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하네스 베르메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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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요하네스 베르메르
Johannes Vermeer


세례일
1632년 10월 31일
네덜란드 공화국 델프트
사망
1675년 12월 15일 (향년 43세)
네덜란드 공화국 델프트
국적
[[네덜란드 공화국|

네덜란드 공화국
display: none; display: 네덜란드 공화국"
행정구
]]

직업
화가
가족
아내 카타리나 볼너스(1653년 결혼)
자녀 11명
종교
가톨릭[1]

1. 개요
2. 생애
3. 평가 및 기타



1. 개요[편집]


렘브란트와 함께 네덜란드의 황금시대라고하는 17세기를 대표하는 화가 중 하나로 델프트에서 태어나 활동하다 세상을 떠났으며, 작품은 35점으로 많지 않은 편이다.

'요하네스 페르메이르'[2]나 '얀[3] 베르메르' 라는 표기도 쓰인다.


2. 생애[편집]


1653년 21세의 나이로 성 루가 길드라는 화가 조합에 가입했는데, 화가 조합에 등록하려면 장인에게 6년 이상 그림을 배워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기에 늦어도 15세 때부터 그림을 배웠으리라고 추정된다. 1655년에 아버지가 사망한 뒤 점포를 이어받아 그림을 매매하거나 감정하는 일을 하는 한편 여관도 운영했고, 방직공 일도 했다고 전한다.[4] 1672년에 네덜란드와 프랑스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는 바람에 미술 시장이 무너져 주요 수입원이었던 그림 매매가 이루어지지 않는 등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워졌으며, 1675년에 심장 발작으로 사망했다. 사후 델프트의 구교회에 묻혔다.

상세한 것은 아버지는 죽는 날까지 그렸다…'자식 15명' 키운 비운의 거장 참조.

3. 평가 및 기타[편집]


생전에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지만 19세기 중엽에 이르러 정밀한 구도의 그림을 밝고 깊은 색채로 그린 거장으로 재평가되었으며, 그 중에서도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우유를 따르는 여인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상술했듯 상인 일도 했기 때문인지 상인 계층의 일상을 소재로 삼은 작품이 많으며, 청금석을 주원료로 한 울트라마린[5]을 굉장히 좋아했다고 한다. 실제로도 그의 작품에는 청색 계열의 색이 자주 보인다. 다만 재료가 보석인 만큼 값이 매우 비쌌기 때문에 울트라마린을 구입하는 데에는 적지 않은 돈이 필요했고, 그 과정에서 진 빚도 많다고.

아내 카타리나와의 사이에서 11명의 자녀를 낳았는데, 사후에는 첫째 딸인 마리아가 아버지처럼 그림을 팔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때문에 현재 베르메르의 작품이라고 전해지는 것 중 일부는 사실 그녀가 그린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있다는 듯.




  •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1999년 트레이시 슈발리에 장편소설 <진주 귀고리 소녀> 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 베르메르의 일생과 작품 세계를 다룬 국내 서적으로 전원경 박사가 쓴 <페르메이르 : 빛으로 가득 찬 델프트의 작은 방, 2020>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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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신교 신도였으나 결혼 전 아내와 같은 가톨릭으로 개종했다.[2] 암스테르담 방언의 발음이다. 네덜란드어 외래어 표기법은 이례적으로 사전 발음이 아닌 암스테르담 현지 방언을 기반으로 해 외래어 표기법은 이쪽을 채택한다.[3] 요하네스의 애칭.[4] 집안에 갚아야 할 빚진 돈이 있고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했기 때문이다. 베르메르 외에도 네덜란드의 화가들은 경제적인 사정상 그림만 그려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 다른 일을 겸한 경우가 대부분이다.[5] 현대에는 대부분 합성 원료로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