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버 스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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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스톤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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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베를린 영화제
파일:베를린 국제 영화제 로고.svg
은곰상 : 감독상
제36회
(1986년)


제37회
(1987년)


제38회
(1988년)

기오르기 셴겔라이아
(젊은 작곡가의 여행)

올리버 스톤
(플래툰)


노만 주이슨
(문스 트럭)


역대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파일:BAFTA 로고.svg
감독상
제40회
(1987년)


제41회
(1988년)


제42회
(1989년)

우디 앨런
(한나와 그 자매들)

올리버 스톤
(플래툰)


루이 말
(굿바이 칠드런)


역대 골든 글로브 시상식
파일:goldenglobe.png
감독상
제43회
(1986년)


제44회
(1987년)


제45회
(1988년)

존 휴스턴
(프리찌스 오너)

올리버 스톤
(플래툰)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마지막 황제)

제46회
(1989년)


제47회
(1990년)


제48회
(1991년)

클린트 이스트우드
(버드)

올리버 스톤
(7월 4일생)


케빈 코스트너
(늑대와 춤을)

제48회
(1991년)


제49회
(1992년)


제50회
(1993년)

케빈 코스트너
(늑대와 춤을)

올리버 스톤
(JFK)


클린트 이스트우드
(용서받지 못한 자)
각본상
제35회
(1978년)


제36회
(1979년)


제37회
(1980년)

닐 사이먼
(굿바이 걸)

올리버 스톤
(미드나잇 익스프레스)


로버트 벤턴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제46회
(1989년)


제47회
(1990년)


제48회
(1991년)

나오미 포너
(허공에의 질주)

올리버 스톤
론 코빅
(7월 4일생)

마이클 블레이크
(늑대와 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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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스톤
Oliver Stone


파일:external/www.phactual.com/a82.jpg

본명
윌리엄 올리버 스톤
William Oliver Stone
출생
1946년 9월 15일 (77세)
뉴욕 주 뉴욕 시
국적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신체
183cm
직업
영화감독, 각본가, 영화 제작자
데뷔
1974년 영화 《강탈》
학력
더 힐 스쿨 (졸업) (-1964년)
예일대학교 (중퇴) (1964-1965년)
뉴욕대학교 (BFA) (-1971년)
배우자
나즈와 사르키스(1971~1977)
엘리자베스 콕스(1981~1993)
정순정(1996~현재)
자녀
아들 션 스톤(1984년생)[1][2]
아들 마이클 스톤(1991년생)[3]
딸 타라 스톤(1995년생)[4]
종교
불교
서명
파일:rijrnp5qT.jpg

1. 개요
2. 영화 각본
3. 영화 감독
4. 여담



1. 개요[편집]


미국영화 감독. 아카데미 감독상을 2번이나 받은 명감독이다. 특유의 일관된 사회적 비판과 작품관으로 인해 많은 지지자와 안티를 동시에 가진 감독이기도 하다.[5]

작품을 보면 알지만 감독을 맡았던 작품들이 대개 미 보수파들이 '미국의 미덕'이라 부를만한 것들에 대해 가차없이 비판을 가하는 작품들이 많고[6] 흥행작도 많다. 플래툰, 7월 4일생에서는 '전장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광기'와 후유증을[7], 월스트리트에서는 '자본주의 안에 숨겨있는 인간의 탐욕'을 가혹하게 비판하는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2. 영화 각본[편집]


올리버 스톤은 영화 시나리오를 쓰면서 헐리우드에서 이름을 알렸다. 존 밀리어스 감독의 영화 <코난>(1981, 아놀드 슈워제네거 주연) 각본을 썼으며 그 유명한 <스카페이스>도 그가 시나리오를 쓴 것이다. (마약이라는 키워드가 있는걸 보면 의미심장하다.)

플래툰으로 아카데미상을 받으며 유명해지기 전에는 감독 데뷔작인 악마의 여왕 (Seizure, 1974)를 비롯하여 악마의 손(The Hand, 1981)같은 호러영화들도 감독한 바 있다. 탈옥을 다룬 영화, <미드나잇 익스프레스 Midnight Express>(1978)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으며(감독은 알란 파커) 각본가로도 이름을 떨쳤으나 이 영화가 터키를 너무 악랄하게 표현했다는 비난 속에 결국 터키에 가서 사과 방송을 한 적도 있다.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는데,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마약 밀매를 하여 감옥에 간 미국인 빌리 헤이즈 이야기를 다루었다. 하지만, 영화를 본 실존인물 빌리 헤이즈는 영화가 꽤 부풀려졌다고 되려 영화를 비난했다. 결국 감독인 파커도 나중에 터키 신문으로 사과발언을 했다.)


3. 영화 감독[편집]


올리버 스톤 감독 장편 연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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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바도르
그의 영화감독 데뷔작. 중남미 엘살바도르에서 어떻게든 버텨가는 기자를 다룬 영화. 살바도르 아옌데와는 관련이 없지만, 중남미의 친미 군사독재문화와 내전을 다룬 점에서는 큰 관련이 있다. 플래툰 이전에 만들어서 비평으로 호평을 받았었다. 제임스 우즈의 열연도 호평을 받아 제59회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었다. 한국에선 1988년에 개봉하여 서울관객 21만명으로 당시 기준으로 꽤 흥행했다.

작가의 자전적인 전쟁영화이자 감독으로 전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친 출세작. 북미에서만 1억 4000만 달러 흥행과 비평에서 엄청난 대박을 거두었고, 한국에서도 서울 개봉관에서만 57만을 동원하며, 대단한 흥행한 작품이다. 아카데미 최우수 감독상을 받았다.

한국에도 동명의 잡지가 있다. 윌럼 더포찰리 쉰을 비롯한 모든 출연 배우가 3주간 정글전 체험을 한다. 감독 자신이 베트남전 참전 경험이 있는 데다가 군사고문인 데일 다이가 짧은 시간 동안 정글전에서 받을 수 있는 모든 경험을 다 시키려고 했다고.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올리버 스톤이 베트남전에서 전역한 뒤 7년 만에 초고가 완성되고, 다시 7년 후에 영화화된 꽤 오래묵은 시나리오였으며, 당시로서는 600만 달러짜리 저예산 영화였다.

찰리 쉰은 패러디 영화인 못말리는 람보에 출연하고 만다.(참고로 람보리처드 크레나도 출연한다.)

거장 스탠리 큐브릭풀 메탈 재킷을 흥행으로 완패시켰다. (풀 메탈 재킷이 망한 건 아니지만, 플래툰이 이 영화의 3배가 넘는 흥행을 거두었기 때문.) 허나, 큐브릭 본인은 플래툰을 좋아한다고한다.

냉혹한 증권가를 다룬 영화. 감독 자신의 아버지가 증권거래소에서 일했기 때문에 각별한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도 마틴 신찰리 신은 부자지간이다. 남주인공인 고든 게코를 연기한 마이클 더글러스는 1988년 제6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2010년 자그마치 22년 만에 2편인 월 스트리트:머니 네버 슬립스 만들었으나 평은 그럭저럭이었다.

존 F. 케네디의 암살 음모론을 다룬 영화. 1991년 작. 케빈 코스트너 주연작이다. 전 세계 2억500만 달러 흥행작이다. 무거운 소재임에도, 당시, 서울 개봉관에서만 213,727명 관객으로 흥행해서, 미국 관계자들도 놀라워 했다는 후문이 있다.아카데미 2개부문 수상작이다.

해병대원으로 월남전에 참전했다 총상으로 인해 하반신 마비의 부상을 입고 전역한 예비역 하사관의 수기를 원작으로 제작하였으며, 톰 크루즈가 주연을 맡았으며, 청춘 스타 이미지를 벗는데 성공한다. 플래툰, 7월4일생, 하늘과 땅을 올리버 스톤의 베트남전 3부작으로 말하기도 한다. 전세계 1억 6100만 달러 흥행작으로, 아카데미 감독상, 편집상 수상작이다. 하지만, 한국 흥행은 서울 10만에 그쳤다.

리처드 닉슨을 다룬 영화. 1995년 작으로, 안소니 홉킨스가 출현했다. 매우 사실적인 연기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닉슨 항목 참조. 실제로 1960년 대선에서 맞대결한 대통령이자 많은 이야기를 남긴 두 대통령의 영화를 모두 찍었으나 두 영화의 분위긴 제법 다르다고. JFK완 달리 이 영화는 정말로 닉슨의 인생에만 고찰한 영화다. 그리고 음모론이나 정치색이 거의 거세된 체 그의 삶에 대해서만 조명하여 닉슨을 인간적으로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지만, 올리버 스톤 성향상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론 하워드 감독의 닉슨이 오히려 옹호하는 성향이 짙다.

베트남 3부작의 완결편으로, 1993년 개봉했다. 월남전을 비롯한 온갖 역경을 헤치고 살아남은 파란만장 베트남계 이민 여성, 풍티 리리의 자서전을 원작으로 한 영화. 힙 티 레, 토미 리 존스 등이 출연했으며, 흥행에는 참패했다. 영화 자체는 한 여인의 기구한 삶이란 측면에 집중해 보면 상당히 볼만하다. 참고로 한국에서도 서울 6만명이 채 안되는 정도로 흥행에는 실패했는데, 플래툰이나 살바도르, J. F. K. 를 빼면 올리버 스톤 감독 영화는 한국 흥행이 부진한 편이다.

  • 올리버 스톤의 킬러[8]
전국을 돌아다니며 무작위로 살인을 저지르는[9] 연쇄살인범 커플에 관한 실험성이 돋보이는 영화. 젊은 시절의 우디 해럴슨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올리버 스톤의 일관된 사회비판적 성향으로 언론의 선정성과 대중의 연쇄살인범에 대한 광기어린 숭배를 풍자한다. 타란티노의 각본으로 만든 영화지만, 쓰레기로 만들었다며 비난하기도 했다.[10] 폭력성과 실험적인 양식탓에, <펄프 픽션>처럼, 호불호가 갈린다. 또한 콜럼바인 고교 총기난사 사건 등 영화의 영향을 받은 모방범죄 사건들이 여럿 일어나, 재평가와 비판을 받기도 했다. 쿠엔틴은 자신의 각본이 절반 이상 반영되지 않았다고 이 영화를 보지 말라고 당부했다. 올리버 스톤은 각본에 많은 돈을 지불했으며 각본에서 모든 게 합법적인 것이라 반박했다. # 이 영화 25주년 때 <조커>에 대해 올리버 스톤 감독이 모방범죄와 폭력 미화를 야기한다는 논란에 대해 “25년이 지났어도 워너 브라더스는 이 영화에 그렇게 겁을 먹고 무삭제본 상영을 이제서야 해주면서 ‘조커’는 극장에서 대대적으로 개봉하는 건 뭔가?”라는 발언을 했다. # 현재는 디즈니+를 통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올리버 스톤이 만든 영화 중에서 흥행과 비평 모두 망했지만, 전투씬과 반젤리스의 음악만은 호평이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고.

  • 월드 트레이드 센터
월드 트레이드 센터의 생존자인 존 맥라글린과 윌 지메노의 실화 영화이다. 이 영화도 올리버 스톤이 만들었다 하니까 사람들은 9.11 테러 음모론을 다룬 것이라 지레짐작했는데 소방관들의 분투만을 다룬 영화였다. 올리버 스톤은 9.11 음모론을 믿지 않는다고 말한 바가 있다.

조지 워커 부시를 소재로 한 전기 영화. 로저 이버트는 호평속에 만점을 준 작품이다.

테일러 키취와 존 트라볼타 주연의 범죄 영화이다.

에드워드 스노든프리즘 폭로 사건에 대한 영화다. 조셉 고든레빗이 스노든 역을 맡고, 2016년 9월 16일 개봉했으나 흥행에는 실패했다. 관객 평가는 비교적 나쁘지 않은 편이지만,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평이 갈리거나 평범하다는 의견이 많다.


4. 여담[편집]


어린 시절 올리버 스톤은 증권거래소에 다니는 유대계 아버지[11] 밑에서 자랐는데, 아버지의 불륜 때문에 가정이 파탄났다.(...) 하지만 아버지와는 계속 알고 지냈다고 한다. 그리고 대학교 시절에 영어강사를 하기 위해 베트남으로 갔다. 물론 그때는 베트남전이 일어나기 전이었다. 그리고 21살에는 베트남전에 자원 입대한다. 군 생활 중에 제1 기병사단 레인저 연대의 모태가 되는 장거리 정찰대(LRRP)에서 복무했다. 거기서 플래툰의 캐릭터 일라이어스의 실제 모티브가 되는 선임과 만난다. 이때 두 번의 부상을 입었지만 무공훈장과 그를 일생동안 괴롭혀온 마약 중독을 얻게 되었다.

상기했듯 그는 베트남전에서 마약 중독에 빠지게 되는데, 나중에는 갱생원에 갔다고 했지만, 결국 마약을 계속하다가 투여량을 잘못 조절해서 죽을 뻔한 적도 있다고 한다. 2005년에는 마약하고 운전을 했다가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었다.# 또 자서전을 읽어보면 아버지 음식에 마약을 약간 타서 먹인 적이 있다고 한다. 아버지가 깜짝 놀라자 올리버 스톤이 장난스럽게 "뭔 일 있나요” 이런 식으로 물었다고 한다.

여자 관계가 꽤 복잡하다는 루머가 있지만, 외부적으론 자세한게 밝혀진건 첫 번째 부인과의 결혼이 바람으로 파탄났다는 정도. 이건 여자관계가 복잡했던 부친의 영향을 받았다는 설도 있다. 그래서 마약을 음식에..? 참고로 3번째 부인이 한국계 여성이다.

한국영화에 여러 차례 관심을 보인 적 있는데 영화 알렉산더를 촬영할 당시엔 김성수 감독의 무사전 스탭들에게 관람 주문하기도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한국에도 여러 차례 방한하였고 이명세 감독과 대담도 하였고 이래저래 아시아 문화권에 많은 관심을 보이는 감독이다.

2013년 8월 3일에는 방한, 제주도 해군 기지 건설 논란 관련해 반대 주장을 하고 가기도 했다.

2015년 1월 2일, “우크라이나인들은 미국 신냉전 전략의 희생자들”이라고 미국 정부를 비난했다.기사 현재 유로마이단 다큐맨터리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 이름은 '우크라이나: CIA 쿠데타'. (Ukraine: The CIA Coup) 2016년에 Ukraine On Fire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으며, 그 후속작인 Ukraine Revealing을 2019년에 만들었다. 두 작품 모두 우크라이나 사태의 서방 개입과 네오나치 그리고 스테판 반데라의 비판을 담고 있으며, 미국을 비판하는 입장을 취했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공영방송에서는 상영을 금지했다.

뜬금없지만 울트라맨 가이아의 광팬으로 유명하며 헐리우드화도 직접 하려고 했지만 거절당했다고 한다.

저서로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 현대사 2부작 짜리 역사 서적이 있다. 하워드 진이나 노엄 촘스키가 쓴 서적들처럼 미 제국주의를 비판적 시각에서 본 책이다. 책이 나오기 이전에 다큐멘터리로도 제작되었다.

이오시프 스탈린에 대해 제2차 세계 대전을 승리로 이끈 지도자로 평가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의외로 자신이 만드는 영화 스타일과 180도 다른 저예산 슬레셔 영화를 주로 만드는 제작사 트로마의 대표 로이드 카우프먼과 겹치는 점이 많다. 예일대에 학적을 둔 적이 있고 (올리버 스톤은 도중에 나갔지만은) 월남전 참전 경험이 있다는 점 등.

2020년 관동대학살 추모식에 메세지를 보냈다. 또한 당해 말에는 코로나 창궐 상황에 대비해서 스푸트니크 V 백신을 맞았다고 한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선 미국은 양심에 따라 침략 전쟁을 많이 벌이고 있지만, 우크라이나에 대한 푸틴 대통령의 침략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는 반응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 페이스북 글 링크. 미국의 내로남불도 많이 깠고 남의 나라 사정도 많이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편인 그지만, 러시아의 침공은 그 자체로 부당하다고 본 것.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올리버 스톤이 러시아에 대한 우호적인 입장을 완전히 전환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즉, 앞의 부분은 어디까지나 침공에 대한 실책을 지적했던 것이다. 전쟁이 발발하고 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올리버 스톤은 이 전쟁을 부추기고 이를 통해 이득을 보는 세력이 미국임을 분명히 했으며, 우크라이나의 작위적인 언론검열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또한 2022년 5월에 부차 학살이 우크라이나 정부와 서방에 의해 조작되었다는 트위터를 올리기도 했다.# # # 사실 2013년 유로마이단 이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대한 올리버 스톤의 입장은 일관적이었다. 앞서 언급한 유로마이단과 돈바스 내전을 다룬 다큐멘터리 '우크라이나 불길에 휩싸이다(Ukraine On Fire 2016)'에서 스톤은 우크라이나의 네오나치나 극우주의 그리고 미국 네오콘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따라서 올리버 스톤은 초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공은 분명 잘못됐음을 인정하는 한편, 전쟁 과정에서 서방이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으며, 선택적인 분노를 하고 있고, 여론조작을 하고 있다고 보며 비판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기후변화로 원자력 발전에 대해서 다시 보았다며, 원전을 지지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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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엘리자베스 콕스 사이의 자녀[2] 2012년 이란에서 이슬람교로 개종했다.[3] 엘리자베스 콕스 사이의 자녀[4] 정순정 사이의 자녀[5] 쿠엔틴 타란티노처럼 별로 안좋아하는 감독도 있고(타란티노와는 내추럴 본 킬러 때문에 악연이 있다.) 스탠리 큐브릭처럼 옹호하는 감독도 있다.[6] 정작 아이러니하게도 올리버 스톤은 명문대를 졸업한 인텔리에다 반전주의가 횡행하던 베트남 전쟁 기간에 의무병역을 마친 그들 기준 바람직한 미국인의 초상에 부합되는 인물이다.[7] 미국 보수파들은 베트남 전쟁을 '공산주의 확산 방지를 위한 필요악'이었다고 보기도 한다. 물론 실패한게 함정이지만.[8] 원제: 내추럴 본 킬러[9] 자신들에게 잠자리와 식사를 제공해준 한 인디언 노인을 실수로 죽였는데(꿈에서 괴물을 보고 놀라서 잠결에 총을 쏴버렸는데 하필 총구방향에 노인이 있었다.) 그건 후회하는지, 인터뷰를 할 때도 다른 피살자들은 관심없는데 그 노인에게만은 정말 죄송하고 후회한다고 얘기한다.[10] 이것 때문에 타란티노는 이 영화의 오리지널 스토리를 책으로 낼려다가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미카엘 하네케 감독이 비판한 타란티노의 폭력성도 그닥...[11] 조부 때부터 기독교로 개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