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산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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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가 있는 대한민국의 환경 관련 사건사고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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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이전
박가분 사건(1930년대)Co / 온산병(1983)L / 원진레이온 사태Co L(1991) / 낙동강 페놀 유출사건Co L W(1991)
2000년대
주한미군 독극물 한강 무단 방류 사건L W Na(2000) / 태안 기름유출사고Co L(2007)
2010년대
광주 산성 수돗물 사고(2012)W / 구미 불산가스 누출 사고L(2012) / 하남시 구름 추락 소동L(2015) / 태광산업 방폐물 불법 보관 사건(2016)Co R / 장점마을 집단발암사건Co L(2017) / 라돈침대 사건(2018)Co R / 인천 붉은 수돗물 사태(2019)W Na
2020년대
인천 수돗물 유충 사태(2020)W Na / 춘천 단수 사태(2021)W Na / 러브버그 대량발생 사건(2022)E / 대구 염색산업단지 황산 누출 사고(2023)L / 빈대 확산 사태(2023)E
C: 이상기후 사건, Co: 기업 범죄, E: 생태계 이상활동, L: 오염물질 유출, R: 원자력 관련 사고, W: 상수도 사고, Na: 국가행정조직 연루



1. 개요
2. 경과
3. 영향



1. 개요[편집]


/ Onsan illness

1980년대 초반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산읍(당시 경상남도 울주군 온산면)[1] 일대에서 발생한 공해병.


2. 경과[편집]


1983년 농작물과 양식어장 피해로 시작되어 사람에게까지 발병함으로써 울산이 대한민국 공해병의 고향이라는 오명을 얻는 계기가 되었으며 '한국 공해문제의 대명사'라고도 불린 대표적인 공해병이다. 온산공단1974년 구리·아연·알루미늄 등 비철금속공업 기지로 지정된 후 1980년대 들어 화학·제지·자동차부품 등 다양한 업종의 공장들이 입주해 종합공업단지로 탈바꿈하였다. 그러나 공업단지 개발을 위한 종합계획도 세우지 않고 개별 공장들이 공장을 세우는 바람에 전체 주민 1만 4천여 명 중 1800여 명만 이주하고 나머지 1만 2천여 명은 공단에 포위되거나 고립된 채 살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1983년부터 주민들에게서 허리와 팔다리 등 전신이 쑤시고 아픈 증세가 나타났다. 1985년에는 이 지역 주민 1천여 명이 전신마비 증상을 보이자, 한국공해문제연구소가 '이타이이타이병의 초기 증세와 비슷한 병을 앓고 있다.'고 발표하여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고 여론을 환기시켰다.

이 증세를 두고 환경청과 학계, 주민 사이에서 공해병 논쟁이 일어났다. 처음 환경청은 1주일간에 조사 후 환경 문제가 아니라는 발표를 하였다. 그러나 같은 해 12월 온산 지역 주민들은 11개 공해배출업체를 대상으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해 인체피해 위자료, 농작물 피해보상금 지급 판결을 받음으로써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공해피해에 대한 법원의 구체적인 인정을 받았다.

마침 1988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국제 홍보에 나선 정부는 대규모로 1986 서울 아시안 게임 홍보작업을 하려고 하였고 이슈가 된 사항들을 하나하나 처리하기 시작했다. 당시 정부도 공해 피해를 인정하고 주민들의 전원 집단이주를 결정해 오염원이 된 공단에 둘러싸인 주민 1만여 명을 소개하고 온산읍 덕신리와 인근 온양읍 남창리, 대안리로 분산이주시켰다. 이 때문에 과거 온산 읍내가 있었던 지역은 정주인구는 거의 없이 공단만 있고 주민들은 고개 너머에 있는 덕신리에 살고 있다.


3. 영향[편집]


이 사건은 한국 대중문화사에 간접적인 족적을 남겼으니, 바로 환경 문제미디어 전면으로 떠오르게 했다는 것이다. 당시 갓 창간되었던 과학동아(1986년 4월호)에 인용된 당시 일간지 헤드라인은 "온산병, 아파요 아파요"였는데[2] 바다 건너 일본의 일인 줄만 알았던 공해병이 한국에서도 발생했다는 것이 당시 사람들에게는 경각심으로 다가왔다.[3]

온산병은 1991년에 일어난 낙동강 페놀 유출사건과 함께 대한민국 사회가 본격적으로 환경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계기가 되었다. 1990년대 초반 KBS 뉴스 9 날씨코너에서 '오늘의 아황산가스 지수'를 알려주었고[4] 조선일보는 '쓰레기를 줄입시다' 캠페인을, 가요계는 환경콘서트 <내일은 늦으리> 같은 행사를 여는 등[5] 2010년대에 본격적으로 문제가 된 중국미세먼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사회적 경각심이 컸다. 그리고 이런 환경 테마는 1997년 녹색전차 해모수, 1999년 레스톨 특수구조대 같은 작품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정부 펀딩을 받는 데 환경오염 관련 주제가 비교적 잘 먹혔기 때문이다.

울산의 시가지 형성에도 영향을 주었다. 주요 주거지(인구 분포)와 공단의 분리가 이전보다 심화되었으며 특히 예나 지금이나 울산의 선호도 높은 주거지는 공단과 떨어진 지역이 상위권에 포진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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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96년 온산읍으로 승격[2] '이타이'가 '아파요'로 번역된 것이다.[3] 게다가 비슷한 시기에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가 터지면서 환경에 대한 경각심은 최고조로 높아졌다.[4] 아황산가스는 가정에서 사용하는 연탄가스나 당시 거리에 만연했던 경유 사용 버스, 트럭들의 배기가스가 공기 중에서 반응하여 생기는 것으로 이 지수가 곧 스모그의 척도로 사용되었다. 서울 은평구 불광역 3호선 쪽 도로에는 아황산가스 지표를 나타내는 전광판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이 전광판은 2022년 기준으로 광화학스모그의 지표인 아황산가스 대신 공기 중 초세먼지 수치를 알려주고 있다.[5] 이 행사가 현재 아이돌들이 모여 합동무대를 펼치는 '평화콘서트'류의 원조격이다.