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스이 요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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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이 요시토
臼井 儀人 | Usui Yoshito


파일:우스이 요시토.jpg

2007년 11월 당시 생전 모습.
본명
우스이 요시히토
(臼井(うすい 儀人(よしひと, Usui Yoshihito)

출생
1958년 4월 21일
시즈오카현 시즈오카시[1]
사망
2009년 9월 11일 (향년 51세)
군마현 칸라군 시모니타마치 아라후네산
국적
[[일본|

일본
display: none; display: 일본"
행정구
]]

신체
175cm
가족
아내 우스이 히사코
장녀 우스이 미코토, 차녀 우스이 미츠키
학력
카스카베공업고등학교[2] (졸업)
직업
만화가
데뷔
1987년 '다라쿠야 스토어 이야기'
활동 기간
1987년 ~ 2009년
서명
파일:우스이 요시토 서명2.svg


파일:external/blog-imgs-15.fc2.com/20111209001848733.jpg

극장판에서 카메오로 출연할 때의 오너캐 모습.[3]

1. 개요
2. 작품 성향
2.1. 작품 목록
3. 한국과의 관계
4. 실종 후 사망 확인까지
5. 여담



1. 개요[편집]


일본만화가. 대표작은 크레용 신짱.

국내에선 애니메이션 짱구는 못말려로 더 친숙한 만화 크레용 신짱의 원작자로 유명하다. 이 만화의 국민적 대성공에 힘입어 일본의 거액 납세자 중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만화가로서의 자신의 직업이 꿈을 판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생전에는 자신의 모습이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꺼렸다고 한다.

2. 작품 성향[편집]


둥글둥글한 그림체에 어울리지 않게 스포츠지 등에서 성인 취향의 4컷 개그만화를 전문으로 그리는 카투니스트였다. 사실 크레용 신짱도 성인을 위한 개그 만화에서 아동 만화로 방향을 전환한 작품이며,[4] 신짱 이외의 작품은 전부다 성인 취향 개그 만화다. 크레용 신짱의 인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1990년대 중반에 우스이 요시토의 다른 작품이 몇 개 번역되었는데[5] 여기 있는 진짜 성인물들은 매우 수위가 높다. 수간, 혼전임신, 3P, 풍속업소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6] 이런 작품들에 비하면 크레용 신짱만큼은 전연령용으로 순화된 축에 속한 편이다.


2.1. 작품 목록[편집]


  • 언밸런스 존
  • 믹스 커넥션
  • 못말리는 개그클럽
  • 엉망진창 슈퍼마켓
  • 요절복통 슈퍼마켓
  • 스크렘블 에그
  • 크레용 신짱
  • 슈퍼 주부 츠키미씨[7]
  • 시와요세 인력 사무소


3. 한국과의 관계[편집]


친한파이다. 생전에 한국에 여러 번 방문하기도 했으며, 한국에 그가 즐겨 찾던 음식점이 있었다고 한다. 더불어 그의 부인과 자녀들도 대단한 한류 팬이라고 한다. 그의 만화에 친한 성향이 잘 드러나는 예로는 작중 짱구의 엄마 봉미선이 열심히 보는 드라마 여름 찬장은 일본에서도 히트를 쳤던 드라마 겨울연가의 패러디가 있다. 그리고 미사에가 한국의 인기 배우인 장동건이 일본에 온다고 하자, 애들을 데리고 냅다 공항으로 달려갔다. 또한, 노하라 일가가 한국으로 여행을 가는 에피소드가 있다.[8] 이 때문에 일본 내수판 애니메이션 에피소드에서도 한국어가 나오거나 한국 요소가 나오는 장면이 많으며, 원판 애니에서도 짱구가 '안녕하세요~'라는 말을 몇번 한 적이 있다.[9] 그 외에도 일본 연재본에서 동방신기가 언급된다거나 한국에서 있었던 사건인 내귀에 도청장치가 언급되는 등..

김혁의 글에 의하면 한국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지방에서 열린 애니 관련 페스티벌에 초대된 적이 있는데, 다른 만화작가들은 참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우스이는 참석을 했는데, 덕택에 그 행사가 실속을 차렸을 정도였다고 한다. 내세울 만화작가가 그 뿐인지라 사인회도 오래하고 여러번이나 해야할 정도였다. 그래도, 짱구는 못 말려 인기 덕분에 불만사항이 없었고 행사에서 인기를 얻다보니 덕분에 관계자들이 숙식에 드는 비용을 전액 부담하여 사례하였다고 한다. 작가 본인도 당시를 회상하며 한식 좋아하는 것을 얼마든지 주문하라고 하여 실컷 먹었다고 할 정도였다. 이 김혁에게 사인을 해 줄때 한글로 적었는데 글씨가 매우 바르다. 김혁이 말하기를 그와 그의 아내인 우스이 히사코는 한국어 학원에 등록까지 해놨다고 했다.

황미나가 쓴 글에 의하면 다른 행사가 진행될 때 같이 참석하여 만난 적이 있는데 그는 어설프게나마 한국말로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하였으며, 잘 웃어 주었다고 한다. 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황미나 씨는 그 때를 회고하며 안타까워하는 글을 올려 그의 명복을 빌었다.

또한 SBS 방영 초기에 SICAF에서 아기공룡 둘리의 원작자인 김수정과 캐릭터 교환식을 하기도 했었다. # 후일담에 의하면 SICAF가 끝나고 나서는 이외수도 만났었던 것 같다. ##


4. 실종 후 사망 확인까지[편집]



파일:kureshin1우스이요시토추모1.jpg
파일:kureshin2우스이요시토추모2.jpg

우스이 요시토의 사망 확인 이후 방영된 짱구는 못말려의 추모자막[10]
[크레용 신짱] 원작자 우스이 요시토 선생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진심으로 애도의 말씀을 올립니다.
저희 방송은 앞으로도 계속 할 예정이오니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2009년 9월 11일 군마현 아라후네산(해발 1423m)으로 등산을 하러 출발한 뒤에 실종되었다.

실종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군마 경찰 측이 사건과의 연관성을 알아보고자 주변인물에 대해 조사한 결과 아내가 여호와의 증인 신자였음이 밝혀졌고 작가 본인도 상당히 우호적이라고 알려졌다. 작가 우스이 요시토의 모친은 아들이 신흥종교에 거액을 기부하는 것에 대해 안 좋게 바라보아 우스이 요시토와 모친이 싸운 적도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단순히 등산을 가서 실종된 만큼 종교단체와의 연관성은 적은 것으로 보는 분위기.

그런 가운데 8일만인 9월 19일 120미터 높이의 가파른 절벽[11] 아래에서 등반하고 있던 등산객에 의해 작가로 추정되는 시신이 발견되었다. 시신 발견 이후 곧바로 수습을 하려 했으나 현장 경사가 40에서 60도에 달하는데다 헬기를 통한 수습이 어려워 이튿날인 20일에 시신을 수습하고 확인 작업을 실시하게 되었다. 본인 확인이 이뤄지지 않은 사이에 몇 몇 언론에서는 사람들을 낚으려는 듯 "짱구 작가 사체 발견"이라는 제목으로 포털사이트 메인을 장식하기도.

결국 치형대조 결과와 가족의 확인절차를 통해 신원불명의 시체가 우스이 요시토 본인으로 판명되었다.[12]

현재 밝혀진 사인은 소지품인 카메라에 찍힌 사진에 의하면[13] 벼랑 밑의 풍경을 찍다가 실족사한 걸로 보고 있다고 한다. 등산로 자체는 완만한 편인데 사진을 찍으려고 험한 곳에 가다가 사고가 난 것으로 알려졌다. 선술했듯이 약 120m 아래로 추락했다고 하며 국내 방송에서도 해당 사건이 위기탈출 넘버원을 통해 소개되었는데, 재연극에서의 지나친 희화화 때문에 사고 자체의 안타까움이 굉장히 변질됐다. 팬들이 보면 기분 나쁠 정도.(등산하다가 개미를 보고 이상하게 웃으면서 사진을 찍는 모습으로 표현) 반면 애니메이션을 정식방영하는 투니버스에서는 편성PD 강유미가 9기 첫회에서 해당 사건을 추모하는 소식을 알렸고, 초시공! 태풍을 부르는 나의 신부의 엔딩 크레딧에는 모두가 정면을 보고 있으며 마지막 부분에는 '우스이 요시토 선생님을 추모하며.'라는 말로 그를 추모했다. 그 외에 과거 정식방영을 했던 SBS와 보도전문채널YTN에서는 도쿄 특파원의 리포트로 해당 소식을 전했었으며(SBS, YTN), MBC에서도 단신으로 사망 소식을 보도했었다. #

참고로 우스이 요시토 사망 이후 모친은 며느리보다 일본 내에서 더한 상당한 비판을 받았는데, 작가의 모친과 작가가 싸우게 된 원인이 거액의 기부금을 내는 것에 모친이 불만을 가졌기 때문이다. 작가가 자신이 벌어들인 돈으로 종교단체에 기부하는 것에 작가의 어머니가 간섭할 권한은 없었고 되려 작가의 모친이 그동안 작가가 벌어들인 인세로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했다는 것이 알려졌는데, 싸움의 원인이 모친이 자신의 호화로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작가를 간섭한 것이라는 것이 일본 내의 주류 의견이었다. 작가가 모친과 싸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기에 싸움의 원인이 알려졌으며 모친이 유산문제 관련으로 잡음을 일으키면서 아들을 잃은 불쌍한 노인에서 아들을 잡아먹은 마녀라는 평을 받으며, 모친의 신상이 공개되면서 그야말로 가루가 되도록 일본 내에서 맹비난을 당했다. 기본적으로 우스이 요시토의 유산인 크레용 신짱의 저작권 및 인세는 배우자인 아내와 자녀들에게 가는 것인데도 이 모친이 아들이 자신에게 일임했다는 위임장을 공개했으나, 실제 작가가 위임했는지 명확하지 않아 기각되면서 사문서위조 혐의까지 받아 일본 내에서 사이비 논란이 있는 여호와의 증인도 문제지만 우스이 요시토의 어머니는 그보다 더 막장이라는 평을 받았다. 즉, 우스이 요시토의 모친은 아들을 돈줄로 보고 사치를 일삼다가 아들이 (사이비 논란이 있다지만) 종교단체에 기부를 하는 것에 불만을 품고 혼을 내는 등 편협하게 굴다가 아들이 죽고서는 그 사실이 드러나 본인이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었으니, 한일 양국 팬덤에서 전혀 불쌍하게 여기지 않는 자업자득이라는 시각이 팽배하다.

현재는 그의 딸들과 제자들이 우스히 요시토의 명의를 이어받아 신 크레용 신짱을 연재하고 있다. 애니판은 원작 연재 시절부터 오리지널 에피소드가 많았고, 제작진들도 신짱이라면 여기서 어떻게 할지 고려해서 제작한다고 한다.

이후 픽시브에는 우스이 작가를 추모하는 그림들이 올라왔으며 天国へ漫画を描きに行った男(천국으로 만화를 그리러 간 남자)라는 태그가 생겼다.

5. 여담[편집]


  • 원고 작업을 어시스트를 쓰지 않고 부인과 두 딸과 함께 작업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 가끔 극장판에 젊은 미청년의 모습으로 작가 본인(?)이 등장하기도 한다. 작중에서 TV에 방영하는 형사 드라마에서 극장판의 모습으로 등장했는데, 이때 '개그 만화 표절죄'로 형사들에게 쫓겼다. 출연한 신짱 극장판은 5기, 6기, 7기, 8기, 11기이다.

  • 극장판에 출연해 노래도 불렀다. 이때 부른 곡은 《토바 이치로 - 형제선》, 《크리스탈 킹 - 대도시》

  • 사잔 올 스타즈 팬이어서 가끔 만화에서 사잔 올 스타즈 언급이 등장하기도 했다. 애니판에서도 사잔 곡을 쓴 에피소드도 있을 정도. 대표적인 에피소드가 331화(국내판 6기 15화)의 마츠자카 선생의 사랑의 결말 편인데 이때 나온 노래가 '希望の轍'라는 곡이다.[14] 그 외에도 작중에서 히로시가 목욕하면서 올 스타즈 노래를 흥얼거린다거나 차 안에서 올 스타즈 노래가 담긴 카세트테이프를 찾는 장면 등이 있다.

  • 그림체가 단순한 스타일이어서 묻히기 쉽지만 의외로 극화체도 잘 그리는 편이다. 이는 크레용 신짱의 단행본 후반권부터 중간중간 4컷 만화를 장식해 주는 극화체 풍의 일러스트에서 알 수 있다. 극화 크레용 신짱도 있다. 극화 1편 극화 2편

  • 신장은 175cm로 당대로서는 큰 편에 속했다.

  • 신짱에 삽입되는 노래의 가사를 직접 작사하기도 했다. 크레용 신짱의 첫 번째 여는 노래인 '동물원이 큰일이다'를 작사하는 데 이어 일본판 13번째 닫는 노래인 '엄마와의 약속 노래'와 '키타사이타마 불루스', '해바라기 체조'의 일부 가사를 직접 작사하기도 했다. 작가가 신짱에 대한 애착이 얼마나 컸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

  • 한국에 대해 긍정적인 내용을 많이 써서 혐한 단체로부터 협박을 많이 받았다.

  • 사망 당시의 추모곡은 크레용 신짱 애니 극장판 8기의 주제곡인 «코바야시 사치코 - '안녕 고마워'»였다. 곡의 가사도 분위기도 잘 맞아떨어져서 훨씬 아련해진다.

  • 일본 원판 2009년 당시 국내에서는 짱구는 못말려 12기가 방영할 때였다. 크레용 신짱 또한 마지막권인 50권 발행 되기도 전이었다.

  • 원작가가 사망한 이후로 딸이 작가할 때부터는 짱구는 못말려의 수위가 낮아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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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란 곳은 사이타마현 카스카베시. 대표작인 크레용 신짱의 배경이 카스카베시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 고등학교 졸업 후 직장 생활을 하다 만화전문학교에 입학했다고 한다.[3] 만화가 우스이 요시토(취미: 변좌관상(감상), 좋아하는 여성의 타입: 마츠 타카코)라고 적혀 있다. 이때 부르는 노래는 토바 이치로 - 형제선. 극장판에 나오는 우스이 요시토의 한국 성우는 비디오판에선 박상훈이, 대원방송판에선 현경수가 맡았다.[4] "짱구는 못 말려"로 발매되던 시절엔 상단 귀퉁이에 경고 문구가 들어간 빨간 딱지가 인쇄되어 성인물임을 표시하고 있었으며, 초기엔 여성의 나체가 거의 적나라하게 그려지던 시절도 있었다. 그리고 아동용으로 전환되었다곤 하더라도 이후에 묘사가 좀 더 순화되었을 뿐이지, 다소 선정적인 표현이 아예 없던 건 아니다.[5] 세월이 흘러 모두 절판되었고, 특히 오래된 작품들은 부천 한국만화박물관 만화도서관에선 2017년 이후 열람을 할 수 없다. 그리고 이 작가의 작품 중 인기가 많은 작품은 신맨말고 딱히 없다.[6] 이런 작품들에 나온 개그의 예를 하나 들자면, 한 남매가 다투는데 그 이유가 누나가 남동생의 야구 배트에 쇠구슬을 수십 개 박아넣었기 때문이다.[7] 서울문화사판은 신바람 lady 짱미는 못말려라는 이름으로 정발됐었고 3권 이후로 절판.[8] 짱구는 한국에 두 번 갔다 왔다. 첫번째는 만화가 이벤트에 당첨되어 훈이랑 같이 가게 된 적이 있고, 두번째는 가족이 겨울연가 이벤트를 위해 간 적이 한번 있다. 첫번째의 경우는 당시 서울문화사에서 로컬라이징판을 번역해서 내던 때였기 때문에, 번역 본에선 반대로 짱구가 일본에 여행을 간 것으로 바뀌었다. 짱구가 한국 음식인 김치를 먹고 너무 맵다면서 난리를 치는 장면이 있는데, 한국판에서는 반대로 일본 음식 중 하나인 와사비를 먹다가 맵다고 난리를 치는 장면으로 설정 변경 되었다. 물론 서울문화사 발매본 기준의 이야기이며, 재발간된 학산문화사 판에서는 이 부분이 제대로 수정되었다. 두번째로 간 한국 여행의 경우는 이미 학산문화사로 판권이 넘어가 일본명 그대로 번역만 되었던 때였기 때문에 그냥 그대로 나온다.[9] 짱구랑 비슷한 일본 애니메이션이던 아따맘마에서도 한국에 대한 언급이 종종 나오는 경우가 있다.[10] 우스이 요시토의 사망 확인 이후에 방영된 2009년 10월 16일 681화의 부분이다. 단조로운 배경과 명조체 자막, 별도의 음악이 삽입되지 않은 추모 메세지 때문에 당시 시청하고 있었던 시청자들은 섬뜩함을 느꼈었다는 후일담이 나왔다.[11] 단, 이 사진은 단순히 절벽을 조금 멀리서 찍은 사진이다.[12] 약 120미터 높이의 절벽에서 추락했기에 옷이 찢어지고 전신에 골절이 발생했으며 얼굴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훼손되어 치형대조를 통해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13] 카메라에 촬영되어 있는 마지막 사진은 9월 11일에 촬영된 것인데, 벼랑 아래쪽을 보고 있는 사진이었다고 한다.[14] 국내판에서는 윤도현의 '사랑했나봐'가 삽입되었다. 사실 사잔 올 스타즈는 그 일본 내 친한파의 최종 보스인 초난강의 입지를 위협할 정도의 친한파들이다. 우스이 요시토나 사잔 올 스타즈나 친한파들이었다 보니 케미가 잘 맞았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