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네바야시 히로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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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av.watch.impress.co.jp/wds04.jpg

1. 개요
2. 생애
2.1. 지브리 입사
2.2. 감독이 된 이후
3. 기타
4. 작품 리스트


1. 개요[편집]


米林宏昌(よねばやし ひろまさ)
개인 트위터
일본의 애니메이터. 1973년 7월 10일 출생. (50세) 이시카와현 이시카와군 노노이치 정 (現 노노이치 시) 출신. 애칭은 마로(麻呂).


2. 생애[편집]



2.1. 지브리 입사[편집]


가나자와미술공예대학에서 상업 디자인과를 다니다 중퇴하고, 1996년 스튜디오 지브리 입사. 이례적으로 3년 만에 일찍 동화맨에서 원화맨으로 승격했다. 처음으로 원화를 그린 작품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아버지가 음식을 먹는 장면과 가오나시가 목욕탕 유야에 들어오는 장면. 작화감독이었던 안도 마사시에게 수정을 당했다.

이후 미야자키 고로가 감독한 게드전기에서는 작화감독 보조. 단편 영화 《空想の空とぶ機械達》에서는 작화감독. 메이와 아기고양이버스에서는 연출도 경험했다.

특히, 벼랑 위의 포뇨에서 담당한 원화 장면은 미야자키 하야오도 거의 고치지 않고 그대로 통과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는다.[1] 그런데, 그 전에는 일 때문에 잘 했다고 칭찬받은 기억은 별로 없고, 어느 날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스튜디오 건물의 다른 창문은 냅두고 자신이 앉는 자리의 창문만 닫는 그를 보고 미야자키가 화를 내며 "고향으로 돌아 가!"라고 혼난 경험도 있다고 한다.[2]


2.2. 감독이 된 이후[편집]


스튜디오 지브리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 인재 발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10년작 마루 밑 아리에티의 감독으로 전격 발탁. 스튜디오 지브리에서는 최연소 감독 데뷔를 달성했다. 이 때 스즈키 토시오는 지브리에서는 가장 뛰어난 애니메이터라고 그의 그림 실력은 인정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딱히 감독을 맡길 마땅한) "사람이 없어서.", "으로." 라고 딱 잘라 말했다. 미야자키는 인터뷰에서 "애초에 마로는 감독이나 연출을 목표로 한 사람이 아니라서, 마로에게 감독을 맡길 생각은 한 적이 없었다"고 본심을 밝혔다. 하야오가 평하길 "성격은 성실하고 착한 놈"이라면서 그런 인덕이 있으니까, 지브리 내에서도 "자, 마로가 감독으로 발탁됐다면 어쩔 수 없네. 도와줘야 되겠네." 라는 분위기가 있다면서, 모난 놈이었으면 주변 동료들도 혼자서 알아서 해봐라는 식으로 나오면 감독을 못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너무 성격이 물러도 감독을 못한다고 덧붙였다.

다행히 그는 감독의 재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스즈키 토시오가 밝힌 제작 비화 - 감독 발탁 ▼
그러는 사이에 「마루 밑 아리에티」의 감독을 정할 시기가 되었다. 미야는 자신이 처음 아이디어를 냈다는 것을 잊었는지 내게 이렇게 물었다.
“스즈키 씨, 회사 책임자로서 감독은 어떻게 할 생각이지?”
그때 문득 마로라는 애칭을 가진 요네바야시 히로마사가 떠올랐다. 그림 실력으론 지브리에서 1, 2위를 다투는 애니메이터다.
영화는 감독 한 사람으론 만들 수 없다. 미야 감독에게 마로는 본인 작품을 만들 때 대단히 중요한 스태프였다. 특히 「벼랑 위의 포뇨」는 마로가 없었으면 만들 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로는 어떨까요?”
다음 순간, 미야의 얼굴에는 동요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목소리에도 힘이 없어졌다.
“어,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했나?”
“2, 3년쯤 됐을 겁니다…….”
“알겠네. 그럼 당장 오라고 하게.”
마로가 얼굴을 내밀자 미야는 다짜고짜 말했다.
“마로, 다음 작품은 자네가 감독을 하게!”
마로 쪽에서 보면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마로는 신중한 성격이라서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데 성질이 급한 미야와 내가 대답을 독촉했다.
“지금 당장 대답하게.”
잠시 후에 마로는 겨우 무거운 입을 열었다.
“영화는 사상이나 주장이 없으면 만들 수 없잖습니까? 저에게는 그런 게 없습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미야와 나는 동시에 책상 위의 원작을 들어올리며 소리쳤다.
“그건 이 안에 쓰여 있어!
“아무튼 읽어보겠습니다.”
2주쯤 지났을까? 다행히 마로에게 “하겠습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번에는 미야를 설득할 차례다.
“마로가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지브리는 미야 씨든 다카하타 씨든, 감독 중심으로 작업을 해왔잖습니까? 반면에 이번에는 기획 중심이고, 더구나 마로에게는 감독 데뷔작입니다. 시나리오까지는 이쪽에서 마무리해서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알고 있어. 내가 해줄게.”

스즈키 토시오가 밝힌 제작 비화 ▼
한편 마로는 캐릭터를 그리거나 미술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런 경우에 미야는 손으로도 참견하고 입으로도 참견한다.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곧장 보러 가서 이래라저래라 지적하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있으면 감독은 혼란에 빠지고 작업도 정체된다.
지금까지 같이 일한 젊은 감독 중에는 미야와 다른 캐릭터를 그리려고 하다가 시행착오에 빠진 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런데 마로는 그런 문제를 너무도 간단히 해결했다. 옥신각신할 것을 예상하고 처음부터 미야의 캐릭터로 선택한 것이다.
“캐릭터는 이걸로 갈 건가?”
그렇게 물어보자 그는 확실하게 대답했다.
“네, 시간이 없으니까요.”
미술도 그러했다. 마로는 고집을 부리지 않고, 미야가 그린 집의 설계도를 “고맙게 사용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그대로 받아들였다.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와 달리 굉장히 현실적인 사람이란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이윽고 「마루 밑 아리에티」 준비실에는 마로를 도와주기 위해 선배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그림을 잘 그리는 애니메이터 중에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붕 뜨는 사람이 많다. 독불장군에다 인품에도 문제가 있어서, 사람들의 신뢰를 통해 모두를 통솔해나가는 일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마로는 선배들에게는 사랑을 받고 후배들에게는 신뢰를 받는 굉장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감독이 된 순간, 그 재능이 놀라운 힘을 발휘하게 되었다.
예상치 못한 능력을 몇 가지나 보여주었지만, 그림 콘티는 난항을 거듭했다.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어떤 식으로 화면을 구성하고 어떤 템포로 영화를 만들지는 전부 그림 콘티로 정해진다. 지금까지 지브리에서는 다카하타 이사오와 미야자키 하야오 이외에 그림 콘티를 직접 그린 감독이 거의 없었다.
“그림 콘티는 어떡할 건가?”
마로에게 물어보았더니 그는 딱 부러지게 대답했다.
“제가 직접 그리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미야는 의외로 호탕하게 수락했다.
“그래, 자네는 역시 남자야. 나는 손도 발도 대지 않겠네.”
그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면 나중에 엄청난 일을 당할 것이 뻔해서, 나는 근처에 아파트를 빌려 마로를 격리했다.
문제는 그다음 날 발생했다. 미야가 “마로는 어디 갔지?”라고 여기저기 찾으러 다닌 것이다. 그는 마로의 행방을 알 만한 스태프를 한 사람씩 불러서 캐물었다. 하지만 다들 말해주지 않았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절대로 말하지 말라고 단단히 입막음을 해두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로의 은신처에 가서 앞부분의 그림 콘티를 본 순간, 나는 경악해서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쇼우가 할머니와 차를 타고 저택에 도착하기까지 한 부분도 생략하지 않고, 어디에서 커브를 도는 것까지 꼼꼼히 그려져 있었던 것이다. 이럴 수가.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 나는 머리를 껴안고 고민에 빠졌다.
“마로, 영화는 필요한 포인트만을 그려야 해서, 시간을 훔치지 않으면 안 돼.”
“네…….”
마로는 그 말을 끝으로 침묵했다.
지금까지 굉장한 능력을 보여줬는데 역시 안 되는 걸까? 나는 불안을 껴안은 채 이튿날 또 얼굴을 내밀었다. 그런데 그림 콘티가 몰라볼 만큼 좋아진 게 아닌가.
“굉장해! 왜 처음부터 이렇게 그리지 않았지?”
“헤헤헤.”
그는 개구쟁이처럼 웃을 따름이었다. 그런데 다음 장면에서는 또 원래의 고지식한 방법으로 돌아왔다. 두 번째는 나도 화가 나서 고함을 질렀다.
“이 장면에서는 여기와 여기만 그리면 되잖아!”
그런데 다음 날 가면 또 완벽하게 수정되어 있었다. 이런 과정을 매 장면마다 계속 반복했다.
“마로, 왜 처음부터 이렇게 그리지 않지?”
그러자 그는 조용히 고백했다.
“버릇입니다…….”
원화를 담당했던 시절, 캐릭터의 연기를 그려서 가져가면 미야에게 매번 이러쿵저러쿵 지적을 받다보니 모든 상황을 자세히 그리는 습관이 생겼다는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그러니까 내가 지적할 때를 대비해 전부 그렸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이럴 때는 감탄해야 할까, 아연해야 할까.
“이제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니까 처음부터 자네가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게.”

마루 밑 아리에티는 흥행에는 성공했지만, 아무래도 스튜디오 지브리라는 브랜드 네임, 이름값으로 밥상에 숟가락을 얹은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일단 각본이 미야자키 하야오. 요네바야시 본인의 인터뷰에 의하면 매일 같은 공간에서 미야자키 하야오에게 감시당하면서 일을 해야 했다고 한다.[3] 여하튼 본인도 그것을 마음에 담고 있었는지, 바람이 분다가 제작되고 있는 중에 스즈키 토시오를 찾아가 '마루 밑 아리에티에서는 못 다한 아쉬움이 있다'며 다음 작품의 감독을 맡겨 달라고 청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두 번째 감독작인 추억의 마니는 기존의 지브리 스타일을 계승하면서도 여러 실험적인 도전을 한 탈(脫)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이었지만, 흥행에서나 비평에서나 그저 그런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제88회 미국 아카데미상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에 노미네이트된다. 스즈키 토시오는 두 거장보다 절반의 짧은 제작 기간에 작품을 완성한 점을 칭찬했다. 미야자키 하야오타카하타 이사오도 완성된 영화를 보고 난 후 호평을 했다.

그러나 이 작품을 만들고 다음 작품이 나오기 전에 스튜디오 지브리의 제작팀은 해체되었다. 그의 말로는 추억의 마니 홍보를 위해 전국 극장을 돌아다니다 돌아와보니 지브리 제작 스태프는 사라지고 없었다고 한다. 그도 2014년 연말 쯤에 지브리를 퇴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퇴사 후 2015년 4월 같은 지브리 출신으로 프로듀서였던 니시무라 요시아키, 애니메이션 감독 모모세 요시유키와 함께 스튜디오 포녹을 설립했으며, 첫 번째로 2017년 7월에 개봉한 메리와 마녀의 꽃에서 평은 나쁘지 않았으며, 그럭저럭한 흥행을 하였다.

감독으로서 메리와 마녀의 꽃까지의 실력은... 미야자키 하야오에서 각본 능력을 뺀 정도로 연출과 그림 자체는 정말 미야자키 하야오를 빼다박아 지브리란 이름값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정도지만 말 그대로 하야오의 클론이나 각본능력이 빠져버린 상태로 극 초반의 묘사로 힘을 꽉 잡지만 중반부 이후로는 맥빠진 시나리오와 연출을 보여주는 것이 고질병이다. 당위성이 부족한 등장인물의 행동이나 사건이라던지 매끄럽지 못한 시나리오의 연결성, 그리고 다소 부족한 복선과 마무리 등 정말 그림의 분위기만 타고 시나리오는 어떠한 흐름도 못 타서 결말에서 일말의 감동조차 느끼기 어렵게 해버리는 단점이 심하다.사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연출, 작화, 각본까지 다 해먹는 괴물이어서 아무나 함부로 하긴 힘든 먼치킨이라 그러나 그나 스탭들이나 이러한 각본의 문제를 못 느끼는 것인지 메리와 마녀의 꽃에서도 본인이 각본까지 계속 다하는 중. 단점을 커버하기 위한 타 각본가와의 협업이 필요해 보인다.

파일:요네바야시 콘티2.jpg

콘티는 미야자키 급으로 끝장나게 잘 그린다.

2023년 7월 26일,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응급실에 입원했으나 일반 병동으로 이동했고 치료 경과는 순조롭다고 한다. #

3. 기타[편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등장하는 가오나시의 모델이라는 설이 있지만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자신이 그린 가오나시의 작화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에게 보여줬더니 "마로(요네바야시의 별명) 아닌가? 네가 애니메이션 안으로 들어왔구나." 라고 이야기했고 그것이 자신이 모델이라는 소리로 와전이 되었다고 한다. #

안노 히데아키 말로는 미야자키 하야오는 자신이 부려 먹을 (자기 대신 그림을 그려줄 수 있는) 사람에게만 가르쳐준다고 했는데, 요네바야시의 인터뷰(2015)를 들어 보면, 미야자키 하야오에게 꾸중을 들으면서도 비행기를 날리는 법, 부유감(浮遊感)을 내려면 어떻게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 가장 영향을 받은 사람은 미야자키 하야오라고 밝혔다.


4. 작품 리스트[편집]


참가 작품 리스트 일본 작화위키 참조

연도
제목
감독
각본
2010
마루 밑 아리에티
O

2014
추억의 마니
O
O
2017
메리와 마녀의 꽃
O
O
2018
작은 영웅: 게와 달걀과 투명인간[4]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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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가 그린 그림을 보고 "모에~"라고 말했다고 한다.[2] 자신만 생각하는 인성을 가진 사람과 일하기 싫다는 것.[3] 스즈키 토시오도 미야자키 하야오는 말로는 자신이 간섭하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막상 제작에 들어가면 '손도 대고 발도 들이대고' 해서, 추억의 마니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도 이 작품처럼 두 소녀의 섬세한 심리표현이 중요한 작품이라면 미야자키 하야오라도 작품에 참견을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서라고 밝혔다. 그리고 다른 이유로는 평소에 요네바야시가 미소녀를 그리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라고.[4] 옴니버스 단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