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흐 블로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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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흐 블로힌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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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파일:우크라이나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10대, 14대



클럽
파일:FC 디나모 키이우 로고.svg

37대





올레흐 블로힌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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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파일:발롱도르 트로피.png




베스트팀
파일:월드사커 로고.png









우크라이나의 축구감독


이름
올레흐 블로힌
Oleg Blokhin | Олег Блохін
본명
올레흐 볼로디미로비치 블로힌
Олег Володимирович Блохін
출생
1952년 11월 5일 (71세)
소련 우크라이나SSR 키이우주
국적
[[소련|

소련
display: none; display: 소련"
행정구
]]
(1952~1991)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
display: none; display: 우크라이나"
행정구
]]
(1991~ )
신체
180cm
직업
축구선수 (공격수[1]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선수
FC 디나모 키이우 (1969~1988)
SK 포어베르츠 슈타이어 (1988~1989)
아리스 리마솔 FC (1989~1990)
감독
올림피아코스 FC (1990~1993)
PAOK FC (1993~1994)
이오니코스 (1994~1997)
PAOK FC (1997~1998)
AEK 아테네 FC (1998~1999)
이오니코스 (1999~2002)
우크라이나 대표팀 (2003~2007)
FC 모스크바 (2007~2008)
우크라이나 대표팀 (2011~2012)
FC 디나모 키이우 (2012~2014)
국가대표
파일:소련 축구 연맹 로고.svg 112경기 42골[2] (소련 / 1972~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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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클럽 경력
3. 국가대표
4. 지도자
5. 플레이 스타일
6. 기록
6.1. 대회 기록
6.2. 개인 수상
6.3. 수훈
6.4. 개인 기록
7. 여담
8.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나는 블로힌의 엄청난 성과가 전혀 놀랍지 않아요. 그는 유럽 최고의 윙어입니다. 브라질 선수에 비견될만한 민첩성과 발기술을 가졌죠."

발레리 로바노브스키


우크라이나축구선수 출신 감독. 2012년부터 2014년까지 FC 디나모 키이우 감독을 맡았다.

우크라이나 축구 역사를 대표하는 인물로 요한 크루이프프란츠 베켄바워발롱도르를 양분하던 시기에 그 둘을 밀어내고 발롱도르를 수상했다는 것으로 올레흐 블로힌의 클래스를 알 수 있다. 우크라이나 국적의 선수로는 최초로 발롱도르를 수상했으며[3] 소련으로 넓혀도 필드 플레이어로는 최초이다.[4]


2. 클럽 경력[편집]


FC 디나모 키이우에서 축구를 시작하였고 18살때 팀의 주전 공격수가 되었다. 1973년에 발레리 로바노브스키가 부임한 이후 블로힌의 기량은 올라갔고 4년 연속 득점왕을 차지했다. 이후 블로힌의 화살촉은 유럽을 찌를 준비가 되었다. 1974-75 시즌 PSV 아인트호벤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를 헝가리의 페렌츠바로시 TC를 상대로 3:0으로 제압하여[5] 유러피언 컵 위너스컵도 들어올리며 명성을 유럽 무대에 알렸다. 이어서 유러피언 슈퍼컵에서 유러피언컵 우승팀이자 프란츠 베켄바워, 게르트 뮐러, 제프 마이어가 이끄는 FC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1차전에는 1골, 2차전에는 2골을 넣어 합계 3:0으로 완승하여 우승을 차지했다. 이때의 활약으로 블로힌은 1975년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블로힌은 이후에도 맹활약했고 1985-86 시즌 이고리 벨라노프와 함께 유러피언 컵 위너스컵을 들어올렸고 대회 총 5골을 득점하여 벨라노프와 함께 득점왕을 차지했다.


3. 국가대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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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 뮌헨 올림픽1976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소련 축구 국가대표팀에 동메달을 안겨주었고 1982년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2차 조별리그까지 올라갔으나 즈비그니에프 보니에크이 이끄는 폴란드에 골 득실로 밀려 4강 진출에 실패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팀의 핵심 선수가 아니었으며 이고리 벨라노프의 활약으로 16강에 진출했으나 벨기에와의 경기에서 연장 접전 끝에 4:3으로 패했다.

또한 소련 축구 역사상 최초로 FIFA 센추리 클럽에 가입했다.


4. 지도자[편집]


1990년에 은퇴를 하고 지도자의 길을 걸었고, 우크라이나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8강까지 이끌었다. 이후 UEFA 유로 2008 본선 진출에 실패하며 대표팀 지휘봉을 내려놓았고, UEFA 유로 2012가 폴란드와 자국에서 공동 개최되어 2011년 ~ 2012년까지 대표팀 감독을 잠깐 맡았고, 2012년 2월 ~ 2014년 4월까지 FC 디나모 키이우 감독을 역임하였다.


5. 플레이 스타일[편집]




압도적인 스피드, 드리블 능력으로 유명했다. 별명인 화살도 블로힌의 스피드에서 비롯된 것이다.

당대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인 베르티 포크츠를 유럽대항전에서 만날 때마다 탈탈 털어버렸던 무시무시한 선수이다.


6. 기록[편집]



6.1. 대회 기록[편집]




6.2. 개인 수상[편집]




6.3. 수훈[편집]


  • Merited Master of Sport: 1975


6.4. 개인 기록[편집]




7. 여담[편집]


이리나 데리우기나결혼하였으나, 1990년이혼하였다. 둘 사이에는 외동딸 이리나 블로히나가 있다.


8. 둘러보기[편집]







[1] 윙어, 세컨드 스트라이커[2] 소련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자[3] 2번째는 이고리 벨라노프, 3번째는 안드리 셰브첸코.[4] 소련 최초의 발롱도르 위너는 그 유명한 레프 야신.[5] 이때 블로힌은 팀의 세번째 골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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