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종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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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방송인이자 프리랜서 아나운서.
2. 생애[편집]
1954년 1월 1일 제주도에서 태어났다. 흔히 부산 출신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제주도에서 태어났으며, 태어난지 한 달만에 경상북도 대구시 중부출장소 삼덕동3가(현 대구광역시 중구 삼덕동3가) 대구삼덕초등학교 근처로 이주하여 유년기를 보냈기 때문에 사실상 대구 출신이나 다름 없다.
1977년 대구MBC 아나운서 시험을 봤다가 떨어지고 안동MBC[7] 특채 아나운서로 입사했다가 이듬해인 1978년 TBC 부산 방송국의 아나운서로 방송 생활을 시작했다. 1980년 11월 TBC가 언론통폐합 조치로 KBS에 넘어가면서 자연히 KBS부산방송총국 소속으로 인계되어 재직했다. 결혼한 후 1994년 KBS 본사로 발령받아 아나운서실 차장 및 한국아나운서연합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KBS 지역권 아나운서로서 본사로 발령받아 근무한 것은 그가 처음이라고 한다.#
부산에 있을 때는 어린이 퀴즈 방송 같은 부산 지역 방송에 자주 출연해서 부산 지역에서는 상당히 지명도가 있었다. 때문에 본사 방송에서 얼굴을 보게 되자 부산 지역에서는 반가워하는 사람이 제법 많았다. KBS 본사 발령 이후 《TV쇼 진품명품》 등을 진행했는데, 본인 특유의 경상도 사투리 억양 문제에 대한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기 위함과[8] 방송사 소속 아나운서 신분으로는 할 수 없던 방송 광고 촬영 등도 하기 위해 1999년 9월 KBS를 퇴사하고 프리랜서 방송인이 되었다고 한다.
20대 후반에 일반인 여성과 결혼하여 아들을 낳은 뒤 이혼했고, 1993년 39세라는 꽤 늦은 나이에 12살 연하의 소프라노 성악가 겸 방송인 김미숙과 재혼했다.
3. 출연[편집]
3.1. TV[편집]
- 《도전! 주부가요스타》(1995년 ~ 1996년)
- 《무엇이든 물어보세요》(1995년 ~ 1997년)
- 《TV쇼 진품명품》(1995년 ~ 1999년, 2005년 ~ 2009년)
- 《신세대 보고 - 어른들은 몰라요》(1995년)
- 《생방송 좋은 아침입니다》(1999년 ~ 2000년)
- 《체험 삶의 현장》(2000년)
- 《생방송 오늘》(2000년 ~ 2001년 11월 3일)
- 《생방송 세상의 아침》(2001년 11월 5일 ~ 2004년 10월 29일)
- 《토요화제 이야기 광장》(2001년 11월 5일 ~ 2004년 10월 29일)
- 《엄마가 신났다》(TBS, 2009년)
- 《연애 위자료 청구 사건》(MBC, 2011년)
- 《스타주니어쇼 붕어빵》(SBS)
- 《라디오 스타》(MBC, 2013년)
- 《왕종근의 아름다운 초대》(광주MBC)
- 《아침마당 대구》(KBS대구)
- 《유자식 상팔자》(JTBC, 2013년)
- 《알토란》(MBN, 2014년 ~ )
3.2. 드라마[편집]
- 《스틸러: 일곱 개의 조선통보》(2023년) - 보물을 찾아서 진행자 역 (1회)
3.3. 광고[편집]
- 부산합동양조 생탁 - 부산, 울산, 대전, 경남일대의 시내/외 버스 차량광고와 부산지하철 역사 광고판 대부분에 왕종근 사진이 붙은 생탁 광고가 붙어있을 정도다. 전국 대형마트에서도 생탁막걸리를 판매하게 된 영향인지, 수도권 일대의 버스에서도 이 광고가 간간히 붙어 있었다.
4. 수상[편집]
5. 홍보대사[편집]
6. 여담[편집]
- 프로레슬러 이왕표와 생전 절친한 사이였다고 알려져 있다.
- KBS 재직 당시에는 반듯하게 표준어를 사용하였고, 프리랜서 선언 후에도 한동안 표준어를 사용하였으나 60대로 들어선 이후에는 부산 억양의 표준어 어휘를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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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훈음 임금 왕 쇠북 종 뿌리 근[2] 제주도에서 태어난지 한 달만에 경상북도 대구시 중부출장소 삼덕동(현 대구광역시 중구 삼덕동)으로 이주하여 성장했다고 한다.#[3] 동양군파-병사공파 34세 '根'자 항렬. 왕정홍 전 방위사업청장·배우 왕지원 부녀와 같은 파로 왕정홍과는 같은 항렬이며 왕정홍과 왕종근은 6대조가 왕진채(王震彩)로 같은 12촌 지간이다. 여담으로 前 MBC 뉴스데스크 앵커 왕종명과 성씨는 같지만 항렬은 다르다.[4] 1926년 5월 1일 ~ 2006년 2월 5일. 족보명 왕태만(王泰萬). 육군 중령으로 예편한 뒤 부산일보사 총무국장을 역임했다. 사후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5] 김해 김씨 김인수(金仁秀)의 딸이다.[6] 3남 1녀 중 장남[7] 이 당시 안동MBC는 라디오 방송만 있었다.[8] 프리랜서 전향 후인 2005년에 진품명품 진행자 자리에 복귀했는데, 실제로 그의 진행 1기와 2기 사이에는 미묘한 억양의 차이가 존재한다. 2021년 5월 8일 MBN 속풀이쇼 동치미에 출연했을 때 MC이자 아나운서 후배인 최은경의 이야기에 따르면 아무도 왕종근의 대구 말씨를 거슬려한 사람이 없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