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계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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柳繼春
(1816년 ~ 1862년)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조선 후기의 인물. 임술농민봉기의 시초인 진주민란의 주도자.


2. 생애[편집]


잔반 출신으로 본래는 진주 원당면 출신이었으나, 35세 때 어머니를 따라 축곡면 내평촌에 거주했다.

진주에서 환곡을 거두면서 아전들이 횡령하고 주민들에게 협박해 수탈하자 1862년 1월 29일에 유계춘은 환곡 보충을 위해 본래 정해진 금액 이상으로 징수하는 도결, 오가작통에 따른 가호의 총수에 따라 환곡을 분배하는 통환의 부당함을 알리고, 철회를 위해 수곡장시에서 논의하자면서 통문을 돌렸다.

2월 6일에 수곡장시에서 3백여 명을 모아 한 마음으로 힘을 모아 고을의 폐습을 고칠 수 있다면서 맹세하자며 연설을 했다. 마을의 모임에 참가한 사람들은 유계춘 이외에는 대부분 정씨나 강씨였고 그 중 강쾌가 그의 이종사촌이었으므로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 상당수가 유계춘과 친척 관계로 추정되고 있다.

수곡장터에서 한 연설로 인해 체포되었다가 2월 13일에 집안 제사를 이유로 풀려났다가 14일에 군사를 일으켰고 탐관오리와 토호 세력 등을 공격했으며, 23일에 해산했다가 체포되어 다른 주모자들과 함께 5월 30일에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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