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단(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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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의 아들. 후대왕 다윗의 절친한 친구이다.[1] 다윗이 골리앗을 처치하는 것을 보고 감명을 받아 다윗에게 자신의 활과 허리띠를 선물로 주며 형제보다 가까운 친구의 서약을 맺었고, 둘은 평생을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게 된다. 사울은 왕위를 위협할 존재인 다윗을 경계하고 죽이고자 했으나 '요나단'과 다윗은 아름다운 우정을 이어갔다고 한다.[2]

사울 2년, 그러니까 요나단이 다윗을 만나기 전의 일이다. 사울이 필리스티아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데, 요나단은 그 때 창을 든 소년 하나를 이끌고 아버지 몰래 정탐을 나갔다. 믹마스 밑의 절벽에 도착한 요나단은 "우리가 일부러 저들에게 모습을 드러내자. 만일 저들이 '거기 꼼짝 마라'가 아니라 '이리 와 봐라'라고 한다면 하느님이 저들을 우리에게 내 주실 거라는 증거다."라고 장담했고, 소년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 모습을 본 필리스티아 군이 "이스라엘 놈들이 땅굴에서 쥐새끼마냥 기어나왔구나"하고 비웃으며 "들어와 봐라. 멋진 거 보여줄게"라고 확인사살을 가했으며, 이에 확신에 찬 요나단은 그 소년 한 명만 이끌고 즉시 덤벼들어 진영 안에서 반나절을 싸워 20여 명을 척살하는 공을 세웠다. 적진에서 소란이 일어난 것을 그제야 발견한 사울은 점호로 확인하여 요나단과 부하 하나가 나가 벌인 일이라는 걸 알고 급히 군대를 이끌고 나가 요나단과 합류했는데, 보니 적진이 완전히 혼란에 빠져 아군끼리 죽이는 등 난리도 아니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사울이 전쟁 전에 선언하기를 "내가 이놈들을 다 죽일 때까지 나나 우리 아군 중에 밥 한 입이라도 입에 댄다면 누구든지 저주를 받을 것이다"고 엄명을 내린 것이다. 그런데 하필 요나단은 기습작전 때문에 자리에 없어서 그 명령을 모르고 있었고, 수풀 가에 흐르는 꿀[3]을 보고 지팡이 끝으로 찍어 꿀을 한 입 먹고 말았다. 이에 군사들이 크게 놀라 "폐하가 이미 이러이러하게 명을 하셨습니다."라고 요나단을 걱정하는데, 요나단은 "우리 아버지가 또 쓸데없는 소리를 하셨네. 야, 내가 지금 이 꿀 한 입 살짝 빨고 이렇게 정신이 번쩍 드는데, 오늘 우리 군사들이 진작 전리품으로 얻은 식량으로 배 빵빵하게 실컷 먹고 싸웠으면 전과가 훨씬 더 좋아지지 않았겠냐?"라고 군사들을 굶긴 아버지를 비판했다. 그러자 장거리 원정으로 인해 허기에 정신이 나가 있던 병사들이 전리품으로 잡아온 소나 양에 떼거리로 달려들어 그 자리에서 잡아 조리도 안 하고 그대로 피투성이 생고기를 뜯어먹었다.

이것을 본 사람이 사울에게 이 소식을 알리자 사울은 "너희는 하느님께 피를 먹는 범죄를 저질렀다!"라고 외치고는 큰 돌을 하나 굴려와서는 '앞으로 고기는 이 돌에다 요리해서 먹고 다시는 피를 먹는 범죄를 하지 말자'라고 경고하고는 금식령을 해제해 사람들에게 각자 양과 소를 끌고 와서 고기를 구워 먹게 했다. 사울은 '오늘 밤에 필리스티아를 쳐도 될까'하고 하느님께 질문했는데, 이미 사울을 떠난 하느님은 당연히 아무 응답이 없었다. 그러자 사울은 장교들을 소집하고, '하느님이 응답하지 않는 원인을 제공한 죄인을 찾아야겠다. 그게 내 아들이라고 해도 반드시 죽는다'라고 엄포를 놓았다. 이 문단만 읽어봐도 알겠지만, 이건 전적으로 사울 본인의 잘못이다. 어쨌든 제비를 뽑아 죄인을 가려내는데, 공교롭게도 요나단이 걸렸다. 사울이 대체 무슨 짓을 했냐고 추궁하자 요나단은 "길가에 흐르던 꿀을 한입 먹었습니다"라고 대답했고, 사울은 노발대발하며 요나단을 죽이려 들었으나[4] 군사들과 백성들이 "요나단이 이런 공적을 세웠는데 머리카락 하나도 다치게 할 수 없다" 라며 극렬히 반발하여 결국 무산되었다.

어쨌든, 그 전투 후 다윗과 만나 정을 쌓던 요나단은 사울의 눈에 찍힌 다윗을 구하고자 사울을 설득하는 등 애를 썼는데, 잠시 피신했던 다윗이 돌아와 "대체 내가 왕에게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알지도 못하고 고생할 바엔 차라리 네가 날 죽여라"라고 하소연을 했다. 그러자 요나단은 "절대 그럴 일 없다."며 다윗을 위로했는데, 다윗은 "내일 초하루라 나랑 왕이 같이 식사를 해야 하는데, 나는 나가지 않겠다. 그리고 3일 밤 될 때까지 내가 들판에 숨어있을테니, 너는 왕에게 내가 가족과 제사드리러 고향에 내려갔다고 말해라"라고 귀띔을 했다. 요나단은 알았다며 혹시 아버지가 거기서 널 죽이려고 하는 거라면 내가 널 무사히 빠져나가게 도와주겠고, 만약 내가 너에게 위험하다고 알려주지 않으면 하느님께 1+1으로 벌을 받겠다고 맹세했고, 하느님이 다윗의 집을 보호해달라는 기도를 했다. 요나단은 사실상 이 때쯤 돼서야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한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초하루 날, 그리고 그 다음 식사날에도 다윗이 자리에 보이지 않아 사울이 의아해하자[5] 요나단은 다윗의 귀띔대로 짐짓 태연히 "고향 베들레헴에서 제사를 지내고 온다길래 제가 보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사울이 요나단에게 창을 집어던지고 "패역무도한 노비의 자식 놈아! 네가 날 배신하고 다윗을 두둔하는 건 네 어머니가 알몸이 된 수치와 똑같다는 걸 모른다는 말이냐?"라고 고함을 지르는, 자식에게 차마 할 수 없는 막말을 퍼부으며 요나단을 죽이려 들었다. 그러나 요나단은 사람들 즐비한 연회석에서 아버지한테 대놓고 창피를 당한 것이 아니라, 다윗을 죽이려는 것이 진심이라는 것에 크게 분노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서는 그 날 하루 식사를 다 거르고 슬퍼했다고 한다. 그 이후, 다윗을 어느 평원의 바위 뒤에 몰래 와서 숨어있도록 약속하고는 그 자리에 활쏘기를 하러 나가서 다윗이 와 있는 것을 확인하자 멀리 활을 쏘았다. 그리고는 화살이 땅에 떨어지자 화살 줍는 시종에게 "화살이 네 앞에 떨어져 있다."라고 했다. 그리고 시종이 화살을 주워오자 시종에게 자기 활을 주고는 궁으로 돌려보냈다. 그러자 수풀 뒤에서 다윗이 나왔는데, 무슨 일인지 두 사람이 서로 얼싸안고 통곡하기 시작했다.

알고보니 두 사람이 사전에 약속하길, 요나단이 "내가 활을 쏘고, 내가 시종에게 '화살이 요 앞에 있다'라고 하면 넌 안전한 것이고, '화살이 네 앞에(멀리) 있다'라고 하면 넌 여기를 떠나야 한다"라고 했던 것이다. 즉, 두 사람이 결국 헤어져야 한다는 뜻. 두 사람은 서로에게 세 번 큰 절을 하고 얼싸안고 한참 운 뒤에 결국 헤어졌다.[6] 그 후 다윗이 요압, 아비새 등을 만나 세력을 모으고 십 광야에 주둔하고 있을 때, 어떤 사람이 다윗을 목격하고 사울에게 위치를 고발했다. 요나단은 그걸 알고 몰래 혼자서 다윗을 찾아가 재회한 뒤 몸을 피하게 이른 뒤 돌아갔는데, 이것이 다윗과 요나단의 마지막이었다.

그 후 요나단은 사울, 동생 아비나답, 말기수아과 함께 길보아 전투에 참전했다가 전사했다. 다윗은 즉위한 후에 전 왕조의 후손임에도 요나단의 아들인 절름발이[7] '므비보셋'[8]을 찾아내 그의 아들인 미가란 소년과 함께 궁으로 데려와 종을 붙여주고 함께 식사를 하는 등 크게 우대하였다고 한다. 므비보셋은 진심으로 다윗을 형님처럼 모셨고, 압살롬의 반란으로 다윗이 예루살렘을 떠났을 때부터 씻지도 않고 식사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다윗의 소식만 학수고대하고 있었고, 종 시바가 다윗에게 자기를 모함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다윗이 준 보상금을 시바에게 내어주는 대인배적인 마음을 보였다. 호부호자라 하겠다.[9] 다윗은 은인의 아들인 므비보셋과 그의 일족을 아껴 훗날의 일에도 과거의 맹세를 지켜 그와 그의 일족들을 보호해주었다 한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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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편으로는 다윗의 아내가 된 미갈이 사울의 딸(요나단의 누나인지 여동생인지는 불명)이기 때문에 다윗의 처남이 되기도 한다.[2] 일부에서는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을 동성애로 주장, 해석하기도 하는데, 기독교측에서는 당연히 이를 강력히 부정한다.[3] 땅벌이 모아둔 석청으로 추측된다.[4] 여기서는 사울과 요나단이 부자관계가 아니라 군신관계라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태조 왕건에서 견훤이 전투에서 지고 돌아온 아들 신검을 어떻게 대했는지 생각해 보면 이해가 빠르다.[5] 사울은 당연히 나타나면 다윗을 죽일 생각이었을 것이다.[6] 다윗의 울음이 더 심했다고 한다.[7] 사울 정권 붕괴 당시 유모가 5살이었던 므비보셋을 안고 도주하다가 실수로 떨어뜨려 발을 절게 되었다고 한다.[8] 원래 이름은 므립바알이지만 당시 성경 역자들이 바알이 아니라 수치를 뜻하는 보셋으로 썼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하느님 뿐만 아니라 가나안 토착신인 바알 숭배도 만연해 있었고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이 멸망할 때까지 잔존해 있었다. 바빌론 유수에 가서야 완전히 없어진다.[9] 애초에 압살롬의 반란에도 다윗의 추종세력이 건재했던걸 생각하면 다윗을 뒷치기한다는건 죽음을 부르는 짓이었다. 추종세력이 척살할게 뻔했으니까.[10] 하지만 다윗은 압살롬의 반란 이후 므비보셋을 100% 신뢰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위에 나온 종 시바의 모함 건에서도 므비보셋이 자기는 무고함을 호소하자 다윗은 냉소적으로 대꾸하면서 재산의 전액 보상도 아니고 반액만 보상해주겠다고 제안하여 뭔가 쎄함을 느낀 므비보셋이 재산을 전부 포기하겠다고 나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