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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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남강왕(淮南康王)
元世遵 | 원세준

시호
강(康)
작위
회남왕(淮南王)

원(元)
이름
준(遵)

세준(世遵)
생몰
478년 ~ 525년
부친
원현(元顯)
1. 개요
2. 생애
3. 계보 및 가족관계



1. 개요[편집]


남북조시대 북위의 황족으로 이름은 준(遵), 자는 세준(世遵)이다.


2. 생애[편집]


원세준은 500년 부친 원현이 죽은 뒤 회남왕의 작위를 이었고 선무제 때 전군장군(前軍將軍)으로 임명되고 행유주사(行幽州事)를 맡았으며, 서중랑장(西中郞將)을 겸임했다가 다시 행청주사(行靑州事)를 맡았다. 이후 효기장군(驍騎將軍)으로 전임되고 정로장군(征虜將軍)・유주자사로 전출되었다. 원세준은 조용하고 화목한 성품으로 정성껏 교화를 펼쳤다.

효명제 때 정로장군의 신분으로 형주자사(荊州刺史)가 되었으며, 이윽고 전장군(前將軍)이 더해졌다. 처음 한양(漢陽)에서 다시 치적을 세워서 명성을 얻었지만 나중에는 뇌물을 받고 국경의 물자를 낭비하여 점점 명성을 잃어버렸다.

면수 이남의 만인 수령과 양양(襄陽)에서 명망 있는 사람들이 몰래 서신을 보내 원세준을 끌어들이고 양양을 바쳐서 귀순하려고 했다. 원세준은 여기에 부응하고자 조정에 소를 올렸고 조정에서는 이를 받아들여 원세준에게 지절(持節)・도독형주면남제군사(都督荊州沔南諸軍事)・평남장군(平南將軍)으로 임명하고 산기상시(散騎常侍)를 더하였다. 또한 낙주자사(洛州刺史) 이분생(伊瓫生)과 관군장군(冠軍將軍)・노양태수(魯陽太守) 최모(崔模)가 별장(別將)이 되어 2만의 군대를 이끌고 원세준의 휘하로 들어갔다.

그리고 한수(漢水)에 도착하여 건너려고 할 때 최모 등이 의심하여 한수를 건너지 않자, 원세준은 분노하여 최모를 협박했고 최모는 그제서야 한수를 건넜다. 이후 양양에서 북위에 내응하려던 자들의 계획이 누설되어 양나라의 옹주자사(雍州刺史)의해 토벌되고 양양의 방비가 굳어졌다. 최모는 양양의 성곽을 불태웠고 이 과정에서 수만 명이 죽었다. 밤에 바람이 세게 불고 눈이 많이 내리자, 최모 등은 철군했고 동사하는 병사들이 속출했다. 결국 원세준, 이분생, 최모는 모두 면직되었다.

이후 원세준은 다시 산기상시(散騎常侍)・평북장군(平北將軍)・정주자사(定州刺史)로 제수되었다. 525년, 정주에서 사망하여 산기상시(散騎常侍)・정서장군(征西將軍)・옹주자사로 추증되고 강(康)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3. 계보 및 가족관계[편집]


  • 현조 태조(太祖) 도무제(道武帝) 탁발규
    • 고조 양평왕(陽平王) 탁발희
      • 증조 회남정왕(淮南靖王) 탁발타
        • 조부 진양순후(晉陽順侯) 탁발토만(拓跋吐萬)
          • 부친 회남희왕(淮南僖王) 원현(元顯)
            • 회남강왕(淮南康王) 원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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