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 이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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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 이쿠조
吉 幾三(よし いくぞう | Ikuzo Yos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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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鎌田 善人 (카마타 요시히토)
출생
1952년 11월 11일 (71세)
아오모리현
직업
가수, 싱어송라이터, 작사가, 작곡가
소속사
요시 프로모션
활동 기간
1973년 ~
자녀
장녀 KU[1]
차녀 코토부키 미미[2]
별명
IKZO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1. 소개
2. IKZO
3. 대표곡



1. 소개[편집]


요시 이쿠조 (吉 幾三)[3]일본엔카 가수 겸 작사 작곡가이다.

본명은 카마타 요시히토(鎌田 善人). 1952년 11월 11일생. 아오모리현 출신. 혈액형은 B형, 신장 178cm, 체중 70kg.

1952년 아오모리현 고쇼와가라시의 민요가수였던 카마다 이나이치의 막내로 태어났다.[4]

1972년 야마오카 에이지라는 예명으로 아이돌로 데뷔하였으나 그리 성공하지 못하자, 1977년 예명을 지금의 요시 이쿠조로 개명하여 포크송 노선으로 방향을 바꾼 후 발매한 '나는 절대! 프레슬리'라는 곡이 히트를 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1984년 발표곡인 '俺ら東京さ行ぐだ (나 도쿄에 갈란다)'가 대히트를 기록. 1986년부터 2001년까지 NHK 홍백가합전에 16년 연속으로 출연한다.

다만, 최대 히트곡인 俺ら東京さ行ぐだ가 본인의 경험을 소재로 한 곡이라고 이야기 한 탓에 고향인 아오모리현 카나기마치[5]에서 '우리 동네는 그렇게 촌구석이 아니다!'라는 항의전화에 시달린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다.[6]

근육소녀대도 이 노래를 샘플링해서 '소울 콧쿠리상(분신사바)'라는 노래를 만들기도 했다.

술을 매우 좋아하며 1992년에는 술에 취해 삿포로 TV 지역방송에서 음부를 노출시키는 등의 주사에 관련된 트러블이 많았다.

시모네타를 매우 좋아하며 방송에서 자주 시전하곤 한다.

한강이라는 곡을 만들었으며 이 때문에 인터넷 극우들에게 재일이 아니냐는 소리를 들었으나, 한강을 작곡한 이유가 일본의 스낵바를 자주 가는데 거기서 만난 한국 여자들을 보고 떠올라 작곡했다고 방송에서 밝혔다. 또한 후배들을 데리고 남자끼리 한국에 기생관광을 목적으로 간 적도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장녀도 KU라는 예명으로 가수 활동 중이다.

표절에 대한 흑역사가 있는데, 자신의 히트곡 중 하나인 '설국(雪國)'(1986)이라는 노래가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1979)를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았었다. 다만, 어찌저찌 그냥 묻혀버린 모양. 사족으로 게게게의 키타로의 3기 오프닝과 엔딩곡을 부르기도 했다.

조용필의 명곡으로 유명한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커버하기도 했다.#

2. IKZO[편집]


대표곡이자 히트곡인 나는 도쿄에 갈란다마성의 BGM으로 다양한 매쉬업에 사용되면서 인기있는 밈이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을 참조하자.


3. 대표곡[편집]



  • 酒よ(술이여)

요시 이쿠조의 역대 노래들중 최고의 명곡.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역대 일본 엔카들 중에서 노래방에서 가장 많이 불러지는 노래로 손꼽힌다.

  • 雪國(설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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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수.[2] 배우.[3] よし、行くぞ!(좋아 간다!) 라는 뜻의 말과 발음이 같은 언어유희적 성격을 지닌 예명이다.[4] 아버지는 당시 일본 천황의 앞에서 민요를 선보일 정도의 민요 명수이며 그에 대해 요시 이쿠조는 '아버지는 넘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5] 사실 거의 혼슈 최북단에 붙어있는 동네이기는 하다. 현재는 고쇼가와라(五所川原) 시에 합병되었는데, 합병 전인 2005년 기준 인구는 10,557명. 그래도 하루에 몇 편 없지만 카나기역에 철도도 들어오던 곳으로 다자이 오사무의 고향이기도 하다.[6] 사실 그럴만도 한게 이 곡의 가사를 보면 전기도 가스도 들어오지 않고 버스도 하루에 한대만 온다고 하는 등, 완전 깡촌이라는 식으로 서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