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요아힘 빙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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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요아힘 빙켈만
Johann Joachim Winckelmann

파일:Johann Joachim Winckelmann.jpg

출생
1717년 12월 9일
프로이센 왕국 작센
사망
1768년 6월 8일 (향년 51세)
직업
고고학자

1. 개요
2. 상세
3. 저서



1. 개요[편집]


독일고고학자.


2. 상세[편집]


어릴 때부터 예술사에 관심이 많았던 인물이다. 그리하여 미술사를 처음으로 연구하게 되었고 이는 후대에 나타날 근대 미술사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여러모로 의의가 있다.

그리스 예술을 시대적으로 구분하기도 했는데 기하학적 양식의 이집트 예술영향을 받은 것이 확연히 느껴지는 초기의 고전 양식을 엄격함과 딱딱함으로 규정했다.[1]

페르시아 전쟁 이후 그리스 조각이 전성기를 맞이했다. 이때를 페이디아스와 폴리클레이토스을 대표로 하는 이 시기로 정해 숭고 양식으로 명명했다. 이때도 고전 양식과 같이 딱딱함의 특징을 지녔는데, 완벽한 인체 비례로 인한 분위기 때문이였다

이런 정확한 비례에 우연적 요소를 프락시텔레스[2]의 시기에는
포함시킴으로서 조각이 아름다워졌다고 했고 이를 우미 양식이라고 설명했다.

빙켈만은 고대 예술을 유기체의 삶처럼 간주했다.
그래서 예술도 완숙하는 시기를 거쳐 죽어야만 했다 그 예술의 종말은 로마 예술로 그는 로마 예술을 볼품없는 것으로 취급했다
가장 완벽한 예술인 그리스 조각을 모방하고 아이디어를 따온 것이기 때문이다.


3. 저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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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시에 아르카익 스마일로 불리우는 그리스만의 생명력도 있다는 점이 이집트와는 다른 개성이다.[2] 크니도스의 아프로디테, 어린 디오니소스를 안은 헤르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