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무(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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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3. 가족 관계


王懋
(? ~ ?)

1. 개요[편집]


서위의 인물. 자는 소흥(小興). 왕맹의 아들로, 왕려의 동생이다.


2. 생애[편집]


북위 효창(525~528) 초에 부친이 옹주자사 소보인의 서정을 따를 때는 아직 어려 산동에서 머물러있었다. 영안(528~530) 중반에서야 비로소 입관하고 왕맹과 만나봤으며, 비로소 정벌에 종군했다. 대통(529~534) 초에 안평현자 작위를 받고 양렬장군에 임명됐다.

서위 문제유연의 욱구려씨 황후를 맞을 때 부친 왕맹과 함께했고, 성문교위에 임명된다. 서위의 동정(東征) 때 무군장군 겸 태자좌솔 관직에 있었는데 종군하지 않고 수도에 머물러 지켰다. 잠시 태자우솔로 관직이 바뀌었고, 상식전어 영좌우 무위장군을 역임했다. 동정이 끝난 뒤에는 공작으로 진작됐으며 식읍 1천호가 더해지고 우위장군으로 전임됐다.

동위와의 국경에서 교전이 있었는데 부친이 병석에 누워있었기 때문에 왕무는 미리 상복 묵최를 맞춰두고 출전했다. 545년 결국 부친상을 당했고, 상례를 따르기 위해 문제에게 벼슬에서 물러날 것을 청했으나 문제는 사직을 허락하지 않았다. 대도독, 산기상시, 사지절, 거기대장군, 의동삼사, 표기대장군, 개부의동삼사, 시중, 좌위장군, 영군장군으로 관직이 바뀌었다. 서위 폐제 2년(553) 남기주(南岐州)자사에 임명되고 안녕군공으로 진작됐으며 식읍이 2천호 더해쳐 총 3천호에 이르렀다. 서위 공제 2년(556) 대장군 대도독으로 옮겼고, 뒤에 소사구(小司寇)에 제배됐다.


3. 가족 관계[편집]


왕무의 아들 왕열(王悅)은 관직이 대장군 동주자사에 이르렀고, 제남군공으로 고쳐 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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