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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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미관
優美館
파일:우미관 로고.png[1]
정식 명칭
우미관
주소
1912년 ~
1959년

서울특별시 종로구 관철동 15-1
(現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4길 4)
1959년 ~
1982년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 262
(現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63-8)
설립일
1912년 12월
폐관일
1982년 11월 30일
업종명
극장 상영 및 운영


파일:external/www.bookandlife.co.kr/906_852_534.jpg

우미관
1. 개요
2. 역사
3. 기타



1. 개요[편집]


서울특별시 종로구 관철동에 있었던 영화관.


2. 역사[편집]


1912년 12월에 일본인 하야시다 긴지로(林田金次郞)와 시바타 미요지(紫田三代治)가 세웠다. 흔히 "처음에는 경성고등연예관(京城高等演藝館) 이름으로 개관했다가 나중에 우미관으로 이름을 바꿨다."라고 알고 있으며 대부분 자료에도 그렇게 나와있지만, 사실 저 두 곳은 별개이다.#

우미관은 조선인 전용 영화관이었다. 개관 당시 영화는 무성영화[2]라서 내용을 설명해주는 변사가 있었는데, 조선인일본인이 함께 관람하면 조선인 변사와 일본인 변사가 번갈아 설명해야 했기 때문에 관람하기 매우 불편했다. 그래서 우미관은 처음부터 관객을 조선인만을 대상으로 했고, 변사도 조선인으로만 두었다.#

1916년 12월에는 무려 미국 유니버설 스튜디오와 특약을 체결하여 조선에서 유니버설 영화를 독점 상영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그러면서 우미관은 조선인들 사이에서 명소가 되었고, "우미관 구경 안하고 서울 다녀왔다는 말은 거짓말"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전국에 알려졌다. 얼마나 인기가 있었냐면, 개관 당시 극장에 비치된 나무의자는 1,000명 정도 수용이 가능했는데, 항상 2,000명이 넘는 관람객으로 들어찰 정도였다고 한다. 1924년 5월에 건물 전체가 불탔고 같은 해 12월에 재건했다. 1926년부터는 경영체제를 관원들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것으로 전환했다.#

찰리 채플린의 《황금광 시대》를 비롯해서 《카추샤》, 《몬테크리스토 백작》, 《파우스트》, 《마침내 안전!》 등의 유명한 서양 영화들을 대거 상영하여 독보적인 위치를 확보한 우미관은 1928년 최초로 ‘소리나는 활동사진’인 유성영화를 상영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위상은 많이 떨어졌다. 단성사 · 조선극장 등 새로 생긴 영화관들과 경쟁해야했는데 시설 수준이 비교적 떨어졌기 때문이다. 대신 관람료를 대폭 낮추어 1930년대 중반에는 조선에서 가장 많은 관객이 찾는 영화관이 되었다.# 관람료가 낮은 건 종로 5정목[3]에 있던 제일극장도 마찬가지였지만, 사람들은 우미관을 많이 찾았다. 왜냐하면 우미관이 있던 관철정[4] 주변에는 영화를 보고 나온 조선인 관객들을 대상으로 한 음식점, 선술집 등이 많아 영화보고 난 뒤 가볍게 술 한 잔 하기 편한 곳이었기 때문이다.[5] 1939년 9월에 한 차례 고쳐지었다.#

비록 초창기보다 위상이 낮아지긴 했어도 일제강점기 내내 단성사 · 조선극장 등과 더불어 경성의 유명한 극장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김두한이 우미관을 중심으로 활약하면서 더욱 더 유명해지기도 했다.


파일:이전 후 우미관.png

1959년에 옮긴 후 우미관 모습
8.15 광복 이후에도 명성을 유지하던 우미관은 1959년에 건물 전체를 화재로 잃은 뒤, 자리를 장안빌딩 뒤편으로 옮겼다. 이 때부터 쇠퇴하기 시작해 1960년대부터는 이름값마저 잃어 2류 재개봉극장으로 겨우 버티는 신세로 전락했다. 그러다 적자운영에 시달려 결국 1982년 11월 30일에 문을 닫았다.

현재 원래 우미관 터에는 우미관호텔과 홍길동중고서점이[6], 이전했던 우미관 터에는 파노라마 뷔페 식당이 들어서있다.[7]

종로 2가 KFC 앞 인근에 우미관 터였음을 알리는 팻말이 작게 세워져있다.

3. 기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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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야인시대 우미관.png}}} ||
부천 판타스틱 스튜디오(〈야인시대〉 촬영장)에서 재현한 우미관[8]
야인시대〉에서도 등장했다. 24화 이전까지는 구마적(이원종 분)이 아지트로 삼아 활동하고 있었지만 우미관 마당에서 구마적을 깬 김두한(안재모 분)이 이곳을 차지하면서 김두한 패의 주요 아지트가 되었다. 그밖에도 많은 결투를 우미관 마당에서 하면서 우미관은 〈야인시대〉 내 결투를 상징하는 장소가 되었다. 영화 관람이 아니라 싸움 관람하는 곳 광복 후에도 그 곳에서 활동하나 김두한(김영철 분) 패의 이념전쟁이 본격화하면서 그가 대한민청의 실질적 수장이 되고[9], 동시에 전위대와의 싸움이 본격화되며 우익들의 지원으로 주요 거점이 옮겨지면서 화면에 비치지 않았다. 그리고 95화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김두한이 종로를 누비는 장면에서 잠시 재등장했다. 우미관으로서의 등장은 그것이 끝이며, 그 뒤 간판만 바꾸어 단성사 건물로 나왔다.

  • 할미넴으로 유명한 원로배우 김영옥은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에 출연해서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했었는데, 아버지의 손을 잡고 우미관에도 직접 가본 적이 있었다고 한다.[10] 실제로, 김영옥의 고향은 서울 종로였고 그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 왠지 모르게 합성물에서는 음식점으로 나오는 경우가 간혹 있는 듯하다.牛味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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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윗 이미지는 1934년 신문에 실린 영화 〈킹콩〉 광고에서 따온 것이고, 아랫 이미지는 1959년 이전 당시 홍보물에서 따왔다.#[2] 등장인물의 대사 소리가 안나오는 영화.[3] 현재 종로 5가.[4] 현재 관철동.[5] 현재도 우미관 터 주변으로 오락실, 술집, 음식점들이 많이 있다. 종각역 젊음의 거리가 바로 그 곳.[6] 같은 건물이다.[7] 후자 우미관 터에서 배우 안재모의 팬클럽 창단식이 열렸다.[8] 만국기를 잘 보면 캐나다 국기가 1965년 이후의 것이고, 1960년에 영국에서 독립한 나이지리아의 국기가 나오는 옥의 티가 있다. 옛날 국기를 일일이 재현할 수 없어서 그런 듯하다.[9] 명예 회장: 이승만, 김구, 고문: 신익희, 회장: 유진산, 감찰부장: 김두한이었으나 이승만, 김구, 신익희, 유진산이 직접적으로 테러 활동을 벌일 사람들은 아니었고 대한민청의 주된 활동이 백색테러와 같은 무력 활동이었기에 이를 실행할 인물은 당시 강력한 조직이 있으며 본인의 능력이 되는 김두한밖에 없었으니 결국 이 단체의 실질적인 수장은 김두한이었다. 자세한 사항은 김두한/생애 항목 참조.[10] 그리고, 초등학교 5학년때 수학여행개성으로 갔었다는 이야기도 했었다. 그리고 2년 뒤에 6.25 전쟁이 터졌고 남북분단이 되는 바람에 다시는 개성을 못 가게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