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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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사(宋史)

[ 본기(本紀) ]

||<tablewidth=100%><tablebgcolor=#2e8b57><width=33%> 1·2·3권 「태조기(太祖紀)」 ||<-2><width=33%> 4·5권 「태종기(太宗紀)」 ||<width=33%> 6·7·8권 「진종기(眞宗紀)」 ||
||<rowbgcolor=#fff,#191919> 조광윤 ||<-2> 조광의 || 조항 ||
|| 9·10·11·12권 「인종기(仁宗紀)」 ||<-2> 13권 「영종기(英宗紀)」 || 14·15·16권 「신종기(神宗紀)」 ||
||<rowbgcolor=#fff,#191919> 조정(趙禎) ||<-2> 조서 || 조욱 ||
|| 17·18권 「철종기(哲宗紀)」 ||<-2> 19·20·21·22권 「휘종기(徽宗紀)」 || 23권 「흠종기(欽宗紀)」 ||
||<rowbgcolor=#fff,#191919> 조후 ||<-2> 조길 || 조환 ||
|| 24·25·26·27·28·29·30·31·32권 「고종기(高宗紀)」 ||<-2> 33·34·35권 「효종기(孝宗紀)」 || 36권 「광종기(光宗紀)」 ||
||<rowbgcolor=#fff,#191919> 조구 ||<-2> 조신 || 조돈 ||
||<-2> 37·38·39·40권 「영종기(寧宗紀)」 ||<-2> 41·42·43·44·45권 「이종기(理宗紀)」 ||
||<-2><rowbgcolor=#fff,#191919> 조확 ||<-2> 조윤 ||
||<-2> 46권 「도종기(度宗紀)」 ||<-2> 47권 「영국공기(瀛國公紀)」 ||
||<-2><rowbgcolor=#fff,#191919> 조기(趙禥) ||<-2> 조현 · 조하(趙昰) · 조병 ||
||<-4><width=1000> 242·243권 「후비전(后妃傳)」 ||
||<-4><bgcolor=#fff,#191919> 소헌태후 · 효혜황후 · 효명황후 · 효장황후 · 숙덕황후 · 의덕황후 · 명덕황후 · 원덕황후 · 장회황후 · 장목황후 · 장헌명숙황후 · 장의황후 · 장혜황후 · 소정귀비 · 곽황후 · 자성광헌황후 · 온성황후 · 소절귀비 · 소숙귀비 · 양덕비 · 풍현비 · 선인성렬황후 · 흠성헌숙황후 · 흠성황후 · 흠자황후 · 임현비 · 혜목현비 · 소자성헌황후 · 소회황후 · 현공황후 · 현숙황후 · 의숙귀비 · 현인황후 · 교귀비 · 명달황후 · 인회황후 · 헌절황후 · 헌성자열황후 · 반현비 · 장현비 · 양덕비 · 유완의 · 장귀비 · 성목황후 · 성공황후 · 성숙황후 · 채귀비 · 이현비 · 자의황후 · 황귀비 · 공숙황후 · 공성인열황후 · 사도청 · 전황후 · 양숙비 ||
※ 48권 ~ 209권은 志에 해당. 210권 ~ 241권은 表에 해당. 송사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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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기(本紀) ]

||<tablewidth=100%><tablebgcolor=#2e8b57><width=33%> 1·2·3권 「태조기(太祖紀)」 ||<-2><width=33%> 4·5권 「태종기(太宗紀)」 ||<width=33%> 6·7·8권 「진종기(眞宗紀)」 ||
||<rowbgcolor=#fff,#191919> 조광윤 ||<-2> 조광의 || 조항 ||
|| 9·10·11·12권 「인종기(仁宗紀)」 ||<-2> 13권 「영종기(英宗紀)」 || 14·15·16권 「신종기(神宗紀)」 ||
||<rowbgcolor=#fff,#191919> 조정(趙禎) ||<-2> 조서 || 조욱 ||
|| 17·18권 「철종기(哲宗紀)」 ||<-2> 19·20·21·22권 「휘종기(徽宗紀)」 || 23권 「흠종기(欽宗紀)」 ||
||<rowbgcolor=#fff,#191919> 조후 ||<-2> 조길 || 조환 ||
|| 24·25·26·27·28·29·30·31·32권 「고종기(高宗紀)」 ||<-2> 33·34·35권 「효종기(孝宗紀)」 || 36권 「광종기(光宗紀)」 ||
||<rowbgcolor=#fff,#191919> 조구 ||<-2> 조신 || 조돈 ||
||<-2> 37·38·39·40권 「영종기(寧宗紀)」 ||<-2> 41·42·43·44·45권 「이종기(理宗紀)」 ||
||<-2><rowbgcolor=#fff,#191919> 조확 ||<-2> 조윤 ||
||<-2> 46권 「도종기(度宗紀)」 ||<-2> 47권 「영국공기(瀛國公紀)」 ||
||<-2><rowbgcolor=#fff,#191919> 조기(趙禥) ||<-2> 조현 · 조하(趙昰) · 조병 ||
||<-4><width=1000> 242·243권 「후비전(后妃傳)」 ||
||<-4><bgcolor=#fff,#191919> 소헌태후 · 효혜황후 · 효명황후 · 효장황후 · 숙덕황후 · 의덕황후 · 명덕황후 · 원덕황후 · 장회황후 · 장목황후 · 장헌명숙황후 · 장의황후 · 장혜황후 · 소정귀비 · 곽황후 · 자성광헌황후 · 온성황후 · 소절귀비 · 소숙귀비 · 양덕비 · 풍현비 · 선인성렬황후 · 흠성헌숙황후 · 흠성황후 · 흠자황후 · 임현비 · 혜목현비 · 소자성헌황후 · 소회황후 · 현공황후 · 현숙황후 · 의숙귀비 · 현인황후 · 교귀비 · 명달황후 · 인회황후 · 헌절황후 · 헌성자열황후 · 반현비 · 장현비 · 양덕비 · 유완의 · 장귀비 · 성목황후 · 성공황후 · 성숙황후 · 채귀비 · 이현비 · 자의황후 · 황귀비 · 공숙황후 · 공성인열황후 · 사도청 · 전황후 · 양숙비 ||
※ 48권 ~ 209권은 志에 해당. 210권 ~ 241권은 表에 해당. 송사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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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244·245·246·247권 「종실전(宗室傳)」
조정미 · 조덕소 · 조덕방 · 조원좌 · 조원희 · 조원분 · 조원걸 · 조원악 · 조원칭 · 조원엄 · 조원억 · 조우 · 조윤양 · 조호 · 조군 · 조필 · 조오 · 조사 · 조무 · 조해 · 조추 · 조기(趙杞) · 조허 · 조체 · 조악 · 조식 · 조진(趙榛) · 조심 · 조훈(趙訓) · 조부 · 조거 · 조기(趙愭) · 조개(趙愷) · 조순 · 조횡 · 조자칙 · 조자숭 · 조자력 · 조자지 · 조자주 · 조자숙 · 조사이 · 조희언 · 조희역 · 조사오 · 조사요 · 조사궁 · 조사천 · 조불군 · 조불기 · 조불우 · 조불백 · 조선준 · 조선예 · 조여술 · 조숙근 · 조숙향 · 조언담 · 조언숙 · 조언유
248권 「공주전(公主傳)」
진(秦)국대장공주 · 위(魏)국대장공주 · 노국대장공주 · 진(陳)국대장공주 · 서국대장공주 · 빈국대장공주 · 양국대장공주 · 옹국대장공주 · 위(衛)국대장공주 · 형국대장공주 · 장혜국공주 · 승국대장공주 · 주진국대장공주 · 진로국대장공주 · 곤국대장공주 · 연서국대장공주 · 서국대장공주 · 위초국대장공주 · 위국대장공주 · 한위국대장공주 · 주국장공주 · 당국장공주 · 담국장공주 · 서국장공주 · 진국공주 · 진국장공주 · 가덕제희 · 영덕제희 · 순숙제희 · 안덕제희 · 무덕제희 · 수숙제희 · 안숙제희 · 숭덕제희 · 가국공주 · 문안공주 · 화정공주 · 제안공주 · 안강군주 · 기국공주 · 주한국공주
249권 「범질등전(范質等傳)」
250권 「석수신등전(石守信等傳)」
범질 · 왕부 · 위인포
석수신 · 왕심기 · 고회덕 · 한중윤 · 장령탁 · 나언괴 · 왕언승
251권 「한령곤등전(韓令坤等傳)」
252권 「왕경등전(王景等傳)」
한령곤 · 모용연쇠 · 부언경
왕경 · 왕안 · 곽종의 · 이홍신 · 무행덕 · 양승신 · 후장
253권 「절덕의등전(折德扆等傳)」
254권 「후익등전(侯益等傳)」
절덕의 · 풍계업 · 왕승업 · 이계주 · 손행우
후익 · 장종은 · 호언가 · 설회양 · 조찬 · 이계훈 · 약원복 · 조조
255권 「곽숭등전(郭崇等傳)」
곽숭 · 양정장 · 송악 · 상공 · 왕언초 · 장영덕 · 왕전빈 · 강연택 · 왕계도 · 고언휘
256권 「조보전(趙普傳)」
257권 「오정조등전(吳廷祚等傳)」
258권 「조빈등전(曹彬等傳)」
조보(趙普)
오정조 · 이숭구 · 왕인첨 · 초소보 · 이처운
조빈(曹彬) · 반미 · 이초
259권 「장미등전(張美等傳)」
장미 · 곽수문 · 윤숭가 · 유정양 · 원계충 · 최언진 · 장정한 · 황보계명 · 장경
260권 「조한등전(曹翰等傳)」
조한 · 양사 · 당진(黨進) · 이한경 · 유우(劉遇) · 이회충 · 미신 · 전중진 · 유정한 · 최한
261권 「이경등전(李瓊等傳)」
이경(李瓊) · 곽경 · 진승소 · 이만초 · 백중찬 · 왕인호 · 진사양 · 초계훈 · 유중진 · 원언 · 기정훈 · 장탁 · 이만전 · 전경함 · 왕휘
262권 「이곡등전(李穀等傳)」
이곡 · 잠거윤 · 두정고 · 이도(李濤) · 왕역간 · 조상교 · 장석 · 장주 · 변귀당 · 유온수 · 유도 · 변광범 · 유재(劉載) · 정우(程羽)
263권 「장소등전(張昭等傳)」
264권 「설거정등전(薛居正等傳)」
장소(張昭) · 두의(竇儀) · 여여경 · 유희고 · 석희재 · 이목
설거정 · 심륜 · 노다손 · 송기 · 송웅
265권 「이방등전(李昉等傳)」
266권 「전약수등전(錢若水等傳)」
이방(李昉) · 여몽정 · 장제현 · 가황중
전약수 · 소역간 · 곽지 · 이지 · 신중보 · 왕면 · 온중기 · 왕화기
267권 「장굉등전(張宏等傳)」
268권 「시우석등전(柴禹錫等傳)」
장굉 · 조창언 · 진서 · 유식(劉式) · 유창언 · 장계 · 이유청
시우석 · 장손 · 양수일 · 조용 · 주영 · 왕계영 · 왕현
269권 「도곡등전(陶穀等傳)」
도곡 · 호몽 · 왕저 · 왕우(王祐) · 양소검 · 어숭량 · 장담 · 고석
270권 「안간등전(顏衎等傳)」
안간 · 극가구 · 조봉 · 소요 · 고방 · 풍찬 · 변후 · 왕명 · 허중선 · 양극양 · 단사공 · 후척 · 이부(李符) · 위비 · 동추
271권 「마영종등전(馬令琮等傳)」
마영종 · 두한휘 · 장정한 · 오건유 · 채심정 · 주광 · 장훈 · 석희 · 장장영 · 육만우 · 해휘 · 이도(李韜) · 왕진경 · 곽정위 · 조연진 · 보초
272권 「양업등전(楊業等傳)」
양업 · 형한유 · 조광실 · 장휘 · 사초
273권 「이진경등전(李進卿等傳)」
이진경 · 양미 · 하계균 · 이한초 · 곽진(郭進) ,우사진, · 이겸부 · 요내빈 · 동준회 · 하유충 · 마인우
274권 「왕찬등전(王贊等傳)」
왕찬 · 장보속 · 조빈(趙玭) · 노회충 · 왕계훈 · 정덕유 · 장연통 · 양형 · 사규 · 전흠조 · 후지 · 왕문실 · 적수소 · 왕신(王侁) · 유심경
275권 「유복등전(劉福等傳)」
유복 · 안수충 · 공수정 · 담연미 · 원달 · 상사덕 · 윤계륜 · 설초 ,정한 조도, · 곽밀 ,부사양 이빈(李斌), · 전인랑 · 유겸
276권 「유보훈등전(劉保勳等傳)」
유보훈 · 등중정 · 유반 · 공승공 · 송당 · 원곽 · 번지고 ,곽재, · 장병(臧丙) · 서휴복 · 장관 · 진종신 · 장평 · 왕계승 · 윤헌 · 왕빈(王賓) · 안충
277권 「장감등전(張鑒等傳)」
장감(張鑒) · 요탄 · 삭상 · 송태초 · 노지한 · 정문보 · 왕자여 · 유종 · 변곤 · 허양 · 배장 · 우면 ,장적, · 난숭길 · 원봉길 · 한국화 · 하몽 · 신지례
278권 「마전의등전(馬全義等傳)」
마전의 · 뇌덕양 · 왕초(王超)
279권 「왕계충등전(王繼忠等傳)」
왕계충 · 부잠 · 대흥 · 왕한충 · 왕능 · 장응 · 위능 · 진흥 · 허균 · 장진 · 이중귀 · 호연찬 · 유용 · 경전빈 · 주인미
280권 「전소빈등전(田紹斌等傳)」
전소빈 · 왕영 · 양경(楊瓊) · 전수준 · 서흥 · 왕고 · 이중회 · 백수소 · 장사윤 · 이기 · 왕연범
281권 「여단등전(呂端等傳)」
282권 「이항등전(李沆等傳)」
283권 「왕흠약등전(王欽若等傳)」
여단 · 필사안 · 구준
이항 · 왕단 · 상민중
왕흠약 · 임특 · 정위 · 하송
284권 「진요좌등전(陳堯佐等傳)」
285권 「진집중등전(陳執中等傳)」
286권 「노종도등전(魯宗道等傳)」
진요좌 · 송상
진집중 · 유항 · 가창조 · 양적 · 풍증
노종도 · 설규 · 왕서(王曙) · 채제
287권 「양려등전(楊礪等傳)」
288권 「임중정등전(任中正等傳)」
양려 · 송식 · 양사종 · 이창령 · 조안인 · 진팽년
임중정 · 주기 · 정림 · 강준 · 범옹 · 조진(趙稹) · 임포 · 고약눌 · 손면
289권 「고경등전(髙瓊等傳)」
290권 「조이용등전(曹利用等傳)」
고경 · 범정소 · 갈패
조이용 ,손계엄, · 장기(張耆) · 양숭훈 · 하수은 · 적청 ,장옥 손절, · 곽규
291권 「오육등전(吳育等傳)」
오육 · 송수 · 이약곡 · 왕박문 · 왕종
292권 「이자등전(李諮等傳)」
이자 · 정감 · 하후교 · 성도(盛度) · 정도 · 장관 · 정전 · 명호 · 왕요신 · 손변 · 전황
293권 「전석등전(田錫等傳)」
전석 · 왕우칭 · 장영(張詠) · 왕박문 · 왕종
294권 「장우석등전(掌禹錫等傳)」
장우석 · 소신 · 왕수(王洙) · 서언 · 류식 · 섭관경 · 풍원 · 조사민 · 장석 · 장규 · 양안국
295권 「윤수등전(尹洙等傳)」
윤수 · 손보 · 사강 · 엽청신 · 양찰
296권 「한비등전(韓丕等傳)」
한비 · 사항 · 장무직 · 양호 · 양휘지 · 여문중 · 왕저 · 여우지 · 반신수 · 두호
297권 「공도보등전(孔道輔等傳)」
공도보 · 국영 · 유수 · 조수고 · 곽권 · 단소련
298권 「팽승등전(彭乘等傳)」
팽승 · 혜영 · 매지 · 사마지 · 이급 · 연숙 · 장당 · 유기(劉夔) · 마량 · 진희량
299권 「적비등전(狄棐等傳)」
적비 · 낭간 · 손조덕 · 장약곡 · 석양휴 · 조사형 · 이수 · 장동 · 이사형 · 이부(李溥) · 호칙 · 설안 · 허원 · 종리근 · 손충 · 최역 · 전유 · 시창언
300권 「양해등전(楊偕等傳)」
양해 · 왕연(王沿) · 두기 · 양전(楊畋) · 주담 · 서적(徐的) · 요중손 · 진태소 ,마심 두증, · 이허기 · 장부 · 유헌경 · 진종역 · 양대아
301권 「변숙등전(邊肅等傳)」
변숙 · 매순 · 마원방 · 설전 · 구감 · 양일엄 · 이행간 · 장빈 · 진염 · 이유 · 장병(張秉) · 장택행 · 정향 · 곽진(郭稹) · 조하(趙賀) · 고적(高覿) · 원항 · 서기 · 장지 · 제곽 · 정양
302권 「왕진등전(王臻等傳)」
왕진 · 어주순 · 가암 · 이경(李京) · 여경초 · 오급 · 범사도 · 이현(李絢) · 하중립 · 심막
303권 「장온지등전(張昷之等傳)」
장온지 · 위관 · 등종량 · 이방(李防) · 조상 · 당숙 · 장술 · 황진(黃震) · 호순지 · 진관(陳貫) · 범상 · 전경
304권 「주위등전(周渭等傳)」
주위 · 양정(梁鼎) · 범정사 · 유사도 · 왕제 · 방해 · 조영숙 · 유원유 · 양고 · 조급 · 유식(劉湜) · 왕빈(王彬) · 중간
305권 「양억등전(楊億等傳)」
306권 「사필등전(謝泌等傳)」
양억 · 조형 · 유균 · 설앙
사필 · 손하 · 주태부 · 척륜 · 장거화 · 악황목 · 시성무
307권 「교유악등전(喬維岳等傳)」
교유악 · 왕척 · 장옹 · 동엄 · 위정식 · 노염 · 송단 · 능책 · 양담 · 진세경 · 이약졸 · 진지미
308권 「상관정등전(上官正等傳)」
상관정 · 노빈 · 주심옥 · 배제 · 이계선 · 장단 · 장후 · 장길
309권 「왕연덕등전(王延德等傳)」
왕연덕 · 상연신 · 정덕현 · 우연덕 · 위진(魏震) · 장질 · 양윤공 · 진희 · 사덕권 · 염일신 · 근회덕
310권 「이적등전(李迪等傳)」
311권 「안수등전(晏殊等傳)」
이적 · 왕증 · 장지백 · 두연
안수 · 방적 · 왕수(王隨) · 장득상 · 여이간 · 장사손
312권 「한기등전(韓琦等傳)」
313권 「부필등전(富弼等傳)」
314권 「범중엄등전(范仲淹等傳)」
한기 · 증공량 · 진승지 · 오충 · 왕규
부필 · 문언박
범중엄 · 범순인
315권 「한억전(韓億傳)」
316권 「포증등전(包拯等傳)」
317권 「소항등전(邵亢等傳)」
한억
포증 · 오규 · 조변 · 당개
소항 · 풍경 · 전유연
318권 「장방평등전(張方平等傳)」
319권 「구양수등전(歐陽修等傳)」
320권 「채양등전(蔡襄等傳)」
장방평 · 왕공진 · 장변 · 조개(趙槩) · 호숙
구양수 · 유창(劉敞) · 증공
채양 · 여진 · 왕소(王素) · 여정 · 팽사영 · 장존
321권 「정해등전(鄭獬等傳)」
정해 · 진양(陳襄) · 전공보 · 손수 · 풍직 · 여회 · 유술 · 유기(劉琦) · 전의 · 정협
322권 「하담등전(何郯等傳)」
하담(何郯) · 오중복 · 진천 · 왕렵 · 손사공 · 주맹양 · 제회 · 양회 · 유상 · 주경(朱京)
323권 「울소민등전(蔚昭敏等傳)」
울소민 · 고화 · 주미 · 염수공 · 맹원 · 유겸 · 조진(趙振) · 장충 · 범각 · 마회덕 · 안준 · 상보
324권 「석보등전(石普等傳)」
325권 「유평등전(劉平等傳)」
석보 · 장자 · 허회덕 · 이윤칙 · 장항 · 유문질 · 조자
유평 · 임복 · 왕규 · 무영 · 상역 · 경부 · 왕중보
326권 「경태등전(景泰等傳)」
경태 · 왕신(王信) · 장해 · 장충 · 곽은 · 장절(張岊) · 장군평 · 사방 · 노감 · 이위 · 왕과 · 곽자 · 전민 · 시기서 · 강덕여 · 장소원
327권 「왕안석등전(王安石等傳)」
왕안석 · 왕안례 · 왕안국
328권 「이청신등전(李淸臣等傳)」
이청신 · 안도 · 장조(張璪) · 포종맹 · 황리 · 채정(蔡挺) · 왕소(王韶) · 설향 · 장절(章楶)
329권 「상질등전(常秩等傳)」
상질 · 등관 · 이정(李定) · 서단 · 건주보 · 서탁 · 왕광연 · 왕도 · 왕자소 · 하정신 · 진역
330권 「임전등전(任顓等傳)」
임전 · 이참 · 곽신창 · 부구 · 장경헌 · 두변 · 장괴 · 손유 · 허준 · 노사종 · 전상선 · 두순 · 두상 · 사린 · 왕종망 · 왕길보
331권 「손장경등전(孫長卿等傳)」
손장경 · 주항 · 이중사 · 나증 · 마중보 · 왕거경 · 손구 · 장선 · 소심 · 마종선 · 심구 · 이대림 · 여하경 · 조무택 · 정사맹 · 장문 ,진순유 악경 유몽, · 묘시중 · 한지 · 초건중 · 장힐 · 노혁
332권 「등원발등전(滕元發等傳)」
등원발 · 이사중 · 육선 · 조설 · 손로 · 유사웅 · 목연
333권 「양좌등전(楊佐等傳)」
양좌 · 이태(李兌) · 심립 · 장섬 · 장도 · 유충 · 유근 · 염순 · 갈궁 · 장전 · 영인 · 이재 · 요환 · 주경(朱景) · 이종 · 주수륭 · 노사굉 · 단후 · 양중원 · 여양굉 · 반숙
334권 「등원발등전(滕元發等傳)」
서희 ,이직(李稷), · 고영능 · 심기(沈起) · 유이 · 웅본 · 소주 · 도필 · 임광
335권 「충세형전(种世衡傳)」
336권 「사마광등전(司馬光等傳)」
337권 「범진전(范鎭傳)」
충세형
사마광 · 여공저
범진
338권 「소식전(蘇軾傳)」
339권 「소철전(蘇轍傳)」
340권 「여대방등전(呂大防等傳)」
소식
소철
여대방 · 유지 · 소송
341권 「왕존등전(王存等傳)」
342권 「양도등전(梁燾等傳)」
왕존 · 손고(孫固) · 조첨 · 부요유
양도 · 왕암수 · 정옹 · 손영
343권 「원강등전(元絳等傳)」
344권 「손각등전(孫覺等傳)」
원강 · 허장 · 등윤보 · 임희 · 장지기 · 육전 · 오거후 · 온익
손각 · 이상(李常) · 공문중 · 이주 · 선우신 · 고림 · 이지순 · 왕적 · 마묵
345권 「유안세등전(劉安世等傳)」
유안세 · 추호 ,전주 왕회(王回) 증탄, · 진관(陳瓘) · 임백우
346권 「진차승등전(陳次升等傳)」
진차승 · 진사석 · 팽여려 · 여도 · 장정견 · 공결 · 손악 · 진헌 · 강공망 · 진우 · 상안민
347권 「손고등전(孫鼛等傳)」
손고(孫鼛) · 오시 · 이소기 · 오사례 · 왕한지 · 황렴 · 주복 · 장순민 · 성도(盛陶) · 장형 · 안복 · 손승 · 한천 · 공정신 · 정목 · 석단 · 교집중
348권 「부즙등전(傅楫等傳)」
부즙 · 심기(沈畸) ,소복, · 서적(徐勣) · 장여명 · 황보광 · 석공필 ,장극공, · 모주 · 홍언승 · 종전 · 도절부 · 모잠 · 왕조도 · 장장 · 조휼
349권 「학질등전(郝質等傳)」
학질 · 가규 · 두순경 · 유창조 · 노정 · 연달 · 요시 · 양수 · 유순경 · 송수약
350권 「묘수등전(苗授等傳)」
묘수 · 왕군만 · 장수약 · 왕문욱 · 주영청 · 유소능 · 왕광조 · 이호 · 화빈 · 유중무 · 곡진 · 유격 · 곽성 · 가암 · 장정(張整) · 장온 · 왕은 · 양응순 · 조륭
351권 「조정지등전(趙挺之等傳)」
조정지 · 장상영 · 유정부 · 하집중 · 정거중 · 안요신 · 장강국 · 주악 · 유규 · 임터 · 관사인 · 후몽
352권 「당각등전(唐恪等傳)」
당각 · 이방언 ,여심 설앙 오민 왕안중 왕양 조야 조보(曹輔) 경남중 왕우(王㝢),
353권 「하율등전(何㮚等傳)」
하율 · 손부 · 진과정 · 장숙야 · 섭창 · 장각(張閣) · 장근(張近) · 정근 · 우문창령 · 허기 · 정지소 · 공원 · 최공도 · 포유
354권 「심수등전(沈銖等傳)」
심수 · 노창형 · 사문관 · 육온 · 황식 · 요우 · 누이 · 심적중 · 이백종 · 왕해 · 하상 · 엽조흡 · 시언 · 최단우 · 유율 · 채의
355권 「가역등전(賈易等傳)」
가역 · 동돈일 · 상관균 · 내지소 · 엽도 · 양외 · 최태부 · 양급 · 여가문 · 이남공 · 동필 · 우책 · 곽지장
356권 「유증등전(劉拯等傳)」
유증 · 전휼 · 석예 · 좌부 · 허돈인 · 오집중 · 오재 · 유병 · 송교년 · 강연명 · 채거후 · 유사명 · 장정(蔣靜) · 가위절 · 최언 · 장근(張根) · 임량 · 주상
357권 「하관등전(何灌等傳)」
358·359권 「이강전(李綱傳)」
하관 · 이희정 · 왕운 · 담세적 · 매집례 · 정진(程振) · 유연경
이강
360권 「종택등전(宗澤等傳)」
361권 「장준전(張浚傳)」
종택 · 조정(趙鼎)
장준(張浚)
362권 「주승비등전(朱勝非等傳)」
363권 「이광등전(李光等傳)」
주승비 · 여이호 · 범종윤 · 범치허 · 여호문
이광 · 허한 · 허경형 · 장각(張愨) · 장소(張所) · 진화 · 장유(蔣猷)
364권 「한세충전(韓世忠傳)」
365권 「악비전(岳飛傳)」
366권 「유기등전(劉錡等傳)」
한세충
악비
유기(劉錡) · 오개 · 오린
367권 「이현충등전(李顯忠等傳)」
368권 「왕덕등전(王德等傳)」
이현충 · 양존중 · 곽호(郭浩) · 양정(楊政)
왕덕 · 왕언 · 위승 · 장헌 · 양재흥 · 우고 · 호굉휴
369권 「장준등전(張俊等傳)」
370권 「왕우직등전(王友直等傳)」
장준(張俊) · 장종안 · 유광세 · 왕연(王淵) · 해원 · 곡단
왕우직 · 이보 · 성민 · 조밀 · 유자우 · 여지 · 호세장 · 정강중
371권 「백시중등전(白時中等傳)」
백시중 · 서처인 · 풍해 · 왕륜(王倫) · 우문허중 · 탕사퇴
372권 「주탁등전(朱倬等傳)」
주탁 · 왕륜(王綸) · 윤색 · 왕지망 · 서부 · 심여구 · 적여문 · 왕서(王庶) · 신병
373권 「주변등전(朱弁等傳)」
374권 「장구성등전(張九成等傳)」
주변 · 정망지 · 장소(張邵) · 홍호
장구성 · 호전 · 요강 · 이태(李迨) · 조개(趙開)
375권 「등숙등전(鄧肅等傳)」
376권 「상동등전(常同等傳)」
등숙 · 이병 · 등강 · 장수 · 부직유 · 풍강국
상동 · 장치원 · 설휘언 · 진연 · 위강 · 반량귀 · 여본중
377권 「상자인등전(向子諲等傳)」
상자인 · 진규(陳規) · 이릉 · 노지원 · 이구(李璆) · 이박 · 왕상 · 왕의 · 진각
378권 「위부민등전(衞膚敏等傳)」
위부민 · 유각 · 호순척 · 심해 · 유일지 · 호교수 · 기숭례
379권 「장의등전(章誼等傳)」
장의 · 한초주 · 진공보 · 장학 · 호송년 · 조훈(曹勛) · 이직(李稙) · 한공예
380권 「하주등전(何鑄等傳)」
하주 · 왕차옹 · 범동 · 양원 · 누소 · 구룡여연 · 설필 · 나여즙 · 소진
381권 「범여규등전(范如圭等傳)」
범여규 · 오표신 · 왕거정 · 안돈복 · 황귀년 · 정우(程瑀) · 장천 · 홍의 · 조규(趙逵)
382권 「장도등전(張燾等傳)」
383권 「진준경등전(陳俊卿等傳)」
장도 · 황중 · 손도부 · 증기 · 구도 · 이미손
진준경 · 우윤문 · 신차응
384권 「진강백등전(陳康伯等傳)」
385권 「갈필등전(葛邲等傳)」
진강백 · 양극가 · 왕철 · 엽의문 · 장패 · 엽옹 · 엽형
갈필 · 전단례 · 위기 · 주규 · 시사점 · 소수 · 공무량
386권 「유공등전(劉珙等傳)」
387권 「황흡등전(黃洽等傳)」
유공 · 왕린 · 황조순 · 왕대보 · 금안절 · 왕강중 · 이언영 · 범성대
황흡 · 왕응진 · 왕십붕 · 오패 · 진량한 · 두신로
388권 「주집고등전(周執羔等傳)」
389권 「우무등전(尤袤等傳)」
주집고 · 왕희여 · 진양우 · 이호 · 진탁 · 호기 · 당문약 · 이도(李燾)
우무 · 사악 · 안사로 · 원추 · 이춘 · 유의봉 · 장효상
390권 「이형등전(李衡等傳)」
이형 · 왕자중 · 가원 · 장강 · 장대경 · 채광 · 막몽 · 주종 · 유장 · 심작빈
391권 「주필대등전(周必大等傳)」
392권 「조여우전(趙汝愚傳)」
주필대 · 유정 · 호진신
조여우
393권 「팽귀년등전(彭龜年等傳)」
팽귀년 · 황상 · 나점 · 황도 ,주남, 임대중 · 진규(陳騤) · 황보 · 첨체인
394권 「호굉등전(胡紘等傳)」
호굉 · 하담(何澹) · 임율 · 고문호 · 진자강 · 정병 · 경당 · 사심보 · 허급지 · 양여가
395권 「누약등전(樓鑰等傳)」
누약 · 이대성 · 임희이 · 서응룡 · 장하 · 왕원 · 왕질 · 육유 · 방신유 · 왕남
396권 「사호등전(史浩等傳)」
397권 「서의등전(徐誼等傳)」
사호 · 왕회(王淮) · 조웅 · 권방언 · 정송 · 진겸 · 장암
서의 · 오렵 · 항안세 · 설숙사 · 유갑 · 양보 · 유광조
398권 「여단례등전(余端禮等傳)」
399권 「정각등전(鄭瑴等傳)」
여단례 · 이벽 · 구화 · 예사 · 우문소절 · 이번(李蘩)
정각 · 왕정수 · 구여 · 고등 · 누인량 · 송여위
400권 「왕신등전(王信等傳)」
왕신(王信) · 왕대유 · 원섭 · 오유승 · 유중홍 · 이상(李祥) · 왕개 · 송덕지 · 양대전
401권 「신기질등전(辛棄疾等傳)」
402권 「진민등전(陳敏等傳)」
신기질 · 하이 · 유재(劉宰) · 류약 · 시중행 · 이맹전
진민 · 장조(張詔) · 필재우 · 안병 · 양거원 · 이호의
403권 「조방등전(趙方等傳)」
404권 「왕약해등전(汪若海等傳)」
조방 · 가섭 · 호재흥 · 맹종정 · 장위
왕약해 · 장운 · 류약 · 이순신 · 손봉길 · 장영(章穎) · 상비경 · 유영 · 서방헌
405권 「이종면등전(李宗勉等傳)」
406권 「최여지등전(崔與之等傳)」
407권 「두범등전(杜範等傳)」
이종면 · 원보 · 유불 · 왕안거
최여지 · 홍자기 · 허혁 · 진거인 · 유한필
두범 · 양간 · 전시 · 장복 · 여오
408권 「오창예등전(呉昌裔等傳)」
409권 「고정자등전(高定子等傳)」
410권 「누기등전(婁機等傳)」
오창예 · 왕강 · 진복 · 왕정
고정자 · 고사득 · 장충서 · 당린
누기 · 심환 · 조언약 · 범응령 · 서경손
411권 「탕숙등전(湯璹等傳)」
412권 「맹공등전(孟珙等傳)」
탕숙 · 장중진 · 모자재 · 주비손 · 구양수도
맹공 · 두고 · 왕등 · 양섬 · 장유효 · 진함
413권 「조여담등전(趙汝談等傳)」
414권 「사미원등전(史彌遠等傳)」
조여담 · 조여당 · 조희관 · 조언눌 · 조선상 · 조여환 · 조필원
사미원 · 정청지 · 사숭지 · 동괴 · 엽몽정 · 마정란
415권 「부백성등전(傅伯成等傳)」
부백성 · 갈홍 · 증삼복 · 황주약 · 원소 · 위진(危稹) · 정공허 · 나필원 · 왕수(王遂)
416권 「오연등전(吳淵等傳)」
오연 · 여개 · 왕입신 · 상사벽 · 호영 · 냉응징 · 조숙원 · 왕만 · 마광조
417권 「교행간등전(喬行簡等傳)」
418권 「오잠등전(呉潛等傳)」
교행간 · 범종 · 유사 · 조규(趙葵) · 사방숙
오잠 · 정원봉 · 강만리 · 왕약 · 장감(章鑑) · 진의중 · 문천상
419권 「선증등전(宣繒等傳)」
선증 · 설극 · 진귀의 · 증종룡 · 정성지 · 이명복 · 추응룡 · 여천석 · 허응룡 · 임략 · 서영수 · 별지걸 · 유백정 · 김연 · 이성전 · 진위 · 최복
420권 「왕백대등전(王伯大等傳)」
왕백대 · 정채 · 응요 · 서청수 · 이증백 · 왕야 · 채항 · 장반 · 마천기 · 주습 · 요호신 · 대경가 · 피룡영 · 심염
421권 「양동등전(楊棟等傳)」
양동 · 요희득 · 포회 · 상정 · 진종례 · 상무 · 가현옹 · 이정지
422권 「임훈등전(林勳等傳)」
임훈 · 유재소 · 허흔 · 응맹명 · 증삼빙 · 서교 · 도정 · 정필 · 우대년 · 진중미 · 양성대 · 이지효
423권 「오영등전(吳泳等傳)」
오영(吳泳) · 서범 · 이소 · 왕매 · 사미공 · 진훈 · 조여주 · 이대동 · 황순 · 양대이
424권 「육지지등전(陸持之等傳)」
육지지 · 서록경 · 조봉룡 · 조여등 · 손몽관 · 홍천석 · 황사옹 · 서원걸 · 손자수 · 이백옥
425권 「유응룡등전(劉應龍等傳)」
유응룡 · 반방 · 홍근 · 조경위 · 풍거비 · 서림 · 서종인 · 위소덕 · 진개 · 양문중 · 사방득
426권 「순리전(循吏傳)」
진정 · 장륜 · 소엽 · 최립 · 노유개 · 장일 · 오준로 · 조상관 · 고부 · 정사맹 · 한진경 · 엽강직
427·428·429·430권 「도학전(道學傳)」
주돈이 · 정호 · 정이 · 장재 · 소옹 · 유현 · 이유 · 사량좌 · 유초 · 장역 · 소병 · 윤돈 · 양시 · 나종언 · 이동 · 주희 · 장식 · 황간 · 이번(李燔) · 장흡 · 진순 · 이방자 · 황호
431·432·433·434·435·436·437·438권 「유학전(儒學傳)」
섭숭의 · 형병 · 손기 · 왕소소 · 공유 · 공의 · 최송 · 윤졸 · 전민 · 신문열 · 이각 · 최이정 · 이지재 · 호탄 · 가동 · 유안(劉顔) · 고변 · 손복 · 석개 · 호원 · 유희수 · 임개 · 이구(李覯) · 하섭 · 왕회(王回) · 주요경 · 왕당 · 진양(陳暘) · 소백온 · 유저 · 홍흥조 · 고항 · 정대창 · 임지기 · 임광조 · 양만리 · 유자휘 · 여조겸 · 채원정 · 육구령 · 육구연 · 설계선 · 진부량 · 엽적 · 대계 · 채유학 · 양태지 · 범충 · 주진 · 호안국 · 진량 · 정초 · 이도전 · 정형 · 유청지 · 진덕수 · 위료옹 · 요덕명 · 탕한 · 하기 · 왕백 · 서몽신 · 이심전 · 엽미도 · 왕응린 · 황진(黃進)
439·440·441·442·443·444·445권 「문원전(文苑傳)」
송백 · 양주한 · 주앙 · 조린기 · 정기 · 곽욱 · 마응 · 화현 · 풍길 · 고적(高頔) · 이도(李度) · 한부 · 국상 · 송준 · 류개 · 하후가정 · 나처약 · 안덕유 · 전희 · 진충 · 오숙 · 황이간 · 서현 · 구중정 · 증치요 · 조간 · 요현 · 이건중 · 홍담 · 노진 · 최준도 · 진월 · 목수 · 석연년 · 소관 · 소순흠 · 윤원 · 황항 · 황감 · 양파 · 안태초 · 곽충서 · 매요신 · 강휴복 · 소순 · 장망지 · 왕봉 · 손당경 · 당경 · 문동 · 양걸 · 하주 · 유경 · 포유 · 황백사 · 황정견 · 조보지 · 진관(秦觀) · 장뢰 · 진사도 · 이치 · 유서 · 왕무구 · 채조 · 이격비 · 여남공 · 곽상정 · 미패 · 유선 · 예도 · 이공린 · 주방언 · 주장문 · 유엄 · 진여의 · 왕조 · 엽몽득 · 정구 · 장얼 · 한구 · 주돈유 · 갈승중 · 웅극 · 장즉지
446·447·448·449·450·451·452·453·454·455권 「충의전(忠義傳)」
강보예 · 마수 · 동원형 · 조근 · 소함 · 진전서 · 첨량신 · 이약수 · 유겹 · 부찰 · 양진 · 장극전 · 장확 · 주소 · 사항 · 손익(孫翊) · 곽안국 · 이연 · 이막 · 서규 · 진구 · 조불시 · 조령성 · 당중 · 서휘언 · 상자소 · 양방예 · 증고 · 유급 · 정양 · 여유성 · 곽영 · 한호 · 구양순 · 장충보 · 이언선 · 조립 · 왕충식 · 당기 · 이진 · 진구도 · 최종 · 임충지 · 등무실 · 위행가 · 염진 · 조사가 · 역청 · 호빈 · 범왕 · 마준 · 양진중 · 고가 · 조우문 · 진인 · 허표손 · 진륭지 · 왕익 · 이성지 · 진원규 · 장순 · 범천순 · 우부 · 변거의 · 진소 · 윤옥 · 이불 · 윤곡 · 조묘발 · 당진(唐震) · 조여석 · 조회 · 조양순 · 강재 · 마기 · 밀우 · 장세걸 · 육수부 · 서응표 · 진문룡 · 등득우 · 장각(張珏) · 고민 · 경사충 · 왕기 · 장흥조 · 곽호(郭滸) · 오혁 · 이익 · 조사륭 · 진쉬 · 황우 · 학중련 · 유유보 · 우호 · 위언명 · 유사영 · 적흥 · 주필 · 공즙 · 이긍 · 능당좌 · 양수중 · 강예 · 곽선 · 사마몽구 · 임공재 · 황개 · 손익(孫益) · 왕선 · 오초재 · 이성대 · 도거인 · 고영년 · 국사복 · 손소원 · 증효서 · 조백진 · 왕사언 · 설경 · 손휘 · 송창조 · 이정(李政) · 강수 · 유선 · 굴견 · 정담 · 요흥 · 장기(張玘) · 왕공 · 유태 · 손봉 · 유화원 · 호당로 · 왕주 · 유안(劉晏) · 정진(鄭振) · 맹언경 · 고담 · 연만부 · 설양현 · 당민구 · 왕사도 · 조시상 · 조희계 · 유자천 · 여문신 · 종계옥 · 경세안 · 정보 · 미립 · 후핍 · 왕효충 · 고응송 · 장선옹 · 황신 · 진달 · 소뇌룡 · 추붕 · 유사소 · 진동 · 구양철 · 마신 · 여조검 · 양굉중 · 화악 · 등약수 · 진보 · 모겸지 · 서도명
456권 「효우전(孝友傳)」
이린 · 서승규 · 유효충 · 여승 · 나거통 · 제득일 · 이한징 · 형신류 · 허조 · 호중요 · 진긍 · 홍문무 · 역연경 · 동도명 · 곽종 · 고흔 · 주태 · 성상 · 진사도 · 방강 · 방천우 · 유빈 · 번경온 · 영서민 · 기위 · 하보지 · 이빈(李玭) · 후의 · 왕광제 · 강백 · 구승순 · 상진 · 두의(杜誼) · 요종명 · 등중화 · 모안여 · 이방(李訪) · 주수창 · 후가 · 신적중 · 학인 · 지점 · 등종고 · 심선 · 소경문 · 태형 · 앙흔 · 조백심 · 팽유 · 모순 · 양경(楊慶) · 진종 · 곽의 · 신세녕 · 구여령 · 왕주(王珠) · 안후 · 장백위 · 채정(蔡定) · 정기
457·458·459권 「은일·탁행전(隱逸卓行傳)」
척동문 · 진단 · 충방 · 만적 · 이독 · 위야 · 형돈 · 임보 · 고역 · 서복 · 공민 · 하군 · 왕초(王樵) · 장유(張愈) · 황희 · 주계명 · 대연 · 진열 · 손모 · 유역 · 강잠 · 연서 · 장찰 · 유여상 · 양효본 · 등고보 · 우문지소 · 오영(吳瑛) · 송강어옹 · 두생 · 순창선인 · 남안옹 · 장여 · 서중행 · 소운경 · 초정 · 왕충민 · 유면지 · 호헌 · 곽옹 · 유우(劉愚) · 위섬지 · 안세통 · 유정식 · 소곡 · 서적(徐積) · 증숙경 · 유영일
460권 「열녀전(列女傳)」
주아 · 학절아 · 진당전 · 여양자 · 동팔나 · 한희맹 · 모석석
461·462권 「방기전(方伎傳)」
조수기 · 왕처눌 · 묘훈 · 마소 · 초지란 · 한현부 · 사서 · 주극명 · 유한 · 왕회은 · 조자화 · 풍문지 · 홍온 · 소징은 · 정소미 · 조자연 · 하란서진 · 시통현 · 견서진 · 초연 · 지언 · 회병 · 허희 · 방안시 · 전을 · 지연 · 곽천신 · 위한진 · 왕노지 · 왕자석 · 임령소 · 황보탄 · 왕극명 · 사의도인 · 손수영
463·464·465권 「외척전(外戚傳)」
두심기 · 하령도 · 왕계훈 · 유지신 · 유문유 · 유미 · 곽숭인 · 양경종 · 부유충 · 시종경 · 장요좌 · 왕이영 · 이소량 · 이용화 · 이준욱 · 조일 · 고준유 · 상전범 · 장돈례 · 임택 · 맹충후 · 위연 · 전침 · 형환 · 반영사 · 오익 · 이도(李道) · 정흥예 · 양차산
466·467·468·469권 「환자전(宦者傳)」
두신보 · 왕인예 · 왕계은 · 이신복 · 유승계 · 염승한 · 진한 · 주회정 · 장귀숭 · 장계능 · 위소흠 · 석지옹 · 등수은 · 양수진 · 한수영 · 남계종 · 장유길 · 감소길 · 노수근 · 왕수규 · 이헌 · 장무칙 · 송용신 · 왕중정 · 이순거 · 석득일 · 양종길 · 유유간 · 이상(李祥) · 진연 · 풍세녕 · 이계화 · 고거간 · 정방 · 소이섭 · 뇌윤공 · 염문응 · 임수충 · 동관 · 양사성 · 양전(楊戩) · 소성장 · 남규 · 풍익 · 마거위 · 진원 · 감변 · 왕덕겸 · 관례 · 동송신
470권 「영행전(佞幸傳)」
미덕초 · 후막진리용 · 조찬 · 왕보 · 주면 · 왕계선 · 증적 · 장설 · 왕변 · 강특립
471·472·473·474권 「간신전(姦臣傳)」
채확 · 형서 · 여혜경 · 장돈 · 증포 · 안돈 · 채경 · 조양사 · 장각(張覺) · 곽약사 · 황잠선 · 왕백언 · 진회 · 묵기설 · 한탁주 · 정대전 · 가사도
475·476·477권 「반신전(叛臣傳)」
장방창 · 유예 · 묘부 · 두충 · 오희 · 이전
478권 「남당세가(南唐世家)」
479권 「서촉세가(西蜀世家)」
480권 「오월세가(吳越世家)」
이경(李景)
맹창
전홍숙
481권 「남한세가(南漢世家)」
482권 「북한세가(北漢世家)」
483권 「호남·형남·장천·진세가(湖南荊南漳泉陳世家)」
유창(劉鋹)
유계원
주행봉 · 고보융 · 유종효 · 진홍진
484권 「주3신전(周三臣傳)」
한통 · 이균 · 이중진
485·486·487·488·489·490·491·492권 「외국전(外國傳)」
서하 · 고려 · 교지(정조전여조이조진조) · 대리 · 점성 · 진랍 · 포감 · 막려 · 삼불제 · 도파 · 발니 · 주련 · 단미류 · 천축국 · 우전 · 고창 · 회골 · 대식국 · 층단국 · 구차 · 사주 · 불름국 · 유구국 · 정안국 · 발해 · 일본 · 당항 · 토번
493·494·495·496권 「만이전(蠻夷傳)」
계동만 · 매산동만 · 성주만 · 휘주만 · 남단주만 · 무수주만 · 황원주만 · 여동만 · 환주만 · 서남이 · 여주만 · 공부천 · 풍파마 · 보새만 · 미강만 · 동만 · 석문부 · 남광만 · 보패만 · 무주박 · 유주만 · 검주만 · 시주만 · 고주만 · 육수만 · 준자만



1. 개요
2. 생애
2.1. 뜻을 굽히지 않고 금에 대항하다
2.2. 지략으로 해주를 취하다
2.3. 금군에 위세를 떨치다
2.4. 공동의 적에 공동으로 대항하다
2.5. 격앙된 비가



1. 개요[편집]


魏勝, 1120~1164
남송의 항금명장. 자는 언위(彦威), 숙천(宿遷, 지금의 강소 숙천 서남) 사람으로,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2. 생애[편집]



2.1. 뜻을 굽히지 않고 금에 대항하다[편집]


농민 출신으로, 정강 2년(1127년)에 금군이 송나라 변경을 함락하여 휘종과 흠종을 생포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숙천은 금나라에 함락되었다. 고향 어른들이 금군에게 유린을 당하자 금군을 뼈저리게 원망하며 기량을 다져 고향 사람들의 복수를 맹세했고, 어른들에게 말타기, 활쏘기, 포 쏘기 등을 배웠다.

소흥 4년(1134년), 회초 일대에 한세충이 병사를 감독하고 있었고 위승은 6년 동안 초주를 다스렸는데, 그는 한세충에 대한 지극한 존경심과 금에 대한 뼈아픈 원한을 품고 가족을 이끌고 초주로 이주해 궁수가 되었다.

소흥 10년(1140년), 항금승전보가 잇달아 전해져 변경을 되찾으려 할 때 고종은 제위를 지키려 애썼고, 진회의 사주로 각 부에 공격을 중지시켰다.

소흥 11년(1141년) 5월 회중에서 10여 년 동안 금은 감히 범하지 못하던 한세충이 진강에 옮겨져 금에 저항하던 호황이 이렇게 매장된 것을 못마땅해 하는 위승이 금병의 동선을 살피고 그들의 정보를 염탐하려고 산양에 은신했다. 소흥화의 이후 늘 소금장수 및 장인으로 변장하여 회하를 건너 연수·해주에 이르렀고, 기주 등지에서 금의 군정을 염탐했다.


2.2. 지략으로 해주를 취하다[편집]


소흥 31년(1161년)에 다시 회수를 건너 정찰을 하던 도중 해릉양왕이 해주, 연수 일대에서 활동하면서 양식과 기구를 모아 각지에서 징집하고 남침을 대거 징집하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보고하여 금병을 틈타 연수를 습격할 것을 건의하였지만 기각되었다.[1][2] 그러자 자원한 의사 300명을 모아놓고 연설하여 밤새 회하를 건너 연수성을 점령한다.

지금 금나라 사람들은 일심으로 우리를 때리려 하지 않고, 우리도 그들을 때리려 하지 않는다. 이것은 바로 우리가 잃어버린 땅을 되찾을 절호의 기회다.

연수성을 점령한 뒤 부하들에게 단 한 명도 죽이지 말라고 명령했다. 그는 성안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연설하였고 백성들은 위승에게 호응했다.

연수는 송나라 땅이었다. 회북이 금에 점령된 후부터 사람들은 금에 유린당하였다. 내 고향 숙천이 연수가 함락된 것보다 앞서 망국노가 된 아픔을 잘 알고 있는 터라 이제 금주가 배신하고 또 남침을 원하니 너희는 조정에 복귀하지 말고 나와 함께 실지를 되찾으란 말이냐?

그의 군대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는 꿈에도 송나라로 돌아가고 싶다.

위승의 충의군에는 수백 명이 참여했고, 연수민의 지지를 받아 충의군은 해주로 직진했다.
고문부는 위승이 연수를 점령했다는 소식을 듣고 군대를 보냈다. 해주에서 남쪽으로 80리 떨어진 대이산으로 진군했을 때 위승이 칼을 휘두르며 앞장섰을 뿐 나머지 전사들은 뒤를 따라 용감하게 돌격했다. 고문부는 말을 몰아 달아나 성 안으로 물러났다. 충의군은 5~6백 명에 불과했지만 용감히 싸웠다. 이에 위승이 명하여 바닷가로 돌아가서 바다에서 상륙한 것처럼 꾸미고 부하들을 주성 사면에 깃발을 높이 세우고 불꽃을 많이 들어 의병이라 하였다. 이렇게 되자 고문부는 위승인마가 많은 줄 알고 놀라서 성문을 굳게 닫았고, 수천 군대의 병사가 있음에도 감히 성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백성들을 성으로 내몰아 그를 위해 성을 지켰다. 위승은 본 후에 이 한나라를 안다간사한 자가 겁도 없고 인심도 좋지 아니하여 각 성문에 사람을 보내어 수성 백성에게 백성들을 해치지 않겠다고 선전하여 수성 백성들은 기쁨이 하늘을 찌르자 성문을 열고 위승을 맞이했고, 자동으로 길잡이 역할을 하며 주아를 향해 공격을 감행했다. 고문부와 그 아들 안인은 천여 명의 치병을 거느리고 거역하며 완강하게 저항하였다. 위승은 수십 명의 용예지사를 성루에 등반시켰고, 자신은 부대를 이끌고 초문 안에서 고안인과 대전을 벌였다.충의군 용사는 일당십으로 고안인과 그 수하들을 모두 소멸시키고 고문부를 생포하였다.

해주를 점령한 후 권지주사가 되었다. 그는 유흉산, 회인, 수양, 동해의 여러 현에 사람을 보내 각지에서 망을 보고 귀순하였다.그리하여 조세를 면제하고 죄수를 석방하며 창고를 열어 빈민을 구제하고 전사를 위로하였다.충의군은 군기가 엄숙하고 백성들의 추대를 받는다.위승은 스스로 도통제를 겸하여 충의를 널리 모아서 빼앗긴 땅을 되찾으려 하였는데, 순일문만 해도 수천 장의 장사가 응모하였다.그는 부대를 5군으로 나눠 이를 상수에 보고하고 군복 기갑을 받기를 원했다. 그러나 초주 난지주 등은 금인이 남침에 배맹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정의 화의를 두려워하는 세력 때문에 이를 보고하지 못해 위승의 충의군은 무기를 공급받지 못했다. 병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좌군은 둥청을 통제하여 공격 준비를 하였다. 기주를 치자 위승은 탐정하고 동성에게 훈계한다.

우리는 지금 기갑이 갖추어지지 않았는데 금군 수만 명이 기주로 향하니 장군님은 경거망동하지 말라.

성질이 급한 동성은 천여 명을 이끌고 기주를 습격하여 치열한 시가전으로 3천여 명을 참수하고 기갑을 얻었는데, 이때 금병 원군이 이미 도착하자 서둘러 인력으로 기갑을 나르고 후방을 직접 끊었다. 다만, 금병들이 지붕에 올라가 높은 곳에서 벽돌을 던지고 기와를 던져 거의 무너질 정도로 쳐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다행히 위승이 제때 호응해 주었기 때문에 비로소 위험에서 벗어났다. 사후에 동성이 독단적으로 행동하여 부대에 손해를 끼친 책임을 물어 그 죄는 마땅히 참수해 마땅한 것이었지만, 위승은 그를 생각하여 용맹을 떨치고 금인기갑을 차지하였다. 장수에 준해 죄를 상쇄하였다.


2.3. 금군에 위세를 떨치다[편집]


위승이 해주를 함락하고 무기를 탈취했다는 소식을 들은 완안량은 해주 동지몽안진국을 보내 만여 금병을 거느리고 해주를 공격했다. 위승은 이를 안 뒤 험한 곳에 복병을 배치하고 정병을 이끌고 해주에서 20리 떨어진 신교(新橋)까지 진격해 금군과 사투를 벌였다. 금병이 많은 세력을 등에 업고 한 걸음 한 걸음 바짝 다가서니 위승이 패한 척 싸우고 한 걸음 물러났다. 금군이 득의양양해 있을 때 갑자기 후대 복병이 대박을 치면서 금군은 일순간에 진을 쳤다.위가 팀을 이끌고 회마총을 쏘았다. 손쓸 틈도 없이 사령관이 위승에게 일격을 당해 죽었다. 사령관을 잃은 금군은 더욱 당황하여 천 명이 죽었고, 나머지는 황급히 도망쳤다. 이번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자 위승군은 더욱 위력을 떨쳤다. 산동 군민들은 모두 와서 부화뇌동하였다. 위승은 병마가 아직 적고 조정의 후원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산동 백성들에게 "너희들은 잠시 모여서 집을 짓고 스스로 지키며 왕사가 오기를 기다린다"고 전했다.

기주에는 수십만 명의 백성들이 창산에 거주했다. 금병이 오랫동안 포위되어 형세가 위급하여 구조 요청을 하자 위승은 즉시 군대를 나누어 갔다. 창산에 도착한 후, 금인 진지를 뚫고 곧장 진지로 향했다. 금군의 복병이 들이닥치자 위승은 손에 큰 칼을 들고 혼자 말을 타고 뒤를 끊어버렸다. 금나라 군대가 오백 기병으로 위승을 겹겹이 에워싸며 큰 칼을 휘두르며 사방으로 돌진하다가 포위망을 빠져나왔을 때 이미 수십 군데의 총상을 입었다. 금병이 뒤에서 화살을 쏘아 진채 문으로 들어가니 위승이 말을 타고 유시에 맞아 쓰러지자 말에서 내려 걸어서 진채로 들어가 금병 누구도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가 교전하지 않는다.위승이 진중에 들어온 후 금나라 병사들은 더욱 공격하여 물길을 끊고 진중의 군민을 가두어 죽이려 하였다. 진채의 식수가 다하자 위승이 군민을 거느리고 소와 말을 잡아 죽이고 피를 취하여 물로 삼아 투쟁을 계속하였다. 양측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가운데 폭우가 쏟아지면서 금의 음모는 실패했고 오히려 진채 공략이 더 급해졌고 사방에 진을 쳤다.

위승의 이런 이례적인 행동은 위승의 주의를 끌었다. 그는 적이 반드시 해주로 이동할 것이라고 예상해서 이렇게 허세를 부렸다. 금병을 태우지 못한 위승은 금군을 피해 몰래 해주로 돌아가 분전했다. 얼마 후, 금은 과연 창산 둘레를 없애고 해주성 아래로 병사를 옮겼다. 선두 부대가 막 도착했을 때, 위승은 즉시 성 밖으로 나가 영전하며 연거푸 몇 번 승리를 거두었다. 나중에 금병들이 모두 와서 화살과 화살을 비오듯 쏘고 위승의 콧입술에 명중하여 상치를 깨뜨리자, 그는 비로소 성으로 철수하여 굳게 지휘하였다.금병이 많은 세력을 의지하여 해주를 겹겹이 에워싸고 사방을 맹렬히 공격했다. 위승은 전 성 군민을 거느리고 성을 굳게 지켰으며, 간간이 어둠을 틈타 출격해 금병을 쉬지 못하게 했다. 금병이 7일 동안 해주에 포위 공격하였으나, 조금도 이득을 얻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사상자가 막중하여 할 수 없이 떠나야 했다.이때부터 위승의 위력이 산동성에 진동하여 많은 금병들이 보기만 하면 수놓아졌다. '산동 위승'이라는 큰 깃발을 들고 황급히 물러났다. 위승은 자신을 두려워하는 금인의 마음을 이용해 은밀히 깃발 수십 개를 만들어 제장들에게 건넸다.전투가 격렬할 때마다 그들은 힘껏 쳐냈다. '산동위승'이라는 깃발 아래 금군은 일순간에 허둥지둥 달아났다. 위승이 이끄는 충의군의 견제로 완안량은 거병할 수 없었다. 여러 차례 병력을 나눠 해주를 공격했지만 실패했다. 위승이 처음 봉기했을 때, 주군의 군량과 군량도 없었고, 곡창고도 없었다. 그러나 해주에서 공상을 하며 곡식을 권하고 주세를 매겼으며 염강을 따져 군대의 공급을 보장했다. 그는 또 해주의 지형에 따라 성을 중하게 쌓고, 땅을 파고, 관문을 막고, 전차를 만들어 해주를 온전한 얼굴의 등받이에 묶는 망갈라로 만들었다.


2.4. 공동의 적에 공동으로 대항하다[편집]


위승의 충의군이 해주에서 잇달아 승리하며 수로를 흔들었지만 조정에서는 오랫동안 알지 못했다. 이보는 아들 이공좌를 바다에서 보내 적정을 염탐하고 배를 타고 해주까지 간 뒤에야 위승이 나라를 위해 이렇게 큰 공을 세웠음을 알게 된다. 이보는 소식을 듣고 크게 기뻐하여 조정에게 연주를 하면서 위승을 청하여 적을 무찌를 대책을 의논하였다. 위승은 이보에게 금병의 배는 모두 중원 백성들이 몰았고, 나는 그들의 가족에게 옷을 선물할 기회를 빌려 왕사가 공격하면 일격을 가하라고 했다. 이에 이보는 금병수군을 습격하기로 하고 먼저 양산도로 배를 몰고 가 금인기를 위장한 뒤 내응을 금영주사에게 알렸다.이튿날 북풍이 거세게 불자 금의 병사들은 창고에 숨어 추위를 피했다. 잠시 후 바람의 방향이 바뀌자 일부 김 병사가 나와 남쪽의 배가 눈에 띄었다.사공들은 저쪽이 금나라 수사네, 배 위 깃발 안 보이나?라고 속였다. 그 금병들이 멀리서 바라보니 과연 금나라 명호라 의심치 아니하고 모두 선실로 숨어들었다. 이후 사공들이 신호를 걸었고, 이보는 바람을 타고 왔다. 송군이 가까워지자 사공들은 배를 버리고 해안으로 올라갔다. 송군은 금병주선에 뛰어올라 일찌감치 동유를 칠한 돛에 불을 질렀다. 돛이 타올랐다. 배가 동력을 잃었다.북에 가려진 그 금병들은 선체에 갇혀 싸울 수도, 도망칠 수도, 꼼짝없이 붙잡혔다. 이 전투에서 이보전은 금군을 섬멸하고, 금주사 선박 여러 척을 나포했다. 이보가 조정에 이를 보고하자 위승은 합문지후(合門至後)에 봉해졌고 해주(海州) 지주(知州) 겸 산동로(山東路) 충의군도통(忠義軍都統)에 정식 임명되었다. 이때 이보도 그의 주사를 이끌고 계속 해상으로 순찰을 나갔다.

금나라 군대의 대패 후 위승에 대한 원한이 골수에 사무쳤고, 이보의 부대가 바다로 나가는 틈을 타 또 20만 명의 군사를 보내 해주를 공격하였다. 이때 위승의 부대가 아직 성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성밖의 백성들이 금병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성으로 들어가 피신하려 하였다.수성통제곽울이 모습을 보이자 서둘러 성문을 닫았다. 성 밖에 백성이 들어오지 못하여 우마가 온 들판에 가득히 울부짖으며 땅을 쳤다고 한다. 위승은 곽울에게 "금군은 원래 나를 두려워했다. 이번에 그가 앞장섰던 10만 명의 부대가 내게 몇 천 명이 죽임을 당하자 다른 사람들은 놀라 도망쳤다. 성을 고수하기만 하면 적이 어찌 우리들을 못살게 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곽울은 그제야 마음을 비우고 성문을 크게 열어 백성을 성으로 들여보내니라얼마 지나지 않아 금군은 해주를 포위했다. 위승과 곽울이 군사를 나누어 지휘하며, 깃발을 내리고 북을 치는 것을 아무도 없는 듯 적막하였다. 금군은 놀라서 며칠 동안 감히 공격하지 못했다. 뒤쪽에는 구름사다리를 놓고 포석을 놓고 사방을 둘러쌓고, 흙을 메우고 참호를 메웠다.위승은 그 근성에 대하여 북을 치고 깃발을 올리고 화살과 돌을 다 쏘며 화우와 금액을 이어 삼일야로 금병을 가까이 할 수 없자 옛 방법을 강구하여 영루와 절수로를 쌓고 위승을 곤경에 빠뜨리려 하였으며, 위승은 끊임없이 출격하여 적을 괴롭히고 한편으로는 사람을 보내 이보에게 원조를 구하였다. 이보(李寶)는 위승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장자개(張子蓋)에게 군사를 거느리고 포위를 풀도록 명령했다.

얼마 후 장부의 기병이 달려와 위승의 군대 밖과 협공하여 금병을 대패시켰다. 위승은 장자개를 불러 승승장구했지만 이 직업군인은 해주 포위를 해제하라는 명령만 받았을 뿐 다른 임무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위승은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장자개가 철군하자 성 안의 백성들은 금병이 다시 올 것을 두려워하여 송군을 따라 남하하려고 분분히 성을 나섰다.위승일로는 대의를 알리고 연수군에 이르면 모두들 그의 성의에 감동해 그를 따라 해주로 돌아간다.얼마 후 금방의 내홍으로 온전한 안색이 죽임을 당하고 금병이 북쪽으로 돌아간다.이보주 사단도 남쪽으로 돌아갔다.

이때 위승은 해주에서 여단을 조련하고 병사를 강하게 했다.그는 또 북쪽에서 온 자에게 가난한 자를 구제하고 친지를 방문하여 함께 먹고 자라고 하였음을 의심치 않았다.심지어 금나라의 간첩까지 잡아들여도 말리고 술과 음식을 하사해 후한 증정품으로 돌려보냈다.이렇게 해서 산동과 하북 일대에 귀의자가 많이 모였다. 위승은 금나라 내부의 허실을 다하여 조정에 보고하였다. 도독 장준은 위승을 건강(建康)으로 데려와 군무에 문의하여 '합문선찬사인(合門宣燦舍人)'으로 전했고, 산동로 충의군도통제 겸 진강부주둔어전군통제(鎭江府住御前軍統制)로 해주를 그대로 알고 있었다.


2.5. 격앙된 비가[편집]


융흥 원년(1163년), 조정에서는 위전을 보내 해주(海州)를 지키게 했고, 가화중의 부대를 해주로 이동시켰다. 가화중은 해주에 도착하여 위승의 부하들을 매수하려는 음모를 먼저 감행하여 위승과 부하들의 관계를 이간질시키려 하였다. 위승은 이 사실을 알고 가와 시비를 가렸으나, 오히려 가화중으로부터 위승의 전횡을 도독부에 고발당하고 위승의 독단을 무마하지 않아 결국 산동로 충의군 도통제 등의 벼슬을 얻어 강군을 주둔시켰다. 가화중이 위승을 모함한 것이 들통난 후에야 복직하여 해주로 돌아가 머물게 되었다.이듬해 주화파가 득세해 해주가 다시 금나라로 편입되자 위승은 초주지주로 옮겨 청하구(지금의 회음시 청포구)의 군무를 전담하고 회동로 달래기사 유보의 절제를 받았다.

유보는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재주를 기현하고 질투하는 놈으로, 초주에 가서 위승에게 소량의 군대만 몰아주고 전차를 거두어들였다. 금 병사에 대해서는 주화파의 뜻을 받들어 참고 양보만 했다. 금나라의 병사는 탈 만한 기회를 보이자 사주로 가서 배로 양식을 운반하겠다고 속여 청하구에서 회로 들어왔다. 위승은 이것이 남침의 음모임을 알고 유보에게 보고했으나 유보에 의해 기각당하고 금나라 병사는 기회를 틈타 기병을 보내 위승에게 맹공을 퍼부었다. 위승은 본부 인마와 김병을 이끌고 오전 6시부터 오후 4시까지 무승부를 기록했다.이때 또 많은 군대가 도착했다. 위승은 필사적으로 반격하면서 한편으로는 사람을 보내 유보에게 급한 일을 알린다. 유보는 "송금강이 화해를 하면 전쟁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비굴하게 말했다. 40리밖에 안 되는 거리지만, 유보는 병졸을 한 명도 보내지 않다. 위승의 부대는 화살을 다 썼지만, 여전히 토강을 진지로 삼아 적들과 힘들게 싸우고 있다.그는 유보가 구원병을 보내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대송에 보답하기 위해 이곳에서 전사할 줄 알았다. 당신들이 살아난다면 왕에게 보고하고 싶다.

이어 보병에게 먼저 철수하고 자신은 기병을 데리고 후방을 끊으라고 명령했다. 기마병과 철수를 하며 싸웠는데 초주에서 불과 9km 떨어진 곳까지 물러갔을 때 이미 기진맥진했고, 더 이상 적진에서 날아오는 화살에 맞서지 못해 위승을 비롯한 명장들이 죽었고 이때 그의 나이 마흔다섯이었다.

위승이 죽자 유보는 성을 버리고 도망쳤다.

나중에 이를 알게 된 효종은 유보의 가산을 몰수하고 경주로 좌천시켰다. 위승은 보령군절도사(保寧軍節度使)에 추증되고 '충장(忠壯)'이라는 시호를 받아 진강부 강구진(江口鎭)에 '포충(包忠)'을 세웠으며, 그가 전사한 자리에 '포충사(砲忠祠)'를 세웠다.두 아들을 각별히 배려해 장남 위교에 무공대부(武功大夫), 충주자사(忠州刺史), 차남 위창(魏昌)을 승신랑(承信郞)으로 봉했다.

순희 15년(1188년) 송효종은 대신들에게 다음과 같이 반문한다.

인재는 써봐야 능하다. 만약 변방이 없었다면 위승 같은 인재를 누가 알 수 있었겠느냐.

조서를 내려 위 교외에 임명된 데 이어 양절서로의 마보군 부총관으로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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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송의 명신 우윤문도 완안량의 침공할 것을 간파하였으나, 기각되었다.[2] 이때 남송 정부는 금에 대한 대비가 전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