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비(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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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제25대 왕후
왕대비 | 王大妃

파일:송산리 고분군 6호, 무령왕릉, 5호.jpg
무령왕릉(중앙) 전경.
출생
(음력)

466년 이전 추정[1]
백제
사망
(음력)

526년 12월 (향년 60세 이후 추정)
백제
능묘
무령왕릉(武寧王陵)
재위기간
(음력)

제25대 어륙
501년 12월 ~ 523년 5월 7일 (21년 5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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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
주군
무령왕
자녀
부여명농(?)
신체
장폭 9.01mm, 단폭 8.05mm[1]
시호
왕대비(王大妃)[2]
별호
대부인(大夫人)[3]



1. 개요
2. 생애
3. 사후
4. 기타



1. 개요[편집]


백제 무령왕왕비.


2. 생애[편집]


이름과 성씨, 생년월일, 집안 출신 배경은 알려진 것이 없다. 526년 12월에 노령의 나이로 사망해서 무령왕릉에 합장했다는 기록이 있을뿐이다.


3. 사후[편집]


왕대비의 시신은 바로 무령왕릉에 합장되지 않았고, 현 무령왕릉의 서쪽 혹은 서남쪽에 임시로 묻있었다가 529년 2월 21일에 현재의 무령왕릉으로 이장하였다고 한다.

무령왕릉에서 왕대비의 것으로 추정되는 어금니가 발견됐는데, 어금니는 17세 정도로 추정되었으나 어금니가 보통의 어금니와 다르게 닳은 흔적이 없었고, 금석문에서는 왕대비가 사망 당시 노령의 나이에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어 사망 당시 17세 정도는 아니였을 가능성이 높다.[2]


4. 기타[편집]


역사스페셜은 왕대비가 생전에 왕비가 아닌 대부인으로 불린 점을 보아 왕대비가 무령왕조강지처가 아니라고 추정했고 어머니가 조강지처가 아닌 것으로 추정되는 성왕의 어머니가 이 왕대비로 추정했다.#

[1] 지석에서는 노령의 나이일때 사망했다고 기록했다. 그에 따르면 대부인의 나이는 60세 이상으로 추측할 수 있고 이를 역산한 출생연도다.[2] 역사스페셜은 왕대비의 사망 당시 나이를 42세 정도로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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