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 요제프 괴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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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독일 초대 국민계몽선전장관
나치 독일 제2대 총리
파울 요제프 괴벨스
Paul Joseph Goebbels

파일:파울 요제프 괴벨스.jpg
출생
1897년 10월 29일
독일국 라인란트 묀헨글라트바흐 라이트
사망
1945년 5월 1일 (향년 47세)
나치 독일 베를린 퓌러붕커
(現 독일 연방 공화국 베를린)
재임 기간
국민계몽선전장관
1933년 3월 14일 ~ 1945년 5월 1일
나치 독일 제2대 국가수상
1945년 4월 30일 ~ 1945년 5월 1일
서명
파일:파울 요제프 괴벨스 서명.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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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165cm, O형
종교
가톨릭무종교(반신론)
정당

시민권
독일인
학력
본 대학교
뷔르츠부르크 대학교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문학 / 학사)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문학 / 박사)
부모
아버지 프리츠 괴벨스
어머니 카타리나 마리아 괴벨스
배우자
마그다 괴벨스(1901-1945, 1931년 결혼)
자녀
헬가 주자네 괴벨스 (1932-1945)
힐데가르트 트라우델 "힐데" 괴벨스 (1934-1945)
아들 헬무트 크리스티안 괴벨스 (1935-1945)
홀디네 카트린 "홀데" 괴벨스 (1937-1945)
헤트비히 요한나 "헤다" 괴벨스 (1938-1945)
하이드룬 엘리자베트 "하이데" 괴벨스 (1940-1945)
의붓아들 하랄트 크반트[1] (1921-1967)



파일:external/img.timeinc.net/1101330710_400.jpg

파울 요제프 괴벨스의 타임지 표지

1. 개요
3. 개인적인 특징
3.1. 이성 관계
3.2. 마그다 괴벨스와 아이들
4. 선거 이력
5. 저작
6. 어록
6.1. 그의 말로 잘못 알려진 것들
7. 관련 서적
8. 대중매체
8.1. 영화
8.2. 게임
8.3. 소설
9. 평가
10. 여담
11.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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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제2차 세계 대전 중 파울 요제프 괴벨스의 총력전 연설[1]
나치 독일정치인으로, 베를린 관구장 및 중앙선전국장과 국민계몽선전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아돌프 히틀러의 가장 가까운 심복 중 한 명으로, 인문학 엘리트로서의 장점을 살려 주도면밀한 대중연설 능력을 통해 독일 국민들에게 극단적인 반유대주의를 설파하며 홀로코스트 등 나치의 여러 악행에 앞장선 인물이다. 그의 행적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그가 사용한 선전 · 선동 방식은 전후 세계의 정치언론에 큰 영향을 주었기에 프로파간다의 제왕으로 칭해지기도 한다.

2. 생애[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파울 요제프 괴벨스/생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개인적인 특징[편집]


파일:파울 요제프 괴벨스.jp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Bundesarchiv_Bild_102-01888A,_Joseph_Goebbels.jpg
소아마비 때문에 다리가 굽는 신체 장애가 있었다. 이는 파울 요제프 괴벨스의 박사 학위만큼이나 잘 알려진 개인적인 특징이다. 이는 어려서는 물론 커서 나치당원과 장관에 이르기까지 정적들의 공격대상이었고 괴벨스 자신도 장애를 잊지 않았다. 군대는 면제로 알려져 있지만 그렇지는 않고 대학에 다닐 때 징집된 적이 있다. 현역은 아니고 군대에 비품을 공급하는 보훈 단체에서 행정병으로 몇 달 일하다가 높으신 분이 괴벨스의 꾀죄죄한 외모를 보고 그냥 집으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유대인 초등학교 교사[2] 엘제 얀케와 결혼을 고민할 때도 여자 쪽에서 괴벨스의 다리 장애가 유전이 될까 봐 괴벨스는 엘제 얀케의 어머니가 유대인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대판 싸우는 원인도 되었고 나치당 관구장이 될 때도 말이 많았고 장관으로 출세했을 때도 정적들은 군 복무 경력과 신체 장애를 빗대 "방구석 병사", "빼어난 외모의 게르만 청년"이라 비꼬거나 "절름발이 악마"라는 멸칭을 붙였다.

장관이 되고 나서는 다른 나치당 간부들만큼 흥청망청은 아니어도 꽤나 해먹었다. 우선 유대인 부호를 협박해서 땅을 헐값에 가로채고 괴링의 양해를 받아 산림 구역에서 법을 어기고 주건물 방 개수만 21개, 욕실만 5개짜리 별도의 영화관과 연회홀이 딸린 저택을 300만 제국마르크를 들여서 만들었다. 내부 장식도 가구나 식기는 물론이고 하나에 3만 마르크나 하는 루이 16세양탄자를 까는 등 실내 장식에도 펑펑 써댔다. 물론 여기엔 재벌 출신 마그다의 취향도 한 몫 했다. 이 대부분의 돈은 당연히 영화계의 뇌물이나 선전부 예산을 삥땅쳐서 빼돌렸다. 나치당 베를린 관구장 시절에도 상당수의 베를린 관구 당예산을 빼돌려서 소송비용이나 여자들 만나고 다니는 데 썼다.


3.1. 이성 관계[편집]


모든 여자들이 나의 피를 끓게 만든다.

1926년 그의 일기에서

주변에 여자들이 많았다. 이는 그가 피아노를 잘 다루었고, 화술과 매너가 좋았기 때문이다. 고등학생 시절에도 시골 여인 하나를 꼬셔서 사귄 적이 있다. 얀카 슈탈헤름이라는 부자집 따님과는 신분 차이로 헤어지지만 오랫동안 진지하게 사귀는 사이였고 엘제 얀케라는 유대인 초등학교 교사와도 나치당에 들어가고 베를린 관구장으로 가기 전까지도 헤어지지 않았다. 한때 나치당에 있음에도 결혼을 심각하게 고려했고 베를린 관구장으로 부임하고 피눈물을 흘리며 헤어질 정도. 베를린에 가서도 여자들이 끊이지 않았고 자주 바뀌었으며 아내 마그다와 결혼하던 시절에도 전 여자친구인 슈탈헤름과 양다리를 걸쳤으며 바쁜 와중에도 다른 여자들도 만났다. 권력을 잡은 뒤 선전장관이라는 직책상 배우들의 출세에 대해 최종권한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여배우들과 염문이 많았으며 그 문제가 불거져 정적이던 힘러는 "우리는 여직원을 농락하는 유대인 사장에 대해 비난해왔는데[3], 이제는 괴벨스 장관이 그 비난을 듣고 있다."는 말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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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다 바로바(Lida Baarova)(1914년 ~ 2000년)
특히 체코 병합 이후에는 체코 출신 여배우 리다 바로바와 상당히 심각한 수준으로 문제가 되어 아내 마그다 괴벨스와는 이혼 직전까지 갔다. 리다 바로바는 원래 약혼자[4]까지 있던 여자였는데 괴벨스가 데리고 다니면서 성관계를 하다가 남배우인 전 약혼남에게 주먹질을 당했다는 둥 멱살을 잡혔다는 둥 결투를 했다는 둥 루머가 돌았고 극장에선 리다 바로바가 나오면 선전장관의 창녀라고 다들 수근대는 등 소문이 다 퍼졌다. 사회적 시각과 마그다 괴벨스의 인맥[5]을 생각한 히틀러의 불호령으로 사건을 대충 수습하고 결혼 생활을 유지했지만. 참고로 리다 바로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까지 살아남았고 전후 증언에서 "파울 요제프 괴벨스는 진심으로 나를 사랑했다."라고 공언하였다고 한다. 정작 괴벨스는 대학 시절 연인 얀카 슈텔헤름이 자신이 진정 사랑한 연인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3.2. 마그다 괴벨스와 아이들[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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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다 괴벨스
아내 마그다 괴벨스는 1901년 태생으로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다. 처녀일 때 성은 리첼로 어릴 때 어머니가 생부와 이혼하고 유대인 출신 부자 남편과 재혼했다. 상류층 영양들이 다니는 기숙학교를 다녔고 아비투어에도 합격했으나 19세 때 나이가 40줄에 애 둘 딸린 재벌 크반트 가문과 결혼했다. 8년간 짧은 결혼 생활 동안 아들 하나를 낳았지만 나이 차이도 많이 나고 바쁘다고 얼굴도 보기 힘든 남편을 두고 마그다가 젊은 남자와 당당하게 바람을 피우면서 자연스레 이혼한다. 이혼할 때 아들 하랄트 크반트를 데리고 나온다. 서양식 사고방식의 위엄인지 전 남편 & 전 시가(媤家)와 사이는 나쁘지 않았으며 이혼할 때도 풍족하게 한 보따리 챙겨서 나온다. 오히려 이혼하고 나서 전 남편 & 전 시가와의 사이가 더 좋아졌다.

[다큐] 영상의 세기 PREMIUM 제14부 - 운명의 연인들中[6][7][8]

그렇게 젊은 나이에 이혼하고 할 일 없이 소일하던 마그다는 심심풀이로 베를린 스포츠궁에서 열린 나치당 집회에 놀러갔다가 깊은 감명을 받고 그 날 즉시 나치당에 입당한다. 매우 열성적이어서 재벌집 마나님 출신이면서도 무급으로 베를린 나치당 사무실에서 자원봉사에 나섰고 이때 괴벨스를 만난다. 이미 이 시절엔 괴벨스는 국회의원도 되고 나치당 베를린 대관구장이 되어 있었지만, 출신 배경 차이란 게 있었기 때문에 괴벨스가 약간 꿀리는 감도 없지 않았다. 생부와 모친과 옛 시가인 크반트 가문까지 모두 결혼에 반대했지만 첫 아이를 밴 상태에서 조용하게 결혼했다. 이후 인맥과 영향력으로 괴벨스가 출세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남편보다 더 열렬한 총통 추종자에다 히틀러도 마그다를 좋아했기 때문에 독신인 히틀러를 돕는 제3제국 퍼스트 레이디로 불릴 정도였다.

그녀는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에 능통해서 외국어에 약한 괴벨스나 히틀러를 대신해서 외국 손님들을 접대하고 다리를 놓는 데도 안성맞춤이었다. 괴벨스가 한때 히틀러의 신임만 있을 뿐 권력층에 밀려나 찬밥이 되었을 때도 마그다에 대한 히틀러의 신임은 탄탄했다. 괴벨스가 리다 바로바와 바람이 났을 때는 괴벨스의 오른팔 선전부 차관이며 연하인 카를 항케와 맞바람을 피우며 이혼도 불사했으며 괴벨스는 괴벨스대로 아이들을 뺏겠다며 으름장을 부린다. 그러나 히틀러가 마그다를 달래며 "리다 바로바는 추방하고 마그다의 허락 없이는 괴벨스가 아이를 만날 수 없다. 1년만 그렇게 살아보고 정 안되겠으면 그때 이혼해라."는 조건을 내걸어 결국 남편과 재결합한다.

제3제국다산 정책을 몸소 실천해서 전 남편에게서 하랄트를, 괴벨스 사이에서 5녀 1남을 낳았다.

파일:파울 요제프 괴벨스 가족 사진.jpg
사진의 맨 오른쪽 공군 상사 비행복[9]을 입은 이는 아내 마그다가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하랄트 크반트[10]로, 괴벨스는 그도 데려와서 의붓아들로 함께 키웠다.

태어난 순서는 헬가 (1932년 9월 1일), 힐데 (1934년 4월 13일), 헬무트 (1935년 10월 2일), 홀데 (1937년 2월 19일), 헤다 (1938년 5월 5일), 하이데 (1940년 10월 29일).

맏딸 헬가는 무척 영리하여 일찍부터 히틀러의 귀여움을 받았다. 참고로 전부 H로 시작하는 이름인데 일부 역사학자들은 아이들의 이름이 모두 아돌프 히틀러에 대한 헌사로 H로 시작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증거는 없다.[11] 헬가는 똑똑해서 괴벨스가 기대하며 아낀 반면 외아들 헬무트는 자주 공상에 빠져서 "남자애 혼자 여자 형제들 사이에 키워서 저러나?" 하고 괴벨스가 많이 걱정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치 독일의 패망 직전 총통벙커에서 그 아이들을 모조리 살해 후 자살한 사실이 유명하다. 아이들의 시신(그냥 잠자는 듯한 모습이지만 시신이다보니 거부감이 느껴질 수 있으니 클릭시 주의 요망) 괴벨스 가족의 시신은 소련군이 입수했는데 맏딸 헬가는 얼굴에 저항 흔적이 있었다고 한다. 영화 몰락과 유사하게 예방 주사 놓는다고 SS 군의관을 시켜 모르핀을 투여하고, 자고 있을 때 부부가 직접 청산가리를 먹였다고 한다. 괴벨스는 아이들을 해치기 전에 망설였지만 마그다가 적극적으로 나섰는데, 그 이유가 총통 각하가 없는 세상은 살아갈 가치가 없다였다.[12] 마그다와 친한 알베르트 슈페어가 남긴 회고록을 제외하고는 마그다가 나서서 죽였다는 증언이 일치한다. 슈페어 회고록에선 총통 벙커에서 마지막으로 마그다와 인사할 때 괴벨스가 질투해서 둘만의 이야기 시간을 주지 않았다고 원망도 한다.

의붓아들인 하랄트 크반트는 전쟁 전 공군사병으로 입대, 부사관 시절 장교후보생을 지원해 공수부대 장교로 복무했다. 1941년 크레타 전투 때 부상당하기도 했고, 1944년에 이탈리아 전선에서 영국 육군의 포로가 되었기에 살아남았다. 최종 계급은 공군 중위였다. 마그다가 죽기 전 총통벙커에서 보낸 편지는 기적적으로 하랄트에게 전해졌다는 일화가 있다. 전후에는 크반트 가문으로 돌아가 사업가로 활동하다 1967년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다. 친부자 관계는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얼굴이 은근히 괴벨스와 닮은게 특징. 의붓아버지와의 관계는 비교적 양호했던 것 같다. 여담으로 2014년 10월, 하랄트의 친족이자 BMW의 대주주인 요한나 크반트[13]가 독일 최고 부호 반열에 올랐다고 영국 일간지 타임스가 보도했다. 요한나 크반트와 그녀의 두 아들딸의 BMW 지분을 합하면 46.7%에 달하는데, 이에 따르면 크반트 일가의 재산은 245억 파운드(약 42조 2983억 원)에 달한다. #


4.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28
바이마르 공화국 총선
비례대표
(베를린 비례선거구)[14]


810,127 (2.6%)
당선 (9위)
초선
1930
바이마르 공화국 총선
6,379,672 (18.25%)
당선 (2위)
재선
1932.7
바이마르 공화국 총선
13,745,680 (37.27%)
3선
1932.11
바이마르 공화국 총선
11,737,395 (33.09%)
당선 (1위)
4선
1933.3
바이마르 공화국 총선
17,277,180 (43.91%)
5선
1933.11
나치 독일 총선
39,655,244 (92.11%)
6선
1936
44,462,458 (98.8%)
7선
1938
48,751,587 (98.93%)
8선[15][16]


5. 저작[편집]


괴벨스의 저작으로 가장 방대한 자료는《괴벨스의 일기》다. 20대 중반(1923년)부터 거의 매일 꼼꼼하게 쓴 일기는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와 나치 시대, 괴벨스와 히틀러 등 기타 나치 인사들을 연구하는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1차 자료다.[17] 2만 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양이라서 1 ~ 2년 또는 2 ~ 3년 정도의 양으로 나눠서 출판했고[18] 전쟁 말기에 쓴 일기는 동독에 남아있어서 90년대에나 연구가 시작되었고 훨씬 늦게 발간되었다. 괴벨스의 인물평이나 당시 시대 여론이나 루머들이 솔직하게 적혀있다. 그렇지만 일기라고 해서 완전히 자신만의 생각을 쓴 것만은 아닌 게 나치 집권 후 출판사로부터 자신의 사후 20년 출판을 조건으로 막대한 선인세를 받고 팔았기에 히틀러나 나치 정권에 대해선 완전히 자기검열 없이 쓴 것이라곤 볼 수 없다.

저작으론 몇 차례의 개작을 거친 반(半) 자전적 소설《미하엘》이 있다. 자전적 소설이 아닌 반 자전적 소설인 것은 자신의 절친한 친구였던 리하르트 플리스게스(Richard Flisges)가 노동자로 일하다 광산에서 사고사하자 그를 기리기 위해 집필했기 때문이다. 주인공 미하엘 포어만(Michael Vormann)은 현실의 친구 플리스게스와 파울 요제프 괴벨스 자신을 투영하여 암울한 환경에서 새로운 시대를 갈망하는 내용이다. 저자 본인부터가 그다지 좋은 작품은 아니었던 것으로 평했지만, 히틀러의《나의 투쟁》처럼 집권 후 불티나게 팔려서 10쇄를 넘게 찍어냈다. 대한민국에도 2017년 4월에 번역, 출간 되었다.

그 밖에 베를린 관구장 시절 공산당이 집회 때, 연극을 이용하는 걸 따라한답시고 정치적인 희곡을 몇 편 썼지만 역시 평은 좋지 않다. 나치당 입당 하기 전 실업자일 때, 언론사에 발표한 논문이 6편 정도가 남아있다고 한다.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나치당 시절 정치적으로 쓴 글 모음. (영문판) 1920년대 ~ 1933년, 1933년~1945년.


6. 어록[편집]


파일:괴벨스 연설.jpg
당원들에게 연설하는 괴벨스 장관[19]
본문 항목에 소개되지 않은 단편적인 문구와 어록, 연설문.
※주의: 이 어록들 중에는 실제로 괴벨스가 하지 않았음에도 유명한 어록들도 많다. (출처 필수)

"내가 이렇게 과장된 반유대주의를 싫어한다는 것을 너도 알 거야.(...) 유대인이 내게 절친한 친구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욕설이나 편 가르기, 아니면 심지어 박해를 해서 그들을 없앨 수는 없다는 말이야. 만일 이런 식으로 그들을 없앨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은 아주 천박하고 비인간적인 일이야."

1919년 2월 17일 연인 안카 슈탈헤름에게 한 의미심장한 말[20]


민주주의가 철천지 원수에게 자신을 파멸시킬 방법을 손수 알려주었다는 이야기는 아마도 민주주의를 비꼬는 풍자 중 가장 뛰어난 것이 될 것이다.[21]


Wenn unsere Gegner sagen: Ja, wir haben Euch doch früher die Freiheit der Meinung zugebilligt, ja, Ihr uns, das ist doch kein Beweis, daß wir das Euch auch tuen sollen! Daß Ihr das uns gegeben habt, das ist ja ein Beweis dafür, wie dumm Ihr seid!"

우리의 상대가 "그래, 전에 우리는 당신에게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주었잖아"라고 한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래, 당신들이 우리에게 그렇게 했지! 하지만 그건 우리가 당신들에게도 그렇게 해야한다는 증거가 아냐! 당신들이 멍청하다는 증거일 뿐!"

1935년 12월 4일 연설.


선전은 본질상 일종의 예술이다. 그리고 선전원은 엄밀한 단어상 의미에 있어 민중 심리 예술가라고 볼 수 있다. 선전원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매일 매 시간 민중의 맥박 소리에 귀 기울이고 어떻게 맥박이 뛰는지 듣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맥박의 박자에 맞추어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1935년


Ein Volk, ein Reich, ein Führer.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하나의 총통.[22]


이 얼마나 이상한 민족입니까! 다른 민족이라면 저항하기 위해 대중들이 봉기했을 겁니다. 가련한 독일! 상놈의 나라! 불량한 나라! 유대인들이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우리를 평가했습니다!

1928년, 베를린 거리 연설.


Deutschland Erwache!

독일이여 깨어나라![23]


1933년 2월 10일 히틀러 총리 임명 기념 나치당 집회에서 개최사를 하는 괴벨스[24]
[1] 1분 27초 쯤엔 연설에 참석한 알베르트 슈페어도 보인다.[2] 당시 유럽에는 유대인 마을이었던 게토안에 유대인 전용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는데 초등학교 역시 그 전용시설 중 하나였다.[3] 당시 나치유대인을 비하할 때 써먹던 레퍼토리 중 하나가 금발벽안의 게르만 여자를 사들이는 / 착취하는 음흉한 뚱뚱보 유대인 사장이었다.[4] 메트로폴리스에서 프레더를 연기했던 구스타프 프뢸리히(Gustav Fröhlich).[5] 상류사회 출신으로 친정과 전 남편 집안 양쪽을 통해 독일 상류사회에 대단한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히틀러가 독신이었으므로 괴링의 아내 에미 존네만과 함께 실질적인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수행했다. 국민적으로도 알려져서 나치에서 이상적인 이미지로 독일 어머니나 주부를 대표해서 방송 연설을 하기도 했다.[6] 2019년 11월 30일 방송[7] 20세기 영상 매체 발명 후 기록된 영상들을 수집하여 역사의 뒷편에서 펼쳐진 대표적인 러브 스토리를 다룬 다큐멘터리[8] 32:30 부분에서 마그다와 괴벨스의 이야기가 나온다[9] 당시 독일 공군은 항공기 승무원용으로 위 같은 밑단이 짧고 주머니 등 돌출부를 최소화한 비행복을 만들었다가, 이를 공군 전체의 전투복으로 확대 지급했다.[10] 바이에른 지방에 기반을 둔 부호 가문 출신이다. BMW의 최대주주였던 헤르베르트 크반트가 바로 하랄트의 이복형이다.[11] 마그다의 어머니 아우구스테 베흐렌트(Auguste Behrend)는 이 가족이 각각의 연속적인 아이들에 대해 H로 시작하는 새로운 아기 이름을 찾는 순수한 취미를 만들었다고 진술했다.[12] 영화 다운폴에서 마그다 역을 맡은 배우 코리나 하르포히는 이 장면을 찍은 뒤 큰 충격을 받아서 한동안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고 한다.[13] 1926. 6. 21.~2015. 8. 3. 하랄트의 이복형인 헤르베르트의 세번째 부인이다. 즉 형수-도련님 관계.[14] 제2선거구[15] 괴벨스 내각 출범[16] 1945.05.01 사망으로 궐위[17] 다른 나치 독일 고위직의 1차 자료에는 알베르트 슈페어의 회고록《기억 -제3제국의 중심에서-》도 있다.[18] 시대순은 아니다.[19] 1934년 8월 베를린 루스트 가르텐 공원에서 열린 집회에서 연설하는 괴벨스. 그의 사진 중 가장 잘 알려진 사진이다.[20] 1차 출처 : Joseph Goebbels an Anka Stalherm am 17. 2. 1919, BA Koblenz, NL118/126 / 2차 출처 : 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 117 ~ 118p[21] 앞선 항목에 무임 승차자, 면책 특권자와 연계되는 문구로, 보장한 자유에 무임승차해서 체제를 조롱하고 뒤엎는 데도 민주적 방식으로 뽑힌 면책특권(국회의원)을 가지고 이용하고 있다는 뜻. 민주주의 체제에서 극단주의 이념으로 대중들을 선동하여 권력을 잡은 뒤, 지지를 기반으로 체제 위에 서서 철권독재를 저지르는 나치당의 면모를 가장 잘 드러내는 발언이다.[22] 나치 독일의 표어다.[23] 나치당 깃발에 적힌 글자다. 원래는 나치당 초기 멤버 시인 디트리히 에카르트가 지은 투쟁가 폭풍, 폭풍, 폭풍이여!의 가사에서 유래했다. 연설 시작할 때 많이 써먹었다.[24] 영상의 영어와 한글 자막 모두 오역이 상당하니 시청시 유의하자

... Und wenn die jüdischen Zeitungen heute noch glauben, durch versteckte Drohungen die nationalsozialiste Bewegung einschüchtern zu können, wenn sie heute glauben, unsere Notverordnungen umgehen zu dürfen, sie sollen sich hüten! Einmal wird unsere Geduld zu Ende sein, und dann wird den Juden das freche Lügenmaul gestopft werden.

... 그리고 아직도 유대 언론들이 국가사회주의 운동을 위협할 수 있고 우리의 방어 조치를 회피할 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들은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언젠가 우리의 인내심도 바닥날 것이고, 유대인들의 거짓되고 건방진 주둥이를 닥치게 할 것입니다.

1933년 2월 10일 베를린 스포츠 궁전 히틀러 총리 임명 기념 집회 개최사에서


SA와 당원동지 여러분! 빨갱이들에 대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들의 최후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빨갱이들은 들어라. 평생 잊지 못할 만큼 두들겨 패주겠다!

1933년, 포츠담 궁전에서. 이후 정말로 빨갱이들을 평생 잊지 못할 만큼 두들겨 패버렸지만 모가지를 날려버리는데 실패하는 바람에 극대노한 빨갱이들두들겨패준만큼 거꾸로 두들겨 맞고 모가지까지 날라가고 말았다. 소련과 그 후신인 러시아는 승리의 날로 지금도 승전일을 기념하고 있으며 승전을 계기로 한 세력 확장은 도리어 그들이 얻게 되었으나 입은 피해와 충격은 소련이 더 컸고 그래서 평생 잊지 못할 만큼 부분은 맞는 말이 된 셈.


국민과, 조국과 그리고 총통을 위하여! 만세!

1933년 포츠담 스포츠 궁전 집회 마무리에서


메마른 대지가 비바람을 갈망하듯 단 한 사람을 원합니다. 단 한 사람!! 민족이여 깨어나라! 폭풍이여 몰아쳐라![25]


Wir werden als die größten Staatsmänner aller Zeiten in die Geschichte eingehen oder als ihre größten Verbrecher.

우리는 역대 가장 위대한 정치인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아니면 역사상 가장 악랄한 범죄자로.

제2차 세계 대전을 시작하면서 일기장에 쓴 말. 후에 이 말은 기막히게 맞아떨어졌다. 당연히 후자 쪽으로.


게토를 가로질러 차를 몰았다. 우리는 차에서 내려 모든 것을 상세하게 둘러보았다. 무엇이라 형용할 수가 없다. 인간은 하나도 없으며 짐승들 뿐이다. 때문에 이것은 인도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외과적인 차원의 문제이다. 칼로 절단을 하되 아주 사정 없이 잘라내야 한다.

1939년 폴란드 유대인 거주지역에서.


분노와 증오는 대중을 열광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선전의 가장 큰 적은 '지식인주의'이다.


인민 대중이란 작은 거짓말보다는 더 큰 거짓말에 속는다.[26]


거짓말도 100번 하면 진실이 된다.[27]


여론조사라는 것은 대상을 누구로 잡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지지.[28]



총력전 전체 연설
[25] 원래 출전은 19세기 민족시인 테오도르 쾨르너이다.[26] 이것은 괴벨스도 유사한 의미로 말한 적이 있긴 하지만 사실은 아돌프 히틀러나의 투쟁에서 얼추 비슷하게 사용한 표현이다. 유대인들이 거짓말로 선동한다면서, 대중들은 크고 단순하며 뻔뻔한 거짓말일수록 더 잘 속아넘어간다는 것이다.[27] 이 또한 괴벨스가 유사한 의미로 말하긴 했지만, 상기한 것이 더 가깝다.[28] 그의 어록 중에서 현대에도 쓰이는 말들 중 하나. 여론 조작을 간단히 설명한 예라 볼 수 있다.


괴벨스 총력전 연설 독일군 선전방송 Die Deutsche Wochenschau 방영본[29]
[29] 본래 괴벨스의 총력전 연설은 스탈린그라드에서의 패배를 인정하는 동시에 연합국의 공세에 조국이 위험에 처했다고 역설하고 특히 미개한 아시아 몽골족인 볼셰비키들에게 질 경우 아리아인의 순수성을 상실하고 모든 것을 잃는다고 강조한 후 독일의 전쟁 수행 의지가 떨어지고 있다는 연합국의 선전을 조롱하며 총력전을 촉구하는 걸로 끝난다. 하지만 선전방송은 앞의 스탈린그라드에서의 패배와 패배 시 겪게 될 참상 부분은 방영하지 않고 연합국의 오판을 조롱하는 부분시점부터 방영했다.


Ich frage euch: Wollt ihr den totalen Krieg? Wollt ihr ihn, wenn nötig, totaler und radikaler, als wir ihn uns heute überhaupt noch vorstellen können?

묻겠다, 제군은 총력전을 원하는가? 만약 필요하다면,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완전하고 전면적인 전쟁을 원하는가?

1943년 총력전 연설.


Ich frage euch: Seid ihr bereit, mit dem Führer als Phalanx der Heimat hinter der kämpfenden Wehrmacht stehend diesen Kampf mit wilder Entschlossenheit und unbeirrt durch alle Schicksalsfügungen fortzusetzen, bis der Sieg in unseren Händen ist?

묻겠다. 제군은 이 땅(조국)의 군단으로써, 투쟁의 국방군을 총통과 함께 뒷받침하며, 어떠한 운명의 결과에도 굴하지 않고 결연한 의지로 우리가 승리를 거머쥘 때까지, 이 투쟁을 해나갈 준비가 되었는가?


Nun, Volk, steh auf, und Sturm, brich los!

지금이야말로, 국민들이여, 일어나라! 폭풍이여, 떨쳐 나가라!


민중은 그저 빵 한 조각과 왜곡된 자극적인 정보만 주면 충성스러운 사람으로 만들수 있다.


빌헬름 2세패배한 체제상징적 인물이다. 그가 최선을 다했던 것은 인정하지만, 이 세계에서 중요한 것은 의도가 아니라 성공적인 결과다.

빌헬름 2세의 사망 이후 독일 언론에 내린 보도지침.



한국어 자막 버전

베를린 수비대여! 제군의 아내, 어머니 그리고 아이들이 제군을 지켜보고 있다. 제군에게 그들의 인생, 운, 신변 그리고 미래가 달려있다. 제군이 제군의 임무를 잘 알고 있기에 나는 제군이 그 임무를 매우 훌륭히 수행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진실의 시간이 마침내 도래했다. (중략) 나는 내 선전부 직원들과 베를린에 남을 것을 확언한다. 나의 아내와 아이들도 베를린에 있고 그들은 베를린에 남을 것이다. 나는 제국 수도에 대한 필요한 모든 조치를 실시할 것이다. 나의 행동과 생각은 전적으로 국민들의 삶과 우리의 공통 적에 대한 방어를 위한 것이다. 우리 수도의 방어벽에 몽골[30]

의 폭풍은 만드시 부서질 것이다. 수도에서의 우리의 싸움은 국가의 향방을 결정짓는 결정적 전투가 될 것이다. 열성적인 수비대는 볼셰비키 놈들의 손에 제국의 수도가 함락되지 않게 해줄 것이다. 우리는 전투와 과업앞에 굳건히 서있다. 우리의 목표는 국민의 자유와 다가오는 행복한 미래를 위한 제국의 사회 정의를 세우는 것이다.

1945년 4월 21일 괴벨스 최후의 대국민 연설. 괴벨스는 연설에서 약속한 대로 끝까지 가족과 베를린에 남았고 끝내 동반자살을 하게 된다. 베를린 수비대의 처절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압도적 물량의 소련군을 막을 수 없던 독일은 끝내 베를린을 함락당하며 전쟁에 패하고 뉘른베르크에서 나치의 끔찍한 범죄를 드러내는 진실의 시간을 가지게 된다. 라디오 연설 중간 중간에 간간히 포성을 들을 수 있다.



6.1. 그의 말로 잘못 알려진 것들[편집]


"선동은 문장 한 줄로도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반박하려고 할 때면 사람들은 이미 선동당해 있다."

괴벨스가 실제로 이런 말을 했다는 출처를 찾을 수 없으나 그의 대표적인 어록으로 유명하다. 내용상 비슷한 말로는 이탈리아의 프로그래머 알베르토 브란돌리니가 2013년에 공표한 개소리 비대칭성 원리(Bullshit asymmetry principle)가 있다. # 결론적으로 이 말을 퍼트린 사람은 "괴벨스가 한 어록"이라는 선동을 문장 단 한 줄로 해내었으며 이를 반박하기 위해서 많은 증거를 가져와야 했으니 아이러니 하게도 자신의 말로써 자신의 말을 입증시킨 셈이 됐다.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그러면 누구든지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

출처 불명의 가짜 명언이나, 괴벨스의 어록으로 자주 인용된다.

"괴벨스는 죽기 직전까지 자신이 진실의 편이라고 믿었다. (중략) 한국에서 소환되곤 하는 괴벨스 인용구는 대체로 출처불명이다. 거짓말쟁이를 공격하고자 동원된 거짓말들인 셈이다."

[가짜명언 팩트체크] "한 문장이면 누구나 범죄자"? 오용된 괴벨스 어록


100%의 거짓말보다는 99%의 거짓말과 1%의 진실[31]

의 배합이 더 나은 효과를 보여준다.

괴벨스의 어록이라 하여 국내 언론에서 무수히 많이 등장하지만 출처는 없고, 외국에서는 이 말 자체가 사용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국내의 누군가가 괴벨스의 명의를 도용한 것으로 보인다. 앞에서도 강조되었지만 괴벨스는 선전을 진실과 진리를 다루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신이 거짓말을 자주 하면 할수록 대중들은 그것을 믿게 되며 마침내 자기 자신도 믿게 된다.

거짓말은 처음에는 부정되고 그 다음에는 의심받지만 되풀이하면 결국 모든 사람이 믿게 된다.

이외에도 다양한 버전이 등장하지만 괴벨스가 실제로 하지 않은 말이다. 미국 의회에서 발행한 서적 중 1958년 발행된 부분에서 처음 나온 말이며, 이것은 수십만 페이지의 웹사이트에 출처 없이 유포되고 있는 그에 대한 가장 큰 거짓말이다. 괴벨스는 언제나 선전이 진실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32]

, 그의 연설과 작문, 개인적 일기 어느 곳에서도 위와 같은 발언을 찾을 수 없다. 아무런 근거가 없는 거짓말임에도, 이것은 대중들에게 끊임없이 반복되어 선전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을 믿게 되었다. 괴벨스의 가짜 어록을 퍼뜨린 사람은 다소 기괴한 방식으로 자기 주장의 옳음을 증명한 것이다.


문화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권총을 꺼내 든다.

괴벨스가 실제로 하지 않은 말이다. 이 또한 어디에서도 증거조차 발견된 기록이 없고, 근거 또한 있다고 보기 어렵다.[33]



7. 관련 서적[편집]


랄프 게오르그 로이트가 지은《파울 요제프 괴벨스》가 《파울 요제프 괴벨스 대중선동의 심리학[34]으로 국내 발간되어 있다.

원서 제목은 그냥《파울 요제프 괴벨스》인데, 국내판에서 대중선동의 심리학이라 써놔서 제3제국의 선동 정책을 다룬 책인지, 심리학을 다룬 책인지 헷갈리게 만들어 놨다. 내용은 그냥 파울 요제프 괴벨스 평전이다. 하지만 파울 요제프 괴벨스를 깊게 다룬 책 중에 거의 유일하게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책이다. 파울 요제프 괴벨스의 선동 내용 중에 예나에 이은 라이프치히를 공간적으로 가깝다 식으로 번역한 사소한 오역[35]이 있지만 읽어볼 가치가 있다. 현재 나무위키 파울 요제프 괴벨스 문서의 상당 부분이 이 책이 출처.

파울 요제프 괴벨스가 쓴 반(半) 자전적 소설《미하엘[36] 역시 국내 발간되어 있다.


8. 대중매체[편집]



8.1. 영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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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작전명 발키리》에서는 미국의 연극 배우 하비 프리드먼(Harvey Friedman)이 연기했다. 비중이 그리 크지는 않지만 다운폴의 괴벨스 역을 맡은 배우 울리히 마테스보다는 싱크로율이 높은 편이며 괴벨스 특유의 날카로운 카리스마를 잘 보여주었다. 작중 톰 크루즈가 연기한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톰 윌킨슨이 맡은 프리드리히 프롬과 함께 늑대굴에 가서 히틀러에게 발키리 작전 승인 결재를 받으러 온 중요한 장면에서 히틀러와 함께 있는 고위 인사들 가운데 하나로 잠시 등장했고 슈타우펜베르크를 중심으로 한 국방군 장교들의 쿠데타로 인해 체포될 위기에 처하지만 곧바로 살아있는 히틀러와 연결이 됨으로써 자신을 체포하러 온 레머 소령[37]에게 직접 전화를 바꿔 생존한 히틀러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레머는 죽은 줄 알았던 히틀러의 목소리를 듣고 반 멘붕에 빠지며 히틀러는 그 자리에서 레머에게 쿠데타 세력 구성원들의 생포를 명령하고 그렇게 쿠데타의 진압이 시작되므로 중요한 장면을 맡았다.

파일:다운폴 괴벨스.jpg

영화《다운폴》에서 괴벨스 역을 맡은 배우는 울리히 마테스(Ulrich Matthes)다. 스크린샷을 보면 알겠지만 현실의 괴벨스와는 그렇게 닮진 않았다. 아래 부분은 여단지도자[38] 빌헬름 몽케와 대화하는 장면이다.

몽케:

* ... Herr Minister, wenn diese Männer nicht bewaffnen können, dann können sie nicht kämpfen. Sie sterben sinnlos.

* ... 장관님, 무기가 주어지지 않으면 이 사람들은 맞서 싸울 수 없습니다. 모두 개죽음을 당할 겁니다.[39]

괴벨스:

* Ich kann kein Mitgefühl empfinden. Ich wiederhole: Ich kann da kein Mitgefühl empfinden! Das Volk hat dieses Schicksal selbst gewählt. Ja, das macht für manche Leute ein Überraschung sein. Geben Sie sich keinen Illusionen hin. Wir haben das Volk ja nicht gezwungen. Es hat uns selbst beauftragt. Jetzt wird Ihnen eben das Hälschen durchgeschnitten.

* 난 그들(국민들)을 동정하지 않습니다. 단언컨대 그들을 동정하지 않는단 말이오! 이건 모두 그들 스스로가 자초한 일입니다. 그래요, 어떤 사람들에겐 충격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당신은) 스스로를 속여선 안 될 일이지요.[40]

우리는 한 번도 국민들에게 우리를 뽑으라고 강요한 적이 없습니다. 국민들이 우릴 선택했으니, 결국 그 대가를 치르게 되는 겁니다.


파일:attachment/der_untergang.jpg
마지막 사진은 쌍따봉이 아니라 국민들은 자신들의 선택으로 인해 목이 따일 것이라는 뜻이다.
한스 프리체뉘렘베르크 재판에서 증언한 바에 의하면, 괴벨스는 패망 직전 4월 21일 선전부 직원들과의 마지막 회의에서 "과거 국제연맹 탈퇴를 결정하는 국민투표에서 독일 민족의 절대 다수가 양보의 정치에 반대하고 명예와 모험의 정치에 찬성한 것, 즉 독일 민족 스스로가 현재와 같은 상황을 원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한스 프리체의 자서전에 의하면 같은 자리에서 괴벨스는 직원들에게 작별을 고하며 "자신은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부하가 되라고 강요한 적이 없으며, 나와 함께 일하려고 스스로 자원한 당신들은 곧 목이 잘릴 것이다."라 하고 비웃으며 나갔다고 한다.

영화상에서 그 말을 들은 사람은 친위대 안에서도 열렬한 히틀러 숭배자들이 배속되는 총통경호대 아돌프 히틀러(LSSAH) 출신의 친위대 소장인 빌헬름 몽케, 거기다 국민돌격대가 제대로 된 장비도 없이 죽어가는 게 무의미하다고 했다가 저런 말을 들었다. 그야말로 그나마 남아있던 충성심마저 산산조각날 지경의 충격적인 장면. 마지막에 같잖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라는 표정의 썩소를 짓는 연기는 그야말로 일품, 아이러니하게도 나치에 의한 비극의 책임이 나치당만이 아닌 그들에 동의한 독일 국민 모두에게 있다는 씁쓸하지만 분명한 교훈을 남긴다.[41][42] 다운폴/패러디 항목도 참조할 것.

파일:maxresdefaultInglouriousBasterds sylvester groth.jpg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2009년작 영화《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서는 독일의 배우 질베스터 그로트(Sylvester Groth)가 연기했는데, 연출 자체는 잘 했지만 괴벨스와의 싱크로율이 그리 높지는 않으며 히틀러보다 키가 크기까지 해서[43] 리얼리티는 많이 떨어진다.

인도 영화 Gandhi to Hitler에도 나왔다. 인도 영화이다 보니 괴벨스를 포함한 독일인 캐릭터들을 모두 인도인 배우가 맡았다.


8.2. 게임[편집]


  • 2차대전게임 Hearts of Iron IV에서는 독일의 파시즘 선동가로 등장하며 고용시 파시즘 지지도와 전쟁지지도를 올려준다.
    • 추축이 2차대전에서 승리한 대체역사 모드인 TNO에서는 모스코비엔 국가판무관부 시찰 중 테러를 통해 살해 당한다. 그로인해 히틀러는 후계자를 잃었고 히틀러 사후 독일은 보수파+해군 파벌 마르틴 보어만[44], 군국주의자들의 지지를 받는 헤르만 괴링, 개혁파 알베르트 슈페어, SS 파벌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의 내전이 발생하게 된다.[45]
    • 레드 플러드에선 공산혁명이 성공한 독일의 지도자가 될 수 있으며 나치당 좌파 슈트라서주의적 포지션이다.
  • 로스트아크의 디렉터 금강선의 별명이 '사이버 괴벨스'이다. 부정적으로 사용할 때는 말만 번지르르하다는 의미로, 긍정적으로는 너무 뛰어나서 왠만한 상황도 고객들에게 납득시키는 말빨과 필력을 가졌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8.3. 소설[편집]


  • 소설 높은 성의 사나이에선 헤르만 괴링발두어 폰 시라흐와의 권력 투쟁에서 승리해 나치 독일의 3대 총통 자리[46]에 오른다. 독일측 주인공인 루돌프 베게너가 일본 측에게 귀뜀해준 바에 의하면, 일제와 세계를 나눠 먹은 것이 3제국의 실수라 믿으며, 일본 침공 계획인 '민들레 작전'을 지지한다고. 드라마판에서는 등장하지 않는다.

  • 검은머리 미군 대원수에서는 히틀러가 유진 킴동류로 여기고 포섭하려고 하자, 내심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첫 등장한다. 그리고 킴이 독일에 방문하자, 각각의 이유로[47] 킴에 호의적으로 대하는 다른 나치 당원들과 달리, 유일하게 킴의 진짜 신념을 깨닫고 거리를 두려 한다. 그러나 유진 킴을 얀데레 수준으로 동경하는 히틀러를 위해 적어도 독일에 있을 때까지만 자신들에게 맞춰달라고 부탁하나, 유진은 그의 말을 깨끗히 무시하고는 김칫국을 마시고 있는 히틀러에게 가서 전차를 몰고 와서 대가리를 따 주겠다는 말을 남긴다.

  • 내 독일에 나치는 필요없다에서는 반란을 일으킨 주인공 디트리히의 민주 세력을 상대로 여론전을 시도하나, 민주 세력이 홀로코스트를 근거로 한 팩트폭행으로 반격하자 애를 먹는다. 그리고 디트리히가 미래인답게 21세기대중 참여 프로파간다를 시전하자, 졸지에 총 앞에 중세 기사나 다름 없는 꼴이 되어 고전한다.[48] 결국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고, 나치 독일이 완전히 붕괴하는 그 순간에 배신한 에르빈 롬멜에게 총살당한다.

  • 카이저를 구했다에서는 DRR(독일 제국 방송. 설정상 세계 최초의 방송국)의 작가로 입사했다가 그의 대본을 마음에 들어한 상관에 의해 독일 최초의 총리 선거의 개표 중계방송의 사회자로 방송 데뷔한다. 이를 들은 주인공 한스 폰 초이는 방송을 듣다가 마시던 커피를 뿜게 된다. 하지만 여기 나와있는 작품들 중에는 몇 안되는 그의 장점을 살려 맞는 위치로 찾아간 셈이다.

9. 평가[편집]


그는 결코 성급하지 않았다. 주도면밀하고 냉철했다. 얼음처럼 차가웠고 악마적이었다.

오토 야콥스, 속기사

지금까지도 나치당 내에서 악명이 높은 사람들은 당연히 히틀러, 괴링, 힘러, 괴벨스 정도인데[49], 여기서도 괴벨스는 유별나며 심지어 히틀러에게도 밀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중 괴링은 악인이라기보다는 나치즘의 돼지이고, 힘러는 단순히 학살을 저지른 것인데 그런 상황을 설계한 것이 괴벨스이기 때문이다.

애당초 히틀러는 우두머리이기 때문에 악명이 높은 게 당연하지만, 괴벨스는 나치당 내에서도 손꼽히는 악마였다. 사실 괴벨스는 나치당 내 여러 유형 중에서도 워낙 특별한 유형이었으니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50] 괴링은 흔해 빠진 부패한 유형이고, 힘러 같이 광신적 충성심과 사명감에 불타 돌쇠처럼 기계적으로 나치에 충성한 인물은 한, 둘이 아니었다. 반면 괴벨스는 북독일 라인란트 출신 노동자 계층 출신이란 점에서 프티부르주아 출신 고등학교 중퇴자 히틀러와 통하는 면이 있었으며, 둘 다 반(反) 자본주의적이고 반(反) 권위적이며 현란한 선동가이며 연설가였다. 또한 괴벨스는 금발이고 키가 크며 건장한 모습이 대부분인 아리안족과는 달리 흑발에 키가 작고 발을 저는 연약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특유의 뛰어난 말솜씨와 교활함으로 자신의 장애를 극복했으며 자신의 출신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자랑으로 생각했다. 그것이 그의 인기 비결이기도 했다. 괴벨스는 권위를 혐오했지만 추구했고 지성인 출신이지만 연설은 지성적인 언어를 쓰지 않았다.

괴벨스에 대한 책을 썼던 롤프 호흐후트는 스스로 열광했기에 타인을 열광시켰던 신도라고 했던 반면 요아힘 페스트는 최후까지 마키아벨리스트였던 자라고 했다. 괴벨스를 다룬 다른 작가들은 합리적인 선동가라든가 "장애에 대한 보상을 총통 신앙과 세계관으로 대리 충족했다."는 다양한 평가가 있다.

종합적으로 보면 괴벨스가 가진 그만의 능력을 절대로 무시할 순 없다. 남들과는 다른 장애를 갖고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남들과는 다른, 아니 오히려 뛰어나다고 할 수 있는 그만의 언변 능력으로 독일 국민들을 사로잡고 하나로 뭉쳤다. 이렇게만 보면 장애를 극복한 뛰어난 연설가로 평가받아야겠지만 문제는 그 뛰어난 능력을 나치즘과 히틀러를 위해 써먹었다는 점이다. 그의 재능만큼은 천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그 천재성을 악하고 교활한 자가 갖게 되었을 때 어느 정도까지의 영향력을 보여줄 수 있는 지 잘 보여준 인물이라 할 수 있다.


10. 여담[편집]


  • 윈스턴 처칠이 미국 방문 연설에서 사용해 유명해진 철의 장막이라는 단어를 창조해 써먹은 시초가 바로 괴벨스라고 한다.

  • 윈스턴 처칠이 군 부대를 시찰하면서 톰슨 기관단총을 직접 시연해 보는 사진을 이용해서 "저런 갱단 두목 같은 전쟁광이 여러분을 죽음으로 내몰려고 합니다. 처칠을 쫓아내고 우리 제3제국과 사이좋게 지내지 않겠습니까!"라는 선전 문구를 영국에 뿌렸는데, 정작 영국 사람들에게 대혹평만 받았다. 결국, 이 건은 괴벨스의 선전 · 선동에서 몇 안 되는 실패로 끝맺었다. 오히려 영국 사람들의 "역시 우리 총리님 화끈하시네!"와 같은 반응으로 전의만 왕성하게 만들었다고. 그런데 이 선전은 오히려 "괴벨스가 영국을 자만하고 방심하게 만들어서 국가 방어에 집중하지 못 하도록 몰아간 언플이었다."는 평도 있는데,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비열하긴 하지만 영국의 애국심을 역이용해 허를 찌르려 한 작전인 셈이다. 덧붙여 처칠 본인도 저 사진을 매우 싫어했다고 한다.
특히 처칠은 "손에 술이나 총을 든 모습을 찍히지 않도록 주의하게나. 난 술은 피했는데 그 몹쓸 사진, 손에 기관단총을 들고 있는 모습이 찍힌 사진 때문에 여태까지 곤욕을 치르고 있지. 다른 것도 있지만 그 사진이 나한테 입힌 손해가 커."라는 말을 남겼을 정도였다고 알려져 있다. 영국 내 처칠의 다른 정적들도 문제의 사진을 이용해서 괴벨스가 했던 것과 비슷한 정치적 공격을 많이 했던 모양이다.

  • 알베르트 슈페어는 히틀러의 연설이 위압감으로 사람들을 흡입시킨 것과는 다르게 괴벨스는 온화한 인상을 주었다고 한다. 괴벨스의 연설 스타일이 과격한 언어를 사용한 것임을 생각하면 흥미로운 부분

  • 알베르트 슈페어는 괴벨스와 친했으며 괴벨스의 아내 마그다와도 친했다고 한다.

  • 그는 어릴 적부터 소아마비를 앓아서 양쪽 발 길이가 달라 보조구를 착용했는데, 이 때문에 연합국에선 "거짓말쟁이는 발을 끌면서 온다."는 말로 괴벨스를 조롱했다고 한다.[51]

  • 독일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한 후 그의 시골 별장은 소련군 공군 사령관인 알렉산드르 골로바노프 중장 (1904년 ~ 1975년)이 통째로 뜯어가서 러시아로 가져가서 자기 집으로 삼았다.


  • TV라디오를 정치 선전에 활용한 선구자이며 정치쇼의 원조, 공약보다는 감성에 호소하는 선거 전략의 선구자이다. 또한 시장 같은 장소에서 후보자가 유권자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서 선전하는 행위의 창시자이다. 그 덕분에 독일은 프랑스와 함께 세계 최초로 정기적으로 TV 방송을 보낸 국가가 되었다.



  • 역덕후들 사이에서는 "만약 괴벨스가 자살하지 않고 체포되어 전범재판에 회부되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가정이 나름대로 흥한 떡밥이기도하다. 특유의 말빨로 연합국 검사 측을 압도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다른 건 다 제쳐두더라도 그의 입지가 일개 관료가 아닌 나치 최고위층인지라 강렬한 인상은 남길수는 있어도 극형을 피하긴 불가능했을 것이다. 괴벨스 본인은 아니지만 괴링이 실제로 재판에서 괴벨스 못지 않게 자기 변호를 잘 했으나, 죄가 너무 크다는 이유로 사형 판결을 받았다. 아무리 잘한다 한들 "나치하면 전부 갈아마시겠다."고 날뛰던 소련의 분노 앞에서 결코 살아남지 못 했을 것이다.

  • 괴벨스가 한 말이 아님에도 괴소문에 의해 괴벨스가 한 말처럼 알려져버린 문장이 무려 201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9월 모의평가 사회문화 문제로 등장했는데, 얼마나 한국에 괴벨스의 가짜 어록이 퍼져있는지 체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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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EBS 수능완성 연계 지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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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 르누아르의 반전(反戰) 영화《위대한 환상》을 매우 싫어했다. 이 영화는 개봉 당시 베니스 영화제에서 수상했는데, 이때 괴벨스가 봤는지 영화판 공공의 적 제 1위(Cinematic Public Enemy No. 1)라고 대놓고 발언했다. 그리고 나치 치하 프랑스에서는 당연히 금지되었고 연합군 공습 도중 필름 현상소에 보관되어 있던 네거티브 프린트가 파괴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사실은 뮌헨에 있는 제3제국 영화자료실에 보관되어 있었다.[52] 다만 상영용 프린트는 어떻게 찾았는지 전후 다시 상영되기 시작했다. 네거티브 프린트는 소련에 갔다가 1960년 프랑스로 다시 돌아왔으나, 전달 과정에서 착오가 생겼던지 툴루즈 시네마테크 창고에 잠들어 아무도 찾지 못했다. 그러다가 1990년대 초반 다시 발굴되었으며 상태가 매우 좋았다고 한다. 현재 상영되고 있는 위대한 환상 복원판은 이 네거티브 필름을 기초로 한다. 이 위대한 환상이 르누아르 커리어에서 손 꼽히는 걸작이기도 해서 이 일화는 영화 역사에서 자주 언급되는 사건으로 꼽힌다. 출처

  • 유대인 출신의 사진가 알프레드 에이젠슈타트(Alfed Eisenstaedt)[53]가 찍은 사진이 유명하다. 단, 이것이 에이젠슈타트가 유대인인지를 알기 전과 후의 사진이라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출처

  • 라디오 방송용으로 써먹기 위해서 성우를 한 명 고용했는데, 그가 한스 프리체이다. 한스 프리체는 괴벨스와 목소리가 똑같았고 그 때문에 괴벨스에게 발탁되었다. 괴벨스가 연설 대본을 써서 한스 프리체에게 주면 한스 프리체는 이를 라디오 방송을 통해 읽는 역할을 했다. 종전 후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에 이미 죽은 괴벨스 대신 한스 프리체가 회부되었으나 써 있는 글을 읽었을 뿐인 죄로,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 회부된 자들로서는 이례적으로 훈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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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2~1943의 이탈리아 왕국과 1943~1945의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
파일:whattheydo.png 파시즘 여부 논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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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나치는 독소전쟁 중 소련을 몽골로이드, 즉 아시아인의 무리라고 자주 지칭했다. 소련을 구성하는 민족의 다수가 백인 계통의 슬라브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냥 근거 없이 이질적인 민족임을 강조하기 위해 멸칭으로 부른 듯 하다.[31] 주로 공격 대상의 약점이 부정적으로 명확할 때[32] "우리의 투쟁과 선전은 하나의 최고의 원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선전의 기초로서 진실과 진리만을 취하는 것입니다." - 괴벨스[33] 괴링이 한 말이라고 알려진 경우도 있으나, 사실은 한스 요스트라는 시인이 쓴 희곡에서 나온 대사다. 허나 나치 사상을 반영한 희곡이기도 하고 한스 요스트 본인도 그 알프레드 로젠베르크한테 문학상까지 받았을 정도로 열렬한 나치 지지자였던지라, 나치즘을 연구할 때 자주 활용되는 인용구이기도 하다.[34] 김태희 역[35] 1807년 예나 전투에서 패하고 독일이 나폴레옹 치하로 들어갔다가 1813년 해방 전쟁에서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승리로 독일이 나폴레옹 치하에서 독립한다. 상반된 사건의 시간적 연속성을 비슷한 사건의 공간적 연속성이라 잘못 써놨다. 초판인쇄 후 2012년에 나온 쇄까지도 아직 수정이 안 되어있다.[36] 강명순 역[37] 소위 나치 독일 전문 배우라고 할 수 있는 토마스 크레치만이 연기했다. 본인이 괴벨스 역할을 한 경력도 있다.[38] 국방군 소장급 계급이다. 영미권 계급으로는 준장계급에 상응한다.[39] 여기선 개념있는 사람으로 보이지만 이 사람도 나치 전범 용의자란 걸 잊으면 안된다. 이 사람은 됭케르크 철수작전 당시 무장친위대가 영국 및 프랑스군 포로들을 대상으로 자행했던 보름하우트 학살 사건(Wormhaudt Massacre)에 연루된 사람이다.[40] 너도 이 체제에서 높은 자리에 올랐으니 불편한 진실들을 다 알텐데 이제 와서 착한 척하냐며 비꼬는 것이다.[41] 단, 괴벨스는 저런 말을 할 자격이 없는 것이, 독일인들이 모두 나치에 동조한 것은 아니었고 나치는 이런 반대자들을 모조리 쓸어버렸다. 괴벨스의 저 말은 물타기 수준의 핑계에 불과하다. 하지만 독일인 민중 절대다수가 휘둘리지 않고 저항했으면 그런 일도 없었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42] 이 교훈은 전후 연합군이 독일인들에게 가장 강조했던 사항이기도 했다. 연합군이 주도한 탈나치화 과정에서의 주된 내용으로 히틀러와 나치당을 지지하고 그들의 침략전쟁을 지지했으며, 약자에 대한 학살에 동조 혹은 묵인했던 사실을 탈나치화 노역과 함께 가장 강조했다. 그리고 바로 이 교훈을 독일인들은 잊지 않고 있으며 그들이 자신들의 과거를 반성하고 히틀러와 나치를 증오하는 이유이다.[43] 실제 괴벨스는 확실히 히틀러보다 키가 작았는데 히틀러 역할을 맡은 배우 마틴 부트케보다 키가 무려 6cm나 더 커서 매우 어색하다.[44] 현실에서 괴벨스와 함께 히틀러의 후계자였던 카를 되니츠는 여기 붙었다.[45] 히틀러가 죽기 전에 저 넷 중 후계자를 지명하긴 하는데(누구인지는 플레이어의 선택) 당시 히틀러는 암살 미수의 후유증으로 중태에 빠졌다가 겨우 깨어나서 제정신이 아니었다. 연설장에서 느닷 없이 SA에른스트 룀을 찾는 대사가 백미.[46] 2대 총통은 마르틴 보어만이다.[47] 헤스는 그가 같은 게르만 민족 국가뭐?인 미국에 충성해서, 힘러와 괴링은 유진의 사업에 투자하려고, 에른스트 룀은 자기 취향(...)이라서[48] 괴벨스 본인은 국민과 여론을 통제의 대상으로만 생각했으나, 국민 그 자체를 여론전의 수단으로 쓰는, 쉽게 말해 21세기 민주국가 특유의 갈라치기를 상상조차 못했다고...[49] 나치 독일의 실질적인 2인자라고 볼 수 있는 마르틴 보어만은 인지도가 매우 낮다.[50] 다만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와 달리, 괴벨스의 특별함은 고학력이 아니었다. 나치당 내 초기 멤버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법학박사 빌헬름 프리크, 공학박사 프리츠 토트, 엔지니어 출신 고트프리트 페더, 변호사 한스 프랑크, 약사 출신 그레고어 슈트라서, 하버드 출신 한프슈탱글, 건축가 로젠베르크와 알베르트 슈페어, 농학 석사 출신 힘러와 발터 다레, 언론인 발터 풍크, 폰 쉬라흐, 루돌프 헤스 등 의외로 대부분이 번듯한 집안 출신에 대학 이상의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다.[51] 전통적으로 서양에서는 악마는 한 쪽 다리가 인간의 다리와 발이 아닌 염소의 다리와 발굽으로 되어 있어 절뚝거리며 걷는다고 믿었다.[52] 프랑크 헨젤이라는 사람이 옮겨놓았다는 설이 유력하다.[53] 2차 세계대전 종전을 상징하는 V-J Day in Times Square를 찍은 사진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