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침(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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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琛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2. 생애
3. 기타 창작물



1. 개요[편집]


서진의 인물이며 자는 사위(士瑋)로 왕람의 여섯째 아들. 서주 낭야국 극양현 사람.


2. 생애[편집]


중앙에서는 국자좨주를 지낸 적이 있고 지방에서는 회북감군을 지냈으며, 석포를 미천하다고 업신여겼다. 257년에 제갈탄이 군사를 일으켰다가 258년에 진압당하고 석포가 회남을 담당했는데, 268년에 손오에서 정봉이 이간책으로 궁중의 큰 말이 거의 당나귀가 됐고, 큰 돌이 이를 눌러 편안할 수가 없구나라는 내용의 동요를 퍼뜨리자 왕침은 이를 듣고 사마염에게 석포가 손오와 결탁했다고 알렸다.

또 이전에 점을 치던 사람이 동남의 방향에서 큰 병사가 일어날 기미가 보인다고 하거나 호열이 손오에서 크게 침범한다고 상주하면서 석포가 사마염에게 의심을 사게 되며, 양호가 석포를 변호했음에도 의심을 풀지 않아 석포가 병사를 풀고 홀로 죄를 빌어야 했다. 나중에 석포가 무죄하다고 하자 석포는 대사마로 올라갔다.


3. 기타 창작물[편집]


삼국전투기에서는 최훈 작가가 조위와 서진의 인물인 왕침과 착각했는지 동일 인물로 나온다.

전투외편 8편에서 평소 석포를 못마땅하게 여겼기에 정봉이 이간책으로 동요를 퍼트리자 석포가 반란을 꾀한다고 그를 모함했고, 수춘 감찰관을 자청하여 수춘에 다녀온 뒤 오나라와 교신하는 흔적이 있었다며 석포를 다시금 모함하였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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