웁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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웁살라 (스웨덴)





1. 개요
2. 역사
3. 경제
4. 볼거리



1. 개요[편집]


스웨덴 동부에 위치한 도시이자, 웁살라주의 주도. 스톡홀름과는 70km 정도 떨어져있으며 통근열차로도 갈 수 있다. 스웨덴 루터파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2. 역사[편집]


도시에서 약간 떨어진 감라 웁살라(Gamla Uppsala)가 과거 웁살라의 중심지로, 현재 시 중심지는 과거에는 외스트라 아로스(Östra Aros)로 불렸다. 스웨덴 이교도의 중심지였으며, 옛 이교도 신전에는 북유럽 신화의 우상들이 있었다고 한다. 13세기까지만 해도 감라 웁살라가 중심이었으나 과거 북유럽 신화 신전 터에 세워졌던 감라 웁살라 대성당이 불타면서 성왕 에리크 9세의 유물함이 현재 대성당 자리로 옮겨졌고, 1435년 웁살라 대성당이 완공되었다.

1477년, 웁살라 대주교 야코브 울프손(Jakob Ulvsson 1430~1521)의 노력으로 웁살라 대학교가 세워졌다.

1702년 대화재로 큰 피해를 입었다. 1960~70년에 걸쳐 많은 역사적 유산들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스웨덴에서 오래된 건물들이 많이 남아있다.

3. 경제[편집]


대학교가 있는 만큼 연구소들이 많이 위치해있다. 최근에는 웁살라 대학교의 주도로 바이오 산업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다.

4. 볼거리[편집]


스웨덴에서 가장 오래된 웁살라 대학교칼 폰 린네, 안데르스 셀시우스(Anders Celsius 1701~1744)[1], 다그 함마르셸드, 잉마르 베리만 같은 유명인 외에도 노벨상을 수상한 여러 학자들을 배출한 명문 고등교육기관이다. 원래는 종교 교육기관이었으며, 1595년 시기스문드가톨릭화 정책에 반발하여 열린 웁살라 종교회의가 이 대학에서 열렸다.

북유럽에서 가장 큰 웁살라 대성당(Uppsala Domkyrka)은 성왕으로 추앙받는 에리크 9세 외에도 독립시조인 구스타브 1세 바사와 그의 둘째 아들 요한 3세 및 막내딸 엘리자베트(Elisabet Gustavsdotter Vasa 1549~1597), 칼 폰 린네, 에마누엘 스베덴보리, 초대 루터파 웁살라 대주교 라우렌티우스 페트리(Laurentius Petri 1499~1537) 등 스웨덴의 유명 인사들이 묻혔다. 스톡홀름의 대성당(Storkyrkan)과 더불어 스웨덴 국왕대관식을 양분한 상징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위층의 보물관에는 스웨덴 왕족들이나 대주교들의 보물들과 의상들이 전시되어 있다.

웁살라 성(Uppsala Slott)은 웁살라 대성당에서 대관식을 끝낸 스웨덴 왕들이 만찬을 열었던 성. 크리스티나 여왕은 이 성에서 고종사촌 오빠인 츠바이브뤼켄-클레부르크 궁정백 카를에게 양위하고 물러났다.

대성당에서 멀지 않은 곳에 린네가 살았던 집을 박물관으로 바꾸어 공개하고 있다. 박물관 앞 정원에는 약간의 식물들도 전시하고 있다.

감라 웁살라 또한 둘러보는 것이 가능하다. 다만 거리가 좀 있어서 웁살라 중앙역에서 버스를 타고 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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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섭씨온도를 고안한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