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노 아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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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아사히 신문 로고.svg 아사히 선정 지난 1천년간 일본 최고의 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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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 신문이 2000년 투표로 선정한 "지난 1천년간 일본 최고의 문인"의 리스트이다.
1위
2위
3위
4위
5위
나쓰메 소세키
무라사키 시키부
시바 료타로
미야자와 겐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6위
7위
8위
9위
10위
마츠오 바쇼
다자이 오사무
마쓰모토 세이초
가와바타 야스나리
미시마 유키오
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아리시마 타케오
무라카미 하루키
엔도 슈사쿠
세이 쇼나곤
요사노 아키코
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모리 오가이
요시카와 에이지
오에 겐자부로
무라카미 류
이시카와 다쿠보쿠
21위
22위
23위
24위
25위
다니자키 준이치로
이노우에 야스시
미우라 아야코
아베 코보
다카무라 고타로
26위
27위
28위
29위
30위
후지사와 슈헤이
시마자키 도손
나카하라 츄야
고바야시 잇사
세리자와 고지로
31위부터는 링크 참조.



요사노 아키코
与謝野晶子(よさの あきこ|Akiko Yosano


파일:9요사노아키코.jpg

본명
요사노 쇼우 (与謝野 志やう(よさの しょう)
출생
1878년 12월 7일
일본 제국 사카이현 이즈미국[1]
사망
1942년 5월 29일 (향년 63세)
일본 제국 도쿄부 도쿄시 스기나미구 오기쿠보
직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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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사카이 여학교 (기예과 / 졸업)
묘소
도쿄도 후츄 타마레이엔
부모
아버지 호 소시치
어머니 호 쓰네
배우자
요사노 뎃칸 (1901년 결혼)
자녀
장남 요사노 히카리
차남 요사노 히데
장녀 요사노 핫포
차녀 요사노 나나세
삼남 요사노 린
삼녀 요사노 사호코
사녀 요사노 우치코
사남 요사노 이쿠
오녀 요사노 엘렌
오남 요사노 타케루
육남 요사노 순
육녀 요사노 후지코
장르
단가
등단
(1900)


1. 개요
2. 유년시절
3. 남편 요사노 뎃칸과의 만남
4. 작품 활동과 말년
6. 창작물



1. 개요[편집]


메이지 시대~쇼와 시대(일본 제국)에 활동했던 여성 와카 작가이다. 메이지 시대 대표적 신여성 중 한 명이었고, 여성문학 및 여성해방운동에 관여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결혼 전 성은 호(鳳).


2. 유년시절[편집]


1878년, 오사카의 사카이 시 가이쵸의 화과자점의 셋째 딸로 태어났다. 그로 인해 어렸을 때부터 집안일을 돕느라 바쁜 생활을 보냈다고 알려져 있다. 늦게 일이 끝나고 나서도 부모의 눈을 피해 가며 여러 문학 작품을 읽어 왔다. 그 때 일본의 고전 명작이라 불리우는 겐지모노가타리, 마쿠라노소시, 에이가모노가타리[2] 등을 탐독했다고 전해진다. 그 후 제국대학에 들어간 오빠가 보내주었던 당대의 문예 잡지들을 읽으며 작가의 꿈을 키웠다.


3. 남편 요사노 뎃칸과의 만남[편집]


요사노 아키코는 관서 지방의 문학회에 입회하면서부터 시작됐는데, 당대의 유명한 시인 '요사노 뎃칸'[3] 의 제자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요사노 뎃칸과 그 제자들과 함께 묘조(明星)라는 동인잡지를 중심으로[4] 활동한다. 그리고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듯 스승과 결혼하게 되는데, 이에 관해 같은 문하생이자 친구인 야마가와 도미코(山川登美子)와 요사노 뎃칸을 두고 경쟁을 펼치게 되었던 것이 유명하다. 당시 아키코는 20세 초반. 그런데 요사노 뎃칸은 이미 부인이 있었다. 심지어 뎃칸과 그 부인 사이에 아이까지 있었다. 더 웃긴 것은 뎃칸은 처음에 아키코보다는 도미코에게 더 마음을 두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단 셋이서둘이서가 아니다 교토 여행까지 가는 등, 한국 막장 드라마에서도 재현하기 힘든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경쟁자였던 도미코는 아버지의 강요로 강제적으로 혼사가 정해지고, 이 막장 드라마의 최후는 아키코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5] 어쨌든 아키코 때문에 뎃칸은 이혼까지 하게 된다. 결국 사랑싸움에서 승리한 요사노 아키코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했기 때문에 결국 본가에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쫓겨나게 된다. 참고 사이트


4. 작품 활동과 말년[편집]


어쨌든 그 엄청났던 연애 이후 가집을 내게 되는데 그것이 '헝클어진 머리칼(みだれ髪, 미다레가미)'이다. 자전적 성격의 시집으로서, 작가 자신의 연애 경험이나 갈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그 방식이 당대 여성의 것이라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담대하고 과감한 표현을 사용하였기에 큰 이슈가 되었다. 제목에서도 추론할 수 있는 점은 여성이 격한 정사 후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표현했다고 하는 의견도 있고, 샤워 후 정돈되지 않은 머리를 뜻한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어쨌든 관능미 넘치는 여인의 모습을 그리려 했던 것은 확실하다.

실제 내용면에서는 자신의 파란만장한 연애 관계를 그대로 반영한 듯 자유분방한 연애 관념, 정열적이고 풍부한 가풍을 보여주었다. 유부남을 꼬시려면 엄청난 열정과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여성'으로서의 의지 등을 표현한 시집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표현이 저급한 것도 아니었고 참신하고 미적이었기 때문에 당대의 젊은 남녀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물론 꼰대들에게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 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더욱 이름을 날리는 데 효과적이었다 한다.노이즈 마케팅? 그리하여 얻게 된 별명은 '정열의 가인'. 근대화가 이루어졌다고 하나, 아직 봉건적 관습을 타파하지 못했던 당시 시대상에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러일전쟁에 참전하게 된 동생의 무사귀환을 기리며 쓴 시 님이여 죽지 말지어다(君死にたまふことなかれ, 1904)가 또 다른 의미로 세간의 집중을 받게 된다. 요사노 아키코가 이 단카를 발표했던 시기는 한참 제국주의가 팽창하던 시기라, 동정론도 있었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았다.

작품 활동이 뜸해진 요사노 뎃칸을 대신해서 잡지 '묘조'의 간행에도 힘써 왔다고 한다. 말년에는 등단 초기에 보여주었던 불꽃 같은 문체나 패기는 많이 사그라들었지만, 작품 전반적으로 사색적이고 깊이가 생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특히 관심을 보였던 부분이 여성인권 신장이었다. 직접 학교를 세울 정도로 교육 쪽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시가문학 뿐 아니라 소설, 수필, 고전 연구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였다. 특히 겐지모노가타리의 구어판을 출간하기도 하는 등 고전문학의 현대어화에 노력했는데,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현대어역본과 더불어 양대 역본으로 칭송받는다.

1942년 뇌일혈로 사망하기까지 그녀는 20권, 5만 여 수의 단가를 남겼다. 참고로 뎃칸은 아키코보다 7년 먼저 세상을 떠났다고 하며 그에 대한 만가(挽歌, 죽음을 애도하는 시)를 많이 지었다고 전해진다.


5. 반전시 님이여 죽지 말지어다?[편집]


지금은 반전시의 대표시로 손꼽히고, 일본 교과서에도 수록되어 있는 님이여 죽지 말지어다는 발표 당시 수많은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다. 일단 일본의 국수주의자들에게 비애국자, 역적 등 극딜을 엄청나게 먹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전쟁에 끌려간 청년들의 가족들에게는 공감을 충분히 샀던 내용이기도 하다. 링크를 타고 들어가 내용을 읽어 보면 알겠지만, 당시에 '감히' 폐하를 들먹이며 '직접 전투도 안 나가는 주제에!'라고 하거나, '여순이 함락되든 안되든 무슨 상관이냐?', '너(친동생)는 죽이다 죽으라고 태어났느냐' 라고 하는 등... 다분히 반항적이고 전쟁을 반대하는 의미가 깊어 보인다.

하지만 요사노 아키코의 이후 행보를 보면 만주국으로 가서 종군위문을 하거나, 태평양전쟁 당시 개전시를 쓰는 등 완벽히 전향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로 인해 단순히 친동생의 안위가 걱정되어 빡쳐서 쓴 시인지, 정말 전쟁을 멈추었으면 하는 의미에서 쓴 시인지 불분명한 모습이 있지만, 말년에 상반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것은 상당히 모순적이다.


6. 창작물[편집]


만화 문호 스트레이독스에서 모에화되어 무장 탐정사의 일원으로 나온다. 그녀의 대표시 님이여 죽지 말지어다를 모티브로 한 이능력의 소유자로 빈사상태의 사람을 살리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로 인해 포지션은 의사다. 신여성이었다는 점을 감안했는지 매우 당찬 성격의 여장부로 나온다.

1988년작 일본 영화 <화의 란(華の乱)>에서도 등장하는데 일본의 국민 여배우인 요시나가 사유리가 연기했다. 그런데 문제는 극중 요시나가 사유리가 연기한 요사노 아키코가 실제 인물의 얼굴과는 전혀 매칭되지 않는 미스캐스팅이라는 거. 물론 당연히 실제 인물 닮게 한다고 못생긴 추녀를 캐스팅하면 영화를 보러 올 사람이 없으니 어느 정도의 미화는 그러려니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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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 오사카부 사카이시 사카이구[2] 일본 중세시대 유행하였던 문학장르인 레키시모노가타리의 효시이다.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허구적 이야기를 통해 현실세계에 교훈을 주려 했다는 것이 특징이다. 줄거리는 당대의 권력가 후지와라 미치나가의 찬양 일색.[3] 본명 요사노 히로시.[4] 메이지~전쟁 전까지의 근대 일본은 동인잡지를 중심으로 단편소설이 융성히 발표되던 시기이다.[5] 하지만 불행하게도 도미코의 결혼생활은 남편의 잦은 외도 때문에 오래가지 못하였으며, 29세의 나이로 요절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