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갑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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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유갑순.png
성명
유갑순(柳甲順)
생몰
1892년 10월 22일 ~ 1921년 6월 27일
출생지
경기도 강화유수부 하도면 덕포리
(현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덕포리)[1]
사망지
서대문형무소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8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유갑순은 1892년 10월 22일 경기도 강화유수부 하도면(현 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덕포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경성부 경신학교에 재학 중이던 1920년 5월 중국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교통국과 연계하여 국내에서 <독립신문> 등을 배포하고 있던 이원직(李元稷)의 권유로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이후 황해도 사리원에 있는 <독립신문> 등을 서울로 운반하기 위한 비용을 이원직에게 제공했고, 그로부터 <독립신문>과 <대한민국임시정부관보> 등을 받아 이웃의 류진규(柳陳珪) 등에게 배포하였다.

그는 박창문(朴昌門) 등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및 독립운동의 상황에 대해 논의하고 동지로 규합하였다. 음력 5~6월경 두 차례에 걸쳐, 동지인 경신학교 재학생 문길에게 정연리의 김군욱(金君郁) 및 황학로(黃學老)의 집으로 가서 군자금을 모집할 것을 지시했다. 이 가운데 일부는 중국 지린성 군정부(軍政部) 특파원 김준환(金俊煥)에게 만주로 돌아가는 경비 등으로 제공하였다. 또한 6월과 음력 9월 15일경 김석연(金石然)에게 적십자회 영주증을 제공하고 그로부터 독촉서(督促書)와 사령서(辭令書) 등을 제공받아 활용하였다.

그 후 유갑순은 독립운동을 보다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1920년 7월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 도순사(道巡使)가 되어 경찰관교습소(警察官敎習所)에 들어갔다. 9월부터 서울 종로경찰서에 근무하면서 교습소 동기생으로서 함께 종로경찰서에서 근무한 김입중(金立中) 등을 동지로 규합하였다. 그러나 얼마 후 그의 활동이 발각되면서 동지들과 함께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 일로 김입중·심흥섭·김영석·안교열 등 조선총독부 순사직을 가진 동지들과 함께 해직되었다.

1921년 3월 1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범죄처벌령 위반 및 공갈죄’로 징역 5년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르다 1921년 6월 27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유갑순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1] 전주 류씨 집성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