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위저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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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위저즈
Washington Wizards
창단
1961년(63주년)
연고지
워싱턴 D.C.
컨퍼런스
동부 컨퍼런스 (1970~)
디비전
웨스턴 디비전 (1961~1966)
이스턴 디비전 (1966~1970)
센트럴 디비전 (1970~1978)
애틀랜틱 디비전 (1978~2004)
사우스이스트 디비전 (2004~)
연고지 변천
시카고 (1961~1963)
볼티모어 (1963~1973)
워싱턴 D.C. (1973~)
구단명 변천
시카고 패커스 (1961~1962)
시카고 제퍼스 (1962~1963)
볼티모어 불리츠 (1963~1973)
캐피털 불리츠 (1973~1974)
워싱턴 불리츠 (1974~1997)
워싱턴 위저즈 (1997~)
홈 경기장
시카고 국제 원형 경기장 (International Amphitheatre, 1961~1962)
시카고 콜리세움 (Chicago Coliseum, 1962~1963)
볼티모어 시빅 센터 (Baltimore Civic Center, 1963~1973)
캐피털 센터 (Capital Centre, 1973~1997)[A]
캐피털 원 아레나 (Captial One Arena, 1997~)[A]
저지 스폰서
가이코 (GEICO)
구단주
모뉴먼트 스포츠 & 엔터테인먼트 (Monumental Sports & Entertainment)[1]
단장
토미 셰퍼드 (Tommy Sheppard)
감독
웨스 언셀드 주니어 (Wes Unseld Jr.)
G 리그 제휴
캐피털 시티 Go-Go (Capital City Go-Go)
로컬 경기 중계
NBC Sports Washington
약칭
WAS
파일:09GUcRU.png |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우승 기록
NBA 파이널 우승
(1회)

1978
컨퍼런스 우승
(4회)

1971, 1975, 1978, 1979
디비전 우승
(8회)

1969, 1971, 1972, 1973, 1974, 1975, 1979, 2017
프랜차이즈 팀 기록
최고 승률
.732 - (1974-75시즌, 82경기 60승 22패)
최저 승률
.225 - (1961-62시즌, 80경기 18승 62패)
최다 승
60승 - (1974-75시즌, 82경기 60승 22패)
최다 패
63패 - (2008-09시즌, 82경기 19승 63패)
최고 계약
$251,019,650 - 2022년 브래들리 빌
팀 컬러 / 유니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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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컬러
적색 네이비 블루 은색 흰색
유니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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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Washington_Wizards_Icon_Jersey_2021.jpg


파일:Washington_Wizards_Statement_Jersey_2021.jpg


파일:Washington_Wizards_City_Jersey_2021.jpg

Association
Icon
Statement
City

NBA 파이널 우승 연혁

[ 펼치기 / 접기 ]
1978 NBA 파이널 우승팀
1977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워싱턴 불리츠

1979
시애틀 슈퍼소닉스


1. 개요
2. 역사
2.1. 창단과 성장기
2.2. 전성기
2.3. 암흑기
2.4. 잠깐의 중흥기
2.5. 존 월의 시대
2.5.1. 2010 ~ 2013년
2.5.2. 2013-14 시즌
2.5.3. 2014-15 시즌
2.5.4. 2015-16 시즌
2.5.5. 2016-17 시즌
2.6.1. 2017-18 시즌
2.6.2. 2018-19 시즌
2.6.3. 2019-20 시즌
2.6.4. 2020-21 시즌
2.6.5. 2021-22 시즌
2.6.6. 2022-23 시즌
2.7. 이후
2.7.1. 2023-24 시즌
3. 역대 성적
4. 영구결번
5. 현재 선수명단
6. G 리그 산하팀
7. 시티 에디션
8. 여담
9. 참고 자료




1. 개요[편집]


NBA의 프로농구팀. 동부 컨퍼런스 사우스이스트 디비전 소속. 연고지는 워싱턴 D.C.. 시카고에서 시작해 볼티모어를 거쳐 워싱턴으로 연고를 이전한 팀이며, 팀명이 잘 바뀌지 않는 미국 프로팀 중에서 보기 드물게 팀 명을 무려 4번이나 바꾼 팀이다. 원 팀명은 시카고 패커스. 이것이 시카고 패커스 → 시카고 제피어스(Chicago Zephyrs) → 볼티모어 불리츠 → 워싱턴 불리츠를 거쳐 현재의 팀명인 워싱턴 위저즈라는 명칭으로 정해졌다.

국내에는 마이클 조던의 마지막 소속팀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2. 역사[편집]



2.1. 창단과 성장기[편집]


1961년에 포장업체인 일리노이 패킹 컴퍼니 사주 데이빗 트래거에 의해 시카고를 연고로 하여 '시카고 패커스'라는 이름으로 창단했다. 초대 단장은 지역 스포츠 프로모터 해리 해닌(1902~1989), 감독은 미니애폴리스 레이커스의 레전드 짐 폴라드였다. 당시 선수진은 바비 레오나드, 잭 터너, 호레이스 워커, 하위 칼, 랄프 데이비스 등 방출 직전의 선수나 저니맨들로 꾸렸으며 드래프트에선 전체 1번으로 인디애나 대학교 출신 월트 벨라미를 뽑았다.

파일:external/2.bp.blogspot.com/capitalcenter.jpg
'위저즈의 아버지' 에이브 폴린 전 구단주 (1923~2009)

신인 벨라미를 중심으로 한 팀은 18승 62패로 시작한 뒤, 1시즌만에 산들바람이라는 뜻의 '제피어스(Zephyrs)'라는 이름으로 바꾸었지만 성적은 25승 55패에 그쳤다. 1950년에 해체된 시카고 스탁스의 전례에서 보듯, 당시 시카고는 MLB의 시카고 컵스와 NFL의 시카고 베어스가 인기를 독차지한 터라 흥행이 잘 안됐다. 1963년 볼티모어로 연고를 이전해서 팀 명칭도 총알이라는 뜻의 불리츠로 바꾼 뒤,[2] 드래프트에서 웨스트버지니아 대학교 출신 로드 쏜을 1라운드 2번, 아이다호 대학교 출신 거스 존슨을 2라운드 10번으로 각각 뽑고, 트레이드 시장에서 폴 호그 및 래리 스타버만을 진 슈(뉴욕) 및 케빈 로커리(디트로이트)와 각각 맞바꿔가며 31승 49패로 올랐고, 1964년에 건설업자 에이브-아이린 폴린 부부가 인수한 뒤 트레이드 시장에서 테리 디싱거, 쏜, 돈 코지스를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의 베일리 하웰, 돈 올, 밥 페리, 월리 존스 4명과 맞바꿔가며 37승 43패로 플레이오프에 처음 진출하여 첫 관문에서 강호 세인트루이스 호크스를 3승 1패로 꺾었지만, 지구 결승에서 엘진 베일러-제리 웨스트 콤비의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에게 2승 4패로 졌다.

1965-66 시즌 초반에 벨라미는 뉴욕 닉스의 짐 반스, 조니 이건, 조니 그린 3명과 맞바꿔졌고, 특유의 조직력으로 38승 42패를 찍어 플옵에 나갔지만 호크스에게 3전 전패를 당했다. 1966-67 시즌에는 감독이 3번이나 바뀔 정도로 연패를 거듭해 20승 61패를 당하자, 팀은 드래프트에서 흑인대학 윈스턴-세일럼 주립대학교 출신 얼 먼로를 전체 2번으로 지명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여 1967-68 시즌 성적을 36승 46패로 올렸다.



2.2. 전성기[편집]


1968년에 버디 지닛 대신 조 색스(Joe Sachs, 1934~2007)가 새 단장으로 부임한 후, 드래프트에서 루이빌 대학교 출신 웨스 언셀드를 2번으로 뽑아 팀의 새 출발을 알렸다. 언셀드는 먼로, 로커리, 잭 마린, 존슨 등과 짝을 지어 정규시즌에서 57승 25패로 지구 1위를 찍어 폭발적인 상승을 달성했고, 언셀드는 신인상, 진 슈 감독은 감독상을 각각 받았다. 그러나 플옵에서 윌리스 리드의 뉴욕 닉스에게 4전 전패를 당했다. 1969-70 시즌에는 50승 32패로 플옵에 나가 닉스랑 또 맞붙다가 3승 4패를 당했지만 팀의 전망은 점차 밝아보였다.

파일:external/www.soulhead.com/Cap-Center3.jpg
과거 홈 구장인 캐피털 센터 (1973~1997 사용. 워싱턴 캐피털스와 공유했다.)

1970년에는 제리 색스가 부사장까지 도맡은 뒤, 정규시즌에선 42승 40패로 1위를 또 찍어 플옵에 나가서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와 뉴욕 닉스를 연달어 꺾어 파이널에 처음 나갔다. 거기서 카림 압둘자바오스카 로버트슨이 버틴 밀워키 벅스에게 4전 전패로 떡실신을 당하기는 했지만, 팀의 미래는 분명 밝았다. 1971년 드래프트 때 UC버클리 출신 필 체니어를 하드십 4번으로 뽑은 뒤, 정규시즌 극초반에 먼로를 뉴욕 닉스의 데이브 스톨워스, 마이크 리어던 + 현금과 맞바꿨다. 정규시즌에서 38승 44패로 지구 1위를 또 찍어 플옵에 또 나갔으나 닉스에게 2승 4패로 졌다. 1972년 오프시즌에 존슨을 동년도 드래프트 2라운드 픽과 맞바꾼 뒤, 마린을 휴스턴 로키츠의 엘빈 헤이즈랑 맞바꿔서 전력 보강을 해냈고, 정규시즌에선 헤이즈 외에 체니어, 리어던, 아치 클락 등이 활약하여 정규시즌에서 52승 30패로 3년 연속 지구 우승을 달성하고 플옵에서 닉스랑 또 맞붙다가 1승 4패로 졌다.

1973년에 연고지를 워싱턴 D.C.로 옮기고서 색스 부사장에게 모기업인 캐피털 센터 사장도 겸하게 한 뒤, 새 단장에는 밥 페리[3], 감독직에 ABA 팀 샌디에이고 콘키스타도르스를 지휘했던 K.C. 존스를 각각 선임해 팀을 개편했다. 정규시즌에서 언셀드가 부상당하면서 56경기밖에 못 뛰었고, 대신 헤이즈와 체니어의 분전으로 47승 35패로 갔지만 플옵에서 또 닉스랑 맞붙어 3승 4패로 졌다. 1974-75 시즌에는 팀 역사상 최고 기록인 60승 22패를 찍어 버팔로 브레이브스와 보스턴 셀틱스를 연거푸 꺾은 뒤 또 다시 파이널에 도달했으나, 압도적인 우세를 점쳤던 예상을 깨고 릭 배리가 이끌던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게 또 다시 4전 전패를 당해 파이널 8연패를 당하는 치욕을 맛봤다. 1975-76 시즌에는 48승 34패를 찍어 플옵에 다시 갔지만 오스틴 카가 이끄는 신흥 팀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랑 7차전까지 끌고 가다가 리치필드 콜로세움 원정에서 85-87로 역전을 당했다.

1976년에 존스 감독이 밀워키 벅스 코치로 떠나자 감독직에 전 시카고 불스 감독 딕 모타를 모셔온 뒤, 드래프트에서 전체 13위로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출신 미치 컵책을 뽑는 등 전력 보강을 했다. 정규시즌에서 48승 34패를 찍어 플옵 1회전에서 클블을 2승 1패로 이겨 설욕하고, 2차전에선 모제스 말론이 이끄는 휴스턴이랑 붙다가 2승 4패로 졌다. 1977년 오프시즌에는 밀워키 벅스의 베테랑 밥 댄드리지를 FA로 영입해가며 전력 보강을 해서 정규시즌을 44승 38패로 지구 1위를 한 뒤, 플옵에서 애틀랜타 호크스, 샌안토니오 스퍼스, 필라델피아를 연달아 꺾고 파이널에서 시애틀 슈퍼소닉스와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승리하면서 사상 처음으로 NBA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 우승은 MLB워싱턴 세네터스가 우승한 이후, 36년만에 워싱턴 팀이 우승한 것이다.

1978-79 시즌에 54승 28패로 또 1등을 찍어 플옵에서 애틀랜타, 샌안을 또 꺾어서 다시 NBA 파이널에 올랐지만, 이 때는 시애틀에게 복수를 허용하면서 준우승에 그쳤다. 1979-80 시즌에는 헤이즈와 언셀드의 노쇠화로 39승 43패를 찍어 플옵에 간신히 나갔다가 필라델피아에게 2전 전패를 당했고, 1980-81 시즌을 앞두고 모타 감독이 댈러스 매버릭스 창단으로 떠나자 진 슈가 감독으로 되돌아왔고, 정규시즌에선 케빈 포터의 활약으로 39승 43패를 또 찍었지만 7위로 떨어져 플옵을 못 갔다.


2.3. 암흑기[편집]


1981년에 언셀드가 선수로서 은퇴한 뒤 부사장으로 선임됐고, 헤이즈는 휴스턴이 지닌 드래프트 픽 2장과 맞바꿔졌으며 컵책은 FA로 풀려 레이커스로 떠났다.[4] 드래프트에서 전체 11번으로 웨이크포레스트 대학교 출신 프랭크 존슨을 뽑고 스페인 FC 바르셀로나 바스케트에서 뛰던 제프 룰랜드[5]랑 계약해서 그렉 발라드, 릭 마혼 등과 짝을 지어 팀을 개편했고, 정규시즌에서 43승 39패로 플옵에 올라 1라운드에서 벅 윌리엄스의 뉴저지 네츠를 2전만에 꺾고 2라운드에서 래리 버드의 보스턴과 맞붙었다가 1승 4패로 졌다. 1982-83 시즌에는 42승 40패로 5할을 찍었으나 7위로 플옵에 못 갔고, 1983년 드래프트 때 미시시피 주립대학교 출신 제프 말론을 전체 10번, 인디애나대 출신 랜디 위트먼을 22번으로 각각 뽑았지만 위트먼은 애틀랜타 호크스의 톰 맥밀런 및 1984년 드래프트 2라운드 픽과 맞바꿔졌다. 정규시즌에서 룰랜드의 폭발적인 득점력으로 35승 47패를 찍어 플옵에 또 갔지만 보스턴에게 1승 3패를 당했다. 1984-85 시즌 도중에 룰랜드의 부상에도 불구하고 40승 42패로 또 플옵에 갔다가 어빙과 모제스 말론이 이끄는 필라델피아에게 1승 3패를 당했다.

1985년 드래프트 때 웨이크포레스트대 출신 케니 그린을 12번, 수단 출신의 최장신 농구선수 마누트 볼(브릿지포트대)을 31번으로 각각 뽑고, 정규시즌에서 신인인 볼의 폭발적인 블로킹 능력을 선보여 397블록을 찍었다. 그러나 같은 신인인 그린은 제 활약을 못 펼치고 1986년 1월에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의 레온 우드와 맞바꿔졌다. 3월에 슈 감독은 32승 37패 시점에서 해고당했고, 당시 CBS 해설위원을 하던 케빈 로커리가 급히 감독 자리를 메꿔 7승을 더 올려서 플옵에 나간 뒤 필라델피아랑 또 맞붙었으나 2승 3패로 졌다.

1986년 오프시즌 때 룰랜드 및 클리프 로빈슨을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의 모제스 말론, 테리 캐트리지, 동년 드래프트 1라운드 픽과 맞바꾼 뒤, 드래프트에서 루이지애나 주립대학교 출신 존 "핫 플레이트" 윌리엄스를 12번, 네바다 대학교 라스베가스 캠퍼스 출신 앤써니 존스를 21번으로 각각 뽑았다. 정규시즌에선 볼과 모제스 말론, 제프 말론 등의 활약으로 42승 40패로 플옵에 나갔다가 '배드 보이즈'로 각성해가던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의 막강 수비력 앞에 3전 전패를 당했다.

1987년 오프시즌 때 언셀드가 코치로 선임됐고, 드래프트에서 웨이크포레스트대 출신의 단신 선수 먹시 보그스를 12번으로 뽑는 한편 뉴욕 닉스의 에이스였던 버나드 킹을 FA로 영입하고, 마이클 애덤스 및 제이 빈센트를 덴버 너기츠의 대럴 워커 및 마크 앨리와 맞바꿔 전력 보강을 했다. 정규시즌에선 초반 27경기만에 8승 19패로 부진을 보여 로커리 감독이 쫓겨나자, 언셀드 코치가 감독 자리를 메워 30승을 더 거둬 플옵에 간신히 나가 디트로이트를 또 상대했지만, 2승 3패로 졌다. 1988년 드래프트 때 오클라호마 대학교 출신 하비 그랜트[6]를 전체 12번으로 뽑고, 모제스 말론과 프랭크 존슨을 FA로 풀어 애틀랜타 호크스와 뉴저지 네츠로 각각 떠나보냈다. 정규시즌 때 40승 42패를 찍었지만 9위에 그쳐 플옵은 못 갔고, 1989년 드래프트 때 조지아 공과대학교 출신 톰 해먼즈를 전체 9번으로 뽑고 정규시즌에선 킹, 제프 말론, 핫 플레이트 윌리엄스 등도 같이 활약했으나 31승 51패로 추락했다.

1990년 오프시즌 때 유타 재즈 및 새크라멘토 킹스와 3각 트레이드를 맺어 1991년 드래프트 2라운드 픽을 새크라멘토의 퍼비스 앨리슨[7]이랑 맞바꾸고, 제프 말론을 유타로 팔았다. 정규시즌에선 킹의 폭발적인 득점능력으로 동년 올스타에 선발되는 등 다시 한번 전성기를 보여줬지만 성적은 30승 52패를 찍었다. 1991년 오프시즌 때 보유 중이던 드래프트 픽 2장을 덴버의 애덤스 및 드래프트 픽 1장과 맞바꾸고, 해몬즈는 샬럿 호네츠의 렉스 챕맨, 워커는 디트로이트 피스톤즈가 지닌 드래프트 픽 2장과 각각 맞바꿔졌다. 드래프트에선 루이빌대 출신 라브래드포드 스미스를 전체 19번으로 뽑았다. 그러나 정규시즌에선 킹을 비롯해 엘리슨, 애덤스, 챕맨 등이 부상 등으로 빠져 많이 움직이는 속공에 허점이 생기고, 대체로 수비진의 키가 작아 상대 선수들에게 뚫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또 애덤스와 렉스 챕맨 등 아웃사이드 플레이어들을 갖추고 있었음에도 선수들의 민첩성이 취약해 미스 매치를 남발하는 경우가 흔했다. 특히 엘리슨은 20득점 / 10리바운드로 기량발전상을 받았으나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인해 제대로 못 뛰었으며 후보선수진도 빈약했다. 최종적으로 성적은 25승 57패를 찍었다.

1992년 드래프트 때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교 출신 톰 구글리오타를 전체 6번, 오클라호마대 출신 브렌트 프라이스[8]를 32번으로 각각 뽑고, 윌리엄 베드포드 및 핫 플레이트 윌리엄스를 LA 클리퍼스의 돈 맥린과 맞바꿨다. 또한 디트로이트가 버린 신인 덕 오버튼과 휴스턴의 벅 존슨을 FA로 각각 영입했으나 레델 이클스는 체중 문제로 인해 CBA로 내쳐졌다. 정규시즌 들어 엘리슨 구글리오타, 하비 그랜트, 애덤스, 라브래드포드 스미스 등이 분전했지만 엘리슨은 또 부상이 도져 많이 나오지 못했고, 1993년 1월에는 킹을 FA로 풀어 방출시키는 등 여러 모로 변화를 주려 했지만 22승 60패로 굴러떨어졌다. 1993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6번으로 인디애나대 출신 칼버트 체이니를, 30번으로 루마니아의 231cm짜리 최장신 선수 게오르게 뮤레산을 각각 뽑고, 하비 그랜트를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의 케빈 덕워스와 맞바꿨다. 정규시즌에선 라브래드포드 스미스를 FA로 풀어 새크라멘토로 내치는가 하면, 엘리슨은 또 부상을 당했다. 야심차게 사들인 덕워스가 체중 문제로 부진한 대신 뮤레산이 수비 전선에 뛰었다. 신인 체이니는 65게임을 소화하며 1게임당 평균 12득점, 야투 성공률 47%를 찍었으나 24승 58패로 마감했다.

1994년 오프시즌 들어 언셀드 감독이 팀에 염증을 느껴 사퇴하자[9],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의 단장이던 짐 라이넘이 감독으로 선임됐다. 드래프트 때 미시건대 농구부 시절 'Fab Five'의 일원이던 주완 하워드를 전체 5번으로 뽑고 트레이드 시장에선 보유 중이던 1996 드래프트 2라운드 및 1998년 1라운드 지명권을 올랜도 매직의 원년 선수 스캇 스카일스, 동시기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과 맞바꿨고, 애덤스를 샬럿 호네츠의 1996 및 1997년 드래프트 2라운드 지명권이랑 맞바꿨다. 반면 엘리슨은 동년 4월 방출된 후 8월 FA에 따라 보스턴 셀틱스로 갔다.

11월에는 구글리오타를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크리스 웨버 및 1996년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 3개 픽이랑 맞바꿨지만, 덕워스 등이 부상에 시달려 제대로 못 나오는 바람에 21승 61패로 무너졌다. 1995년 드래프트에서 UNC 출신 라시드 월러스를 전체 4번으로 뽑고, 23번으로 텍사스대 출신 테렌스 렌처도 뽑았지만 마이애미 히트의 에드 스토크스 및 제프 웹스터랑 맞바꿨다.[10] 트레이드 시장에서 덕 오버튼 및 돈 맥린을 덴버 너기츠의 로버트 팩과 맞바꿨고, 덕워스를 밀워키 벅스의 밥 맥캔, 1996년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과 묶어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의 에이스 마크 프라이스랑 각각 맞바꾸고 마이애미 히트로부터 레델 이클리스를 사는 등 팀을 또 갈아엎었다. 정규시즌 들어 웨버, 팩, 프라이스 등이 부상을 당하자 하워드, 뮤레산, 미첼 버틀러 등이 최선을 다했고, 신인 월러스는 부상에도 불구하고 10득점 4리바로 준수한 모습을 보여 39승 43패로 5할 근처까지 갔다.

1996년에 폴린 구단주는 색스 부회장과 존 내시 단장을 내친 후 언셀드 경영부사장에게 단장까지 맡겨 프런트를 새로 짰고, 월러스와 버틀러를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의 로드 스트릭랜드 및 하비 그랜트랑 맞바꿔서 팀을 개편했다. 또한 하워드와도 향후 7년간 1억 5천만불짜리 장기 계약을 맺어 신뢰를 보태려 했으며 동년 언드래프티 벤 월러스(버지니아 유니언대)도 영입했다. 정규시즌 도중인 1997년 2월에 라이넘 감독이 잘리자 밥 스타크 코치가 메꾸다가, 덴버 너기츠의 단장이던 버니 비커스태프가 12년만에 감독으로 팀에 돌아와 위기를 넘겼다. 부상에서 회복한 웨버의 스틸과 활기찬 속공, 엘리웁, 턴 오버 등에 이르는 프런트코트 중심의 화려한 플레이를 선보여 44승 38패로 5할을 다시 넘겨 9년만에 플옵 진출을 이뤄냈으나, 유능한 스몰 포워드가 전무해 하프 코트에서 약점을 보여 시카고 불스에게 1라운드에서 3전 전패로 주저앉았다.

같은 시기 미국 전역에서 총기 난사 사고가 빈발하자, 수도에서 총알을 왜 팀 명칭으로 쓰냐고 하냐며 비난이 일었다. 1995년에 폴린 구단주가 팀명 변경을 선언하고 1997년에 공모전을 열어 팀명을 위저즈로 변경한 뒤 팀 컬러를 종전의 빨강-흰색-파랑에서 파랑-검정-흰색으로 바꿨고, 정든 캐피털 센터를 떠나 신설구장 'MCI 센터'로 이전했다. 오프시즌 당시 뮤레산이 발목 부상을 당해 전 경기를 결장하자 댈러스 매버릭스의 테리 데이비스를 FA로 영입했고, 팀명을 바꾼 첫 정규시즌에는 스트릭랜드, 웨버, 하워드, 체이니 등이 전과 같은 기세로 42승 40패를 찍었지만 플옵은 못 갔다.

1998년에는 웨버를 새크라멘토 킹스의 미치 리치몬드 및 오티스 도프랑 맞바꾸고, 하비 그랜트는 FA로 풀려 필라델피아로 가고 뮤레산은 방출됐다.[11] 그러나 리치몬드는 선수로서 노쇠화된 탓에 제 활약을 못했고, 그 와중에 리더 하워드는 부상으로 인한 기량 저하, 파티장에서의 성추문 연루, 비커스태프 감독과의 갈등 등으로 침체기를 겪은 데다 스트릭랜드도 비커스태프 감독 해임 뒤 돌발 행동을 자주 벌여 팀 캐미스트리를 망치기도 했다. 여러 내홍 끝에 정규시즌을 18승 32패로 마감했다. 이 와중에 비커스태프 감독은 하워드랑 된통 싸운 게 독이 되어 50경기만에 잘렸고, 그 자리를 친구인 짐 브로벨리 코치가 메꿨다.

1999년에는 AOL 창업주 테드 레온시스가 에이브 폴린의 지분 일부를 샀고, 팀은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코치이던 가 허드를 감독으로 불러왔다. 드래프트에서 전체 7번으로 코네티컷대 우승멤버 리처드 해밀턴을 뽑은 뒤, 트레이드 시장에서 테리 데이비스와 벤 월러스, 팀 레글러, 제프 매키니스 4명을 올랜도의 아이작 오스틴과 맞바꾸고 시애틀의 애런 윌리엄스와 밴쿠버의 마이클 스미스를 FA로 영입했다. 반면 체이니는 보스턴으로 떠났다. 그러나 하워드, 스트릭랜드, 리치먼드 등은 주급만 많이 받지 정작 경기에선 예전의 기량을 잘 선보이지 않아 정규시즌 초반에는 1승을 빼고 연패를 거듭하다 2000년 1월에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12]이 팀의 지분 일부를 사들여서 사장으로 부임했다. 부임한 후 그는 허드 감독을 자르고 불스 때 동료였던 대럴 워커(락포드 라이트닝(CBA) 감독)를 감독대행으로 불렀고, 디트로이트에서 내쳐진 돈 리드를 FA로 영입 후 스트릭랜드, 하워드, 리치몬드 등이 최선을 다해 3월에 10승 7패를 찍었으나, 최종적으로 29승 53패를 찍었다.

2000년 오프시즌 들어 마이애미 대학교 감독을 10년 동안 이끈 레너드 해밀턴을 새 감독으로 선임했고, 트레이드 시장에서 오스틴을 밴쿠버의 체로키 팍스, 오비나 에케지, 펠리페 로페즈, 데니스 스캇 4명과 맞바꾸고, 머레이를 덴버의 파파이 존스랑 맞바꿨다. 정규시즌 들어서 하워드의 부진, 리치몬드의 부상 등의 악재가 생기고, 해밀턴 감독도 대학 무대와는 달리 프로에서 적응을 못하여 연패만 거듭하자 조던 사장은 화가 치솟은 나머지 자구책을 마련했다. 에케지를 LA 클리퍼스의 타이론 네스비와 맞바꿔보기도 했고, 2001년 2월에는 골칫덩이였던 하워드를 캘빈 부스와 묶어 댈러스 매버릭스의 크리스찬 레이트너, 이탄 토마스, 코트니 알렉산더, 로이 보트, 허버트 데이비스 5명과 맞바꾼 뒤 3월에 스트릭랜드도 포틀랜드로 돌려보냈다. 당시 리차드 해밀턴이 최선을 다했지만 최종 성적은 19승 63패에 그쳤다. 조던 역시 2000년 11월 7일 당시 불스 경기에서 한 관중으로부터 "차라리 네가 뛰어줘!"란 말도 들었다.


2.4. 잠깐의 중흥기[편집]


2001년 오프시즌 때 조던 사장은 해밀턴 감독 대신 시카고 때 자신과 인연이 있던 덕 콜린스 NBC 해설위원을 새 감독으로 불렀다. 드래프트에서 글린 아카데미 출신 콰미 브라운을 전체 1번으로 뽑고 트레이드 시장에서 레이커스에서 FA로 풀린 타이론 루를 영입한 후, 올랜도 매직이 지닌 신인 브렌드 헤이우드를 얻고자 라론 프로핏 및 2005년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을 팔았다. 9월에는 조던이 리그의 프런트 겸업금지 정책에 따라 사장직을 내려놓은 채 선수로 컴백을 선언했다. 다른 한편 리치몬드는 FA로 풀려 레이커스로 떠났고, 보트와 마이크 스미스 둘은 방출됐다.

조던이 복귀한 첫 정규시즌에선 빈약한 로스터를 가지고도 37승 45패로 성적을 올렸는데, 비록 5할을 찍는 데 실패했으나 바로 전 시즌 19승을 거두던 팀이 조던이 뛰던 2년동안 각각 37승을 거두면서 성적이 거의 두 배로 뛰었다. 2002년 드래프트에서 인디애나대 출신 재러드 제프리스를 11번, 메릴랜드대 우승멤버 후안 딕슨을 17번, 스페인 FC 바르셀로나 바스케트의 선수 후안 카를로스 나바로를 43번으로 각각 뽑고 트레이드 시장에서 해밀턴 및 허버트 데이비스를 디트로이트의 제리 스택하우스랑 맞바꾸는가 하면, 노장 찰스 오클리와 유타 재즈의 주전 브라이언 러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래리 휴즈 등 3명을 FA로 영입했다. 정규시즌 들어 조던이 40대의 나이에 40득점을 찍고, 카림 압둘자바의 올스타 통산 득점 251점을 뛰어넘는 등의 활약을 했지만 최종 성적은 전 시즌과 똑같았다. 이 과정에서 공 소유권 독점, 스택하우스와의 갈등, 독불장군식 스타일 등의 그림자도 있었다.

다만 이런 비판 대부분은 조던의 대외적 이미지와 다른 선수들의 불평으로 인한 오해에 가까웠다. 제리 스택하우스의 불평으로 인해 조던이 볼을 독점했다는 오해가 있지만, 스택하우스의 야투시도는 위저즈에 합류하기 전과 거의 혼자서 공격하던 피스톤즈 시절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다. (17.4개->17.2개) 리처드 해밀턴은 오히려 조던과 뛸 때 커리어에서 가장 야투를 많이 쐈다.(17.2개) 스택하우스는 조던이 은퇴하고 길버트 아레나스 합류 이후 야투시도가 오히려 12개대로 폭락했다. 애초에 다른 팀이나 선수들하고 뛸 때만큼 많이 쐈는데 '볼을 독점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은 얼토당토 않은 비판이다. 나머지 선수들은 애초에 NBA수준에서 제대로 득점할 수 있는 기량도 없었으며, '독불장군식'이란 비판에 대해선 훗날 당시 위저즈에서 뛰던 이탄 토마스가 선수들을 갈군 것은 조던이 아닌 찰스 오클리라고 증언한 바도 있다. 당시 위저즈는 세대간 갈등이 심한 편이었는데, 조던의 고압적 이미지와 스택하우스의 발언 때문에 조던이 독박을 쓴 것에 가깝다. 마이클 조던 항목에도 설명되었다시피 조던은 굉장히 가혹한 리더 스타일이었지만, 호불호가 갈리는 정도이며 그와 사이가 안 좋았던 룩 롱리조차도 그가 나쁜 리더였다고 하진 않는다.

이렇게 바닥에서 헤메던 팀이 조던 한명의 합류로 플레이오프에 거의 진출할 뻔한, 동부에서 중간은 가는 팀이 된 것이다. 조던 본인의 명성에 미친 악영향을 떼놓고 팀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이득을 본 셈. 거기다가 조던의 인기로 인해 전국적인 관심과 전국방송+매진 행렬을 펼쳤다. 추가로 조던은 이때 베테랑 최소연봉을 받고 뛰었는데, 올스타급 선수를 겨우 연봉 백만달러 주고 2년이나 쓴 셈이다. 보통 올스타급은 천만불 이상받는다는 걸 생각하면 그야말로 염가봉사이다.[13] 어쨌든 조던도 떠나면서 다시 대중의 관심에서 줄어드는가 싶었지만, 의외로 워싱턴은 짧은 중흥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2003년에 폴린 구단주는 언셀드 단장과 덕 콜린스 감독을 자른 후, 밀워키 벅스 단장이던 어니 그룬필드와 전 뉴저지 네츠 코치 에디 조던을 새 단장과 감독으로 앉혀 새 출발을 시도했다.[14] 트레이드 시장에선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서 2라운드 출신 가드 '에이전트 제로' 길버트 아레나스를 FA로 영입했다. 에디 조던 감독은 새크라멘토 킹스에서 코치와 감독을 하던 시절에 배운 '프린스턴 모션 오펜스'를 팀에 이식시켜[15] 선수진을 새로 짰고, 부임 첫 정규시즌에선 3승 2패로 시작하다가 리더였던 스택하우스의 부상, 아레나스의 복부 근육 부상 등으로 마가 껴서 연패를 거듭해 25승 57패로 처졌다.

2004년 오프시즌 때 스택하우스, 레이트너, 데빈 해리스 3명을 댈러스의 앤트완 재미슨과 맞바꾼 뒤, 아레나스-휴즈의 원투펀치를 앞세워 정규시즌에 45승 37패를 찍어 플옵에 나가 1라운드에서 시카고를 4승 2패로 이기고, 2라운드에선 마이애미 히트를 만났지만 4전 전패를 당했다. 특히 길버트는 포인트 가드임에도 슛을 많이 던져 '길버톨로지'란 신조어를 낳았다. 2005년 오프시즌 때 콰미 브라운 및 라론 프로핏을 LA 레이커스의 캐론 버틀러 및 처키 앳킨스랑 맞바꿔서 아레나스 - 버틀러 - 재미슨의 짜임새있는 라인업을 구성했고, 드래프트에서 전체 49번으로 사우스 켄트 고교 출신 안드레이 블라체를 뽑은 뒤 베테랑 선수 안토니오 다니엘스(시애틀)와 캘빈 부스(밀워키)를 FA로 영입했다. 정규시즌에서 아레나스가 폭발적인 득점력을 선보여 42승 40패를 찍어 플옵에 갔지만, 나머지 멤버들이 부실한 탓에 플옵 1라운드에서 신흥 리그의 스타로 자리잡은 르브론 제임스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게 2승 4패로 졌다.

2006년 드래프트에선 전체 18번으로 우크라니아인 선수 올렉세이 페체로프를 뽑았고, 올랜도 매직의 드샨 스티븐슨을 FA로 영입하는 등 전력을 강화했다. 정규시즌에서도 나름 선전했으나 후반 들어서 아레나스와 버틀러가 부상으로 누워 공격에 빵꾸가 났고, 안토니오 다니엘스도 기대와 달리 제 역할을 못했으며 수비도 빈약했다. 또한 이탄 토마스와 헤이우드가 너무 다퉈서 팀 캐미스트리를 망치기도 했다. 어쨌든 41승 41패를 찍은 후 플옵에서 클블을 또 만났지만 4전 전패를 당했다.

2007년 드래프트 때 전체 16번으로 USC 출신 닉 영을 뽑았고, 정규시즌에선 아레나스가 또 부상을 당해 12경기밖에 못 나왔음에도 버틀러의 분전에 힘입어 43승 39패로 플옵에 또 나갔지만, 재미슨의 슛 난조로 또 클블에게 2승 4패로 스윕당했다. 플옵 당시 드샨 스티븐슨이 르브론을 도발해서 다른 쪽으로 유명해졌다.

2008-09 시즌을 앞두고 FA로 풀린 아레나스는 팀과 재계약했지만, 아레나스는 너무 무리해서 2경기밖에 못 나온 데다 헤이우드가 부상당하면서 정규시즌에서 연패를 거듭했고, 2008년 12월에는 뉴올리언스 호네츠 및 멤피스 그리즐리스와 3각 트레이드를 맺어 안토니오 다니엘스를 뉴올리언스의 마이크 제임스, 드래프트 픽 1장을 멤피스의 자바리스 크리텐튼과 각각 맞바꿨으나 이마저도 여의치 않아 며칠 뒤 에디 조던 감독이 잘리고, 선수 인사부장 에드 탭스콧이 감독대행을 맡았음에도 19승 63패로 완전히 망쳤다.

2009년 오프시즌 때 전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감독 플립 손더스를 새 감독으로 선임했다. 트레이드 시장에서 캐론 버틀러와 브랜든 헤이우드, 드샨 스티븐슨 3명을 댈러스의 드류 구든, 조시 하워드, 퀸틴 로스, 제임스 싱글턴 4명과 맞바꾸고, 이탄 토마스는 올렉세이 페체로프, 다리우스 송가일라, 동년 드래프트 1라운드 픽과 함께 미네소타의 마이크 밀러 및 랜디 포이랑 맞바꿔가면서 팀 개혁을 단행했고, 아레나스도 건강을 회복하며 팬들의 기대심이 발휘됐다. 그러나 시즌 도중 구단주 에이브 폴린이 사망하고 에이스였던 아레나스가 라커룸에서 크리텐튼과 도박빚 문제로 다투다가 총기 반입으로 인한 사고를 제대로 치면서 팀이 더 흔들렸고, 그는 사건 뒤에도 총 쏘는 시늉을 하다가 리그 사무국으로부터 잔여경기 무보수/무기한 출장정지를 당했다. 2010년 2월에는 클블 및 클리퍼스랑 3각 트레이드를 맺어 재미슨을 클블의 지드루나스 일가우스카스 및 에미르 프레드지치랑 맞바꾸고, 구든도 클리퍼스의 앨 쏜튼과 맞바꾸는 등 변화를 시도했지만 26승 56패로 또 하위권에 머물렀다.


2.5. 존 월의 시대[편집]



2.5.1. 2010 ~ 2013년[편집]


2010년에 공동 구단주였던 테드 레온시스가 폴린 가문으로부터 지분을 인수해 대주주가 된 뒤, 그해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켄터키대 출신 존 월을 뽑으면서 리빌딩에 거듭했다. 2010-11 정규시즌 들어 신인인 존 월이 포텐을 올리자 팀의 리더였던 아레나스는 이때부터 백업으로 전락한 뒤, 도중에 올랜도 매직의 라샤드 루이스와 맞바꿔졌다.

그러나 팀 내에 베테랑이 없는 상황에서 주요 멤버들이 팀 플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원숭이같은 농구를 하면서 개그 구단이라 조롱받았으며, 특히 월은 2011-12 시즌 당시 돌파력 득점을 빼곤 페인트존 근처에서 슈팅 성공률은 40%를, 3점 슛은 한 자리수를 찍는 등 부진이 심했다. 그러자 또다시 팀을 갈아엎어 저베일 맥기와 안드레이 블라체, 닉 영을 타 팀에 보내버리고, 2012년 드래프트에서 3순위로 브래들리 빌을 뽑아 존 월 - 브래들리 빌 - 트레버 아리자 - 네네 힐라리오 - 에메카 오카포의 라인업을 완성시켰다. 팀은 2012-13 시즌 당시 처음 33경기에서 5승 28패를 기록하며 부진했지만 이후 24승 25패로 그럭저럭 경쟁력을 보여주면서 시즌을 마감했고, 존 월이 나름대로 시즌동안 발전하면서 의미있는 시즌을 보냈다.


2.5.2. 2013-14 시즌[편집]


프리시즌 도중 주전 센터였던 에메카 오카포가 목 디스크로 인한 부상이라는 사태를 맞이하며 시즌 시작 전부터 골밑에서 약점을 보인 채 시즌을 시작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위저즈 프론트진은 존 월과 장기계약도 체결한 만큼 올 시즌은 플레이오프에 가겠다는 의지를 보이면서 결국 피닉스 선즈로부터 2014년 1라운드 픽과 오카포를 주면서 수준급 센터 마신 고탓을 영입하며 시즌을 시작했다.

네네가 2월에 6주 결장을 하기도 했으나 평균적으로 우수한 활약을 해주고, 베테랑 트레버 아리자가 FA로이드를 접종한건지 평균득점이 5점 가까이 상승했으며 2년차 브레들리 빌도 점차 활발한 득점력을 보여주면서 팀의 전력이 안정화되었다.

결국 2014년에 올스타가 된 월과 밸런스 좋은 멤버들을 앞세워 44승 38패로 동부 5위에 안착, 6년만에 다시 플레이오프 무대에 오르는데 성공했다. 상대는 4번 시드였던 시카고 불스. 불스와의 플레이오프 시리즈에서는 불스의 답답한 백코트진보다 네네와 아리자등의 포워드 진이 불스보다 확실한 우위를 가지고 들어간 덕택에 4승 1패로 가볍게 불스를 누르고 2라운드에 진출한다. 상대는 애틀랜타 호크스를 간신히 잡고 올라온 동부지구 시드1위 인디애나 페이서스.

인디애나는 후반기 들어 경기력이 많이 안좋아진게 눈에 보였으며 애틀란타와의 시리즈에서 정점을 찍었기에 잘하면 컨퍼런스 파이널가지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했지만 워싱턴도 똑같이 못했다.(…) 원정경기인 1차전과 5차전에서 승리했지만 3차전에서는 KBL급 스코어인 63점밖에 못넣는 등 홈에서는 3번 모두 졸전을 펼친 끝에 2-4로 시리즈를 마쳤다. 존 월은 첫 플레이오프라 그런건지 정규시즌보다 못한 모습으로 아쉬움을 남겼다.


2.5.3. 2014-15 시즌[편집]


2014년 오프시즌에는 고탓을 5년 $60M의 장기계약으로 붙잡았으며 아리자를 휴스턴에 내줬으나 노장 폴 피어스를 영입해서 아리자의 빈자리를 메웠다. 12월까지는 제법 선전하는 듯 했지만 애초에 강팀이라고 부르기엔 미묘한 전력이었고, 46승 36패로 동부 5위에 머물렀다. 그래도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토론토 랩터스를 스윕하는 이변을 연출하기도 했다. 2라운드에서는 애틀란타 호크스와 맞붙는다.

1차전을 먼저 잡았으나 이 경기에서 존 월이 손목 골절을 당해 3경기를 결장하게 되었다. 3차전에 폴 피어스의 버저비터가 터지면서 2:2까지 만드는 등 선전했지만 5차전에서는 알 호포드의 결승 득점으로 반대로 경기를 놓치고, 6차전에서 다시 피어스가 동점 버저비터를 넣는 듯 했지만 이번에는 시간 초과로 무효처리가 되면서 지난 시즌처럼 세미파이널에서 2:4로 탈락하게 되었다.


2.5.4. 2015-16 시즌[편집]


시즌 초부터 브래들리 빌, 네네 등 여러선수들이 부상당하면서 어려운 시즌을 치뤘고, 네네와 고탓과 험프리스, 블레어의 빅맨진이 생각보다 꽤 부진해 강제적으로 스몰라인업이 동원되고 있다. 경기력이 들쭉날쭉해 전반기에 23승 28패를 기록했다.

이후 시즌중에 마키프 모리스, JJ 힉슨, 마커스 손튼등을 보강에 후반에는 더 나아진 경기력을 보였으나 이미 플레이오프 레이스에서 인디애나와 디트로이트가 우위를 점하고 있어서 결국 탈락했다.

시즌후 랜디 위트먼이 물러나고 후임으로 오클라호마의 감독이었던 스캇 브룩스를 5년 3500만 달러에 선임했다. 제한적 FA였던 브래들리 빌과는 5년 1억 3000만 달러의 맥시멈 계약을 체결했다.


2.5.5. 2016-17 시즌[편집]


시즌 초에는 동부 하위권으로 떨어졌으나 12월에 10승 5패를 하고 반등해 16승 16패로 2016년을 마쳤다.

그리고 1월에는 12승 4패의 호성적으로 또 한번 도약해 어느새 동부 2,3등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스캇 브룩스 감독은 이 성적에 힘입어 1월의 감독상을 수상했다.

2017년 2월 2일 현재 29승 20패 동부 4위에 홈경기 16연승을 달리고 있다.

그리고 17연승까지 해냈지만 2017년 2월 6일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와 빅샷이[16] 오고가는 혈전끝에 연장전에서 패배하며 홈 연승이 종료되었다.

그렇지만 그 경기 이후 4연승을 거두며 전반기를 34승 21패 동부 3위로 기분좋게 마쳤다. 아직 원정 경기가 홈 경기보다 7경기가 더 남았기에 후반기 행보를 지켜봐야겠지만, 그래도 거의 답이 없었던 초반 분위기에서 멋지게 반등에 성공했다. 특히 오토 포터의 성장이 큰 힘이 되는중.

후반기에도 워싱턴의 상승세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고, 보스턴이 덴버에게 패배한 날에 워싱턴은 새크라멘토전에서 대역전승을 거두어 보스턴에게 동부 2위를 뺏어왔다. 1위 클리블랜드와의 승차는 이제 2.5경기차로, 클리블랜드가 하락세인 것을 봤을 때 상승세를 잘 이어 나간다면 1위도 노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걸리는 점은 클리블랜드 상대로 이미 시즌 상대전적 열세가 확정되어 성적 동률시 순위에서 밀린다는것과 원정 경기 일정이 매우 험난하다는 것이다.

3월 11일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원정 경기를 치렀는데 백투백인데다가 전반전을 21점차로 밀린채 마쳐서 힘들어지는가 했지만 기어이 따라잡아서 연장전으로 끌고가 결국 125-124 역전승을 거뒀다. 그러나 명경기였으나 마지막 마키프 모리스의 위닝샷 과정에서 모리스가 사이드라인을 한번 밟고 위닝샷을 성공시켰기에 다소 찝찝한 마무리가 된 점은 아쉬웠다. 포틀랜드측에서 항의했지만 라인 크로스는 리뷰 대상이 아니라 판정이 번복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승리 이후 2연패-1승-2연패의 부진에 빠지면서 클리블랜드까지도 넘봤던 기세는 사라졌고 어느새 4위 토론토에게도 0.5경기 차로 위협받게 되었다. 물론 시즌 초반 헤매던 것에 비하면 괄목상대한 성적이지만 말이다.

3월 23일 애틀랜타 호크스와의 홈경기에서 존 월이 초반 최악의 야투감을 보였지만 후반에 살아났으며 그 외에도 브래들리 빌 등의 활약으로 꾸역꾸역 104-100으로 이기며 연패 탈출에 성공했다. 여담으로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양 팀 모두 턴오버가 난무했던 경기라 스포TV에선 NBA에서도 이렇게 인간적인 경기가 나온다, D리그급 경기였다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백투백 일정에서 3월 25일 브루클린을 129:108로 대파한 데 이어 3월 26일 클리블랜드 원정에선 월-빌 듀오가 각각 37점에 11어시스트, 27점에 6어시스트를 합작한 가운데 켈리 오브레, 마키프 모리스도 16점, 14점을 보태며 클리블랜드를 115:127로 격파했다.

이로써 45승 28패를 기록하게 되었고, 남은 9경기에서 5승 이상을 거두면 1979시즌(1978-79시즌) 워싱턴 불릿츠 시절 때 54승을 거둔 이후 처음으로 50승을 달성하게 된다.

4월 11일 동부 4위가 확정되었으며, 동부 5위인 애틀란타 호크스와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만나게 되었다. 최종 성적은 49승 33패로 아쉽게 50승은 실패.

4월 29일 애틀란타 호크스를 꺾고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 진출했다! 2연승 후 2연패를 하면서 설마..?했는데 다시 2연승으로 4-2.

2라운드에서는 정규시즌부터 불꽃튀는 신경전을 벌인 보스턴 셀틱스를 만나게 되었고, 시리즈에서도 양 팀은 계속 신경전을 주고받으며 명승부를 펼쳤지만 결국 홈 경기를 전부 잡았으나 보스턴 원정 경기를 전부 패배하며 아쉽게 3:4 패배로 컨퍼런스 파이널 진출에는 실패했다.

5월 20일 브래들리 빌이 CBS 스포츠와 인터뷰에서 캐빌리어스가 의도적으로 2라운드에서 우리를 안 만나려고 꼼수를 부렸다며 강하게 디스하였다. 이에 캐빌리어스 주전 스윙맨 JR 스미스는 그 말을 셀틱스를 7차전에서 이기고 난 후 해야하는 거 아니냐고 비웃었다.


2.6. 브래들리 빌의 시대[편집]



2.6.1. 2017-18 시즌[편집]


브루클린에서 제한적 FA인 오토 포터와 1억 6백만 달러에 협상을 마쳤고, 워싱턴은 오토 포터를 붙잡기 위해 매치를 실행하면서 거액이 빠져나갔다. 이어 존 월과도 4년 1억 7천만 달러에 재계약을 완료하면서 일단 2016-17 시즌 베스트 전력은 엇비슷하게 유지하게 되었다. 다만 브루클린에서 워싱턴으로 트레이드되어 벤치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줬던 보얀 보그다노비치는 인디애나로 떠났다.

전체적으로 작년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않다. 다행히 RFA 훼방의 달인 브루클린 덕분에 대형계약을 떠안게 된 오토 포터가 작년보다 더 성장한 활약을 펼치며 리그 탑급 스윙맨 자원이 되었지만, 고탓이 이랑 존월이 작년같지 않다. 고탓은 노쇠화가 심하게 왔고, 존월은 부상으로 인해 결장이 매우 잦은 편.

엎친데 덮친 격으로, 존월이 부상으로 빠진 틈을타 워싱턴이 연승 행진을 거두고 있었는데, 이때 고탓이 트위터로 "우리팀 정말 대단해!" 했다가 존월이 삐져버렸다. 삐진 존월은 트위터로 "나에게 가장 떠먹여 주는 득점과 어시스트를 제공받는 자가 할 소리는 아닌것 같다" 라며 분위기가 되게 이상해 졌다. 퍼거슨 오늘도 1승 추가 결국 팀은 존월과 고탓을 서로 만나게 해서 오해를 풀고 화해시키려 하고 있다.

이와 별개로 사토란스키가 존월의 공백을 잘 매워주고 있다. 켈리 오브레 Jr 도 성장하여 이제 팀의 핵심 식스맨이자 스몰라인업에서 주전으로 활용되고 있다. 마힌미는 얘기하지 말자. 3월 9일 현재 팀은 4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5위 인디애나와 승차없이 승률차로 앞선 상황이다.

그러나 한계가 있었던건지 시즌 막판에 패를 너무 많이 적립해 8위까지 미끄러졌다. 최종 성적은 43승 39패로 플레이오프에선 토론토 랩터스와 만나게 되었다.

플레이오프에서 동부1위인 랩터스를 상대했다. 1차전과 2차전에서는 압승을 당했지만, 존 월이 부상복귀 이후 경기에 서서히 적응하면서 3차전과 4차전에 맹활약을해 시리즈는 2:2로 팽팽하게 됐다. 하지만 시리즈가 길어져 워싱턴 위저즈의 벤치멤버가 빈약한 약점이 드러나면서 5차전과 6차전을 내리 패하게돼 플레이오프 행진을 멈추게 되었다.


2.6.2. 2018-19 시즌[편집]


시즌에 앞서 선수단에 변화가 있었다. 트레이드 등을 통해 마신 고탓, 마이크 스캇, 타이 로슨 등을 떠나보내는 한편 드와이트 하워드, 제프 그린, 오스틴 리버스 등을 영입, 로스터를 구축했다.

시즌 초반이 영 좋지 않다. 하워드가 정규시즌 개막부터 부상으로 드르렁하면서 경기에 나서지 못했고 첫 6경기에서 1승 5패라는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이 가운데 월과 빌이 선수단의 분발을 촉구했으나 오히려 역풍이 불었고 팀 분위기마저 x창이 나는 상황. 다행히 뉴욕 닉스를 잡고 연패 탈출에 성공했지만 댈러스, 올랜도에게 연달아 박살이 나면서 시즌 성적은 2승 9패. 동부 컨퍼런스 14위로 쳐지면서 컨텐더 팀과는 거리가 먼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와중에 팀의 리더인 존 월은 감독에게 F-Word를 외치고# 브래들리 빌은 연습때 싸우는 꼬라지를 7년동안 보고 있다며 팀 전체를 까는 등#[17] 팀 분위기도 매우 좋지않다.

전반기 성적은 24승 34패로 동부 11위.

2019년 4월 들어서 어니 그룬필드 단장을 해고했다.


2.6.3. 2019-20 시즌[편집]


그렇게 돈을 받아먹으면서 여유롭게 학업 중이던 문무겸장 이 세상 최고의 부자 대학생이 플레잉 코치로 팀에 합류했다. '플레잉'은 이번 시즌도 어차피 안할테지만.(...)

수비는 거의 없는 수준이고, 브래들리 빌만 죽어라고 득점을 올리면서 팬들을 눈물짓게 하고 있다.

그래도 워싱턴 내셔널스가 우승컵을 가져다주면서 지역팬들은 위로를 받았다. 내셔널스가 우승을 확정지은 7차전날 (휴스턴 원정) 워싱턴 위자즈는 휴스턴 로켓츠를 홈으로 불러들여 격렬한 전투 끝에 159 vs 158로 패배했다. (연장경기 아님)

캐피탈스(2018년 4월) - 미스틱스 (2019년 9월) - 내셔널스 (2019년 10월) 이렇게 우승이 없던 지역 친구들이 2년이 지나기도 전에 모두 V1을 달성. 위자즈(V1)와 레드스킨스(V3, 이번 시즌 탱킹 중)는 조금 입장이 초라하게 되었다.

동부에서 바닥을 기고 있다. 수비는 아예 버려버리고 공격에 몰빵하면서 가~끔 가다가 상대팀이 같이 수비가 무너지면 몇 경기 이기고는 있다.

주전들이 부상으로 다 빠진 상태에서 G리그 멤버들까지 콜업하는 처참한 로스터로 잘 나가던 마이애미 히트를 상대로 승리를 따내면서 이변을 하나 썼다. 그 이후로도 간간히 상위권팀들에게서 승리했는데 공격만큼은 여전히 좋은 팀이다. 공격만 좋다는게 문제.

시즌 후반 기준 동부 9위인데, 8위와의 차이가 너무 커서 플옵은 어림도 없는 상황.

그래도 코로나 19 여파로 중단된 리그가 단축 스케줄로 재개되며 올랜도 디즈니 월드로 초대된 22개 팀 중 막차를 탔다. 플레이오프 경쟁 상대인 네츠와 매직과는 각각 6게임과 5.5게임이나 차이가 나지만 산술적 진출 가능성은 남아 있어 끝까지 실낱같은 희망을 이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팀의 절대적인 에이스 빌이 어깨 부상으로 남은 시즌 나오지 못하게 되어 일찌감치 탈락한 후 승점자판기행 루트를 벗어나기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역시나 미국시간으로 8월 7일 이뤄진 뉴올리언스와의 경기에 패하며 더이상 8위와 4게임 이내로 좁힐 수가 없게 되면서 플옵경쟁에서 떨어지게 되었다. 게다가 추가일정 8경기 중 7경기를 전패하며 오히려 버블에 가지 못한 샬럿보다 승률이 낮아졌다. 최종전까지 패배하면 역시 버블에 가지 못한 시카고보다도 승률이 낮아져 시즌을 마감하게 된다. 하지만 추가일정 이전에 시즌이 종료된 팀들은 순위결정이 마무리된 것으로 처리되어 워싱턴의 시즌 순위는 동부 11위가 아닌 9위로 기록된다.


2.6.4. 2020-21 시즌[편집]


시즌 개막을 앞두고 휴스턴에서 언해피를 선언한 러셀 웨스트브룩과 존 월을 트레이드 했다. 그러나 시즌 초 웨스트브룩의 심한 부진과 팀의 부족한 수비력을 해결하지 못해 하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주전 센터 토머스 브라이언트가 십자인대 파열로 일찌감치 시즌아웃된 것도 큰 악재.

그러나 2월, 서부 원정에서 연승을 기록하는등 늦게나마 기세를 끌어올리고 있다. 가끔 상위권의 팀에게 의외의 일격을 주면서 승리하기도 하지만 결국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들을 이기지 못하고 브래들리 빌이 부상을 입으면서 웨스트브룩이 분전하지만 승리를 챙기지 못하는 상황.[18] 플레이 인에 들어가기 위한 10위와 거리가 멀어지는 상황이다.

그러나 브래들리 빌이 부상에서 돌아왔고 웨스트브룩도 폼도 유지. 리그 1위 유타 재즈를 원정에서 잡아내면서 유타 재즈 홈경기 올해 첫 패배를 먹이는 기염을 토한다. 그리고 경쟁권에 있는 시카고, 토론토보다 일정이 상대적으로 쉬운것도 유리한 부분. 2021년 4월 18일 현재 23승 33패, 시카고 불스와 함께 동부 공동 10위로 올라섰다. 플레이오프 희망조차 보이지 않던 시즌 초에 비하면 나름 연승을 달리며 플레이 인 토너먼트를 기대해 볼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유타전 이후 무려 8연승을 기록하면서 단독 10위로 올라섰다.[19] 27승 33패로 승률도 4할 5푼까지 올라왔다. 특히 웨스트브룩이 클러치구간에서 대활약을 펼치는 중이며[20], 시카고에 모 바그너를 보내며 얻어온 빅맨 대니얼 개포드가 알짜 활약을 해 주고 있다. 시카고와 토론토의 최근 폼이 상당히 저조하기 때문에 워싱턴의 플레이 인 토너먼트 진출을 낙관하는 관측이 상당히 늘어났다.

하지만 4월 27일 샌안토니오 스퍼스와의 경기에서 연장까지 가는 접전을 펼친 끝에 아쉽게도 3점 차이로 패배하면서 워싱턴의 연승 행진은 그렇게 끝이 났다. 하지만 바로 4월 28일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와의 경기에서 승리하며 만회를 하였다.

5월 1일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전에서 승리를 거둠으로 최근 10경기 전적 9승 1패라는 미친 기량을 내고 있다. 플레이-인 토너먼트 7-8위 대결팀이 되기 위해서는 인디애나와 샬럿을 제쳐야 한다. 워싱턴은 5월 4일, 5월 9일 인디애나전, 5월 16일 샬럿전에서 승리를 거두는 것이 포인트가 될 것이다.

5월 2일 샬럿, 인디애나가 각각 디트로이트, 오클리호마시티와의 경기에서 승리한 것과 반대로 워싱턴은 댈러스 매버릭스와의 경기에서 약 9초가량 남은 상황에 쏜 3점이 림을 외면하면서, 125:124로 아깝게 패배했다. 현 상황에서 무엇보다 샬럿의 패배와 5월 4일 인디애나와의 경기에서 승리가 절실한 상황이다.

5월 4일 인디애나 페이서스를 154:141로 이기면서 인디애나의 발목을 잡았다. 이 경기에서 러셀 웨스트브룩은 14득점 24어시스트 21리바운드를 기록하며 트리플-더블을 달성했다. 또 워싱턴은 시즌 최다 득점인 154점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5월 6일 밀워키 벅스와의 경기에서 브래들리 빌러셀 웨스트브룩이 각각 42득점과 29득점을 하여 분전했지만 135:134로 패하면서 8위 샬럿과의 승차가 2.5경기로 벌어졌다.

백투백으로 이뤄진 토론토 랩터스와의 경기에서 연장까지 가는 혈투끝에 129-131로 승리를 거두고 토론토와 4게임차를 만들면서 10위를 점차 굳혀나가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샬럿도 그날 시카고에게 패배하면서 다시 1.5게임차가 되었다.

5월 9일, 인디애나 페이서스를 상대로 연장끝에 132-133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해당 경기에서 브래들리 빌이 50득점 경기를 했고 웨스트브룩의 33득 15어시 19리바운드를 기록하며 통산 트리플 더블 181개를 기록하며 오스카 로버트슨과 타이를 이뤘다. 이로서 페이서스를 반경기 차이로 앞지르면서 9위로 올라섰다.

5월 11일, 애틀랜타 호크스를 만나 웨스트브룩이 통산 182번째 트리플 더블을 기록하여 로버트슨을 넘어 단독 1위에 올랐다. 그러나 마지막 3점 슛이 빗나가며 아쉽게 패배. 이후 5월 13일 호크스와의 재전에서는 116-120으로 또다시 접전패를 당하며 32승 38패로 동부 10위 자리에 있다. 동부 8~9위인 호네츠와 페이서스가 33승 36패이고, 페이서스에게는 타이브레이커를 가져온 있지만 호네츠에겐 타이브레이커를 빼앗긴 상태.

시즌 전반기 패배 누적의 원흉이 웨스트브룩이라면, 후반기 반복되는 클러치에서의 아쉬운 패배들은 스캇 브룩스 감독이 원흉으로 지목되고 있다. 의미없는 작전타임, 이해할 수 없는 클러치 라인업 등으로 잡을 만 했던 경기를 수없이 놓지며 과연 NBA 수준의 감독이 맞긴 한건지 모든 팬들이 의문을 표하는 중이다. 감독으로서 파이널 진출 이력이 있어 과대평가 되기도 하나, 이는 그 당시 구성원이 듀란트-웨스트브룩-하든-이바카라는 OKC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강의 전력으로 이루어진 팀이었기 때문일 뿐, NBA 가장 게으른 감독이라는 평이 이전부터 있었던 만큼 그 무능함이 여실히 드러나는 중이다. 웨스트브룩과의 캐미를 기대하고 한시즌 남겨놓은 것이 올시즌 위저즈의 최대 악수로 다가온 상황.

5월 15일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를 홈에서 잡아내며 플레이 인 토너먼트 진출을 확정지었다. 그리고 5월 16일 샬럿 호네츠인디애나 페이서스가 모두 패배하면서, 5월 17일 샬럿과 정규시즌 최종전 홈경기에서 동부 8위 자리를 놓고 단두대 매치를 펼치게 되었다.[21] 샬럿이 전날 뉴욕 닉스에게 원정에서 연장전 접전끝에 패배하여 체력을 소모한채 워싱턴으로 백투백 원정을 오는 것이기에 워싱턴에게 이점이 있지만 단판이라 승패는 장담할 수는 없다.

결국 5월 17일, 시즌 마지막 경기인 샬럿 호네츠 전에서 16점차를 뒤집고 115 vs 110으로 역전승, 34승 38패로 샬럿을 한경기 차이로 앞섬은 물론 및 동승률의 인디애나를 상대로 타이브레이커가 적용되어 동부 8위에 올라섰다. 아직 플레이인 토너먼트를 시작하지 않아 플옵 진출이 확정되지는 않았으나, 7위 결정전에서 승부를 겨룰 보스턴 셀틱스제일런 브라운이 아웃된 상황이니 만큼 운이 따라준다면 7위도 노려볼만한 상황이 되었다. 물론 7위 결정전에서 보스턴에게 패배할시 9~10위인 인디애나vs샬럿 중 승팀과 또다시 단두대 매치를 벌여야하기에 방심은 금물이다. 후반기에 웨스트브룩과 빌을 미친듯이 갈아넣으머 시즌 마지막날이 되어서야 겨우겨우 8위에 오른 상태이니 만큼 단판 경기에서 체력난조가 터질 경우 매우 위태로운 상황이 된다.

결국 플레이 인 토너먼트 7~8위전에서 보스턴에게 7위 자리를 내주었다. 보스턴의 테이텀&켐바가 동시에 폭발한 반면 워싱턴은 원투펀치인 빌&러스의 부진이 심각했고, 쏠쏠하게 활약하던 하치무라가 파울 트러블로 코트를 오래 비운 점과 3점을 제외하면 무툴이나 다름없는 베르탄스의 3점 벽돌 등으로 결국 다가올 인디애나와의 8위 단두대 매치를 준비하게 되었다. 기껏 팀성적을 플옵권으로 끌어올려놓고 플레이오프에 탈락할지도 모르는 상황.

보스턴에서 패한 후 5월 21일 인디애나 페이서스와의 단두대 매치에서 각성하며 142:115라는 큰 점수 차로 인디애나를 완전히 박살냈다. 보스턴전에서 패배의 원인 중 하나로 꼽혔던 3/21, 14.3%의 3점슛 성공률과 다르게 인디애나전에서 3점슛 성공률을 14/28, 50%로 끌어올리며 아직 워싱턴은 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줬다. 플레이오프 상대는 동부 1위의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지속된 이해할수 없는 3가드 전술로 내리 3게임을 내주고 4차전에 그나마 선수 구성을 바꾸고 핵 어 벤 전략으로 간신히 1승을 거뒀지만 결국 수비력과 뎁스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1라운드에 탈락했다.

시즌 후 계약이 만료된 스캇 브룩스 감독과 재계약하지 않기로 했다. 여담이지만 플레이오프 16강 탈락후 브룩스 감독 인터뷰에서 "나는 전술 스타일는 욕심내고 싶지않다." 라고 그냥 빤스런 쳐버렸다(...) 사실 본인도 경질 된거 알았는지 재계약 안하기 보인다


2.6.5. 2021-22 시즌[편집]


새로운 감독으로 워싱턴 위저즈의 영구결번인 웨스 언셀드의 아들 웨스 언셀드 주니어를 선임했다.

이후 레이커스와 브루클린과의 다각딜을 통해서 러셀 웨스트브룩을 내주고 켄타비우스 칼드웰-포프, 카일 쿠즈마, 몬트레즈 해럴을 영입했고 스펜서 딘위디를 사인 앤 트레이드로 영입, 대니얼 개퍼드와 3년 연장계약을 체결하며 안정된 로스터를 만들었다.

11월 14일 현재 시즌 초반이긴 하지만 9승 3패의 호성적을 거두며 동부 컨퍼런스 1위를 달리고 있다. 특히나 작년보다 개선된 점은 뎁스인데, 웨스트브룩&빌 의존도가 매우 높았던[22] 이전과 달리 KCP, 쿠즈마, 해럴, 딘위디 등 질좋은 즉전감이 다수 들어와 뎁스를 충분히 채워주었다. 빌의 시즌 초 폼이 좋지 않음에도 선전중이며, 토마스 브라이언트하치무라 루이[23]가 복귀한다면 더더욱 강해질 여지가 보이기에 시즌 전망도 꽤나 좋은 편이다.

허나 2월 10일 기준 패를 수도 없이 적립, 동부 11위를 기록 중이다.

트레이드 마감일에 딘위디와 베르탕스로 크리스탑스 포르징기스를 영입했다. 팀 내 불화의 중심에 있던 몬트리즈 해럴도 덤핑에 성공해서 빌-쿠즈마-포르징기스로 이어지는 삼각편대를 구축하였다. 마침 쿠즈마의 활약으로 카이리 어빙이 분전한 브루클린 네츠도 격파하며 플레이인 진입 가능성을 높였다.

하지만 중요한 순간 빌이 손목 인대 파열로 시즌아웃되면서 계속 패를 쌓고 있으며 3월 18일 기준 순위도 동부 12위, 플레이인 진입 가능한 10위와는 5.5경기 차이로 벌어졌다. 이대로라면 향후 시즌 전망과 빌의 재계약 여부 모두 불투명하다.

2.6.6. 2022-23 시즌[편집]



2.7. 이후[편집]



2.7.1. 2023-24 시즌[편집]


브래들리 빌이 결국 트레이드를 요청하면서, 6월 19일 피닉스 선즈에서 크리스 폴랜드리 샤멧, 2라운드 픽 다수를 받고 브래들리 빌을 넘기는 트레이드를 감행, 폴-쿠즈마-포르징기스라는 새로운 조합으로 시즌을 준비하나 싶었는데, 불과 나흘만에 트레이드를 통해 포르징기스보스턴 셀틱스로, 크리스 폴을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로 보내며 전면적 리빌딩을 선언했다.[24] 얻은 선수들을 정리하자면 조던 풀, 라이언 롤린스, 타이어스 존스, 패트릭 볼드윈 주니어, 다닐로 갈리나리까지 무려 5명이다.

3. 역대 성적[편집]


­
우승
­
준우승
­
플레이오프 진출

플레이오프 탈락

연도
정규시즌 순위[25]
플레이오프
컨퍼런스
팀이름
경기수


승률
1961-62
5위/5팀
탈락
서부 디비전
시카고 패커스
80
18
62
.225
1962-63
5위/5팀
탈락
시카고 제퍼스
80
25
55
.313
1963-64
4위/5팀
탈락
볼티모어 불리츠
80
31
49
.388
1964-65
3위/5팀
디비전 파이널 진출
80
37
43
.463
1965-66
2위/5팀
디비전 세미파이널 진출
80
38
42
.475
1966-67
5위/5팀
탈락
동부 디비전
81
20
61
.247
1967-68
6위/6팀
탈락
82
36
46
.439
1968-69
1위/7팀
디비전 세미파이널 진출
82
57
25
.695
1969-70
3위/7팀
디비전 세미파이널 진출
82
50
32
.610
1970-71[26]
1위/4팀
준우승
동부 컨퍼런스
82
42
40
.512
1971-72
1위/4팀
컨퍼런스 세미파이널 진출
82
38
44
.463
1972-73
1위/4팀
컨퍼런스 세미파이널 진출
82
52
30
.634
1973-74
1위/4팀
컨퍼런스 세미파이널 진출
캐피탈 불리츠
82
47
35
.573
1974-75
1위/5팀
준우승
워싱턴 불리츠
82
60
22
.732
1975-76
2위/5팀
2라운드 진출
82
48
34
.585
1976-77
2위/6팀
2라운드 진출
82
48
34
.585
1977-78
2위/6팀
우승
82
44
38
.537
1978-79
1위/5팀
준우승
82
54
28
.659
1979-80
3위/5팀
1라운드 진출
82
39
43
.476
1980-81
4위/5팀
탈락
82
39
43
.476
1981-82
4위/5팀
2라운드 진출
82
43
39
.524
1982-83
5위/5팀
탈락
82
42
40
.512
1983-84
5위/5팀
1라운드 진출
82
35
47
.427
1984-85
4위/5팀
1라운드 진출
82
40
42
.488
1985-86
3위/5팀
1라운드 진출
82
39
43
.476
1986-87
3위/5팀
1라운드 진출
82
42
40
.512
1987-88
2위/5팀
1라운드 진출
82
38
44
.463
1988-89
4위/6팀
탈락
82
40
42
.488
1989-90
4위/6팀
탈락
82
31
51
.378
1990-91
4위/6팀
탈락
82
30
52
.366
1991-92
6위/7팀
탈락
82
25
57
.305
1992-93
7위/7팀
탈락
82
22
60
.268
1993-94
7위/7팀
탈락
82
24
58
.293
1994-95
7위/7팀
탈락
82
21
61
.256
1995-96
4위/7팀
탈락
82
39
43
.476
1996-97
4위/7팀
1라운드 진출
82
44
38
.537
1997-98
4위/7팀
탈락
워싱턴 위저드
82
42
40
.512
1998-99
6위/7팀
탈락
50
18
32
.360
1999-00
7위/7팀
탈락
82
29
53
.354
2000-01
7위/7팀
탈락
82
19
63
.232
2001-02
5위/7팀
탈락
82
37
45
.451
2002-03
5위/7팀
탈락
82
37
45
.451
2003-04
6위/7팀
탈락
82
25
57
.305
2004-05
2위/5팀
2라운드 진출
82
45
37
.549
2005-06
2위/5팀
1라운드 진출
82
42
40
.512
2006-07
2위/5팀
1라운드 진출
82
41
41
.500
2007-08
2위/5팀
1라운드 진출
82
43
39
.524
2008-09
5위/5팀
탈락
82
19
63
.232
2009-10
5위/5팀
탈락
82
26
56
.317
2010-11
5위/5팀
탈락
82
23
59
.280
2011-12
4위/5팀
탈락
66
20
46
.303
2012-13
3위/5팀
탈락
82
29
53
.354
2013-14
2위/5팀
2라운드 진출
82
44
38
.537
2014-15
2위/5팀
2라운드 진출
82
46
36
.561
2015-16
10위/15팀
탈락
82
41
41
.500
2016-17
4위/15팀
2라운드 진출
82
49
33
.598
2017-18
8위/15팀
1라운드 진출
82
43
39
.524
2018-19
11위/15팀
탈락
82
32
50
.390
2019-20
9위/15팀
탈락
72
25
47
.347
2020-21
8위/15팀
1라운드 진출
72
34
38
.472
2021-22
12위/15팀
탈락
82
35
47
.427
NBA 통산 61시즌
V1

4923
2222
2701
.451

4. 영구결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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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펼치기 · 접기 ]
No. 10
No. 11
No. 25
No. 41
No. 45
얼 먼로
(Earl Monroe)

엘빈 헤이즈
(Elvin Hayes)

거스 존슨
(Gus Johnson)

웨스 언셀드
(Wes Unseld)

필 체니어
(Phil Chenier)





6.빌 러셀 - 전 구단 영구결번.

10.얼 먼로 (1967년-1971년) - 볼티모어
화려한 플레이로 'Pearl(진주)'라고 불린 공격수. 볼티모어 불리츠의 경영 악화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라이벌팀 뉴욕 닉스로 이적하게되고 그 곳에서 우승 반지 1개(1973)를 얻었다. 위자즈(불리츠)와 닉스 양쪽에서 모두 영구결번 되었다.

11.엘빈 헤이즈 (1972년-1981년) - 볼티모어/워싱턴D.C
언셀드와 함께 70년대 최전성기를 이끈 선수. 득점과 리바운드에서 높은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선수다. 이 둘의 콤비는 상당히 강력해 NBA 파이널 3회 진출, 1회 우승을 이룬다. 휴스턴 대학교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데뷔한 팀이 휴스턴으로 연고이전을 하고, 은퇴도 고향에서 하고 싶어서 휴스턴으로 갔던 로컬 보이이기도하다. 반지는 1개(1978).

25.거스 존슨 (1963년-1972년) - 볼티모어
달콤한 플레이를 한다는 뜻에서 'Honeycomb'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던 볼티모어 불리츠의 프랜차이즈 스타. 팀의 전성기가 찾아오는 시점과 본인의 커리어 막바지가 겹치는 바람에 NBA 우승은 하지 못했으나 (준우승 1회 기록) 1973년 이적한 인디애나 페이서스(당시 ABA 소속)가 우승을 하면서 커리어 마지막 시즌에 우승을 경험하고 은퇴할 수 있게 되었다. 반지는 1개(1973).

41.웨스 언셀드 (1968년-1981년) - 볼티모어/워싱턴D.C
언더사이즈 빅맨의 대명사. 데뷔시즌에 신인왕과 MVP를 동시에 거머쥐었으며 201cm밖에 안되는 키로 엄청난 수의 리바운드를 잡아냈다. 참고로 이당시 리바운드 경쟁자들이 이 양반이라든가 저 양반이라든가... 빌 러셀이야 언셀드보다 딱 5cm더 크니 논외 [27]. 은퇴 후 1981년 부사장을 시작으로 1987~1988년까지 코치, 1988~1994년까지 감독, 1994~2003년까지 부사장 및 단장(1996년부터)을 역임한 바 있다. 찰스 바클리와 더불어 통통한 단신이면서도 우승까지 팀을 이끌고 리그의 전설로 남은 유니크한 선수. 원클럽맨이며 우승반지는 1개(1978).

45.필 체니어(선수 : 1971년-1979년, 해설위원 : 1985년-2017년) - 볼티모어/워싱턴D.C
70년대 불릿츠 최전성기 멤버. 2018년 동료들보다는 뒤늦게 영구결번되었다. 부상으로 인해서 10시즌밖에 선수생활을 하지 못했지만[28] 1985년부터 2017년까지 워싱턴 D.C 지역방송에서 스포츠 해설가로 활약했다. 우승반지는 1개(1978).

얼 먼로와 거스 존슨은 볼티모어 불리츠 시절에 뛰었던 선수로, 워싱턴 연고이전 전의 스타들이다. 1971년 첫 파이널 진출 이후 존슨과 먼로는 팀을 떠났고 헤이즈와 체니어가 팀에 합류한다.

영구결번자 모두가 우승을 한 번씩은 했다.


5. 현재 선수명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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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bgcolor=#002b5c> '''[[틀:NBA 팀별 선수단|{{{-1 {{{#c4ced4 다른 NBA 팀 선수단 보기}}}}}}]]''' ||



6. G 리그 산하팀[편집]


파일:Capital City Go-Go.png
캐피털시티 고고
Capital City Go-Go
설립년도
2018년(6주년)
역사
캐피털시티 고고 (2018년~현재)
연고지
워싱턴 D.C.
컨퍼런스
동부 컨퍼런스
디비전
사우스이스트 디비전
홈구장
세인트 엘리자베트 이스트 엔터테인먼트 앤 스포츠 아레나[29]


7. 시티 에디션[편집]


파일:워싱턴 2017 시티 에디션.jpg
파일:워싱턴 2018-19 시티 에디션.jpg
파일:워싱턴 2019 시티 에디션.jpg
파일:워싱턴 2020 시티 에디션.jpg
파일:워싱턴 2021-22 시티 에디션.jpg
2017-2018
2018-2019
2019-2020
2020-2021
2021-2022
컬럼비아 특구[30]
컬럼비아 특구 2
성조기
성조기 2
불리츠[31]

시티 에디션이 올랜도 매직 이상으로 재미가 없는 편이다. 하나의 디자인으로 색만 바꿔서 2시즌씩 사용하고 있고 2021-22시즌의 불리츠 디자인 유니폼은 역사가 있는 유니폼이지만 클래식 유니폼으로 매시즌마다 사용하던 유니폼이라 차별점이 없다.


8. 여담[편집]


  • NBA 역사상 최초로 여성 경영자를 배출한 곳인데, 그 주인공인 수잔 오말리는 대학 시절 이 팀의 홍보부에서 인턴으로 시작해 1986년에 광고부장, 1988년 홍보부장 및 총괄부사장을 거쳐 1991년부터 16년간 사장을 지냈다.
  • 네이버에서 고품질 칼럼을 연재 중인 염용근 기자가 국내에서 대표적인 위저즈와 前 에이스 존 월의 팬이다. 존 월이 잦은 부상으로 결국 농구선수가 아니라 대학생이 되어버린 이후로는 언급을 하지는 않지만 수비를 내다버리고 브래들리 빌을 주축으로 공격에 올인 중인 워싱턴을 '불의 팀'이라고 표현하는 등 애정을 버리지 않고 있다.
  • 하치무라 루이가 입단한 이후, 일본어판 SNS 계정을 운영하고 있다.
  • 홈랜드 시즌 1에서 주인공 캐리 매티슨이 왜 팀명이 그따위냐며 디스하는 장면이 나온다.

9. 참고 자료[편집]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1 08:04:57에 나무위키 워싱턴 위저즈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A] A B NHL 워싱턴 캐피털스와 공용[1] NHL 워싱턴 캐피털스를 소유하고 있다.[2] 해당 팀명의 유래는 연고지였던 볼티모어 근처에 탄약 제조 공장이 있었던 데서 유래한 것이며 진짜 의미는 총알처럼 빠른 농구를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수도임에도 도시의 이미지가 워낙에 안 좋았던 까닭에 한때는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에 들어갈 정도로 막장 이미지였던 동네였다.[3] 전 애틀랜타 호크스 단장 대니 페리의 부친.[4] 대신 팀은 그 보상으로 레이커스로부터 1982년 드래프트 3라운드 및 1983년 1라운드 픽을 받았다.[5] 1980년 드래프트 때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 의해 2라운드 2번으로 뽑혔지만, 불리츠로 트레이드된 상태였다.[6] 호레이스 그랜트의 동생.[7] 루이빌대 1학년 때인 1986년 NCAA 전국대회에선 우승에 공헌했고, 1989년 드래프트 1위로 새크라멘토 킹스에 뽑혀 한때 주목받았지만 2000년 시애틀 슈퍼소닉스에서 은퇴 시까지 부상이 많아 제 역할을 못해왔다.[8] 마크 프라이스의 동생.[9] 동년 11월부터 경영부사장으로 복귀함.[10] 스토크스는 히트가 1993년 드래프트 2라운드에서 35번으로 뽑아 놨지만 커리어 상당수를 이탈리아 등지에서 뛰었고, 1997년에야 토론토 랩터스에 합류하여 잠깐 NBA 경험을 했다. 웹스터는 불리츠 합류 후 정규시즌 개막 전에 CBA로 돌아갔다.[11] 이후 그는 1998-99 시즌 도중 뉴저지 네츠와 계약했다.[12] 그러나 경영자로서 조던은 별로 평가가 높지 않다. 그가 선택한 전체 1번 픽은 역대 최악의 픽 중 하나라는 콰미 브라운(...) 또 밥캣츠 구단주로서 행사한 첫번째 픽으로 뽑은 애덤 모리슨은 그냥저냥 평범한 선수로 있다가 몇년만에 레이커스로 트레이드되어, 여기서도 별 활약없이(...) 2010년 우승반지를 낀다. 특유의 장발과 수염으로 인한 노안으로 벤치에서 미친 존재감을 과시하기는 했다.(...) 2012년에 전체 2픽으로 뽑은 마이클 키드-길크리스트는 데뷔 후 3년째 평균득점이 한 자리에 그치고 있다. 이 때 6번으로 뽑힌 대미언 릴라드는 올스타에까지 뽑혔고, 9픽으로 뽑힌 안드레 드레먼드는 2014 시즌에 두자리수 득점과 리바운드를 해줬다는 걸 생각하면, 정말 못 뽑은 셈이다. 그가 뽑은 보물은 켐바 워커 정도다.[13] 강압적인 조던의 존재로 인해 유망주들이 못 컸다는 의견도 있지만, 조던탓을 하기엔 이 선수들이 보여준게 너무 없다. 타이론 루는 2001년 파이널에 아이버슨 막은게 유일하게 커리어에서 빛난 부분이고 콰미 브라운은 조던이 떠난 후 10년간 제자리걸음만 했다. 즉, 냉정히 말하면 조던탓을 할것도 없이 애초에 그 정도밖에 안되는 선수들이었다는 소리. 오히려 조던은 2002-03시즌 초반에는 식스맨을 자처했지만 동료들이 워낙 답이 없기에 주전으로 나선 것이다. 게다가 콰미 브라운은 은퇴 후 본인 입으로 조던에게 괴롭힘당했다는 것은 오해이며 오히려 찰스 오클리같은 베테랑들이 군기를 심하게 잡았다고 한 바 있다. 조던의 대외적 이미지 때문에 생긴 편견.[14] 이 과정에서 조던이 경영진 복귀를 시도했지만 폴린 구단주 때문에 무산됐다.[15] 전임 덕 콜린스 감독도 2002/03 시즌부터 모션 오펜스를 써먹으려 했으나, 주전들의 잦은 부상과 아이솔레이션 의존, 빅맨들의 능력 부족 등으로 실패했다.[16] 정말장난아니였다 르브론의 0.3초를 남긴 연장전 직행 3점슛, 어빙의 연장전 1분을 남기고 성공한 3점;;[17] 참고로 브래들리 빌은 7년차다. 본인 말에 따르면 입단이후 내내 이랬다는 뜻이다.[18] 실제로 4월 10일,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전까지 합쳐서 5할 미만 승률 보유팀에게 8승 14패를 기록 중이다.[19] 이 연승 기록은 마이클 조던이 뛰던 시절 이후로 처음이라고 한다[20] 클러치 구간 득점 5위에 클러치 야투율이 59.1%로 리그 전체 1위에 올라 있는 등 야투율이 저조한 웨스트브룩답지 않은 기록을 쓰고 있다.[21] 샬럿, 워싱턴, 인디애나 세 팀 모두 현재 성적이 33승 38패이지만, 인디애나는 샬럿과 워싱턴 두 팀 모두에게 상대전적에서 밀리기 때문에 토론토 랩터스와의 마지막 경기를 이긴다고 해도 샬럿 VS 워싱턴 경기 승리팀보다 윗 순위로 갈 수 없다.[22] 실제로 웨스트브룩의 폼이 바닥이던 시즌 초 위저즈의 승률은 처참했다.[23] 그러나 현재는 NBA G 리그 뛰고있다. 이유는 개인적 사정으로 하부리그로 내려갔다고. 허나 지휘관 말은 하부 뛰는거 보다 더욱 열심히 노력한 모습을 보고싶다고 1군에서 뛰기로 결정했다.[24] 일부 위저즈 팬덤에서는 얻어오는건 거의 없고 밑지는 장사를 한게 아닌가 생각할 수 있지만 브래들리 빌과 폴의 가성비를 생각하면 사실상 이게 최선이긴했다. 빌은 트레이드 거부권을 가지고 있었기에 처리자체가 힘든 스타플레이며 폴 같은 경우는 전성기가 다 지나고 끊임없이 건강에 문제가 있는데다 샐러리까지 꽤나 높은 노장인데다가, 포르징기스는 옵트인 옵션때문에 가능한 빠른 시간내에 처리를 해야 했던 시간의 압박감이 있었다.[25] 디비전 순위가 의미가 없어진 2015-16 시즌부터는 컨퍼런스 순위 기재.[26] 이 시즌 부터 서부, 동부 컨퍼런스로 구분되었다.[27] 기존 버전에는 빌 러셀이 언더사이즈라고 적혀 있었는데 러셀은 키가 206~208이며(당시는 신장 측정이 정확하지 않음) 이 정도 키는 60년대 센터치고 작은 키가 아니었다. 당시는 180후반의 슈팅가드나(레이커스의 막강 백코트인 제리 웨스트, 게일 굿리치 등은 188,185에 불과했다) 190대 후반~2미터 초반의 파워포워드들도 많았다. 윌리스 리드 역시 208로 표기되었는데 본인 증언에 따르면 러셀과 키가 똑같았다고. 실제로 러셀과 동년배 센터들은 윌트 챔벌린(216), 월터 듀크스(213) 정도를 제외하면 조니 커(206), 웨인 엠브리(203), 제리 루카스(203), 모리스 스톡스(203)등 전체적으로 러셀과 비슷했으며 그를 신체적으로 압도할만한 선수는 별로 없었다.[28] 우승시즌인 1977-78년 초반의 부상으로 인해서 기량을 잃어버렸다.[29] WNBA 워싱턴 미스틱스와 홈구장 공유.[30] 워싱턴 D.C.를 지칭하는 컬럼비아 특구를 팀명과 지명 대신 가슴의 로고로 새겼다. 워싱턴 D.C.의 랜드마크인 워싱턴 기념탑이 옆구리의 장식으로 들어갔다.[31] 볼티모어/워싱턴 불리츠 시절의 유니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