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두르만

덤프버전 :

파일:이슬람 도시기구.png

[ 펼치기 · 접기 ]
이집트
카이로 · 기자 · 알렉산드리아 · 데숙 · 카프르엘셰이크 · 만수라 · 탄타 · 시빈엘콤 · 반하 · 아시유트 · 퀴나 · 룩소르
모로코
탕헤르 · 우지다 · 페스 · 라바트 · 메크네스 · 카사블랑카 · 마라케시 · 아가디르 · 엘아이운
튀니지
튀니스 · 타바르카 · 비제르트 · 베자 · 카이로우안 · 수스 · 마흐디야 · 스팍스 · 토주르 · 가베스
세네갈
티바완 · 티에스 · 다카르 · 디우르벨
카메룬
야운데 · 두알라 · 응가운데레 · 응간하
리비아
트리폴리 · 데르나 · 벵가지
수단
하르툼 · 북하르툼 · 옴두르만
니제르
아가데즈 · 니아메
나이지리아
아부자 · 라고스
말리
바마코 · 팀북투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 메디나 · 메카 · 바하 · 압하 · 지잔 · 타부크 · 나즈란 · 담맘 · 부라이다 · 하일 · 사카카 · 아라르 · 호푸프
팔레스타인
가자 · 나블루스 · 라말라 · 아리하 · 예루살렘 · 베이트 울라 · 사이르 · 알칼릴 · 칼킬야 · 툴카름 · 제닌 · 칸유니스 · 할훌
레바논
베이루트 · 트리폴리
시리아
다마스쿠스 · 알레포 · 라타키아 · 홈스
이라크
바그다드 · 모술 · 바스라
요르단
암만 · 카라크 · 마안 · 살트 · 자르카 · 마프라크 · 이르비드
예멘
사나 · 아덴 · 타림
오만
무스카트 · 소하르 · 도파르 · 니즈와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 두바이 · 샤르자 · 라스 알카이마 · 아지만
이란
테헤란 · 이스파한 · 쉬라즈 · 카샨 · 타브리즈
튀르키예
앙카라 · 이스탄불 · 카이세리 · 이즈미르 · 에디르네 · 부르사 · 메르신 · 가지안테프 · 샨르우르파
북키프로스
파마구스타 · 레프코샤 · 키레니아
러시아
카잔 · 그로즈니 >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 사마르칸트 · 부하라
그 외 국가
사라예보 · 티라나 · > 그라나다 · 실베스 · 누악쇼트 · {{{#!wiki style="display: inline; border-radius: 3px; background: #00732F; padding: 2px 3px; font-size: .8em"
가봉 리브르빌 · 반줄 · 와가두구 · 은자메나 · 코나크리 · 프리타운 · 비사우 · 파라마리보 · 지부티 · 모가디슈 · 캄팔라 · 마푸투 · 모로니 · 쿠웨이트 · 마나마 · 도하 · 바쿠 · 알마티 · 비슈케크 · 두샨베 · 아시가바트 · 카불 · 이슬라마바드 · 다카 · 말레 · 마라위 · 반다르스리브가완 · 쿠알라룸푸르 · 자카르타



파일:옴두르만 2.jpg
도심부인 칼리파 광장의 야경. 낮에는 그저 공터지만 밤에는 야시장이 열린다. 뾰족한 돔은 아래의 마흐디 영묘
파일:Capture+_2018-07-23-20-50-45-1.png
파일:마흐디 운동 1.jpg
옴두르만, 하르툼, 북하르툼의 위치
마흐디 운동의 창시자 무함마드 아흐마드의 영묘 (1947년 복원)

1. 개요
2. 역사
2.1. 영국령 수단
2.2. 현대
3.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옴두르만
Omdurman / أم درمان




수단 제2의 도시로,[1] 인구는 2,395,159명이다.[2] 하르툼 주에 속하며, 수도 하르툼나일강을 사이로 마주보고 있다. 하르툼 광역권에 속해있고 나일강 서안에 위치한다. 지명은 '두르만 엄마'란 뜻이다.[3] 19세기 마흐디 운동의 중심지였다.

2. 역사[편집]


파일:밥엘압델가움.jpg
마흐디국 수도이던 시절 세워진 성벽의 일부인 밥 엘 압델가움
파일:옴두르만 수단 1.png
마흐디국의 초대 지도자 무함마드 아흐마드의 영묘

1885년 마흐디 운동군의 하르툼 포위 당시 옴두르만 일대는 전자의 병영이었다. 하르툼 함락 직후 마흐디 무함마드 아흐마드가 사망하자, 그 후계자인 칼리파 압둘라히는 (마흐디 교리에서 의하면) '불신자' 튀르크 인들이 세운 하르툼을 재건하는 대신 옴두르만을 수도로 삼았다. 이때 마흐디 영묘와 현재 칼리파의 집이란 이름의 박물관으로 남아있는 압둘라히의 관저가 세워졌고, 하르툼의 폐허를 재활용하여 도시를 두르는 성벽도 건설되었다. 성벽의 규모는 남북 9.5km, 동서 3km에 이르렀다. 압둘라히의 지도 하에 마흐디 국이 체계를 갖추게 되자 바까라족, 베쟈족 출신 지지자 (일명 안사르)들이 몰려들며 옴두르만은 1895년에 이르면 인구가 40만에 육박했다고 한다.

2.1. 영국령 수단[편집]


파일:옴두르만 전투.jpg
1898년 옴두르만 전투
파일:수단 마흐디 전.jpg
옴두르만 함락 후 영국군에 의해 파괴된 마흐디 영묘

1896년 말부터 영국-이집트 군은 수단 '탈환'에 나섰다. 2년에 걸쳐 수단 북부를 평정한 원정군은 마흐디 국의 수도 옴두르만으로 향하였다. 1898년 9월 2일, 옴두르만 북쪽 10km 지점의 케레리에서 약 5만의 마흐디 군과 2만 5천의 영국-이집트 군이 조우하였다. 5시간에 걸친 격렬한 전투 끝에 개틀링 기관총 등 근대적 화기로 무장한 영국군은 1만 대 50의 엄청난 교환비로 대승을 거두었다.

당시 영국측 참전자 중에는 윈스턴 처칠더글러스 헤이그 등이 있었다. 대패 후 칼리파 압둘라히는 소수의 추종자들과 도주하였고, 영국측 사령관 키치너 경은 옴두르만에 입성한 후 13년 전 찰스 고든의 복수라며 마흐디 영묘와 시신을 훼손하였다. 칼리파 압둘라히 역시 1899년 코르도판에서 전사하며 마흐디국은 멸망하였다. 전후 영국은 하르툼을 복구하였고, 옴두르만은 그 위성도시가 되었다.

2.2. 현대[편집]


파일:옴두르만 1.jpg
파일:마흐디 무덤 1.jpg
파일:Bazaro_en_Omdurman_002.jpg
무함마드 아흐마드의 아들이 재건한 마흐디 영묘
옴두르만의 한 거리

독립 후 옴두르만은 수도 하르툼과 연계되어 광역권을 이루며 인구가 증가하였다. 다만 쿠데타나 내전이 일어날 때마다 하르툼과 함께 전장이 되었다. 2008년 다르푸르 전쟁 때에 그랬고, 2023년 수단 내전 시에도 현재까지 약 4개월간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특히 7월 들어 전투가 치열해지며 8일, 15일, 25일 세 차례에 걸친 반군의 드론 공격에 민간인 43명이 사망하는 비극이 있었다.

3. 관련 문서[편집]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0 13:50:49에 나무위키 옴두르만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최대도시하르툼이다.[2] 2008년 기준.[3] 그녀나 두르만이 누군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 마흐디 무함마드 아흐마드의 아들 압둘라흐만의 이름이 와전되어 두르만이 된 것이라고도 한다. 아마 마흐디의 부인 움 압둘라흐만이 와전되어 옴두르만이 된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