞은 낮게 뒤는 높게 만들었으며 유고족 남성의 상징물이 되었다. 부녀자들은 옷 컬러가 높은 긴 겉옷을 입으며 목이 긴 천으로 된 신발을 신고 홍색, 녹색 및 자주색의 허리띠를 하고 붉은 끈이 달린 나팔 형태의 모자를 쓴다.

결혼한 표지로 앞가슴에는 “카런”, 등에는 “더스꺼”(德斯格)를 부착하는데 모두 각종 꽃무늬나 도안과 , 산호, 마노 등 패물을 장식한다. 미혼 여성의 옷도 기혼자와 거의 같으나 장식하는 패물만 다르다.

모자 역시 동서부가 달라서 서부 유고족들의 여자 모자는 꼭대기가 뽀족하고 뒤를 접어 올리며 가죽 털로 만든다. 동부 유고족들의 여자 모자는 꼭대기가 큰 원형이며 예식 모자와 형태가 유사한데 기혼 부녀자만 쓴다.


6.2. 음식[편집]


유고족의 전통적인 식사 습관은 하루에 를 세 번 마시고 식사는 한 번 먹는다. 주식은 , 좁쌀, 등이고 부식은 우유고기이다.

즉, 주로 아침에는 우유차(奶茶)에 야크 젖으로 만든 버터의 일종인 수유(酥油)를 넣은 “차오미엔나이차”(炒面奶茶)를 마시고 점심 또는 저녁에는 을 먹거나 수제비와 같은 밀가루 음식을 먹는다.

고기는 양고기를 먹되 죽은 것은 먹지 않는다. 양고기는 주로 말려서 나중에 삶아 먹거나 수제비와 같은 음식을 먹을 때 넣어서 먹기도 한다. 또한 내장을 이용해 “즈궈깐”(支果干) 같은 순대를 만들어 먹는다.

그 외에도 야크 젖으로 만든 요구르트, 치즈버터를 먹는다. 성인 남성들은 담배를 자주 피고 고기를 먹으면 필히 술을 마신다. 손님이 오면 청과주(靑稞酒)라는 술을 대접한다.

6.3. 주거[편집]


야크 털이나 털로 만들어진 사각기둥 혹은 사각뿔 모양의 장봉(帳篷)이라는 천막형 집에서 주로 거주하며 일부는 , 벽돌로 만들어진 집에서 산다.

집의 내부구조는 방의 구분이 없이 한 개의 공간으로 되어 있다. 대개 정방형이고 벽의 높이는 1m 가량이며 중앙에 약 2m 가량의 기둥이 지지하고 있다.

주로 중앙에 화로가 있고 한쪽에 침대와 다른 한쪽에는 부엌이 있다. 야크 털은 방수효과가 있어서 비가 새지 않는다. 특별한 전기 조명기구가 없는 집에서는 천장의 개폐가 가능해서 낮에는 열어 놓고 조명기구와 통풍시설을 대신한다.


6.4. 생활[편집]


사계절을 돌아가며 유목을 하고 부업으로는 수렵을 한다. 따라서 주 소득원은 면양이고 그 외에 야크, , 산양, 당나귀 등도 기른다. 추운 겨울이나 아직 풀이 풍족하지 않은 에는 집 주위의 목장에 가두어 키우며 풀이 많은 여름가을에는 초원을 찾아 이동하면서 목축을 한다. 목축을 할 때는 주위에 굴을 파놓아 이 비를 피할 수 있게 한다.

겨울에는 석탄을 이용하고 여름에는 야크대변을 말려서 사용한다. 일부 소수의 유고족은 넓은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어서 한 장막에서 다른 장막으로 이동하는 거리가 멀다.

간쑤성에 정착한 일부는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수렵과 목축업을 포기하였다. 하지만 숙남 지역에서는 여전히 기존의 생산형태를 유지하고 있고, 고지대에 사는 유고족들은 야크, , 염소, 등을 목축하는 반면 저지대에 사는 이들은 주로 , 낙타와 약간의 양과 염소를 키운다.


7. 기타[편집]


서유구르 부족 중에서 '얄라게(Yalage)'라는 명칭을 지닌 부족이 있는데, 이는 옛 위구르 제국을 다스렸던 야글라카르 씨족과 관계가 있다고 한다.


8. 관련 문서[편집]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1 17:05:26에 나무위키 유고족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당시 카라한 칸국 출신의 바그다드의 대학자 마흐무드 알 카슈가리는 이 싸움으로 유고족의 피가 강처럼 흘렀다고 전했다.[2] 이후 을 멸망시킨 명나라 또한 원 왕조의 통치정책을 기본적으로 승계하였다.[3] 19세기 말까지 일부 공동체에서 고대 위구르 문자가 쓰였으나, 현재는 표기되지 않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