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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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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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행적
3. 저서
4. 평가
5. 관련 사료



1. 개요[편집]


삼국시대서진 시기의 인물이며 자는 숙화(叔和). '왕숙화'로 더 많이 불린다.

연주 산양군 고평현 사람.


2. 행적[편집]


장중경의 제자이자 위나라의 태의령(太醫令: 황실의 의료 행위를 담당)을 지낸 인물로 이 때문에 명망이 매우 높았다고 추측되며, 맥학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고 알려졌다.

성질이 조용하고 저술을 좋아하여 남겨진 문장을 살펴보면서 여러 권의 책을 수집했다고 하며, 시국이 혼란해 장중경이 가진 상한잡병론이 소실되자 상한론 부분을 수집한다. 장중경의 이론을 가려 순서에 따라 장중경방론을 편찬해 세상에 크게 베풀었다고 하며, 흩어져 있던 상한잡병론을 모아 정리하여 보충하면서 편집해 금궤옥함요략방을 지었다.

하동위범기에 따르면 음식의 다양함에 따라 일어난 상극이나 지나친 과식의 문제점에 대해 언급했다.


3. 저서[편집]


저서로는 242년에 완성한 《맥경(脈經)》이 있으며, 남북조시대의 고양생이라는 사람은 왕희의 이름을 빌려 왕희가 지은 맥경을 근거해 편집해서 왕숙화맥결이라는 저서를 편찬했다고 한다.

왕숙화가 편찬한 《맥경》은 현존하는 최초의 맥진 전문서로, 대체로 위진 이전의 맥진 이론이 모두 나타나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자서에서 "이제 나는 기백 이래로부터 화타까지 편집하여 경전이론의 주요 치병방법을 한데 모아 10권으로 만들었다. 각종 질병의 병인과 병리를 분류하여 배열하고, 망문문절을 완비하지 않음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촌구맥법을 삼부로 나눈 법이 기재되어 있고, 좌우 촌·관·척맥과 장부의 대응 관계가 기술되어 있다. 이후 많은 역대 맥진 서적이 왕숙화의 맥경을 기초로 삼았고 촌관척 맥법이 각종 진맥방법에서 주도적인 지위를 차지하게 영향을 주었다.


4. 평가[편집]


청나라 때 태의원을 지낸 서영태의 평가에 따르면 왕숙화가 없었다면 어찌 장중경이 있겠는가라고 평가할 정도로 장중경의 저서를 후세까지 전할 수 있도록 장중경의 의학 상의 공헌도를 올려준 인물이다. 하지만 비판도 적지 않았으니, 원말명초의 의가인 왕리는 "왕숙화는 흩어진 중경의 의론을 찾아 모아 책을 만든 공이 막대하다"고 하였으나 동시에 "아쉬운 점은 자신의 이론을 중경의 말 속에 섞었을 뿐만 아니라 잡다한 맥의 이론과 병증으로 어지럽게 하였고 책의 첫 머리에 실었기 때문에 옥석을 가리지 못하고 주객이 전도되었다"라 하였다.


5. 관련 사료[편집]


  • 장담 양생방
  • 진서 황보밀전
  • 태평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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